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선보인 스킨케어 브랜드를 관통하는 트렌드는 ‘더하기보다 빼기’다. 전 세계에서는 한국 여성의 뷰티 노하우로‘ 다단계 스킨케어’가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 여성들은 빼기로 돌아서고 있는 것. 건강한 피부를 위해서는 정말 더하기보다 빼기가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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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 뷰티 열풍이 막 불기 시작하던 4년 전, 전 세계 뷰티 에디터들이 모이는 브랜드 행사에 초청돼 뉴욕에 간 적이 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한국 화장품 브랜드와 한국 여성 의 피부관리법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멕시코에서 온 뷰티 에디터는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한국 여성들이 하루에 화장품을 10개나 바른다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이 스킨케어 단계에서 바르는 화장품 개수만 6 ~9개에 달했 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여러 개의 화장품을 바르는 게 오히려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화장품 다이어트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변화를 체감했던 건, 지난달 신규 스킨케어 브랜드를 취재하면서였다. 라곰과 땡큐파머 처럼 고기능성 제품보다는 효과는 조금 느리더라도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피부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을 뷰티 철학으로 내세운 브랜드가 다수를 차지했고, 라운드어라운드처럼 복잡한 스킨케어 단계를 확 줄인 브랜드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스킨케어 라인에 에센스나 아이크림을 과감하게 생략한 브랜드도 있었다. 그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스킨케어 카테고리에 새로운 유형의 제품이 추가된 것과는 전혀 상반된 길로 가고 있는 셈이다. 화장품을 홍보하는 방식도 색달랐다. 어떤 성분을 넣었는지보다 어떤 성분을 뺐는지를 알리는 데 더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 민감성 피부를 위한 제품인 라 쏠루씨옹 10을 출시한 샤넬 역시 불필요한 성분은 빼고 피부에 꼭 필요한 10가지 성분만 넣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스킨케어 시장의 트렌드가 더하기보다 빼기를 추구하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데는 화장품을 대하는 여성들의 달라진 태도가 한몫했다. 아름다운나라피부과의 김현주 원장은 화장품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고 다양한 화장품을 사용해볼 기회가 많아지면서 좋다고 무조건 많이 사서 바르기보다 스스로 피부상태를 진단해 꼭 필요한 화장품만 구매하는,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여성이 많아졌다고 이야기한다. “ 소비자뿐 아니라 화장품도 똑똑해졌어요. 농축된 기능성 화장품 한 가지만 발라도 기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만큼 화장품 성분과 기술이 진화하면서 굳이 여러 개의 제품을 바를 필요가 없어진 거죠.” 조금 느리더라도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킨포크식 라이프’의 유행도 무시할 수 없다. 화장품 사용 개수를 줄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효과가 조금 느리더라도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방법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김현주 원장 역시 건강한 피부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은 삼가라고 조언한다. “매일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가 많으면 각 제품의 사용기간이 길어져 변질될 위험성도 커져요. 피부와 접촉하는 화학성분의 개수와 종류가 많아져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확률도 높아지죠. 이럴 경우 피부에 염증이나 트러블이 생겨도 어떤 제품이 원인인지 쉽게 알아낼 수가 없어 치료에도 어려움을 겪어요.” WE클리닉의 조애경 원장 역시 화장품 과용의 위험성에 대해 충고한다. “피부에 트러블이 생겨 병원을 찾아온 환자 중 피부 고민을 신속히 해결하고 싶은 욕심에 화장품을 과다하게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된 사례가 많아요. 화장품을 사용하기 전에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실제로 피로와 수면부족, 스트레스, 영양불균형, 수분섭취 부족 등 잘못된 생활습관이 원인으로 작용한 경우가 많습니다. 피부는 몸 상태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죠.”

저자극 화장품을 찾는 여성들
더하기보다 빼기를 추구하는 경향은 저자극 화장품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고 있다. 세정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피부의 pH 농도에 가까워 피부장벽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약산성 세안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고, 백탁현상 때문에 인기가 주춤했던 물리적 자외선 차단제가 피부자극이 적다는 이유로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외선과 미세먼지 등 유해한 환경으로 인한 피부자극이 늘어나고 필링이나 레이저 시술처럼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시술이 대중화되면서 스스로 피부가 민감하다고 느끼는 여성이 많아진 결과다. 샤넬이 전세계 1만여 명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50% 이상의 여성이 스스로 민감성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샤넬 라 쏠루씨옹 10을 공동 개발한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 에이미 웩슬러 박사 역시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온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대기 오염을 꼽았다. “미세먼지 속에 존재하는 발암물질은 활성산소를 발생시켜 피부노화를 촉진하고 피부장벽을 약화시킵니다. 피부장벽은 외부로부터 오염물질이 들어오거나 피부를 자극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피부장벽이 약해지면 피부가 외부 자극에 쉽게 반응해 피부가 민감하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대기 오염뿐 아니라 피부에 맞지 않거나 한번에 너무 많은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도 피부를 민감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물론 저자극 화장품을 찾는 현 상황을 두고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병순 피부과 전문의는 그의 저서 <압구정 피부과 박병순의 동안 피부 솔루션> 을 통해 이렇게 지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민감성 피부라는 용어를 처음 쓰고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분야는 화장품 업계예요. 화장품을 새로 바꾸고 트러블이 생기거나, 피부과 시술 후 피부가 따갑거나 붉어지면 모두 다 피부가 민감해서 그렇다고 말하는데, 사실 의학적으로 민감성 피부는 아직 개념조차 정리되지 않았어요 .”그러고 보니 최근 신제품 소개자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역시민 ‘ 감한 피부’다. 파라벤이나 인공 향료와 인공 색소 등을 배제해 민감한 피부에도 자극이 적다거나, 진정성분을 함유해 민감한 피부를 빠르게 진정시킨다는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다. 드럭스토어의 확대로 국내 더모화장품 시장이 커지면서 민감성 피부가 더 크게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어쩌면 민감성 피부를 강조하는 건 ‘저자극’을 내세운 새로운 카테고리의 화장품을 개발해 신규 고객을 창출하고자 하는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 전략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근 출시된 아침세안제처럼 말이다.

더하기보다 덜어내는 것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피부에는 이로울까? 조애경 원장은 피부건강을 위해서는 덜어내기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무조건 적게 사용하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진정한 의미의 화장품 다이어트는 자신에게 필요한 제품은 반드시 사용하고 대신 중복되는 제품은 피하는 것이죠. 매일 단계별로 바르는 제품 중 기능이나 효과가 중복되는 제품이 없는지 살펴보세요. 스킨케어 단계를 최소한으로 줄이더라도 세안제와 토너, 보습제, 자외선 차단제는 반드시 발라야 한다는 점도 명심하세요.” 어쨌든 최근 안티폴루션이 뜨거운 이슈로 떠오름에 따라 저자극 화장품을 찾고 사용하는 화장품 개수를 줄이려는 경향은 앞으로도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