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눈’이라 불리는 작가 아라 귈레르(Ara Güler)는 전 세계를 떠돌며 세계의 모습을 기록했지만 그의 심장은 늘 터키에 맞춰 있었다.

1 아라 귈레르, ‘Miners, Divrigi, Sivas'. 2 오드리 헵번. 3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들녘'.

아라 귈레르, ‘Miners, Divrigi, Sivas’. 오드리 헵번. 3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들녘’.

 

 

이건 분명 이제까지 알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터키다. 터키에 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라도 다를 건 없다. ‘터키의 눈’이라 불리는 작가 아라 귈레르(Ara Güler)는 전 세계를 떠돌며 세계의 모습을 기록했지만 그의 심장은 늘 터키에 맞춰 있었다. 터키의 국가적 기록으로 추앙받는 그의 작업들은 너무도 방대한데, 그중 백미는 단연 ‘이스탄불’ 작업이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 사이에 발 딛고 선 세계 유일의 도시 이스탄불의 옛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생선을 잡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를 품은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향하는 터키 어부들의 삶까지 아라 귈레르의 카메라 초점은 사람을 향한다. 사진 안에 건물을 담든, 바다를 담든 그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사람들이었다. 작가는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인간 존재에 가장 큰 의미를 두었고 스스로를 ‘시각적 역사가’라 불렀다. 사진은 인간의 기억과 추억, 그들의 인생, 특히 그들의 고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를 작업으로 지켜나갔다. 국내에 최초로 선보이는 아라 귈레르의 작업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의 터키의 짙고도 강렬한 땅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번 국내 전시를 위해 특별히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별, 새롭게 흑백은염사진으로 제작했으며 그중 40여 점은 작가가 직접 프린트와 프레임을 선정한 작품들이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터키와 이스탄불의 고혹적인 모습을 11월 22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한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한편, 백석동 라 카페 갤러리에서는 페루의 현재를 보여주는 사진전이 한창이다. “오늘은 두레 노동을 하는 날. 안데스 고원의 감자 농사는 숨 가쁘지만 옥수수막걸리 치차를 돌려 마시며 잠시 만년설 바람에 땀방울을 씻는다. 기쁨이 없고 노래가 없는 노동은 삶이 아니다.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 내 삶에 감사합니다.” 시인이자 사진작가 박노해가 펼쳐놓은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전에 쓰여진 글귀다. 전시장에서는 태양의 땅에서 울려오는 ‘삶에 대한 감사’와 ‘인간의 위엄’이 고스란히 담겼다. 가장 험난한 지형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농부들, 해발 3천 미터 산속에 빛나는 살리나스 염전에서 전통방식 그대로 소금을 생산하는 사람들, 안데스 고산 지대에만 사는 알파카를 기르는 여인들까지. 가혹한 삶의 조건을 정면으로 돌파하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얼굴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전시는 내년 3월 18일까지다.

 

터키와 페루의 과거와 현재를 만났다면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에 취할 차례. 한 시대를 풍미한 여배우, 아름다운 얼굴을 넘어서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지녔던 오드리 헵번이 사진으로서 서울을 찾는다. 사진전은 화려한 배우로서의 헵번이 아닌 한 가족의 엄마, 더 어려운 이들에게 손을 내민 한 여자로서의 헵번을 조명한다. 11월 29일부터 내년 3월 8일까지 DDP에서 열리는 그녀의 사진전은 세계 최초로 전시 국가에서 단독으로 기획, 연출되는 전시회이기도 하다. <로마의 휴일>을 통해서 이름을 알린 오드리 헵번은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등에 출연하며 세기적 여배우로 등극했지만 배우로서의 화려한 삶보다 한 인간으로서의 의미 있는 삶을 추구했다. 그녀는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되었고 인도주의적인 구호 활동에 누구보다 힘을 쏟았다. 에티오피아, 수단 등을 방문해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을 보살피는 그녀의 모습은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를 소리 없이 꾸짖는다. 전시의 제목은 <뷰티 비욘드 뷰티>,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눈으로 보고 머리로 깨닫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