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멋을 내기 위해 입은 흰색 셔츠가 매년 목화 재배 노동자 2만 명을 죽이고, 당신이 신은 운동화를 만들기 위해 인도의 일곱 살 아이가 하루에 1천7백원을 받고 12시간을 일하고 있다면? 우리가 선택하고 입은 옷은 첨예한 사안을 안고 있다.

 

H&M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해 컨셔스 컬렉션을 론칭했고 자신들의 신념을 전하는 영상을 선보였다.

고백하건대, 친환경적으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껏 해본 적이 없다. 모피와 동물 보호에 관한 문제 역시 한쪽 눈을 슬며시 감아왔고, 누가 만들었나보다는 누가 디자인한 옷인가를, 어떤 공정을 거친 소재인가 보다는 얼마나 부드럽고 호화로운 장식을 더했는가가 중요했다. 무역 거래 과정이 얼마나 공정한가보다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따져 물은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윤리적인 것을 고려할 만큼 내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오늘 해야 할 수많은 일을 완료하는 것만도 벅찬 하루하루인데, 옷을 입을 때조차 무언가를 배려해야 하는 것이 머리 아프다. 아마도 우리 대부분이 이와 같은 이유로 이성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윤리적인 소비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사실 친환경적인 옷 입기는 학교에서 배웠을 법한 교과서적 기술에 대입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말이다.

목표: 환경과 미래를 고려한 의생활로 자원의 사용과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최소화하며 의복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첫 번째 실천 방안 유행과 간편성을 추구하는 의복 구매 행동을 줄이고 덜 사고, 오래 입고, 다시 쓰는 생활 습관을 갖는다. 두 번째 실천 방안 천연 소재의 옷을 입는다. 세 번째 실천 방안 공정 무역을 통해 생산된 윤리적이고 가치 있는 패션을 추구한다. 글로 배운 친환경적 옷 입기란 이렇게 쉬운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실천부터 지키기가 쉽지 않다. 애초부터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하는 패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현대의 우리는 필요한 것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소비하기 때문에 현실화하기가 매우 어렵다.

패스트 패션 VS 업사이클링 패션
환경을 위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적게, 느리게 소비하는 것이다. 패션 산업은 모든 제조 산업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한다. 옷감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폐수에서부터 제작 과정에서 버려지는 직물 및 견본까지 세계 모든 산업 중 다섯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분야이다. 저널리스트 루스 스타일리스가 쓴 <에콜로지스트 가이드 패션>에 따르면 현대 패션 산업이 품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면서 환경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옷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전 시대의 사람들은 옷을 무척 아꼈다. 하지만 1만9천원짜리 티셔츠를 마음껏 살 수 있는 시대에 이르자 패션의 공급은 평등해졌지만 가치는 떨어졌다. 싼값에 입고, 아낌없이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싸고 빠르게 유통된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비윤리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친환경 직물 컨설턴트인 케이트 플레처는 이렇게 말한다.“패스트 패션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더 많이 팔아 더 많은 돈을 벌려는 탐욕의 문제죠. 빠른 속도는 공짜가 아니에요. 생산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 가격이 저렴한 옷은 노동과 천연자원의 착취를 통해서 가능해요.” 게다가 결과적으로 매년 100만 톤 이상의 패션 쓰레기가 버려지고 엄청난 옷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양의 직물이 필요하다! 문제의 소재는 폴리에스테르다. 패션 산업 폐기물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매년 약 110억 리터의 원유가 필요하며, 이것이 자연 분해되기까지는 약 500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우리가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는 면 소재는 정말 친환경적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면을 만드는 목화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하얀 꽃송이’라고도 불린다. 면은 재생 가능한 천연 원단으로 청바지, 티셔츠, 속옷까지 많이 사용되지만 목화는 병충해에 약하다. 목화 산업에 전 세계 농약의 10퍼센트와 살충제 재고의 22퍼센트가 사용된다. 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매년 2만 명 정도가 목화 재배 시 사용된 농약에 중독돼 사망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과정에서 중금속과 포름알데히드 등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면을 사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지속 가능한 청바지를 생산하는 스웨덴의 누디진은 윤리적으로 생산하고 노동자에게 최저 임금을 보장하는 등 친환경을 위한 정책을 통해 1 00퍼센트 유기농 청바지만 생산한다. 덴마크 브랜드 잭팟은 면의 대안인 대마로 진을 만들고, 영국의 몽키진은 전 제품에 유기농 원단만 사용함을 약속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여전히 문제는 있다. 유기농이라 할지라도 목화 재배에는 엄청난 물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환경 오염과 가장 무관한 소재는 동물의 것이다.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양, 캐시미어, 실크, 그리고 고기를 생산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가죽 소재가 그러한 것들이다.

