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도 잘하고, 음담패설에도 능수능란한 발칙한 인형들을 만나러 갔다. 드디어 한국에 도착한 <애비뉴 Q> 관람기.

퍼펫과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의 배우들.

“엿 같은 내 인생(It Sucks to be Me).” 뮤지컬 <애비뉴 Q>의 오프닝 곡 제목이다. 퍼펫들이 ‘내 인생이 구리다’고 외치는 이유는 다양하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업이 막막해서, 남자친구가 없어서, 기껏 심리치료사 자격증을 땄는데 상담받는 손님이 없어서 등등. 2004년 토니 어워즈에서 <위키드>를 제치고 뮤지컬 부문 최고 상을 수상한 <애비뉴 Q>는 여러모로 전례 없는 뮤지컬이다. 제작사인 설앤컴퍼니의 대표조차 “이 공연은 보기 전까지는 퍼펫들의 실체를 모른다는 게 마케팅의 재료이자 한계다”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애비뉴 Q>는 퍼펫의 몸을 빌려 19금 농담과 인종, 동성애 등 민감한 이슈를 거리낌없이 소재로 사용한다. 이것이 현실적인 이유는 등장인물 모두가 안정된 관계와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평범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간질간질한 부분들을 <애비뉴 Q>는 시원하게 긁어준다. 누구나 차별은 하지만 범죄를 일으킬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경직된 채 살지 말자고 노래하는 ‘모두가 조금씩은 인종차별주의자(Everyone’s a Little Bit Racist)’와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Schadenfreude)’ 같은 넘버들이 특히 그렇다. 아마 <애비뉴 Q>를 많은 이들이 힐링 뮤지컬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참, ‘인터넷이 유용한 이유는 야동 때문이지(The Internet is for Porn)’도 빼놓을 수 없겠다. 너희 중에 야동을 본 적 없는 자만 이들에게 돌을 던지라!
자칫 이런 미국식 농담들이 한글 자막으로 번역되면 본래의 맛을 잃고 어정쩡해지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는 막이 오르고 10분이면 사라진다. ‘썅’ 을 자막 스크린 가득 궁서체로 커다랗게 표현하거나, 중간중간 적절한 그림과 이모티콘을 삽입한 자막은 원어의 뉘앙스를 성공적으로 전달한다. 정치적 농담도 한국의 상황에 빗대어 변환했다. (지금은 추징금을 납부하기로 한) ‘29만원의 그분’이나 ‘김정일’ 이야기가 외국 배우들의 입에서 나올 때 느껴지는 그 묘한 쾌감이란! 섹스를 드러내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한국 사람들이 퍼펫들이 체위를 바꿔가며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다니! 주인공이 퍼펫이라고 해서 배우들이 단순히 퍼펫을 대신해 움직이고 노래만 하는 것은 아니다. 퍼펫의 시선, 동작 하나하나 그야말로 혼연일체가 되어 움직이는 배우들은 필요할 경우에는 1인 다역을 해내기도 하는데, 특히 순수한 유치원교사인 케이트 몬스터와 섹시하고 방탕한 여자 루시를 동시에 연기한 칼리 앤더슨의 열연에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 그렇다. 이건 인형극이 아니라 뮤지컬이다. 그것도 진짜 뮤지컬!
뉴욕의 한 거리, 애비뉴 Q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갈등과 대립은 모두가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가자는 것으로 다급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봉합이 어설프거나 서투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긍정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내일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이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영화의 한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각자의 애비뉴 Q에 서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다. 이 사랑스러운 퍼펫들의 오리지널팀 내한 공연은 10월 26일까지, 샤롯데 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