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문화가 집약된 스카잔은 이제 더 이상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스트리트 문화를 타고 젊음을 상징하는 패션 트렌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이 멋진 점퍼의 매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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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 로랑 2 신민아는 스카잔으로 블랙 룩에 화사함을 더했다. 3 미우미우의 네온 컬러 미니스커트로 화려함을 배가시킨 키아라 페라그니. 4 스카잔과 사이하이 부츠의 완벽한 조합을 보여준 수주. 5 루이 비통

솔직히 고백하면 스카잔(Sukajan)이 이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게 될 줄 몰랐다 .루이 비통의 2016년 봄/여름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서 스카잔을 봤을 때 스‘ 타일리시한’ 건 분명하지만 ‘트렌디하다’라고 판단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예측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스카잔은 지금 유행의 중심에 있다. 이를 증명하듯 셀러브리티들의 스카잔 사랑이 계속 포착되고 있다. 해리 스타일스는 LA 감성의 생 로랑 스카잔을 입고 공연을 하고, 케이트 모스는 스카잔을 데일리 룩으로 소화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올리비아 팔레르모는 공식 석상에 스카잔을 어깨에 살포시 걸친 채 나타났으며, 발렌티노의 뮤즈로 파리행 비행기를 탔던 신민아의 선택도 스카잔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스카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6천 개 이상 검색된다. 이 정도면 스카잔 풍년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스카잔이 어떤 이유로 인기가 많은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스카잔의 시초를 들여다봤고, 그 속에서 지금의 패션 트렌드를 잇는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바로 스트리트 컬처 기반의 도발적인 기질의 만남!

스카잔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이 일본을 떠나며 재킷의 앞면이나 뒷면에 용, 호랑이, 벚꽃 등의 자수를 새겨 가져갔던 기념품이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가 결합된 재킷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받아 탄생한 패션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문화가 교류되며 일본 역시 미군의 영향으로 미국 문화가 전파되었다. 그 결과 1960년대 일본에는 아메리칸 정통 캐주얼 룩인 프레피 룩이 유행했지만, 옥스퍼드 셔츠와 팬츠 룩은 젊은 노동 계층에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질 뿐이었다. 이에 대한 반항적인 기질로 젊은이들 영역 안에 스카잔의 강렬함이 스며들었다. 야쿠자의 타투처럼 보이는 스카잔의 화려한 자수 장식은 상위 계층에 대한 반항의 표식이자 그들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장치였다. 이러한 맥락은 무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패션계에 꽂혀 있는 유스 트렌드와 닮아 있다 .베트멍과 발렌시아가의 수장인 뎀나 즈바살리아와 고샤 루브친스키를 주축으로 번진 유스는 안정적이고 정형화된 아이템을 비틀고 변형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자유로운 정신이 담겨 있다. 즉, 과거 일본의 거리 문화를 만들던 젊은 노동자들의 도발적인 성향이 점철된 스카잔이 스트리트 컬처 기반의 유스 트렌드와 맞물려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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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틴 소재 스카잔은 23만9천원, 카이 아크만(Kai-Aakman). 2 새틴 소재 스카잔은 가격미정, 마쥬(Maje). 3 새틴 소재 스카잔은 34만9천원, 씨씨 콜렉트(CC Collect). 4 새틴 소재 스카잔은 19만8천원, 오아이 오아이(OiOi). 5 폴리에스테르 소재 스카잔은 17만8천원, 참스(Charm’s).

하이패션 수면 위로 스카잔을 끌어올리는 데에는 루이 비통의 남성복 수장인 킴 존스와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한몫했다. 특히 킴 존스는 세계 각국을 돌며 영감을 얻는 걸로 유명한데, 그는 도쿄 여행의 잔상을 보여주듯 일본의 색채를 미묘하게 섞은 컬렉션을 종종 선보였다. 이렇듯 일본 사랑이 남다른 디자이너라 도쿄의 빈티지 숍에서 쉽게 볼 법한 스카잔을 2016년 봄/여름 컬렉션에 소개한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의 손을 거쳐 화려한 생명력이 더해진 스카잔은 벚꽃이 만발하고 홍학이 날아올랐다. 한편,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우리가 지금껏 촌스럽다고 여겼던 너드와 긱 시크 룩을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했고, 그 결과 괴짜들의 스타일은 놀랄 만큼 하이패션적으로 진화했다. 늘어진 스웨트 셔츠, 후줄근한 점퍼, 트레이닝 팬츠로 상징되던 ‘츄리닝 룩’이 하이 패션을 만나 환골탈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트레이닝 점퍼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손을 거쳐 일본풍의 꽃을 피우고 화려한 색감을 더해 스카잔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호사스러운 자태는 현실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이어서 2016년 가을/겨울 패션위크의 스트리트 패션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단,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선보인 스카잔 스타일은 곤란하다. 뒷골목의 어깨 깡패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스카잔 룩을 연출할 때는 크게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스카잔의 화려함을 극대화하거나 중화시키는 것. 전자의 경우는 키아라 페라그니처럼 컬러풀한 미니스커트로 화사함을 배가시키는 것이다. 이때 액세서리는 담백한 디자인을 고르는 게 현명하다. 과도한 멋부림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법. 반면, 후자의 경우는 스카잔과 정갈한 테일러드 팬츠, 스카잔과 데님 팬츠처럼 안정 지향적인 룩을 연출하는 것이다. 누구나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룩이지만 존재감은 확고하다. 하늘로 승천하는 용 자수의 웅장한 자태가 당신의 뒤태를 빛내줄 것이다. 그러니 올봄, 비장의 카드를 꺼내고 싶다면 스트리트 룩의 비주류적인 기운은 덜어내고 하이패션의 고급스러움은 살린 스카잔을 들여다보자. 클래식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바이커 재킷처럼, 스카잔 역시 옷장에 구비해야 할 필수 아이템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