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을 찾아 나섰다가, 새로운 신세계를 만났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숙면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인기를 얻고 있는 ‘ASMR’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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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부터 아래로) 1 ‘ASMR Ear to Ear Gum Chewing, Candy Eating, and Mouth Sounds’. 2 ‘Sparkly Blue Kinetic Sand’. 3 ‘Binaural ASMR. Ear Cleaning’.

 

“세상에, 이것 좀 들어봐!” 친구가 보내준 유튜브 영상에 단체 카톡방이 난리가 났다. 화면 속의 여자는 몸을 기울이며 귀 청소를 해주겠다고 아주 작게 속삭인다. 그녀는 ‘어세오세요. OOO 클리닉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라 묻는 상황극을 시작했다. 그러고는 ‘지금은 앞 고객님께서 진료를 받고 계시니, 앞에서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기다리시는 동안 차 한잔 준비해드릴까요?’라며 말을 잇는다. 그녀의 얼굴은 핑크색 입술까지만 보인다. 그녀는 말하는 중간중간 종이에 연필로 무언가를 사각사각 끼적이고, 차를 끓여주겠다며 티백을 꺼내는 동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앞에 눕기를 권했다. 이어 부드러운 솜으로 슥슥 귀를 파는 효과음이 들린다. 온몸이 간질거리고 쭈뼛거렸다가 듣는 동안 어느새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 1대1 이어테라피를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영상을 추천해준 친구의 말처럼 내 남자친구가 이 영상을 좋아한다고 상상하자, 어딘지 꺼림칙한 것도 사실이다. 다른 영상을 틀어봤다. ‘간지러우세요? 간지러울 수 있어요. 이거 하다가 주무시는 분도 많아요. 왜 어릴 적에 엄마가 귀 파주면서 자장가 불러주시면 다 자잖아요. 주무셔도 괜찮아요.’ 댓글에는 ‘덕분에 잠을 푹 잘 잤다’는 칭찬이 폭주했다. 대체로 ‘영상을 15분 넘게 보지 못하고 잠들었다’며 남녀 구분 없이 열성적으로 환호했다.

아는 사람들에겐 꽤 유명한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동영상이었다. 우리말로 ‘자율감각쾌락반응’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지만, 미국 대체의학 사이트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온 음향 심리 치료 효과를 적용한 사례다. 개인의 기억 속에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던 특정 소리를 들으면 오감을 자극해 심리적 안정과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과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리에는 오감에 저장됐던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레 부침개가 연상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ASMR 영상은 2008년부터 유튜브를 통해 퍼지기 시작해 현재 약 316만 건의 관련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어 영상은 약 24만 건에 이른다.

ASMR 영상은 다양한 소리를 형상화한다. 연필, 찰흙, 나무, 면봉, 키보드 등 수많은 도구를 주무르거나, 긁거나, 두들겨 소리를 만든다. 모닥불의 장작이 타는 장면이나 파도, 빗방울 등 자연의 편안한 소리만 반복적으로 들려주는 영상도 있지만, 소근거리는 대화를 들려주는 영상도 있다. 귀 청소를 해주는 것처럼 여러 가지 상황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영상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전문가지만 ‘ASMR 유튜버’ 혹은 ‘ASMR 아티스트’라 불린다. 인기 있는 ASMR 아티스트 ‘다나’는 영상을 통해 다양한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고, 그래서 잠들 수 있는 소리를 찾아보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과연 이 소리들이 진짜 수면을 유도할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송후림 정신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완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소리를 들으면 뇌파가 느려지고 이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최면의 원리와도 통합니다.” 그는 ASMR이 인기를 얻는 이유로 유튜브와 스마트폰의 시대에 누구나 쉽게 올리고 들을 수 있는 접근성을 꼽았다. 다만, 제공되는 소리가 다양하고 사람에 따라 반응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수면 유도 효과 역시 개개인이 다를 수밖에 없다. 소리도 하나의 자극이므로 ASMR 영상을 듣다가 각성되어 오히려 잠이 달아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환각과 같은 체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통계치를 보면 2014년 수면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41만5천 명으로 추산된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서는 국내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ASMR 영상의 인기를 단순히 수면제 용도로만 해석하기엔 어딘지 부족하다. 조회수가 높은 몇몇 영상을 보면 ‘괜찮아, 잘될 거야’, ‘다 괜찮아, 울지 마. 많이 힘들었지?’를 수없이 반복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이제 더 이상 걱정하지 말아요. 쉬잇’이라며 속삭인다. 그 밑으로는 ‘그동안 친구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껴서 힘들었는데, 여기서 위로를 받는다’, ‘듣고 펑펑 울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 댓글을 채운다. ASMR 영상의 청취자는 평균적으로 10대에서 30대 사이다. 저성장 시대를 맞은 장기 불황과 학업, 취업난, 대인관계까지 스트레스로 지친 사람들이 ASMR 영상을 통해 마음을 기대고 싶은 것은 아닐까?

물론 부정적인 견해가 없을 수 없다. 반복 청취한 탓에 ASMR 영상 없인 잠들지 못한다는 부작용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시청을 제한하라는 조언까지 덧붙여진다. 또 구글에서 ASMR을 검색하면 자동검색어로 ‘ASMR 19’가 완성되는데, 클릭하면 귓가를 핥는 소리처럼 성적 흥분을 주도하는 야릇한 영상들이 나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ASMR 여자친구’라는 장르도 생겼다. ‘뽀뽀해달라고 괴롭히기, 비 오는 날의 병간호, 남자친구 재우기’ 등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ASMR 영상을 단순히 뇌와 오르가슴을 결합한 ‘뇌르가슴’ 사운드일 뿐이라 말하는 이들이 늘었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소리가 있는지 확인할 겸, 한번쯤 찾아 들어보는 건 괜찮을 일이다. 덤으로 숙면과 심리적 안정이 찾아온다면 말이다. 하지만 가볍게 재미 삼는 정도로만, 딱 거기까지다.

인기 높은 ASMR 채널 3
• Dana ASMR www.youtube.com/user/dahampark
• 미니유 ASMR www.youtube.com/user/miniyuasmr
• Donghwa ASMR www.youtube.com/user/donghwa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