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인생, 역사를 담담히 담아낸 그림과 사진들.

1 로버트 프랭크, ‘Trolley, New Orleans’. 2 강형구, ‘고흐’.

1 로버트 프랭크, ‘Trolley, New Orleans’. 2 강형구, ‘고흐’.

무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붉은 그림의 반 고흐, 젊고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보는 마릴린 먼로는 강형구의 대표작으로 통한다. 영은미술관에서 선보이는 강형구의 개인전은 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강렬한 인물화로 주목받는 강형구가 최근 3년간 작업한 200호 이상의 대형 회화들,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은 제목처럼 관객을 무섭게 응시한다. 왜 하필 초상화였을까? 그 이유에 대해 강형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의 얼굴은 시대와 역사를 드러내는 총아입니다. 사실 나는 초상화를 그리는 게 아니라 역사의 표정을 그리는 겁니다. 반 고흐, 앤디 워홀, 마릴린 먼로의 눈은 그 시대를 대변하니까요.” 강형구는 인물의 솜털까지 세밀하게 묘사해 극사실주의 화가로 분류되곤 하지만 결코 대상의 재현에만 주력하지 않는다. 허구적인 상상을 가미해 오로지 강형구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굳이 수식어를 붙인다면 ‘허구적 현실주의’가 맞다. 사실 그는 오랜 무명시절을 겪었다. 남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그린 인물화를 집에 걸어두는 것을 꺼리는 우리나라 사람들 특유의 인식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해외 경매 시장의 도록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유명해졌고, 특히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추정가를 크게 웃돌며 팔렸다. 뉴욕, 베이징, 싱가포르에서 잇따라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나는 감상자와 교감하기 위해 주로 정면을 그립니다. 그림이 완성되어갈수록 그림 속 인물의 눈이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I See You’라 붙였습니다.” 전시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을 바라보는 수십 개의 눈에 압도당할지도. 전시는 12월 15일까지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의 주제 또한 인물의 초상이다. 강형구의 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회화가 아닌 사진이라는 점이다. 지난 100여 년간 포착된 얼굴 사진 600여 점은 서울의 근현대사를 오롯이 기록한다. 사진이 대중화된 1920∼30년대 사진관에서 촬영한 얼굴 사진, 유관순, 한용운 등 독립운동가들의 수형기록표 사진으로 보는 일제강점기 초상, 주민등록증 등 신분과 정체성을 증명하는 초상, 대중매체인 잡지가 표상하는 여성의 초상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특별관에는 북촌 주민들의 인물사진을 통해 북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는 <북촌, 북촌 사람들>, 1880~1980년대 서울시 소재 예식장 및 사진관에서 촬영한 결혼사진을 전시한 <서울 시민들의 결혼이야기>전도 준비되어 있다. 사진영상의 길을 개척한 사진가로 평가받는 로버트 프랭크 역시 인물에 주목한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2014년 2월 9일까지 열리는 로버트 프랭크 개인전에는 오리지널 프린트 115점이 걸린다. 프랭크는 노출과 구도,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않아 기형적으로 표현된 인물들을 보여준다. 거기에 사회적 풍경에 대한 섬세하고 예리한 시각이 담긴 작품을 35mm 필름, 영화, 폴라로이드, 디지털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선보이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도 이미 소개된 바 있는 ‘The Americans’ 연작을 비롯해 1947년 뉴욕으로 이주 후 미국, 페루, 스위스 등지를 여행하며 촬영한 1940~1950년대 풍경, 인물 작업, 영화 스틸 작업까지 작가의 작업 인생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전시가 시작된 11월 9일은 그의 89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