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부산으로 향한다. 배우, 감독과 작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산의 골목 골목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우고, 부산은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변신한다. 영화와 축제와 사람이 있었던 부산, 그곳에서 생긴 일.

1 <황금시대> 기자간담회장을 찾은 탕웨이. 2 생애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김희애. 3 <제보자>의 유연석, 류현경, 그리고 박해일. 4 여배우 느낌이 물씬나는 김새론.

1 <황금시대> 기자간담회장을 찾은 탕웨이. 2 생애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김희애. 3 <제보자>의 유연석, 류현경, 그리고 박해일. 4 여배우 느낌이 물씬나는 김새론. 

 

 

축제의 시작

누군가와 약속을 한 것도, 꼭 봐야 하는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10월의 첫 주는 늘 이런 식이다. 그렇게 늦은 밤 부산에 도착했고,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화려한 축포가 까만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19회 부산국제 영화제도 어김없이 축포로 그 시작을 알렸다. 낮과는 달리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의 5천여석을 메운 관객들의 열기는 한여름보다 뜨거웠다. 모두의 기대는 곧 시작되는 레드카펫 행진에 향해 있었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부산국제 영화제는 여배우들의 개막식 레드카펫 노출 의상으로 인한 논란에 휩싸였고 이에 운영 측은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들 위주로 개막식 초청 게스트를 선정하고 노출을 자제해달라는 의사를 여배우들에게 전달했다. 클라라, 고은아, 강예원 등이 아랑곳하지 않고 볼륨을 강조한 드레스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으나 대부분의 여배우들은 이러한 뜻을 받아 들여 차분한 의상으로 레드카펫에 올랐다. 덕분에 섹시, 파격보다는 우아, 단아를 키워 드로 하는 레드카펫의 향연이 펼쳐졌다.  

 

화제작 <황금시대>의 감독 허안화와 함께 등장한 탕웨이는 가장 열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화려한 패턴 드레스가 그녀의 미모를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 점이 좀 아쉬웠지만 시종일관 감독을 에스코트하고 배려하는 태도는 외모만큼이나 돋보였다. <마담 뺑덕>에서 함께 열연한 이솜과 연인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한 정우성, <제보자>로 호흡을 맞춘 유연석, 류현경과 함께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박해일, 연인인 윤계상에 앞서 김남길의 팔짱을 끼고 들어온 이하늬, 블랙앤화이트 룩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유지태와 차예련을 비롯해 엄정화, 박서준, 이현우, 김새론, 조여정, 문성근, 박유천 등이 연이어 레드카펫에 올랐다. 김희애는 올해 생애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반짝이는 은빛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아주 천천히 이쪽저쪽으로 손인사를 건네며 레드카펫에서의 시간을 누구보다 여유롭게 즐겼다. 레드카펫 행진이 끝나고 올해의 개막식 사회자인 문소리와 와타나베 켄이 사이좋게 등장했다. 데뷔작 <박하사탕>이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이었기에 부산은 배우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문소리, 장모님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와타나베 켄은 이 각별한 도시 부산과 영화에 대한 애정을 열렬 하게 드러내며 매끄러운 진행을 이어갔다. 개막축하 공연이 끝난 후에는 시상식과 심사 위원 소개가 이어졌고 화제의 개막작인 도제 니우 감독의 <군중낙원>이 상영되었다. “영화로 인해 세상이 좀 더 아름다워지기를 바랍니다.” 감독의 짧고도 명료한 소감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고 관객들은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 박수야말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진정한 메타포가 아니었을까.

 

5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부산을 찾은 신민아. 6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한 유지태. 7 <마담 뺑덕>으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이솜. 8 <화장>을 위해 영화제를 찾은 김규리, 임권택, 김호정.

5 <나의 사랑 나의 신부>로 부산을 찾은 신민아. 6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등장한 유지태. 7 <마담 뺑덕>으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이솜. 8 <화장>을 위해 영화제를 찾은 김규리, 임권택, 김호정. 

