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체질인가에 따라 남들에게는 좋다는 음식이 내게는 독이 될 수도, 안 좋다는 음식이 약이 될 수도 있다. 정확한 체질을 알기 위해 8체질 한의원의 문을 두드렸다.

 

Chinese Medicine. (Photo by: MediaForMedical/UIG via Getty Images)

운동을 끊은 지 3년 반이 됐다. 딱 3년 반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러 가던 여가 시간이 사라져버렸다. 이런 ‘사랑꾼’ 같은 이야기도 잠시, 다시 싱글로 돌아온 이후에도 여전히 내 몸은 방치되고 있었다. 살이야 옷으로 감출 수 있다. 그러나 생전 없던 생리통 증상이 생기고, 뾰루지가 사라지지 않으며, 늘 무거운 코트를 걸치고 있는 것처럼 목과 어깨가 아픈 것은 옷으로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늘 나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내 몸을 새로 정비할 때가 왔다! 이왕 정비한다면 내 체질에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8체질 한의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 이유다.
‘8체질의학’은 사람의 체질을 장기의 크기에 따라 여덟 가지로 나눈다. 폐, 위, 간, 췌장, 대장, 신장, 방광, 담낭 여덟 가지로 구분되는 오장육부 중에서 사람마다 강한 장기가 다르며, 다른 장기 역시 다르게 배열되어 있다는 것이 8체질의 기본 지침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의 대다수가 속한다는 ‘목양체질’은 간이 큰 체질로 잎 채소가 그다지 맞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좋다고 해서 일부러 챙겨 먹은 음식이 오히려 내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거다. 어디를 가든 모두가 술은 끊으라고 하지만, 술 종류가 어디 하나인가? 상대적으로 내 몸에 맞는 술과 피해야 하는 술이 뭔지 안다면 상황에 맞게 대비할 수도 있다. 즉 8체질은 타고난 장기 간의 불균형이 더 심화되지 않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고 해결하는 것에 입각한 치료법이다. 물론 여전히 8체질의 의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8체질한의원을 비롯한 한의원에서도 진단을 객관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남동에 자리한 송가한의원도 그런 노력을 하는 곳 중 하나다.
8체질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진맥이다. 따라서 한의사의 실력이 중요하다. 병원 예약을 하고 첫 방문한 날, 문진표를 작성한 것에 이어 혈압과 체성분 검사, 혈액 검사와 생체 신호가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 진단하는 신호 측정 등의 검사를 받았다. 혈압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결과는 각오한 것보다 더 나빴다. 적혈구는 모양도 배열도 엉망이었다. 몸이 산성화되어 있다는 신호였다. 체지방률은 끔찍했다. 3년 반 전보다 무려 8%가 늘었고, 일일 기초대사량은 터무니 없이 낮았다. 1140kcal라니! 햄버거 세트 하나 열량만도 못하다. 체력적인 것만 문제인 것은 아니었다. 자율신경계와 중추신경계의 활성화 정도는 거의 40~50대 수준이었다. 이제 서른인데, 상태만 보면 당장 퇴직해도 놀라울 게 없었다. 검사를 마치고 송영위 원장과 첫 대면을 했을 때 잔뜩 의기소침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스물아홉, 서른 무렵에 몸이 안 좋아졌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요. 쌓여 있던 문제들이 증상으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조금 위안이 됐다. 맥을 짚기 위해 침대 위에 누웠다. 생리는 규칙적인지, 더위와 추위는 평소 많이 타는지, 부모님의 체격은 어떤지, 피부는 잘 트는지 등등 온갖 질문이 쏟아지는 동안 송영의 원장은 내 왼팔과 오른팔의 맥을 짚었다. 이후에는 위장 기관이 있는 배 부분을 눌러가며 특별히 아픔을 느끼는 곳이 없는지 물었는데, 명치 부근을 누르는 순간 터져 나오는 낮은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왜 이 부분만 이렇게 아팠던 걸까?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심하비’라고 불러요. 가슴 아래가 결린 상태라는 의미죠. 스트레스로 인한 소화불량이나 체질에 맞지 않은 음식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불순물이 쌓인 겁니다.” 역시나 그놈의 불순물이 문제였다! 하이라이트는 체질침이었다. 꽂는 침이 아니라 마치 총알 없는 작은 총을 쏘듯 다리와 팔, 손끝과 발끝을 오가며 침을 쏴서 자극을 주는 식이었는데 놀랍게도 1~2분 만에 어깨는 물론 팔이 노곤해지며 피로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혈액순환이 순간적으로 원활해진 덕분이었다. ‘쏜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정말로 총 쏘듯 순식간에 수백 개의 침을 맞았기 때문이다“.온 몸을 오가면서 놔야 하다 보니 정작 의사는 힘들죠”. 어떤 체질인지 금세 확진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다소 애매한 경우였기에 3일 뒤에 다시 병원을 찾기로 했다. 오늘의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피로를 풀어주고 변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약과 생식 3일 치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3일간은 술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3일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나는 이미 들뜬 상태였다. 만성변비인 내가 만족스럽게 화장실에 다녀오는 쾌거를 이뤘기 때문이다. 진단 결과 내 체질은 ‘목양체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단 식습관을 고쳐야 했다. 고기에는 별 욕심이 없는 대신 생선과 해산물을 즐겨 먹었는데, 오히려 돼지고기를 제외하면 내게는 육류가 몸에 잘 맞고, 해산물이 맞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결과였지만 과거를 돌아보니 진단 결과에 은근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3년 전, 축산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어설프게 육류를 끊었을 때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피부가 안 좋아지고 생리통이 생긴 최근 6개월간, 방어철이 오면 방어를, 민어철이 오면 민어를 먹으며 해산물에 미친 듯이 탐닉했다. 엇갈린 운명은 계속됐다. 즐겨 먹는 샐러드와 잎채소는 내게 맞지 않고, 퍽퍽해서 좋아하지 않는 감자, 고구마가 내 몸에 맞았다. 커피보다는 차를 자주 마시는데 내 체질에는 차라리 커피가 나았다.

