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가 긴 침묵을 깨고 돌아왔다.’각자의 밤’이라는 주제로 모인 13곡을 천천히 듣고 있으니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듯 마음이 정제된다. 크게 부서지다 이내 잔잔해지는 가을밤의 파도가 음악이 된다면 이런 형태일까? 해가 완전히 저문 까만 밤. 다시 그의 앨범을 꺼내 들었다.

1 정규 3집 <각자의 밤>을 발매한 에피톤 프로젝트. 2 음악 작업 중인 에피톤.

<각자의 밤>이라는 앨범 제목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별이 빛나는 밤’이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같은 그림에서 착안했다. 앨범 제작 초기부터 ‘밤’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움직였다. 생각해보면, 앨범 타이틀을 정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저런 이름들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누군가를 생각하거나 혹은 그리워하거나, 때로는 삶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깊이  생각하는 밤의 여러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환상곡’, ‘유서’ 등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밤에 만든 것이 분명해 보이는 곡들이다.

밤이라는 시간이 아무래도 조금은 더 내밀하지 않나. 한없이 가벼운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물 먹은 스펀지처럼 축축하고 무겁고, 깊어지는 날도 있다. 밤의 여러 이야기를 담으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다소 무겁고, 어두운 방향으로 흐른 것 같다.

 

한편, 당신에게 밤은 어떤 시간인지 궁금하다.

주로 작업하고 녹음하는 시간이다. 특히 가사를 쓰는 일은, 밤이나 흐린 날에 집중도가 높다. 그 영향으로 작업실 조명을 평소에도 잘 켜지 않는다.  

 

타이틀곡 ‘미움’은 손주희와 함께했다. 손주희의 어떤 점이 ‘미움’, ‘회전목마’와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나?

그녀의 목소리다. 톤이나 감정 처리가 좋았다. 녹음 때 가사를 본인 손글씨로 빼곡하게 적어온 것이 기억난다. 데모를 진행하면서, 두 곡 모두 소녀 같은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 소녀 같은 목소리에는 여러 지점이 있는데, 조금은 어두운 컬러가 필요했다.

 

지난 5월로 예정되었던 앨범 발매가 미뤄졌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나? 

앨범에 대해 생각했다. 제목을 고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믹싱이나 마스터링 단계도 더 고민했다. 발매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도 앨범 디자인이나 가사, 크레딧 표기 등을 끝없이 검토하고 있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었으면 하나?

새로운 앨범은 상황이나 풍경의 묘사이고, 밤의 여러 모습이다. 누군가 자신의 밤, 그 소중한 시간들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음반이 그들의 밤에 함께할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타이틀곡 ‘미움’은 다른 버전으로 두 번 실렸다. 곡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느껴지는데 어떤가? 

‘미움’은 손주희가 부른 타이틀 버전과, 나의 목소리와 피아노로만 이루어진 버전으로 수록했다. 후자의 경우 앨범 마지막 트랙으로 실었다. 타이틀곡은 녹음을 몇 번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불렀다. 마지막엔 그녀가 직접 감독할 정도였다. 물론 노래 실력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지만, 내 목소리로 부른 미움도, 곡을 만들 때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 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탈리아, 프랑스로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이탈리아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친퀘테레를 다녀왔고, 그 마을 이름이 노래 제목이 되었다. 어디를 갈까 여행지를 조사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그곳을 주제로 곡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인 곳이었다. 이번 앨범의 디자인이나 콘셉트 역시 여행을 하며 계획했다.  

 

첫 앨범부터 지금까지 어떤 것들이 변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건 뭔가?

오래 쓰던 컴퓨터와 음악 장비를 바꾸었다. 건반도 한 대 더 늘었다. 관심사가 조금씩 변해가고, 음악을 듣는 방법이나 취향도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진이나, 글도 변해가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조금씩 변하고, 또 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가창력이라든가, 작업할 때 머리를 잘 감지 않는 습관이라든가 연습장에 가사 쓰는 일들은 변하지 않는다.

 

이승기, 신세경, 주원 등과도 함께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작업은 좋은 자극이 될 것 같다.

내 앨범 작업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고, 공부도 된다. 앞으로도 더 다양하게 재미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미뤄진 공연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 들었다.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있나?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라 더 잘하고 싶다. 발매 기념이니 더욱 그렇다. 밴드 편성도 꽤 크게 잡은 편이고, 앨범에 참여한 게스트들도 모두 참여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무대나 조명도 신경을 많이 쓰고, 무대에서 부를 곡은 좀 더 보완해야 한다. 부산과 서울 두 곳에서 다섯 번의 콘서트를 진행한다.  

 

한 사람이 만든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하나의 앨범에서 보여주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굉장하다. 

늘 많이 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국적을 불문하고, 장르를 불문하고 더 다양하게 들으려고 한다. 취향이나 스타일이 굳어지면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것 같다. 빌보드나 UK 차트, 한동안 듣지 않았던 ECM이나, GRP를 다시 들으며 훌륭한 믹싱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반 린스 & 메트로폴 오케스트라 음반에 꽂혀서 며칠이고 들었다. 최근 당신을 가장 신나게 한 사건은 뭔가? 작은 턴테이블을 샀다. 이번 앨범을 LP로도 제작하기에 겸사겸사 구입했다. MP3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음악을 듣는 재미, 소유하는  느낌은 확실히 다르다.  

 

지금, 당신이 기다리는 건? 

밴드 마스터 형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곧 도착한다고 문자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