 

 

영화제를 즐기는 방법

물론 영화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보고 싶은 영화를 사수하는 일이다. 서둘러 영화표 예매에 성공했다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심히 준비한 각종 이벤트를 즐길 차례. 고전적인 핸드프린팅 행사부터 한국영화회고전의 밤, 다양한 예술 장르의 합동 무대, 저녁이면 펼쳐지는 축하 공연과 배우들의 무대 인사 그리고 오픈 토크까지, 부산 곳곳에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거장들의 업적을 기리는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자인 허안화 감독을 시작으로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 정진우 감독, 헝가리 출신의 벨라 타르 감독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좀 더 심도 있게 영화를 들여다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되었다. 거장 감독들과 함께 준비한 마스터클래스가 그것. <사탄탱고>, <토리노의 말> 등 작가주의 영화로 알려진 벨라 타르 감독,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유수 영화제의 수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이 그들만의 영화 인생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해운대가 연일 시끌벅적했던 8할의 이유는 배우들이 밀물처럼 쏟아진 무대 인사에 있었다.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제보자>의 임순례 감독과 박해일, 유연석이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박해일은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과 똑같은 날에 영화가 개봉했어요. 이렇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여러분을 만나 반갑습니다”라고 말했고 유연석은 “부산 시민들 장난 아이네”라는 사투리로 부산 소녀들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개봉 예정인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주인공 조정석과 신민아도 관객과 가까이에서 만났다. 1990년 이명세 감독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결혼’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 조정석은 몇 시간 뒤 <역린> 팀과 함께 다시 무대에 오르며 대세 배우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배우 유지태는 <더 테너-리리코 스핀토>의 감독 김상만, 성악가 배재철과 함께, <다우더>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은 구혜선은 배우 윤다경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마담 뺑덕>의 주연을 맡은 정우성과 이솜은 배우 김희원, 연출을 맡은 임필성 감독과 함께였다. 영화 <마담 뺑덕>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전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정우성은 “시나리오 무드가 상당히 독특하고 좋았는데 학규는 참 빌어먹을 놈이었어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많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어떤 감정을 맛볼 수 있고, 새로운 표정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전했어요. 얼마나 벗었는지를 궁금해하시는데 다 벗었습니다”라는 인상적인 홍보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가장 뜨거운 이름, 탕웨이 

탕웨이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의 가장 뜨거운 이름이었다. 김태용 감독과 결혼 후 한국 내 첫 공식행사. 세간의 관심을 증명하듯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영화 <황금시대> 언론시 사회 및 기자간담회에는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머리를 넘기거나 물을 마시는 작은 몸짓에도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허안화 감독의 영화 <황금시대>는 1930년대 격변의 중국,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어 했던 천재 작가 샤오홍의 강렬한 삶을 그린 드라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쟁 속에서 서른 한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 샤오홍이지만, 생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았다는 뜻에서 제목을 <황금시대>라고 지었다. 탕웨이는 놀랍도록 섬세하게 서른한 살에 요절한 작가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조율해냈고, 이 영화는 영화제 예매 오픈과 동시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탕웨이 현상’을 실감케 했다. 이날 탕웨이는 기자들로부터 “당신도 지금이 황금시대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취재진이 날 보러 왔으니, 나도 당연히 황금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샤오홍이 작가라는 직업을 만나 평생을 뛰어난 작가로 살았듯이, 나도 연기를 접한 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죠. 황금시대가 맞네요”라고 답했다. 그녀가 연기한 샤오홍은 정치적인 활동을 하기보다는 오롯이 글쓰기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한다. 이건 탕웨이의 영화적 행보와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에요. 좋은 작품을 통해 나를 표현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황금시대>는 지난 2일,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했다. 중국에 서도 역시 이 기간에 홍보를 해야 하지만 엄청난 스케줄을 뒤로하고 한국을 찾은 그녀. “나는 나 자신을 표현하기 좋아하는 여자일 뿐이고 연기를 좋아하는 배우일 뿐이에요. 영화는 내게 꿈이면서 신앙이에요. 영화를 꿈으로, 신앙으로 생각하는 다른 분들과 영화를 만드는 삶을 살게 돼 기뻐요.” 10월 16일 개봉하는 <황금시대>에서 이제껏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얼굴의 탕웨이를 만날 수 있다.

