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필모그래피와 함께 삶의 궤적을 쌓아온 여배우들은 우리가 오랜 시간, 흠모하며 지켜본 대상이다.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배우의 이름을 모았다. 그리고 그녀들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하여.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배우, 전도연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선택할 때 감독, 상대배우, 시나리오, 장르 등 수많은 요소를 제치고 이름 하나만으로 기대감과 믿음을 줄 수 있는 우리나라의 여배우가 과연 누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전도연 한 사람뿐이다.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오롯이 원숙해지는 것을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수많은 경험에서 생겨난 얄팍한 요령을 성숙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전도연은 1997년 <접속>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이래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성실하게 발전했다. 요령도 없고 중간도 없이, 묵묵히 길을 걷고 한국 배우 최초로 ‘칸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까지 거머쥐었다.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을 정점으로 조금은 쉬어갈 줄 알았건만 그녀는 변함없이 새로운 역할에 목말랐나 보다. <멋진 하루>, <하녀>, <카운트다운>,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협녀 : 칼의 기억>,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남과 여>까지 그녀는 <밀양> 이후에도 그 이전과 같이 거의 해마다 무조건 한 편씩, 어느 해에는 두 편씩의 영화를 선보인다. 비슷한 장르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한 적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떤 캐릭터에도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두려움도 염려도 없이 새로 맡는 역할을 어린 아이처럼, 심지어 너무도 부지런하고 빠르게 다음 역할을 사냥한다. 예전 그녀의 얼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배우 본인이 아니라 오히려 관객 쪽이다.

전도연이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와 달리 가구나 화장품 광고 속 그녀의 역할은 기존 CF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정말이지 그녀의 CF를 볼 때마다 그가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 해변에서 주운 조약돌 하나를 씻어내기 위해 모든 바닷물을 쓰는 것처럼 아깝다. 그녀는 정말로 바다 같은 배우이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반짝이는, 상상 이상으로 깊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배우. – 조민지(칼럼니스트)

 

마리옹 코티아르의 살벌한 매력
이토록 아름다운 배우에게 ‘살벌하다’는 표현을 감히 써도 될까? 하지만 사실이다. 맨 처음 본 그녀의 영화는 <빅 피쉬> 였지만 영화 속의 예쁜 언니가 마리옹 코티아르인지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이 후 그녀는 나에게 첫 만남을 떠올리지 못할 만큼 살벌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인셉션>에서 주인공의 죽은 아내이자 죄책감의 형상인 ‘맬’을 연기한 마리옹 코티아르는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예의 그 살벌한 매력을 드러낸다. 크고 아름답지만 때때로 ‘형형하게’ 느껴지는 코티아르의 눈빛도 한몫한다. <인셉션>에서 누군가를 죽여버릴 듯한 위태로운 모습으로 등장해 눈이 클로즈업될 때마다 나는 영화의 장르가 공포 스릴러인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도 그저 아름다운 ‘배트맨의 여인’이 아니었다. 극 후반부에 배트맨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넣으며 자신이 적의 딸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순간 코티아르는 배트맨의 여인에서 살벌한 보스로 둔갑한다. 한순간에 변하는 그녀의 눈빛은 그녀의 존재감을 크리스찬 베일급으로 올려놓았다.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의 코티아르는 흑백필름으로 찍은 붉은 장미 같았다. 구조조정 위기에 처해 우울증에 걸린 해고노동자의 공허한 눈빛과 화장기 없는 얼굴. 부스스한 곱슬머리, 후줄근한 티셔츠와 삐져나온 브라끈. 그는 자주 좌절하고 비관하고 포기한다. 영화는 코티아르(산드라)가 보너스를 받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지켜줄 것을 동료들에게 거듭 부탁하러 다니는 단조로운 구성으로 흘러간다. 그녀는 자신을 선택해준 동료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지만 보너스를 선택한 동료를 비난할 수도 없다. 그녀 자신도 그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면 무조건 동료의 편에 섰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로 마리옹 코티아르는 뉴욕 비평가 협회상, 전미 비평가 협회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커다란 눈이 보이지 않게 웃던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울었다. 처음 본 마리옹 코티아르의 눈이었다. – 송혜성(칼럼니스트)