한약이 도착했다
체질을 확인하고 이틀 뒤, 내 체질에 맞춰 제조된 한약이 도착했다. 약 봉투 뒷면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내 몸이 건강해지려면 자신과의 약속과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음이 묵직해졌다. 과연 나는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까? 식사 시간이 늘 불규칙하고 아침은 거르기 일쑤인 내게는 하루에 두 번, 식후 30분 뒤 약을 챙겨 먹는 것도 만만치 않게 느껴졌다. 아침이나 미처 챙기지 못한 식사 대용으로 맛볼 생식도 구비했다. 현미, 통밀, 율무, 수수, 차조, 검은콩, 호박, 감자, 당근, 연근, 도라지, 다시마, 사과, 표고버섯…. 생식 한 봉지에 함유된 수십 가지 재료들이다. ‘엄격하게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나의 투정에 송영위 원장은 이 모든 게 내가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여러 좋지 않은 조짐이 있을 뿐, 일상생활이 괴로울 만큼 피부 트러블이 심하거나 몸이 특별히 아픈 곳은 없으니까. 하지만 하루에 30분씩 운동을 꾸준히 하는 삶은 아닐지언정, 식단이나 습관을 통해 내 삶을 긍정적으로 통제할 때 오는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의 방만한 삶은 잠시 접고 오랜만에 그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우선은 해산물을 줄여야 했다! 주말에 수산시장 횟집에서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장소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바꿨다. 3주 가까운 기간 동안 해산물을 완벽하게 끊을 수는 없겠지만 일부러 먹는 자리는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술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로 줄였고, 마실 때도 소주나 위스키, 전통주를 번갈아 마셨다. 특히 맥주가 체질에 잘 안 맞는다는 검사 결과를 참조해 ‘소맥’을 먹은 날을 제외하면 맥주 캔은 딱 두 캔만 뜯었다(이건 엄청난 노력이다!). 물론 한약 복용 중에는 커피나 술을 아예 끊는 것이 좋긴 하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겼냐고?
한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후 곧바로 생긴 직접적인 변화는 바로 배변이었다. 언제 변비였냐는 듯이 거의 매일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하루에 한약 두 봉을 챙겨 먹는 일은 예상했던 대로 벅찼다. 어디를 가든 한약 봉지를 챙겨야 했고, 식사 후에는 식당이나 카페에 ‘뜨거운 물과 한약을 담글 그릇’을 요청해야 했다. 그리고 그 쌉쌀한 맛이란! 오만상을 찌푸리며 한약을 한 모금 마시면, 맞은편에 앉은 친구는 낄낄대며 그런 내 모습을 카메라로 찍어댔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고, 중간 점검을 위해 다시 송가한의원을 찾았다. 몸무게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아랫배가 들어갔고 얼굴선이 갸름해진 게 느껴졌기에 마음이 두근댔다. “피부가 좋아진 것 같네요.” 송영위 원장의 첫인사였다. 사실 턱 밑에서 사시사철 사라지지 않던 여드름 몇 개가 평소보다 흐릿해진 상태이긴 했다. 몇 주전 양쪽 뺨에 오톨도톨 열꽃처럼 올라왔던 뾰루지도 잠잠했다(대신 코 옆에 엄청난 크기의 화농성 여드름이 터졌다. 우연이겠지?). 진맥을 하고, 다시 가볍게 침을 놓았다. 어깨가 뭉쳐 있는 것은 여전했다. 송가한의원은 척추신경추나의학회 회원으로, 체형 교정을 위한 추나요법도 시술하고 있다. 굳은 내 어깨와 목을 보다 못한 원장님은 세 번째 방문에 나를 추나요법실로 인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자세가 구부정하고 몸의 좌우 균형이 안 맞아서 예전에 자세 교정을 받기도 했었다. 자세 교정 클리닉을 다녔다는 과거 고백에 돌아온 원장의 답변은 시크했다. “네, 보면 알 수 있어요.” 으드득, 으드득. 시원하게 목이 몇 번 돌아간 다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중간 점검을 마쳤다.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내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고백하자면 나는 하루 두 봉지씩 한약을 챙겨 먹는 것에 실패했다. 원래대로 했다면 이틀 전쯤 소진됐을 40봉의 한약이 아직도 6봉지가 남아 있다. 처음 2주 동안은 생식을 하루에 한 번은 먹었지만 마지막 주에는 이틀에 한 봉지꼴이었다. 생식을 타먹을 우유를 사놓고, 생식을 타먹을 병을 챙기고, 그 병을 설거지할 ‘짬’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겠지. 하지만 여전히 화장실은 자주 간다. 태어나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피부도 좋아졌다. 턱에서 떠나지 않던 여드름 삼총사도 거의 자취를 감췄다. 몸무게는 2킬로그램밖에 빠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몸이 가볍다. 만세!
8체질의 진단표를 손에 쥐었다고 해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 운동을 선뜻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8체질 진단은 일종의 지도 같다. 체질에 맞지 않는 것 중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 있었다면 조금 줄여 나가고, 체질에 맞는 음식 중에 평소 가리던 음식이 있으면 도전하는 식으로 ‘건강’이라는 목표 지점을 찾아 조금씩 이동하는 거다. 처음부터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엄격한 실천을 각오할 필요도 없다. 8체질 요법이 내게 맞는다는 확신이 든다면, 한약을 처방받고 하나하나 실천해나가면 된다. 건강한 사람이 체질을 개선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개월 정도라고 한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한’ 기간 아닌가? 8체질이라는 나침반이, 올 한 해 나를 건강의 길로 인도해주길!

