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6명의 칼럼니스트가 지금 한국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클리셰를 말한다. 이제는 달라질 때도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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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 Small World! ⇢ 모두가 아는 사이
지금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드라마 <내 딸 금사월>. 금사월은 원수의 아들인 강찬빈을 좋아하게 되고, 또 금사월의 라이벌이자 보육원 동창인 오혜상은 또 다른 보육원 친구 주오월의 오빠와 결혼한다. 설상가상, 주오월의 남편은 오혜상과 금사월이 일하던 건설 회사의 반장이었으며, 그는 또한 강찬빈의 쌍둥이 누나 중 한 명에게 오혜상 남편 이름으로 결혼 사기를 친다. 이런 혼잡한 관계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어떤 드라마든 두 명 이상의 사람과 혈연, 지연, 학연, 잡연(oJb 또는 雜)으로 묶이지 않은 사람은 없고 , 관계도 안에서는 모두가 화살표를 두 개 이상 받는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친엄마, 우연히 흘러들어간 집이 어릴 때 헤어진 친구집, 우연히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 남자는 사돈의 팔촌의 사위의 누나의 아들….

그러나 한국의 시청자들은 어떤 복잡한 인간관계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다 . 얼마 전에 종영된 SBS 아침 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난 여자 둘이 각각 재혼했는데 족보가 꼬여서 숙모와 조카며느리 사이가 된다는 내용SBS는 이 설정으로 재미를 보았는지, 지금은 <내 사위의 여자>라는 아침 드라마를 방영한다. 사위가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여자가 장모의 친딸이라는 설정이다.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세상 참 좁지’의 법칙들. 여자주인공의 절친은 남자주인공의 비서나 다른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어쩌다 다 같은 직장에 다닌다. (PPL을 해야 하는 커피숍이나 다이어트 센터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알고 보면 옆 동네에 살고, 어린 시절에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의 부모도 서로 아는 사이. 이런 법칙은 왜 반복되나? 출생의 비밀은 그리스 비극 때부터 가장 중요한 드라마 요소라서? 세트 수를 줄여서 제작비를 아끼려는 의도일까? 혹은 코믹 조연에게도 서사를 부여하려다 보니 남는 사람끼리 연결해야 한다는 서사적 필요 때문? 아니면 정말로 놀이공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이제야 우리는 알았네 작고 작은 이 세상”이 우리 세계의 진짜 모습인 걸까? – 박현주(칼럼니스트, <로맨스 약국> 저자)

첫사랑은 이루어진다 ⇢ 드라마에서만
드라마는 ‘재미있으면 보고 아니면 말고’라는 가벼운 시선으로 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이게 말이 돼?’라고 의문을 품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첫.사.랑.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죄다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도 코흘리개 꼬꼬마적 풋사랑을 말이다.

나이가 고작 열 살 남짓한 조선의 왕세자 이훤은 우연히 만난 또래 꼬마 소녀 허연우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이별하던 날 울부짖었더랬다. 긴 세월 지나 주상전하가 되어서도 중전과의 합방을 거부한 채 오직 그녀만 생각하며 밤을 지새웠다. 초등학교 시절 뚱뚱한 자신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짝꿍 김혜진을 좋아한 지성준은 초특급 훈남에 고스펙을 가진 패션지 편집장이 되어서도 김혜진만 그리워한다. 실존 인물을 다룬 사극에서도 어린 시절의 첫사랑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에게는 분이가 있듯이.

드라마가 뜨기 위해서는 아역들이 초반 분위기를 잡아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한때의 정설은 드라마에 필수적으로 어린 시절의 첫사랑을 다루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또한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주인공들의 러브스토리에 어린 시절의 첫사랑이라는 양념은 이들이 끊을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있다는 포장을 완성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첫사랑을 그토록 아름답고 애절하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첫사랑이 끝사랑으로 이어지는 커플은?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이 첫사랑의 문법을 놀랍도록 답습한다. 1988년의 쌍문동 소년들 중 대부분은 첫사랑과 결혼했다. 정환이, 택이, 선우, 정봉이 모두 자신의 첫사랑 그녀와 재회하기 전까지 연애는 꿈도 꾸지 않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 전까지 평균 다섯 번의 연애를 한다고 한다. 첫사랑이 삶의 전부인 드라마 속 인물들과 달리 우리는 다섯 번째 혹은 여덟 번째 연인과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시시하고 찌질했던 첫사랑을 지나 세 번째 연인과 가장 뜨겁게 사랑했을 수도 있다. 첫사랑이 아닌 결혼적령기에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가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람과 결실을 맺는 것도 아니다.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뜨거웠던 감정도 결국엔 어느 한구석으로 밀려나서 얼굴조차 생각이 안 난다.