 

여자의 얼굴, 공리
공리는 늘 ‘여인’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장이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과 <홍등>에서 부잣집에 팔려가듯 시집 간 어린 신부 역할을 맡았지만 그 때도 아무것도 모르는, 처연한 소녀 같진 않았다. 조금 비뚤어진 턱과 다소 커다란 앞니에서 느껴지는 고집스러움, 도톰한 입술을 굳게 다문 모습은, 상황을 이해하고 감내하는 편을 택한 어른의 것이었다. <패왕별희>에서는 유곽의 기녀로, <게이샤의 추억>에서는 전성기가 지난 게이샤로 등장했던 공리는 순진하게 사랑을 요구하지 않는다. <황후 화>에서는 어땠나. 남편인 황제를 포함해 모든 정적을 잔인하게 쳐내는 피바다 위에 선 황후였다. 몸에 걸친 장신구와 옷이 화려해질수록 공리의 표정은 굳게 잠겼다.

그래서 왕가위의 시선에 담긴 공리는 매혹적이면서도 낯설었다. 젊은 재단사인 장첸을 유혹하는 고급 콜걸로 등장한 <에로스>. 깡마르지 않은 공리의 부드러운 몸매가 이토록 관능적으로 드러난 적이 있었나? 아름다운 얼굴과 몸을 가진, 지극히 여배우다운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때 공리는 장이모의 <5일의 마중>을 택했다. 문화대혁명 당시 끌려간 남편이 20년 만에 돌아왔지만 부인(공리)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가 기억하는 건 매달 5일 남편을 마중하러 기차역에 가야 한다는 사실뿐. 사실 처음에는 ‘화들짝’ 놀랐다. 구부정한 어깨, 초점 잃은 눈매, 둔탁한 얼굴선, 흰머리와 주름까지. 초로의 여인으로 분장한 공리를 보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나 <5일의 마중>에서 공리는 드디어 입을 열고, 소리 친다. “그동안은 너를 위해 살았으니 이제 아빠를 위해 살 거야”라고 딸에게 단언하고, 공안에게 쫓기는 남편에게 도망가라며 외치며,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도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오랫동안 지켜봐온 여배우가 50대에 접어든 지금, 가장 뜨겁고 솔직한 멜로 영화를 찍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 많은 여배우가 해내지 못한 일 중 하나를 내가 사랑하는 배우가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 이마루 (<얼루어> 피처 에디터)

 

