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그 모든 사랑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더욱 사랑 영화를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밸런타인데이, 연인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와 기억하고 싶은 대사를 찾았다.

1 퐁네프의 연인들(The Lovers on the Bridge), 1991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해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난 구름은 검다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 알렉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위, 보수 작업이 한창인 풍경엔 미셸과 알렉스가 누워 있다. 화가였으나 점점 시력을 잃어가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걸인처럼 살아가는 미셸과 곡예사 알렉스, 마음속의 상처와 가난으로 얼룩진 이들의 삶은 불온하고 불안하다.

 

2 실버라이닝 플레이북(Silver Linings Playbook), 2012

“내 광기를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은 당신이 광기를 내뿜을 때뿐이죠.” – 팻
영화는 정상적이지 않은 남녀가 정상적인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고 부모님에 의지하는 조울증 환자 팻. 그는 검은 쓰레기 봉투를 뒤집어쓴 채 동네에서 조깅을 즐기는데 그 뒤로 그를 갈망하는 섹스 중독자 티파니가 바짝 따라온다. 결핍이 있는 이들은 사랑을 통해 결핍을 채운다. 그건 사랑이 가장 잘하는 일이기도 하다.

 

3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2004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에요. 결국 그녀도 나와 전혀 다른 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요.” – 조엘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만 같은 얼음판이 무색할 정도로 그곳에 지탱하고 누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이 있다. 서로 다른 성격에 끌려 사귀게 되지만, 그 성격의 차이 때문에 점점 지쳐가는 연인. 기억이 삭제된다 해서 사랑이 지워질 리 만무하다. 사랑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4 그녀(Her), 2013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것. 서로를 겁먹게 하지 않으면서 변화하고, 삶을 공유하는 것. 난 여전히 내 자신이 그녀와 대화하고 있는 걸 느껴요.” – 테오도르
테오도로의 주문과 함께 등장한 운영체제 사만다. 소통의 부재 속에 살고 있는, 타인을 위한 편지를 쓰는 직업을 가진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소통하며 비어 있는 자신을 채워나간다. 실체가 없는 허망한 사랑이 아닌, 우리가 지금 어떻게 소통하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이 여기 있다.

 

5 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 2006

“남자에게 상처를 받는 건 내 쪽이면서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지, 혹시 오해한 게 없는지, 내 탓을 했어요. 끝까지 착각을 해가면서 말이죠.” – 아이리스
사람을 믿지 않는 아만다와 사람을 너무 믿어 상처받는 아이리스. 낸시 마이어스 감독은 특유의 재치와 시각으로 두 여성의 성장을 조명한다. 거기에는 완전히 뒤바뀐 환경과 사람들, 새로운 사랑이 있다.

 

6 이프 온리(If Only), 2004

“그녀가 있음을 감사하고 계산 없이 사랑하세요.” – 택시 기사
사랑이 먼저인 사만다와 일이 먼저인 이안은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 옆에 있는, 당연하게 생각한 그의 존재 자체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영화. 어제의 사소한 말다툼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을 만큼 말이다.

 

7 가장 따뜻한 색, 블루(Blue is the Warmest Color), 2013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가질 생각도 못했어.” – 아델
젖살이 그대로인 15살의 여주인공 아델은 늘 입을 반쯤 연 채 다람쥐 같은 두 앞니를 드러낸다. 아몬드색의 풀린 눈과 헝클어진 머리를 가진 그녀에게 새파란 머리와 눈, 그리고 입가 주름이 매력적인 엠마가 첫사랑의 벽처럼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른다. 뜨겁게 서로의 사랑을 갈구했던 아델과 엠마. 감히 누가 이들의 사랑을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8 무드 인디고(Mood Indigo), 2013

“만약 우리가 이 순간을 망친다면 다음에 다시 시도하면 돼. 또 실패한다면 그 다음에 다시 시도하면 돼. 그렇게 우리 인생 동안 계속 시도하는 거야.”- 클로에
사랑에 빠진 콜랭과 클로에. 클로에가 병을 얻고 콜랭은 그녀를 위해 전 재산을 바치고 노동판에 뛰어든다. 사랑이 시작되던 때 화려한 파스텔톤으로 채워진 스크린은 점차 모노톤으로, 결국 블랙에 가까운 색을 입는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사랑도 많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또한 사랑이다.

 

9 아무르(Amour), 2012

“오늘 밤에 ‘당신 참 예쁘다’고 말했던가?” – 조르주
영화는 갑자기 찾아온 마비 증세가 몸 전체로 번져가는 아내와 그녀의 병수발을 드는 남편, 이 노부부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간다. 죽고 싶어 하는 아내와 그녀를 살리려는 남편. 사랑이 빛바래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이 있다면 그건 이별, 채 남지 않은 행복이 다하는 걸 목격하는 순간이 아닐까. 모두가 조르주의 행동을 지지하지는 못하지만 아무도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거다.

 

10 세렌디피티(Serendipity), 2001

“그 생각 멋있긴 해. 삶이란 다 계획되어 있고 우린 운명적 짝을 만난다는 얘기. 하지만 그렇담 삶의 의미는 뭘까?” – 이브
사랑에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운명이다. 사랑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조나단과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라.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간 그들은 결국 운명의 장난처럼 재회한다. 주인공의 사랑은 해피 엔딩이지만 옆에는 그들 각자의 약혼자들이 홀로 남아 이 모진 운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1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2008

“인생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었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돼.” – 벤자민
자신은 늙어가는데, 자꾸 젊어지는 남자를 보는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 벤자민과 데이시는 완벽하게 대칭된 모습으로 어린 시절부터 만나서 사랑을 싹 틔우고 생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꿈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속도로 함께 늙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12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  

“아무도 당신을 못 알아봐. 특별한 당신을 나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해.” – 멜빈
지나친 강박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멜빈, 규칙이 곧 법인 그에게도 더딘 사랑의 입덧이 시작된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 중년의 서투른 사랑은 그렇게 따뜻하고 긍정적인 마법처럼 밀려온다. 사랑은 놀라운 힘으로 그를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곧 기적이었음을 그가 코넬리에게 전한 말 한마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13 천국보다 아름다운(What Dreams May Come), 1998

“당신이 나의 천국입니다. 고마워요, 늘 내 곁에 있어줘서.” – 크리스
붓 자국이 선명한 인상파 그림 안에는 빨간 스카프를 흩날리는 그의 아내이자 소울메이트인 애니가, 그리고 지옥엔 자녀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또 다른 애니가 무릎을 꿇은 채 울부짖고 있다. 크리스는 애니를 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죽어서도 계속되는 사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겠다는 의지. 결국 죽음도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한다.

 

14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 정원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상태지만 그의 일상은 전과 다름없이 담담하고 조용하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주차 단속원 다림. 그들은 아주 천천히 서로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함께 우산을 쓰고 걷는 두 사람이 서로 비에 젖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은 아마도 사랑의 맨 얼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