내 체질을 찾아라!
간단하게 찾아보는 8체질 진단법

수음체질 “방광이 강하고 위장이 약하다” 일반적으로 날씬하다. 위장 기능이 약해 잘 체하며 추위를 잘 타고 손발이 냉하다. 사우나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몸이 가벼워지기보다 무기력해지며 입맛이 까다롭다. 예민하며 창조적인 일을 좋아한다.
수양체질 “신장이 강하고 췌장이 약하다” 일반적으로 말랐으나 대변 횟수가 적은 편으로, 건강이 안 좋으면 여름에 몸이 허해지고 식욕부진에 시달린다.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
목음체질 “담낭은 강하고 대장은 약하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잘 발달하지만 운동을 하지 않으면 쉽게 살이 찐다. 피부가 예민해서 생선 알레르기나 두드러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에 간다. 부드럽고 순한 성격.
목양체질 “간은 강하고 폐는 약하다” 풍채가 좋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금세 살이 찐다. 건강하지 않으면 땀이 잘 나지 않으며 간이 강하기 때문에 과음을 즐기는 성향이 있다. 호흡기가 약하기 때문에 구기종목은 맞지 않는다. 말수가 많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
금음체질 “대장은 강하고 담낭은 약하다” 육식과 밀가루,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채소, 생선, 해물을 즐긴다. 수영을 하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건강할 경우 극적인 쾌변을 한다. 성량이 풍부하며 고집이 세고 야심도 있다.
금양체질 “폐는 강하고 간은 약하다” 육류를 잘 소화하지 못하고 밀가루 음식을 먹을 경우 더부룩함을 느낀다. 우유를 마시면 설사를 하기도 한다. 땀 흘리는 운동, 건강기능식품이 몸에 맞지 않는다. 혼자 하는 일에 능하다.
토음체질 “위는 강하며 신장과 방광은 약하다” 가장 드문 체질로 육류나 밀가루 음식에 소화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위에 열이 많아 얼음, 빙수 등 찬 음식을 좋아하고 탈이 잘 나지 않는다. 활발하고 순발력이 좋지만 지구력은 약한 편.
토양체질 “위열을 다스리고 약을 조심하라” 평소 몸이 잘 붓고 소변을 자주 본다. 대체로 상체가 토실토실하며 식욕이 좋다. 찬 음식과는 잘 맞지만 매운 음식은 몸에 해롭다. 생리불순 등 생식기 질환이 잦다. 성격은 급하고 외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