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의 한 소녀가 욕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 소년은 자기 키보다 큰 선인상 숲 사이를 전속력으로 뛰어가고, 또 한 소년은 날개와 꼬리가 떨어져 나간 모형 비행기를 내려다보면서 등이 한껏 처졌다. 중국의 신예 작가 송이거의 신작‘ 무력감(Helplessness)’ 시리즈이다.

한 소녀가 욕실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 소년은 자기 키보다 큰 선인상 숲 사이를 전속력으로 뛰어가고, 또 한 소년은 날개와 꼬리가 떨어져 나간 모형 비행기를 내려다보면 서 등이 한껏 처졌다. 중국의 신예 작가 송이거의 신작 ‘무력감(Helplessness)’ 시리즈이다. 중국의 세계적인 스타 아티스트 쩡판즈가 키워 유명세를 치른 송이거는 2010년 베이징에 위치한 아트미아(Art Mia Gallery) 갤러리에서 첫 번째 전시부터 개인전을 거머쥔 무서운 신예이다. 이 전시는 쩡판즈가 기획하고, 큐레이팅한 것으로 중국 내에서 빅 이슈가 되었다. 대체 송이거의 무엇이 쩡판즈를 사로잡은 것일까.

쩡판즈와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
데뷔 전부터 아트미아 갤러리에서 전시 보는 것을 즐겼다. 그때 갤러리에서 쩡판즈 선생님 부부와 만날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먼저 저녁 식사에 초대해주셨다. 그때 쩡판즈 선생님은 내가 파인아트를 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모르셨고, 그저 미술 작품을 좋아하는 팬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곳에서 내 작품을 보신 쩡판즈 선생님이 내 작품을 칭찬하셨고, 나를 수소문하셨다. 그리고 그 작품의 작가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트미아 갤러리 관장님과 함께 나에게 데뷔전을 제안하셨다. 행운이었다. 대부분의 작품에 짙은 푸른색을 사용한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원래 차갑고 무거운 컬러를 좋아한다. 짙은 푸른색이 그런 컬러인 것 같다. 하얼빈에서 태어나 북경으로 파인아트를 공부하러 온 나는 한동안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그 고독이 작품에 스며들어서 짙은 푸른색을 자주 사용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다닌 루쉰 대학(Luxun Academy of Fine Art)도 묵직한 톤의 그림을 주로 가르친다.

그런데 최근작은 데뷔 초기와 컬러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2008~2009년에 완성한 작품은 짙은 푸른색이 많은 데 비해 2010년에 완성한 최근작에는 붉은색과 분홍색, 흰색 등 밝은색을 사용한 작품이 많아졌다.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작품은 내 정서를 반영하는데, 최근 나는 삶이 즐겁다. 외로움을 극복했고, 싱글로서의 삶에 익숙해졌다. 친구들도 생겼고, 동료도 많아졌다. 그리고 붉은색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원래 나는 붉은색이 촌스러운 색이라고 오해했고, 작품에 변화를 크게 주는 색이라고 생각했다. 붉은색을 사용하면 다른 컬러에 비해 작품 분위기가 변하는 폭이 커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붉은색을 자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붉은색을 써보니, 촌스럽지도 않았고, 내 작품의 정체성을 변화시키지도 않았다.

‘무력함’ 시리즈가 주는 감동이 남다르다.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고 싶다.
‘무기력함’이 내 정서였다. 가족을 떠나 북경에 온 나는 혼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 무력함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무력함이 오히려 나의 힘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작품에는 공간은 크게, 사람은 작게 표현돼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현실의 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내 작품의 소재는 정해져 있지 않다. 길을 걷다가도 눈에 띄는 여러 가지 중 내 추억을 소환하는 사물과 공간을 그리게 되는데, 그때 내 기억 속의 교실과 욕실은 너무 넓은 곳이었고, 나는 너무 작았다. 그러니 내 그림 속 공간은 크고, 사람은 작다.

세계에서 주목받은 중국 작가들-쩡판즈를 포함해서-의 작품을 보면 대개 ‘상처 받은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한 작품이 많다. 천안문 사태 등 중국의 정치적 상황을 비관한 작가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인 듯하다. 이에 비해 당신의 작품은 한층 더 개인적인 느낌이 강하다.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중국의 사회적 배경 때문에 중국아트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중국 특유의 사회적 배경에서 생겨난 정서가 작품에도 배어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사회적 관점에서 좀 벗어나 있다. 나 개인의 일상과 정서, 그리고 자연에서 얻은 감동이 작품에 좀 더 드러나는 것 같다. 나뿐 아니라 요즘에는 많은 젊은 작가가 나처럼 좀 더 개인적인 창작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벤야민과 쩡판즈 선생님. 벤야민은 독일 청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그때의 상처 때문에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주는 위안과 치료의 힘을 옹호했다. 나도 벤야민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인생과 작품의 방향성을 발견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 쩡판즈 선생님의 작품은 워낙 작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좋아했다.

송이거의 이번 전시는 현대갤러리 강남에서 열린다. 2월 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