그럼 우리에게 대안이 있는 걸까? 우선 화학 물질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제조과정에서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 답이다. 영국 디자이너 오르솔라 드 캐스트로와 필리포 리치가 199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윤리적 패션 브랜드 프롬 섬웨어(From Somewhere)는 원단 회사에서 버리는 자투리 원단, 재활용품, 의류 산업 현장에서 버려지는 고가의 부자재로만 옷을 만든다. 3년 동안 팔리지 않고 소각에 처한 의상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상으로 탈바꿈시키는 국내 브랜드 래코드 역시 업사이클의 대표적인 예이다. 래코드를 만든 코오롱의 한경애 상무는 버리지 않는 습관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친환경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래번은 커피 자루와 같은 독특한 원단을 사용하고, 대표적인 업사이클 액세서리 브랜드 엘비스앤크레스(Elvis&Kresse)는 소방호수로 가방과 지갑, 벨트를 만들고 프라이탁(Freitag)은 폐방수포, 폐안전벨트, 폐자전거의 고무 튜브로 가방을 만든다. 나이키는 2005년 컨시더드 라인을 론칭하여 플라스틱과 버려진 폴리에스테르를 재가공해 축구 셔츠를 만들고 있다. 셔츠 한 장에 8개의 플라스틱 병이 사용되는데, 컨시더드 제품이 나이키 총 생산량의 15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니 어마어마한 양이 재활용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거대 기업이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에서 소비자와 경쟁 브랜드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착해지길 선택하다
친환경적인 접근은 더 이상 환경 의식에 심취해 있는 일부 친환경 브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몇몇의 기업이 윤리적인 선택을 실행하고, 똑똑해진 소비자들이 윤리적 기업이 공정하게 생산한 패션 제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지속 가능한 패션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세상을 패션 쓰레기로 뒤덮은 주범으로 몰린 패스트 패션 브랜드조차 윤리적인 기업 의식을 갖추고자 노력하고 있다. 톱숍은 노동문제와 관련한 불미스러운 몇몇의 사건이 밝혀진 이후 정화의 길을 선택했다. 비록 제품의 가격은 올라갔지만 고급 천연 직물을 사용하고, 원재료의 공급 거리를 줄여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며 47개의 전통적인 영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책임감 있는 소매 거래를 유도하는 ‘메이드인브리튼’ 라인을 선보이고 있는 것. “우리의 계획은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노동기구의 핵심적인 노동 기준과 그 외에 관련 있는 안내 사항, 좋은 관례 규정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제품의 제조, 분배, 판매 과정에서 환경적인 영향을 축소하는 것과 노동조건처럼 이해관계자들이 중시하는 주제를 다루지요.” 톱 숍이 발표한 사회적 책임 정책 역시 변화의 움직임을 보인다. H&M 역시 2011년부터 컨셔스 컬렉션을 론칭해 지속 가능한 패션을 향한 의식 있는 소비를 권장하고 있다. 유기농과 재생 면 제품만 생산하고 재활용 플라스틱 섬유 제품의 양을 늘렸고, 건강한 매장을 만들기 위해 조명을 바꾸어 전기 효율을 높이고 옷걸이와 비닐백 역시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한다. 또한 버려지는 의류를 모아 섬유를 재활용하는 ‘Closed Loop’ 프로젝트로 섬유의 20퍼센트를 재활용하고 있고, 2020년까지 모든 제품을 지속 가능한 원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속 가능한 패션을 위한 윤리적 지침에는 공정 무역에 따른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착하고 예쁜 옷
친환경 패션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것은 친환경 패션은 트렌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이패션이라 부르는 주류 안에서도 친환경을 실천하는 디자이너들이 존재한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동물을 보호하는 자신의 방식대로 윤리적 소재를 사용하여 친환경을 지지하고, 이든(Edun)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을 제 1의 가치로 두고 모든 제조 현장은 공정 거래의 원칙을 따른다. 그들은 결코 친환경적인 브랜드라는 거창한 수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브랜드보다 멋진 의상을 선보인다. 1983년 슬로건 티셔츠를 선보이며 줄곧 패션 산업을 정화하기 위해 애써온 캐서린 헴넷은 이렇게 말한다. “동정심으로 옷을 구입하는 사람은 없어요. 옷이 나를 기운 나게 하고 기분 좋게 만들고 더 멋있어 보이게 해주기 때문에 구입하죠. 친환경 패션은 오트밀 색상이어야 한다는 식의 개념은 이제 사라졌어요. 요즘은 선택할 수 있는 소재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해요.” 그녀의 말처럼 어찌되었든 패션은 멋져야 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셀러브리티들의 친환경 행보 역시 하이패션과 친환경적인 가치가 절대 충돌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배우 콜린 퍼스는 아내 리비아 퍼스와 함께 에코 에이지라는 회사를 설립해 환경과 윤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친환경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린 카펫 챌린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자신의 재능과 인맥을 활용하여 대중에게 친환경적인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는 것. 덕분에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발렌티노 드레스,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톰 포드와 제냐의 슈트,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한 구찌의 가방, 최근에 선보인 에르뎀과의 그린 카펫 챌린지 컬렉션까지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적극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결국 선택은 소비자,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큰 책임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착해진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윤리적 소비에 관한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는 동안 뒷전으로 미뤄둔 착한 마음의 문이 빗장을 열었다. 물론 완벽하리라는 장담은 못하겠다. 여전히 모피는 내게 부드럽고, 반짝이는 플라스틱 장식들은 나를 행복하게 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소비에도 변화는 생길 것이다. 조금 느리게 생각하고 버리는 것에 대해 인색해져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 가격이 저렴한 옷이 아닌 필요한 옷을 사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다른 이를 불행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옷에 관심을 둘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유기농 면을 입을 테다. 그리고 당장 이 마감이 끝나면 옷장 속에 묻어두었던 옛날 옷들을 꺼내서 수선을 해볼 생각이다. 조금만 불편하고 조금한 신경 쓰면 내 아이가 깨끗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