 

1 <역린> 무대인사에 오른 조정석과 박성웅. 2 <다우더>에서 감독이자 배우로 열연한 구혜선, 그리고 윤다경. 3 오픈토크를 위해 해운대에 등장한 최민식.

1 <역린> 무대인사에 오른 조정석과 박성웅. 2 <다우더>에서 감독이자 배우로 열연한 구혜선, 그리고 윤다경. 3 오픈토크를 위해 해운대에 등장한 최민식. 

 

 

정진우 감독과 세 명의 배우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9년 동안 한국 영화계의 여러 영역에서 묵묵히 업적을 쌓아왔는데, 그중 손에 꼽을 만한 건 한국 영화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품과 영화를 재조명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부터는 한국영화회고전을 신설해 매해 한국 영화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선정해왔는데 올해는 정진우 감독이 그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정 감독은 1963년 <외아들>로 데뷔한 이래로 5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1960년대 사회파 멜로드라마로 두각을 드러낸 그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위기에 내몰린 여 성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며 한국 영화의 폭을 넓혔다. “영화감독으로 길지 않게 활동하면서 형무소도 여러 번 다녀왔어요. 그러는 동안 내 영화 인생이 허무하게 무너졌지만 그래도 영화를 떠나지 않았습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김지미, 안성기, 남궁원, 강수연,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등 많은 인사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디렉터스 체어’에 앉은 그를 곁에서 응원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감독이 정진우였다면 배우 부문에서는 최민식, 김희애, 박유천이었다. 관객들은 올해부터 확대 개편된 ‘오픈토크 : 더 보이는 인터뷰’를 통해 이 3명을 더욱 깊이 있게 만나는 기회를 가졌다. 그림 같은 해운대 바닷가를 배경으로 스크린으로만 보던 최민식과 김희애, 박유천을 마주 보고 앉아 대화까지 나눌 수 있는 자리인 만큼 팬들의 경쟁 역시 치열했다. 모두가 기자로, 사진가로 변신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으니 말이다. 가장 주목받은 배우는 4일 무대에 오른 최민식이다. ‘이순신이 된 연기자 최민식’이라는 주제로 나선 그는 지난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힘들다는 귀여운 투정을 하면서도 사회자가 건네는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그는 <명량>의 흥행 이유를 묻자 “우리 마음속에 충무공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분을 너무 그리워하고 갈구하고 있는데 그런 열망이 <명량>으로 표출된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행사는 1시간 가까이 진행되었지만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과연 명배우의 존재감은 달랐다.    

 

영화 <해무>를 통해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박유천은 3일, ‘배우의 탄생, 박유천’이라는 주제로 무대에 올랐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려준 고마운 영화 <해무>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설 수 있어 영광이에요. 많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19금 영화가 매력 있는 것 같아요.” 그를 만나기 위해 전날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일본과 중국 팬들은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환호를 터트리기도 했다. 김희애는 ‘우아한 특급고백, 김희애’라는 주제로 오픈토크 마지막을 장식했다. 바로 전날, <우아한 거짓말> 팀과 함께 무대인사에 오를 때와는 달리 운동화를 신고 편안한 차림으로 등장한 그녀는 “부산국제영화 제는 처음인데 제가 한국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산이 신기하게 느껴져요. 그동안 작품을 할지 말지,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기회를 놓쳤어요. 이제 느낌대로 할 생각이에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천 명의 팬이 비프빌리지 무대를 가득 채워 ‘특급 누나’ 김희애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4 올해의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인 정진우 감독과 인사들. 5 <해무>를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박유천. 6 <우아한 거짓말>의 헤로인 김향기. 7 <우아한 거짓말>, 오픈토크를 위해 이틀 연속 비프빌리지 무대에 오른 김희애.