지극히 현실적인, 로라 리니
만약 여배우를 ‘미녀’와 ‘미녀가 아닌 여자’라는 투박한 이분법으로 분류한다면, 로라리니는 후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여배우를 평가할 때 들이대는 엄격한 미감에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다. 피부가 유리처럼 투명하지도 않고, 허리에는 군살이, 허벅지엔 셀룰라이트가 자리 잡고 있으며(영화 <데이비드 게일>에 그녀의 인간적인 나체가 등장한다) 이목구비가 조각 같지도 않다(눈썹이 희미하고 콧등에 굴곡이 있다). 1988년에 데뷔해 4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지만 한국에서 ‘로라 리니’라는 여배우를 설명하려면 이런저런 부연이 필요하다.“로라 리니? 그게 누구지?” “그 왜, <러브 액츄얼리>에 나왔던 여자 있잖아. 정신병원에 있는 오빠가 24시간 아무 때나 전화를 해댔던.” “기억이 잘 안 나.” “<트루먼 쇼>에서 짐 캐리 아내로 나왔어.” “그건 90년대 영화잖아.” “아, 작년에 개봉한 <미스터 홈즈>에서 가정부로 나온 사람이야!” “나 그 영화 안 봤는데….” 결국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얼굴을 찾아서 보여줘야 “아, 이 사람…” 정도의 반응을 겨우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로라 리니가 좋다. 그녀는 사려 깊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여배우다. 활짝 웃으면 눈가의 주름이 다정한 물결을 일으키며 폭 파인 보조개와 하트 모양으로 벌어진 입술 양 끝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주름지고 처진 피부를 팽팽하게 당겨 올리는 시술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다. 옅은 푸른색 눈동자는 깊고 깊다. 매 작품 다층적이고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그녀가 지을 수 없는 단 한 가지 표정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완벽하게 냉혹한 얼굴일 것이다. 리처드 기어와 맞서는 검사로 출연한< 프라이멀 피어>에서, 로라 리니는 피고인의 유죄를 주장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속에 일말의 의구심이 있다는 것, 자신의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얼굴의 모든 근육과 불안한 눈동자로 실토했다. 그녀의 얼굴에선 특정한 ‘지성’이 느껴지는데, ‘지식’보다는 ‘이해심’에 가까운 이 기운은 <킨제이 보고서>의 클라라 맥밀란(대학 교육을 받은 당대의 신여성)을 연기하든 <미스터 홈즈>의 가정부 먼로 부인(읽고 쓸 줄 모르는 육체 노동자)을 연기하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로라 리니는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얼굴로 또 다른 평범한 사람들인 관객이 영영 잊을 수 없는 연기를 한다.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며 애써 지어 보이는 듯한 미소, 웃음기가 사라지면 금세 처연한 빛이 감도는 눈동자, 감정을 실으면 이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나직하고 차분한 목소리, 대사를 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 더 많은 말을 하는 얼굴. 허구의 인물에게 평범한 현실감을 불어넣는,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한층 초현실적인 여배우. 이런 여배우에게 반하지 않을 도리가 있나? – 신윤영(<싱글즈> 피처 디렉터)

 

강인한 아름다움, 조디 포스터
<천년여우>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여배우가 영화에서 영화로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현실의 인생과 어우러진 사토시 곤 감독의 역작이다. 단 하나의 타임라인을 가지는 우리와는 다르게, 픽션에서 픽션으로 건너뛰면서 여러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배우로서의 특권인 걸까? 단순히 ‘역할’만이 아닌 축약된 삶 자체를 여러 개 갖는다는 것이 내 눈에는 시간의 불가역성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연기의 스펙트럼에 있어서도, 출연한 영화의 다양함에 있어서도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한 분량의 인생을 살아낸 배우를 꼽으라면 나에게는 단연 조디 포스터다. 그녀의 이력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주절거린들 위키피디아보다 낫지도 않을 것이기에 내가 찬미하고 싶은 것은 그녀가 누린 인생의 총량이다. 하나로 범주화될 수도 없을 만큼의 두터운 연기 인생의 경험치를 쌓은 그녀는, 현실 세계의 자신에 대해서도 용감하여, 201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누구나 자기에 대해서 하나의 소설은 쓸 수 있다지만, 이쯤 되면 열 개 스무 개도 줄줄이 나올 테니 영화감독으로의 행보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그리하여, 오십이 된 조디 포스터는 이렇게 말한다.

“감동으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직업이에요. 삼천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거나 주목받지 못한다 해도, 너무나 조용하고 섬세해서 그 소리를 개들만 들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해도 나는 계속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게 벽에 새긴 나의 흔적이 될 거예요. 조디 포스터가 여기 있었다, 그리고 여기 있다, 나는 보여지고, 깊이 이해되고 싶으며, 너무 외로워지고 싶지는 않다”라고.

자신의 길이 지금껏 밟아온 것과 달라지더라도 단절되고 싶어 하지않는 그녀의 열망에서 그녀의 대표작인< 콘택트>의 명대사가 함께 떠오른다. “인간이란 재미있는 혼종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꿈과 그토록 무서운 악몽을 모두 가능하게 만든다. 길을 잃고 헤매이고 단절되고 혼자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서 얻은 답은, 그 공허함을 채울 것은 ‘서로’라는 것이다.” – 이현진(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