속눈썹을 한 방향으로 붙여야 한다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이번 시즌 인조 속눈썹은 분해되고 해체되어 자유롭게 눈가에 얹혔다. 60년대 인형 같은 속눈썹을 깜빡거리던 트위기가 2016년에 다시 등장한다면 이런 속눈썹을 하고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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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처럼 가죽 스트랩을 손에 동여매고, 메시 톱과 메탈 드레스를 입은 채 런웨이에 올라선 모델들.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만화적 상상은 이뿐만 아니었다. 모델들의 눈가는 과장된 인조 속눈썹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나부끼듯 자연스레 흩날렸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가 ‘해체된 속눈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 이 속눈썹 메이크업은 모델들을 일본 만화 망가의 주인공처럼 섹시한 여전사로 변신시켰다. 이번 봄/여름 시즌 루이 비통 쇼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헤로익 판타지(Heroic Fantasy), 즉 영웅 판타지가 메이크업으로도 고스란히 구현된 것이다. 그런데 인형 속 눈썹을 넘어서 ‘망가 속눈썹’이라는 신조어를 양산한 이 과장된 속눈썹이 루이 비통 쇼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한동안 마스카라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룩을 고집하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이번 시즌에는 마스카라 전쟁을 벌였다. 인조 속눈썹을 이용한 실험적인 룩이 등장했고, 마스카라를 바르는 방법에도 위트가 더해졌다.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마르니 쇼였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톰 페슈는 요즘 여성들이 인조 속눈썹이나 속눈썹 연장술에 열광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맥의 48호, 7호, 33호 등 각기 다른 길이의 인조 속눈썹을 가닥가닥 잘라 눈 위아래에 불규칙하게 붙였다. 마치 이제 인형처럼 곱상하고 정갈한 속눈썹은 지겹다고 항의라도 하듯이! 60년대 트위기를 떠오르게 하지만 더 지저분하고 반항기가 넘친다. 그는 파운데이션을 피부뿐 아니라 모델들의 입술에도 살짝 발라 입술의 붉은 기를 감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예쁘기만 한 인형처럼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시블링 쇼에서 선보인 속눈썹 테크닉 역시 상상의 한계를 넘어선다. 마치 아이라인을 길게 빼 그린 듯 길고 곧게 뻗은 속눈썹을 연출하기 위해 메이크업 아티스트 미란다 조이스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인조 속눈썹을 스트레이터로 납작하게 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속눈썹은 열에 녹아 뭉쳐버리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충분했다. 컬링이 전혀 없이 곧게 뻗은 속눈썹은 짧은 앞머리, 플라스틱 헤어 밴드와 더해져 미래의 여전사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예쁘지는 않지만 쿨하고 섹시해요. 전성기의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약간의 페티시가 더해져 미래적인 분위기를 전하죠.” 루이 비통 쇼에서 모델들은 별처럼 뾰족뾰족하게 각이 진 기하학적인 아이라인을 그렸으며 위 눈꺼풀에는 넓게 커팅된 인조 속눈썹 2~3조각을, 눈 아래에는 속눈썹을 인형처럼 가닥가닥 붙였다. 원조 섹시 여전사 세일러문이 2016년에 등장한다면 바로 이런 눈썹을 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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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스의 아이 페인트 솔로몬 아일랜드. 2.5g 3만6천원. 2 돌리윙크의 아이래쉬 No.1 돌리스위트. 2만2백원. 3 아이메이징의 아이래쉬 No.814 시나몬쿠키. 1만9천8백원. 4 스타래쉬의 래쉬 몬스 No.54. 2만2천원. ¬5 밍크래쉬의 No.12 달링유. 7천9백원. 6 메이크업 포에버의 아쿠아 XL 아이 펜슬 M10. 1.2g 2만9천원. 7 슈에무라의 페인팅 아이라이너 블랙. 2.8g 3만원. 8 헤라의 리치 볼륨 마스카라. 10g 3만5천원. 9 시세이도의 아이래쉬 컬러. 2만2천원. 10 샤넬의 르 볼륨 드 샤넬 70 블루 나잇. 6g 4만4천원. 11 시슬리의 소 컬 마스카라 딥 블루. 10ml 6만5천원. 12 아이미의 연예인 속눈썹 37호. 1만4천원. 13 에스쁘아의 핀업 컬러 아이래쉬. 1만원.

백스테이지의 마스카라 소비량도 급증했다. 마스카라 한 통을 다 쓴 듯 엄청나게 두툼한 속눈썹을 한 모델들이 여기저기 등장했으니까. 닥스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리아 컴페레토는 인조 속눈썹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마스카라를 발랐다. 그리고 마스카라가 눈 밑에 그대로 묻어나게 해서 마치 눈 아래에 속눈썹 모양으로 아이라인을 그린 듯한 효과를 더했다. 마크 제이콥스 쇼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프랑수아 나스 역시 청록색 피그먼트를 바셀린과 섞어 기름진 눈매에 마스카라를 떡 지듯 과장되게 발라 흐트러진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우리는 예쁜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 메이크업 아티스트 루시아 피에로니는 선택과 집중에 탁월했다. 마리 카트란주 쇼의 모델들은 눈썹 중앙에만 얇게 조각 낸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그 위에 푸른색 마스카라를 두툼하게 발랐다. “눈 중간의 속눈썹은 거의 눈 크기만 한 과장된 사이즈로 붙이고 마스카라를 아주 많이 발랐어요. 예쁘지만 뭔가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인형 같죠.” 이런 룩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루시아 피에로니는 평소처럼 마스카라를 바른 다음 속눈썹 중간에만 마스카라를 다시 두툼하게 바르라고 조언한다. 마스카라 브러시를 가로로 흔들어 발라 속눈썹이 자연스럽게 뭉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속눈썹 프라이머를 먼저 충분히 바른 다음 볼륨 마스카라를 덧바르면 더욱 효과적이다. 물론, 눈 외에는 모든 것을 심플하게 연출해야 더욱 아름답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60년대 핀업걸처럼 둥글게 부풀린 가발에 형광빛 오렌지 입술, 대담한 눈매를 깜빡이는 금발 미녀들이 등장한 제레미 스콧 쇼. 그런데, 이 과감한 속눈썹은 인조 속눈썹이나 마스카라가 아니라 아이라이너로 연출한 것이다! “이건 속눈썹을 흉내 낸 아이라인 같은 거예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가부키가 에이미 와인하우스에게 영감을 받아 날개 모양의 속눈썹처럼 그린 아이라인은 컬렉션의 만화와 같은 무드를 배가시켰다.

물론 따라 하고 싶은 속눈썹 테크닉도 많다. 아이라인을 깔끔하게 그린 다음 눈꼬리에만 칠흑같이 새까만 인조 속눈썹을 붙여서 캐츠 아이 효과를 낸 안나 수이 쇼, 점막을 꼼꼼히 채워 그린 아이라인을 번진 듯 연출하고 마스카라를 풍성하게 발라 속눈썹을 연장한 것과 같은 눈속임을 선보인 소니아 리키엘 쇼, 보드라운 속눈썹을 붙여 골드로 물들인 피부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든 알베르타 페레티 쇼 등. 어쨌든 이번 시즌, 인조 속눈썹과 마스카라가 다시 돌아왔다! 우리의 눈매에도 드라마를 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