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만을 위한 공연’을 타이틀로 내걸며 지난여름 막을 올린 박칼린 감독의 <미스터 쇼>가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대체 그 열기의 정체는 뭘까?

 

공연 전, 객석의 분위기부터 완연히 달랐다. 혼자 온 관객이 종종 발견되는 다른 무대에 비해 여럿이 함께 온 관객이 대부분이다. 관객층은 40~50대와 20~30대가 비슷한 비중을 차지한다. 공통점은 모두가 여자라는 것!

 

<미스터 쇼>는 여자들을 위한 공연이다. 몸 좋은 ‘미스터’들이 나오는,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일 뿐 아니라 남자는 애초에 입장조차 금지된다.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이런 궁금증에 총감독을 맡은 박칼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의도는 단순하다. 여자들이 편하게 놀길 바랐다. 남자들은 따로 노는 세계가 많다. 많은 남자가 골프나 당구를 칠 때 여자가 끼면 불편해한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한 명이라도 끼면 행동이 달라진다”고 답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우리도 우리만의 공연장이 필요하다. 여덟 명의 몸 좋은 남자가 그야말로 ‘팬티까지’ 벗는 이 쇼는 남성의 상품화라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몇 년 전 아베크롬비가 국내에 론칭했을 때 매장 앞에 상의를 탈의한 남자들을 배치했다가 도마 위에 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핸드폰 매장 앞의 수많은 여자 내레이터 모델들, 수많은 행사의 판촉 모델들에 대해서는 아무 문제 의식이 없을까? 그런 식의 상품화가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가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다. ‘여성이여, 욕망에 충실하라’는 오래된 듯한 캐치프레이즈는 적어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요원하고, 그것이 <미스터 쇼> 같은 일시적인 탈출구가 필요한 이유다.

 

70분간 펼쳐지는 쇼가 근육질의 남자들이 벗는다는 것 외에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쇼가 시작되자 ‘섹시함’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주제가 펼쳐질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청바지, 교복과 군복, 바니걸 뺨치는 바텐더의 복장,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와 물쇼까지! 운동으로 탄탄하게 몸을 키운 평균 키 185cm의 건장한 여덟 명의 남자가 뒤태를 모두 노출하고 팬티만 입은 채 뛰어다니지만, 성행위를 강하게 암시하는 ‘미국춤’이나, 남자 스트리퍼들을 담은 영화 <매직 마이크>의 수위에 비하면 야하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물론 아찔한 순간도 있다. 관객을 무대로 초빙해 미스터들의 몸을 쓰다듬게 하거나, 교복을 입은 여섯 명의 미스터가 관객 한 명을 에워쌀 때, 공연장은 환성과 비명으로 가득 찬다. 자칫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는 분위기를 그때그때 전환하는 것은 MC다. 핑크색 재킷을 입고 나와 발랄한 톤으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그는 미스터 쇼의 9번째 미스터인데 테스토스테론이 넘쳐나는 무대 위의 남자들과 수줍거나, 혹은 열광하는 여자 관객 사이에서 중성의 느낌으로 존재한다.

 

<미스터 쇼>는 유쾌하다. 무엇보다 일상에서 끊임없이 얼굴과 몸매, 옷차림과 말투 등 외형적인 것으로 시시각각 평가받는 대상화에 익숙해진 여자들이 그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 누군가의 몸을 눈과 귀로 맘껏 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육체에 초점을 맞춘 만큼 ‘미스터’들의 춤과 연기 실력은 ‘몸’만큼의 만족스러움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몸’ 자체가 가장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공연이 끝날 때쯤이면 여자친구들과 함께 이 남자들의 몸을 다시 만나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