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영화의 활약이 돋보인 2014년 영화계.

2014년 영화계의 가장 큰 이슈는 다양성 영화의 약진이라 할 수 있겠다. 깨지지 않을 것 같던 <워낭소리>(290만)의 기록을 <비긴 어게인>(340만)이 큰 관객수 차이로 갱신하며 다양성 영화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10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80만), <그녀>(30만), <한공주>(22만) 등 2014년 초부터 쉬지 않고 탄생한 다양성 영화의 히트작 릴레이는 상업영화 시장의 한켠을 가파르게 파고들었다. 무엇보다 독립영화 진영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14년에는 이른바 독립영화 흥행의 마의 고지인 1만을 훌쩍 넘긴 작품이 여럿 탄생했다. 근 몇 년간 한 해 불과 5편 정도의 작품이 1만 고지를 넘긴 데 비하면 2014년 독립영화 흥행은 오랜만의 풍작이라 할 만하다. 먼저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성과 관객 동원 모두에 성공한 <한공주>를 비롯, <족구왕>(4만6천), <자유의 언덕>(3만5천), <만신>(3만4천), <메밀꽃 필 무렵,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3만), <60만 번의 트라이>(2만), <다이빙벨>(2만) 등 다양한 장르와 개성의 독립영화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고른 지지를 얻었다. 특히 50개 이하 개봉관에서 장기 상영을 통해 흥행에 성공한 기존 독립영화의 배급 방식과는 달리 200개관 이상에서 개봉, 20만 관객을 훌쩍 넘는 흥행을 기록한 <한공주>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파수꾼>, <혜화, 동>, <돼지의 왕> 등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들이 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인 후 화제성을 이어가며 개봉, 흥행에 성공한 전례를 따른 <한공주>는 대형 배급사인 CGV 무비꼴라쥬의 배급망을 통해 월등히 높은 극장 수를 확보하며 독립영화의 판세 확장에 물꼬를 텄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한공주>는 <파수꾼>을 통해 발견된 후 <고지전>, <건축학개론>을 통해 메이저 시장의 스타로 우뚝 선 배우 이제훈, ‘단편, 독립영화계의 전도연’으로 불리며 연기력을 인정받아오다 <해무>로 메이저 시장에 확실한 인상을 남긴 배우 한예리에 이어 중고신인 천우희를 재발견해낸 작품이기도 하다. <한공주>를 통해 2 014년 영평상 여우주연상 타이틀을 거머쥔 천우희는 올해 <우아한 거짓말>과 <카트> 등에도 출연하는 등 데뷔 이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천우희는 내년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서 황정민, 곽도원과 김광태 감독의 <손님>에서 류승룡, 이성민과 호흡을 맞추는 등 여배우 캐스팅 1순위로 급부상했다. <족구왕> 또한 가장 대중적인 코미디 장르와 독립영화 특유의 신선한 패기가 절묘한 시너지를 일으킨 작품으로 <한공주>와 함께 독립영화의 대중화를 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존 독립영화의 이미지가 ‘독하고 세고, 어렵고 어두운’ 작품이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었다면 <족구왕>은 차태현과 임창정의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 전통적인 대한민국 남자배우 원톱 코미디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주성치의 <소림축구>,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등 루저 코미디의 재미 또한 탑재하고 있어 젊은 관객층의 뜨거운 화제를 이끌어냈다. <족구왕>은 50개 규모의 개봉관을 통해 극장에서는 4만6천여 관객을 동원했지만 입소문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지며 부가 판권 시장에서는 <해적>, <해무> 등의 블록버스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등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대중적으로 안착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독립영화와 해외예술영화, 이른바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는 작품들의 흥행은 올해 브라운관의 달라진 지형도와도 맥을 같이한다. 삼각관계와 재벌놀이에 빠진 공중파 드라마가 처참한 성적표를 받은 2014년 브라운관은 <밀회>, <미생>, <나쁜 녀석들> 등 남다른 작품들만이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스크린 시장 역시 기존의 매뉴얼을 반복한 대작들은 차갑게 외면받은 데 비해 만든 이와 보는 이의 취향을 동시에 저격한 알짜배기 작은 영화들은 적합한 환대를 받았다. 마이너는 트렌드가 되었고 당분간 이 흐름은 지루한 메이저를 각성시키는 특효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