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오피, ‘Walking in Sinsa-dong1’

줄리안 오피, ‘Walking in Sinsa-dong1’

군더더기 없다. 경쾌하고 즐겁다. 줄리안 오피의 작품에 대한 첫인상은 대부분 이러하다. 간결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이 그려진 그의 작품은 그저 보이는 대로 즐기는 것이 먼저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빨리 걷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걸까? 마주치는 서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간결한 그림 안에 내재된 의미를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좀 복잡해진다.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 바로 우리의 심리를 꿰뚫는 줄리안 오피의 심미안을 깨닫게 된다.
줄리안 오피는 앤디 워홀에 버금가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팝아트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앤디 워홀의 작품보다 인간미가 있고, 선으로 단순화되었음에도 키스 해링보다는 구체적이고 회화적이다. 나이와 인종을 초월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미적 감수성도 빠뜨릴 수 없다. 가장 많이 알려진 오피의 작품은 픽토그램을 연상시키는 둥근 머리와 뚜렷하고 간결한 선으로 이루어진 전신상, 그리고 작가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클로즈업해서 묘사한 이미지들이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은 작가의 일상에서 우러난 친밀감과 섬세한 색채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촬영한 모델이나 풍경, 단편영화의 스틸이미지 등을 드로잉이나 컴퓨터 작업을 통해 변형하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얼굴과 몸의 특징 등 대상의 정체성이 최소한으로 남을 때까지 생략함으로써 최대한 단순화시킨다. 모든 수식과 맥락을 벗겨내는 것이다. 그렇게 뼈대만 남겨 정수, 혹은 지극한 보편성으로서의 고유성을 만들어낸다. 형식적으로도 그렇다. 그의 작품들은 프린트나 비닐을 컴퓨터로 재단하여 캔버스에 덧씌운 것이다. 작가의 감정과 호흡을 감지하기 어려운 색채는 사실, 작가가 엄격하게 통제한 결과다. 간결한 형상에서는 기계적인추상성과 오직 생명체에서만 우러나는 원시적 기운이 공존한다. 이 둘이 오묘하게 공존할 수 있는 절정의 리듬감. 그건 줄리안 오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수성이다.
데미언 허스트를 비롯한 ‘yBa(Young British Artists)’를 배출한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인 그는 1980년대까지 주로 미니멀한 입체작품이나 풍경화를 선보였다. 1990년대 들어 단순한 인물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는 교사, 학생, 주부 등 주변 인물들을 작품화했다. 특정 인물들은 구체적 형태를 지워나가는 오피의 독특한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인의 익명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바뀌어갔다. 상업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영국에서 그의 작품은 일상적으로 경험된다. 그의 손을 거친 팝그룹 블러의 베스트 앨범 재킷은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고 캘린더, 버스 광고, 잡지, 쇼윈도, 공항 환승통로 등 곳곳에서 그가 만든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그는 스틸 이미지뿐 아니라 동영상, 애니메이션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해 인터넷으로 소통하기도 한다.일상의 맥락에서 이해되기 이전에 친숙하게 감각되려는 의도다.
가장 예술적이면서 대중적인 작가, 줄리안 오피가 서울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국내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인의 일상, 특히 도심을 가로지르는 군중의 걷는 모습들이 중점으로 구성되었다. 그는 특별히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 사람을 관찰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한 사람들을 포착한 새로운 LED 회화, 다채로운 색상의 LED 패널의 신작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 그리고 서울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2월 13일부터 3월 2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