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져>의 개요는 이렇다.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사랑에 빠지는 깊이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네 명의 남녀에 대한 이야기.

<클로져>의 개요는 이렇다. 우연히 만나 첫눈에 반하고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사랑에 빠지는 깊이만큼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네 명의 남녀에 대한 이야기. 국내에서도 여러 번 무대에 오른 작품이지만, 이번 공연은 티켓 오픈 2분 만에 매진되었을 만큼 공연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스트립 댄서로 첫 연극 무대에 오른 문근영 때문이다. 사실 문근영의 캐스팅은 섭외 메커니즘 때문이기도 하다. <클로져>는 1년 동안 10개의 연극 작품을 제작하는 ‘무대가 좋다’ 시리즈 중 한 편인데 이 기획의 주체 중 하나가 그녀의 소속사인 나무액터스다. 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자사의 배우를 새로운 영역에 진출시킬 수 있고, 대박에 가까운 스타 캐스팅은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건 스타 캐스팅으로 인한 티켓 파워를 통해 짭짤한 수입도 챙길 수 있다. 각설하고, 내가 그 뜨거운 티켓 구하기 경쟁에 뛰어든 데에는 그녀에 대한 ‘팬심’ 60%, 뮤지컬이나 드라마가 아닌, 연극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엄기준에 대한 기대 30%, 동명의 영화 <클로져>에 대한 애정 10% 정도가 작용했다. 공연을 본 날은 마침 프레스콜이 있었고, 여럿의 기자가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본 후였다. 역시나 즉각적이고 1차원적인 반응을 내놓는 인터넷 매체의 뉴스 맥락은 비슷했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의 담배 연기’, ‘농염한 키스 신‘, ’배우 열연에 반응 후끈’. 나 역시 그런 것들이 궁금하지 않았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그보다는 나탈리 포트만이 동명의 영화로 어린 소녀의 이미지를 떨쳐버린 것처럼 그녀도 그렇게 잘해냈을까, 스트립 댄서와 문근영과의 ‘싱크로율’은 얼마나 되는지가 더 궁금했다. 공연을 찾은 절대 다수 관객의 속마음은 아마 이랬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문근영의 생애 첫 연극은 영리한 캐스팅과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뤘다는 것이다. 캐스팅을 놓고 보자면 네 명의 남녀 주인공 중 문근영만 연극 무대 첫 출연이고 나머지 캐스팅은 모두 다수의 연극 경험이 있는 배우들이다. 특히 원작에 비해 코믹한 요소가 많아진 래리 역을 맡은 배우 최광일은 공연 내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가끔은 그 코믹한 요소가 <클로져>가 가진 사랑에 대한 복잡하고 미묘한 은유와 의미, 심리를 느끼는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대중적인 <클로져>를 완성하는 데에는 꽤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엘리스(문근영)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댄을 맡은 엄기준 역시 제 몫을 다 했다. 드라마와 영화로 대중성까지 확보한 그는 <클로져>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 그렇다면 문근영의 엘리스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괜찮았다. 오프닝 장면에서 짧은 블론드 가발을 쓴 채 등장한 무대 위 문근영은 다소 불안한 감이 없지는 않았다. 묵직하고, 때로는 과장되게 강약을 오가는 연극 배우의 발성보다는 드라마나 영화 속의 여린 발성 톤 때문이었다. 어리지만 날이 서 있고, 순수하지만 파격적이어야 하는 엘리스라는 캐릭터를 과연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근영은 여느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해냈다. 얼마 전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이번 연극을 위해 그녀는 브로드 웨이로 날아가 오리지널 팀 공연까지 챙겨 봤다고 한다. 그런 가상한 노력은 무대에서도 그대로 감지되었다. 물론 연극배우로서의 점수는 그리 후하게 줄 수는 없지만, 국민 여동생에서 여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문근영의 첫 연극 무대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나 역시 대중의 심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그녀가 자연스럽게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는 장면이나 새빨간 단발 가발에 비키니처럼 생긴 스트립 댄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장면에서는 엘리스보다 문근영을 1차원적으로 관찰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진짜 담배가 타고 있나?‘ ’오! 저런 노출을!‘ ’아니! 감히 문근영에게 다리를 벌리라고 하다니!’ 때로는 그녀만의 존재감이 연극의 흐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안나(박수민)가 엘리스와 사귀는 것을 두고 래리(최광일)를 나무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때 안나의 대사는 문근영을 아끼는(?) 관객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봐! 당신은 엘리스의 증조할아버지 뻘이야.” 내심 나이 든 남자배우와 문근영의 스킨십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관객은 이 장면에서 래리가 민망해할 만큼 폭소한다.

첫 장면의 불안감이 무색하리만큼 문근영의 엘리스는 제법 매력적이었다. 노련한 연극배우만큼의 발성과 연기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눈물과 웃음, 광기와 생기를 오가는 연기를 열심히 보여준 그녀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이런 후한 점수는 그녀에 대한 팬심도 작용했을 테다. 여느 다른 관객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