그러므로 이제는 좀 더 다양한 로맨스를 보고 싶다. ‘서브남주’의 애만 태우다 결국 어린 시절의 그에게 돌아가는 첫사랑 판타지 말고, 정말 내게도 일어날 것 같은 그런 연애이야기 말이다. <미생>도 성공했는데, 이젠 로맨스도 좀 현실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아, 그렇다고 해서, 30대 여성이 수많은 남자에게 덴 상처를 연하남의 사랑으로 치유하는 그런 스토리를 현실적이라곤 하지 말자. 그럴 바엔 차라리 첫사랑이 이뤄지는 게 더 현실적이겠네! – 허아람(방송작가)

뻔한 여자주인공과 악역 ⇢ 악녀는 웨이브 머리다
한국 드라마의 ‘악역’은 관상만 봐도 알 것 같다. 악역이라고 얼굴에 쓰여 있다. 끝이 날카로운 단발머리나 구불구불한 웨이브 머리를 하고 피부색과 입술색이 강한 대조를 이루는 메이크업을 한 여자 배역은 악역인 경우가 많다. 옷은 화려한 편이며 늘 굽 높은 힐을 신는다. 운동화를 신은 여자 악역은 본 기억이 없다.

악역은 여러모로 일관적이다. 표정이나 등장하는 모습도. 그녀들은 늘 전날 잠을 설친 것처럼 화가 나 있다. 설정으로는 좋은 집 따님이거나 회사 간부인데 늘 수상쩍어 보이는 남자들에게 심부름을 시켜 문제가 생긴다. 목소리도 한결같이 앙칼지다. 나는 아침드라마를 종종 보는데, ‘아침 드라마를 보면 다른 드라마는 싱거워서 못 본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여기 나오는 악역들이야말로 악역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선한 여자주인공도 평평한 건 마찬가지다. 착한 주인공 배역들은 당당하고 씩씩한 목소리로 활기차게 이야기한다. 그러다 슬픈 과거(없을 리 없다) 이야기를 꺼낼 때면 테이프를 천천히 돌리는 것처럼 목소리가 느려진다. 아니면 동양란처럼 여리거나. 저런 여자가 나쁠 건 없어도 좋을 것 역시 없다. 궁금하지 않다. 즉 매력이 없다.

평면적인 캐릭터가 나오면 드라마의 매력도 떨어진다. 캐릭터가 저렇게 평평한데 TV 화질이 좋아지면 뭐하나 싶다. 살면서 만난 악역 같은 여자들은 드라마 속 얼굴을 하지 않았고 진한 립스틱도 바르지 않았다. 청순한 여자에게 차여본 남자가 과연 없단 말인가? 물론 드라마가 현실을 똑같이 모사할 필요는 없다. 평면적인 캐릭터의 진짜 의미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안일하게 짰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해도 별로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안일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독한 드라마 좋다. 세상에서 그런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도 몇 없다. 미국산 드라마는 이런데 우리는 왜 그만큼 못하냐고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다. 다만 최소한의 성의를 보고 싶다. 소리지르는 악역, 활기찬 여자주인공, 이문식이나 오달수나 한진희처럼 늘 똑같이 쓰이는 조연 같은 건 그만 보고 싶다. 도대체 웨이브 머리나 붉은 립스틱, 하이힐이 뭔 죄람. – 박찬용(칼럼니스트)

식사합시다 ⇢ 밥은 3대가 모여서 먹어야 제맛
출생의 비밀, 복수, 음모, 신데렐라, 권선징악, 불치병. 나열하기도 숨이 찰 지경인데 이젠 익숙해져서 없으면 아쉽고 지나치면 비난을 받는 드라마 속 법칙들이다. 해결의 열쇠는 개연성 있고 균형감 있는 전개에 있을 텐데, 말이 쉽지. 세상에 도를 넘지 않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시청률 그래프로 평가받는 시대에 검증된 흥행 코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긴 쉽지 않다. 그래도 변화는 있었다.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던 ‘불치병’ 은 진부해도 너무 진부하다 싶었는지 수그러드는 추세여서 다행이지만 출생의 비밀과 복수는 여전히 사이좋게 짝을 이뤄 등장하는가 하면 아침 드라마의 기본 소재는 수년째 변함없이 ‘신데렐라’가 아닌가. 그것도 한 남자에게 상처받고 방황하던 여성이 능력있는 연하남을 만나 일로도 사랑으로도 다 성공한다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설정 말이다. 거기에 따귀 때리는 장면과 물 끼얹는 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단골로 나와줘야 화제가 된다. 어떻게든 화제가 돼야 PPL도 광고도 붙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지도 모르겠다. 뭐 다 좋다. 그러려니 하고 보면 되니까. 하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만큼은 좀 다르다. 악명 높은 막장드라마든 통통 튀는 감성의 미니시리즈든 거의 매회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밥상 장면. 어찌 보면 비현실적으로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오히려 한 수 위가 아닐는지. 요즘처럼 가족 간의 대화도 톡으로 하는 세상에 아침저녁으로 가족이, 그것도 3대가 함께 모여 밥을 먹는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 집 아들딸은 야근도 없는 직장에 다니는 걸까. 그것도 소찬일지언정 가족의 정이 담긴 밥상이 아니라 전시적으로 차려진 진수성찬이다. 시대는 변했고 라이프스타일도 달라졌다. 이제 중장년층이 바라는 희망 밥상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보여줄 때다. – 정석희(대중문화 평론가)

