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자들이 보는 잡지의 섹스 칼럼에서조차 ‘남자친구를 흥분시키는 법’, ‘그를 만족시키는 체위’만 가르치는 걸까? 이제 우리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해도 좋을 때다.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질 좋은 바이브레이터를 구입하는 걸지도 모른다.

바이브레이터는 모두 플레져랩 제품.

바이브레이터는 모두 플레져랩 제품. 

 

 

“당신은 오르가슴을 얻을 권리가 있다! (You’re Entitled to an Orgasm!)”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코미디언 에이미 슈머는 외친다. 그리고 그녀의 ‘오르가슴 권리’ 선언에 수많은 여성이 환호를 보냈다. 코미디 쇼 <인사이드 에이미 슈머n(Iside Amy Schumer)>로 명성을 얻은 에이미 슈머는 성 평등과 관련된 이슈를 코미디 쇼에 능수능란하게 녹여낸다. 데이트 폭력과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처럼 불편할 수도 있는 이슈를 경쾌하게 소화하는 그녀에게 미국은 TV의 퓰리처상이라고 불리는 피바디상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녀가 주연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Trainwreck)>는 미국에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둔 뒤 12월 10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여성의 오르가슴은 남성과 달리 섹스를 한다고 해서 보장되지 않는다. 사정하는 순간 가장 큰 쾌감을 느끼는 남성과 달리 여성이 오르가슴에 달하는 과정은 좀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여성 오르가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클리토리스와 지스팟은 사람마다 위치도, 자극을 원하는 정도도 다르며, 삽입을 한다고 해서 이 두 곳이 자극을 받는 것도 아니다. 에이미 슈머가 굳이 오르가슴에 대해 이야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섹스를 통해 상대방과 교감을 하면서 적당히 ‘좋은 섹스’를 하는 것과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니까! ‘남자친구를 흥분시키는 법’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가짜 신음소리는 내면서 왜 나도 너처럼 오르가슴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지 못하나? 우리는 섹스에서 조금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여성의 욕구나 판타지가 ‘상위’에 놓이지 않는다면, 섹스에 임하는 남녀 모두 자신의 여성 파트너의 오르가슴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판 <글래머> 11월호에 실린 ‘What Do You Want in Bed?’는 섹스를 할 때 여자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섹스를 좀 더 자주 하고 싶다면? 우선 더 자주 성적 충동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캐서린 오코넬 화이트 박사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연출된 포르노에 큰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한다”며, 성적 묘사가 쓰인 책을 읽는 동안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여성의 영상을 촬영한 사이트(www.hystericalliterature.com)를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여성은 다른 여성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장면을 볼 때 ‘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친구가 받아놓은 야동을 볼 때 항상 흥이 깨지는 부분은 늘 여배우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인 남자 배우의 얼굴 혹은 몸이 나오거나, 여배우가 남자에게 펠라티오를 해주는 장면이었다. 나는 여배우가 흥분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고!

오르가슴을 좀 더 자주 느끼고 싶다면? 파트너와 당신 모두 클리토리스에 집중해야 한다. 이때 바이브레이터가 있으면 편리하다. “98퍼센트의 여성이 4분에서 4분 30초 정도 클리토리스 자극이 있을 때 오르가슴을 얻죠.” <원하는 섹스를 하세요(Getting the Sex You Want)>의 저자 타미 넬슨은 말한다. 닥터 화이트도 말을 덧붙인다. “파트너와 동시에 오르가슴에 오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일은 엄청 드물다고요. 상대방에게 먼저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달라거나 혹은 근접하게 해달라고 섹스 전에 요구하세요.”

이쯤 되면 눈치 챘겠지만 그렇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바이브레이터’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딜도’가 아니라 ‘바이브레이터’다. 많은 남성이 여성용 섹스 토이 하면 자신들의 페니스를 대신할 삽입형 딜도를 떠올리지만 천만의 말씀. 삽입이 여성의 오르가슴을 보장해주지 않는데, 왜 막대기 같은 딜도를 사용해야 하나? <인사이드 에이미 슈머>의 한 에피소드는 브라이덜 샤워에 참석한 친구들이 서로 경쟁하듯 예비 신부에게 더 좋은 딜도와 바이브레이터를 선물하는 장면을 그린다. 그리고 쇼에 나온 네 개의 딜도 중, 클리토리스 자극 기능이 없는 건 한 제품도 없었다.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라는 부제를 단 책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은 스스로 ‘섹스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본인의 경험을 비롯해 섹스를 즐기는 다른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함께 수록한 책 내용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책 전체에서 던지는 질문은 온건하다. “섹스를 잘 모르는 여자들은 ‘내숭 떨지 말라’고 욕먹고, 섹스를 많이 아는 여자들은 ‘까졌다’고 욕먹는다. (중략) 하지만 그대로 살다가는 언젠가 여성의 섹스와 언어가 이 세상에서 도태되어버릴지 모른다.” 야동은 물론 몰카와 성매매에의 접근이 너무나 쉬운 사회, 순결을 바라는 동시에 밤에는 요부가 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시선이 있는 사회. 섹스 담론 자체가 남성들에게 맞춰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섹스에 대해 이야기할 자리조차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성적인 욕망이 없는 걸까? 유럽에서 머무는 동안 섹스토이 구매 대행 프로젝트 ‘은하선의 장난감 선물’을 진행하기도 했던 그녀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100개가 넘는 섹스토이를 한국에 보내며, 끊이지 않는 상담 메일을 보며, 여성들의 욕망이 엄연히 존재함을 확신했다고 한다. ‘여자들의 욕망은 이렇게 반짝이고 있었다. 다만 욕망을 내보이지 않을 것을 강요당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녀가 책의 말미에 적은 말이다.

지난 8월 흥미로운 가게를 방문했다. 합정역 근처에 20대 후반의 두 여성 대표가 운영하는 섹스 토이 숍 ‘플레져랩(www.pleasurelab.net)’이다. 남성을 위한 제품과 피임 용품, 러브젤 등도 판매하지만 플레져랩의 진열대는 여성용 섹스 토이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한국이나 일본의 성인용품점은 남자 기준에서 생각한 제품이 많아요. 하지만 북미나 유럽은 달라요. 여성의 즐거움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제품이 많죠. 여성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디자인은 물론 소음도 최소화하도록 신경 썼어요.”

플레져 랩의 목표다. 함께 사용할 섹스 토이를 구경하러 오는 커플도 많다. 애초에 여성용 섹스 토이의 본분은 여성이 오르가슴에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니, 파트너와의 합의하에 함께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면 더없이 훌륭한 일이다. 일본, 덴마크, 독일, 캐나다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갖가지 바이브레이터를 매장에서 직접 만져보고, 작동해볼 수도 있다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었다. 직접 작동해 본 결과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바이브레이터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손에 ‘착’ 감기는 데다가 달걀처럼 매끄러운 실리콘 소재의 표면, 귀여운 생김새는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윙윙’, ‘부릉부릉’ 단계를 조절해가며 밝은 낮, 쾌적한 매장에서 누군가와 바이브레이터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오르가슴에 도달하고 싶은 욕망을 맘껏 드러내도 된다는 것. 이 벽을 넘는 경험을 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더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게 될 거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