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기아의 현장에서 인간성의 종말을 보았다는 사진가 세바스티앙 살가두. 그가 다시 사진기를 들게 된 건 자연의 위대함을 체험하고 나서부터였다. 이후 갈라파고스, 남극, 북극, 사하라 사막 등 전 세계 120여 개국을 돌며 담은 지구의 가장 순수하고도 웅장한 모습은 그가 지구에 전하는 러브레터다. 살가두는 그 러브레터 중 <얼루어> 독자들을 위한 여덟 컷을 골랐고, 추신을 함께 전해왔다.

“사진은 나의 언어이다. 사진작가는 바라보기 위해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 그곳에 있다. 나는 사진으로 일하고 사진으로 내 의사를 표현한다. 그게 내가 사는 이유다.” 펜보다 강한 사진의 힘을 발견한 젊은 경제학자는 전쟁과 기아의 현장을 누비며 세계의 결정적 순간을 전달하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잔인한 운명, 비극적 사건의 희생자를 포착했던 그는 더 이상 비극이 아닌 원대한 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제네시스(Genesis) 프로젝트’는 2004년부터 무려 8년에 걸쳐 완성한 것으로, 40년 경력의 거장에게도 크나큰 도전이었다. “제네시스 프로젝트는 나의 사진 인생에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건 진정한 모험이고 대단한 배움이었다. 만물이 이어져 있고 모든 것은 살아 있음을 배웠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지구에 부치는 나의 러브레터이다.” 그의 사진은 자연에 대한 장엄한 기록인 동시에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자보도브스키와 비소코이 섬 사이에 있는 빙하 위 턱끈 펭귄. 사우스 샌드위치 제도. 2009
“펭귄 중에서도 사납기로 유명하고 턱을 가로지르는 검은색 띠가 인상적인 턱끈 펭귄. 펭귄에게 바다는 먹잇감을 구할 수 있는 장소이자 천적이 우글거리는 공포의 장소이다. 때문에 펭귄 무리는 바다에 들어가기를 머뭇거린다. 이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들도 두려움을 잊고 잇따라 뛰어든다. 용기 있는 행동으로 타인의 행동을 이끄는 사람을 ‘퍼스트 펭귄’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이 펭귄들의 습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펭귄 군락이 있는 이곳에서 나는 세상의 가장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루쿰 열매로 몸을 붉게 칠하는 토와리 이피 마을의 조에 여인들. 파라. 브라질. 2009

“토와리 이피 마을의 조에 여인들은 붉은색 우루쿰 열매로 몸을 붉게 칠한다. 이 열매는 아메리카 대륙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작은 관목 열매로 식용으로도 쓰인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오랫동안 보디 페인팅, 특히 입술에 사용했기 때문에 립스틱 나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조에 족은 브라질 북부 파라 주의 아마존 강 북부 지류의  깊은 우림에 산다. 이 부족은 1987년 뉴 트라이브스 미션 소속의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또한 ‘뽀뚜루(Poturu)’라 부르는, 아랫입술을 관통하는 나무막대를 꽂는 유일한 부족이기도 하다. 나는 이 부족과 함께하는 동안 원시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마음까지도 태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카푸에 국립공원. 잠비아. 2010

“잠비아에서는 밀렵꾼이 코끼리를 사냥하기 때문에 코끼리는 사람과 차를 무서워한다.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 놀라서 관목 속으로 재빨리 도망친다.” 

브라질의 마투그로수 주의 싱구 강 상류 유역에서 와우라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다. 브라질. 2005

“아마존 지역 싱구 강 상류 유역에는 정체성이 다른 2500여 명의 부족민이 13개의 마을에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고 있다. 불행히도 오염된 강물이 콩농장을 통과하고 있어 어류에 의존하는 원주민들의 생활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싱구 강 상류 유역의 숲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싱구 강 상류에서의 댐 건설 역시 강과 지류뿐 아니라 부족문화까지 위협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날씨가 아주 나쁠 때 네네츠 족과 순록은 한곳에 며칠씩 머문다. 북극권 안 야말 반도. 러시아. 2011

“네네츠는 러시아 북시베리아 지역의 야말로-네네츠 자치구역에 사는 약 4만2천 명의 원주민 부족을 말한다. 이 부족은 순록에 의존해 생활하는데, 여름이 되면 순록 떼를 몰고 북쪽 북극권으로 간다. 이곳에서 풀과 질긴 식물을 먹는 것에 익숙한 순록을 방목하고 날씨가 아주 나쁠 때는 한곳에 며칠씩 머물기도 한다. 어떤 날은 눈보라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오직 몸이 얼어붙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열중한 적도 있다. 얼마간 머물기 위해 가져간 내 짐이 네네츠 족의 짐보다 많았다.” 

알브르그와 틴 메르조우가 사이의 넓은 사구. 알제리. 2009

“아프리카 대륙 북부의 사하라 사막. 그중에서도 동편 리비아까지 걸친 아카쿠스 산맥의 타드라르트(알제리 남동부 자넷 남쪽)다. 국경지방인 이곳은 바위산으로 이뤄진 사막인데 곳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사구가 발달해 있다. 사구는 바람의 작품이다.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모래가 이처럼 멋진 언덕을 쌓는다. 높이도 어떤 것은 몇 센티미터이고, 어떤 것은 수백 미터나 된다. 이런 사구는 거주민들에게도,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관광객에게도 사랑받는다. 사구는 매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다. 밤새 분 바람이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제네시스는 나에게 지구의 나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하라에서 1만6천 년 전에 깎이고 부서진 돌을 보았고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장엄한 대자연 앞에서 숨이 멎을 듯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했다."

폴렛 섬과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에 있는 빙산. 남극 반도. 2005

“웨델 해의 폴렛 섬과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 사이에 있는 빙산이다. 위쪽의 성탑처럼 보이는 부분은 풍화와 얼음이 깨지면서 생긴 것이다. 거대한 각빙이 얹혀 있는 빙하의 모습이 마치 거대한 기념비 같아 우리는 그것을 ‘대성당’이라고 불렀다.

나바호 보호 구역에서 바라본 콜로라도 강과 작은 콜로라도 강의 합류지점.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은 이 합류지점에서 시작된다. 미국. 2010

“콜로라도 공원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그랜드캐니언이며 이 고원의 뾰족하고 굴곡진 풍광이 분위기를 대변한다. 수만 년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웅장함을 만들어온 이 경이로움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가 전전긍긍하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