그 음악을 틀지 마오 ⇢ 민망함을 모르는 주제곡 메들리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남자와 여자가 식사를 한다. 갑자기 레스토랑 한구석의 피아노로 향한 남자가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말한다. “오늘 너무 긴 하루를 보낸 그녀가 잠시나마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윽고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를 무려 3분 동안 완창하는 박신양.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벌어진 일이니 참 오래전 얘기다. 시청률이 57%까지 치솟았던 그 드라마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이 음악 공식이다. ‘주연 배우의 OST 가수화.’

그로부터 몇 년 후, <어느 멋진 날>이라는 드라마에서 성유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괴로워하던 공유는 술에 취해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난데없이 임재범의 ‘고해’ 를 불렀다. 박서준은 그가 맡은 지성준 편집장의 테마곡을 부르고 지성은 <킬미 힐미>와 <비밀>에서, 현빈은 <시크릿 가든>에서 OST 삽입곡을 불렀다. 배우가 달콤한 노래 실력을 뽐내고 그를 통해 극의 정서를 확장하는 것은 이제 전략도 아닌, 드라마들의 습관이 됐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어떤 시청자는 감상을 방해받는다. 극 내부 세계에서 잘 살고 있는 한 인물이 극 외부 세계로 불려나와 분위기 잡는 보컬로 변신하는 순간, 집중력이 깨지며 민망함에 젖는다.

드라마가 남발하는 배경 음악도 마찬가지다. 신파조의 통속극 등에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줄곧 음악이 깔린다. 현재 방영 중인 어느 범죄물에는 세상에서 가장 심각하고 진지해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드라마는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는 듯 내내 음악을 투입한다. ‘우리 드라마는 이렇게 긴장감을 놓칠 수가 없다고!’ 혹은 ‘지금 엄청 슬픈 거야, 알지?’ 같은 강요와 다름없다. 드라마를 보는 내가 빠져들기도 전에 이미 거기 깔려 있는 음악. 극을 보조하거나 유기적인 감정을 고조시키는 선을 넘어 과한 수식일 뿐이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적절하며 잘 쓰인 음악은 드라마에 힘을 싣는다.v tN <일리 있는 사랑>에서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던 최여진이 세상을 떠날 땐 그녀가 비로소 홀가분하게 배낭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나왔고, 최여진의 목소리로 부르는 김동률의 ‘출발’이 흘렀다. 공식 OST 음반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출연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른다면 이정도 개연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MBC <한번 더 해피엔딩>의 장나라와 유인나, 서인영은 걸그룹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에 맞춰 출연 배우들이 뭉쳐엔 ‘젤스’라는 그룹 이름으로 직접 부르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하고 퍼뜨리는 마케팅은 영리한 정성이다. <응답하라 1988>의 수많은 음악은 장면이나 캐릭터에 대한 테마 음악이었을 뿐 아니라 그 시절을 소환하는 역할을 했다.

요즘 드라마 업계는 방영 말미에 가서야 완성된 OST 음반을 짠 하고 발표하지 않는다. ‘파트1’ ‘파트2’ 식으로 주 단위에 걸쳐 조금씩, 이른바 음‘ 원 쪼개기’ 식으로 발표한다. 그때그때 화제를 일으키고자 하는 OST 시장 추세 속에서 백지영이나 성시경 같은 이 분야 특A급을 모시기는 이전보다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돌파구의 하나로 출연 배우가 애절한 세레나데를 부르는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 없다. 무엇보다 그건 ‘대중들’에게 통한다. 정말 나만 민망한 걸까? – 권은경(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