4 올해의 한국영화회고전의 주인공인 정진우 감독과 인사들. 5 <해무>를 통해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진 박유천. 6 <우아한 거짓말>의 헤로인 김향기. 7 <우아한 거짓말>, 오픈토크를 위해 이틀 연속 비프빌리지 무대에 오른 김희애. 

 

 

해외 게스트, 만나서 반갑습니다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는 해외 감독과 배우를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 다는 건 영화제가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언제나 묵직한 존재감으로 작품 안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배우, ‘아시아의 조니 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아사노 타다노부는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 배우 니카이도 후미와 함께 부산을 찾았다. 일본 영화 팬에게 아사노 타다노부는 친숙한 배우다. 이와이 슌지, 구로사와 기요시, 기타노 다케시 등 일본 최고의 감독들과 작업하며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된 <내 남자>로 14년 만에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다. 그는 첫 방문과 비교해 영화제가 굉장히 커졌다며 많은  영화인을 만날 수 있어서 감동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젊은 일본 영화 팬이라면 미우라 하루마의 이름이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검은색 니트에 안경을 끼고 지적인 모습으로 해운대에 등장한 4일 오후, 각종 SNS에 그의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우라는 <고쿠센3>, <블러디 먼데이>, <라스트 신데렐라> 등 드라마를 통해 먼저 이름을 알린 배우다. 이번에 주연을 맡은 영화 <내일까지 5분 전>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로 유명한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영화로 오픈 시네마 섹션 중 가장 빨리 매진된 작품이기도 하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 장이모의 방문도 빠뜨릴 수 없다. <붉은 수수밭>, <홍등>, <귀주이야기> 등 필로그래피를 읊는 것만으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그가 최신작 <5일의 마중>을 위해 부산을 찾았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된 이 작품은 그의 오랜 파트너인 공리가 함께해 더욱 화제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공리는 이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인 <황금시대>의 감독 허안화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새로운 길을 찾아 홍콩을 떠나는 여느 감독과는 달리 언제나 믿음직하게 변화하는 홍콩 영화를 지키고 서 있었던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영화인으로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이 고생한 시간의 보답이라 생각하니 무척 기뻐요”라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그 외에도 호러 영화의 대부 다리오 아르젠토의 딸이자, 매력적인 배우이며 감독인 아시아 아르젠토,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자크 랑시에르가 뉴 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으로 방문해 축제를 더욱 빛냈다.  

 

달라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로 19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이전과 다른 변화가 눈에 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십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하여 ‘올해의 배우상’을 신설한 것. 거기에는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신인배우의 성장을 기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올해의 배우상은 뉴커런츠와 ‘한국 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에서 상영된 한국독립영화들 중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인 남녀 배우 각 한 명씩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5백만원의 상금도 함께 주어진다. 첫해의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배우는 유지태와 김희애. 10월 11일 폐막식에서 발표된 수상자의 영예는 <거인>의 최우식과 <들꽃>의 조수향에게 돌아갔다. 

 

밖에도 대명컬처웨이브상, 한국영화감독조합상 등 뉴커런츠 혹은 비전 부문에 선정된 한국 독립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상이 마련되었다. 이는 새로운 독립영화제에 주목하기 위한 장치이자 영화제가 커지면서 생긴 자연스럽고 고무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본연의 내실을 좀 더 다졌다는 평을 받고 있다. 네팔 영화, 베트남 영화의 초청 확대 등에 신경을 쓰고 이라크, 방글라데시, 레바논 등의 작품 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등 아시아권에서 비교적 덜 알려졌거나 영화 산업이 열악한 지역의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아시안필름마켓의 활성화를 꾀한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아시아 대표 매니지먼트 업체와 전 세계 감독 및 프로듀서를 직접 연결하는 아시아 스타캐스팅 포럼을 개최했으며, 한국의 천만 영화 제작자들이 모여 한국 영화 제작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논하는 천만제작자포럼을 마련했다. 14년 만에 다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아사노 타다노부의 말처럼 영화제는 놀라울 만큼 성장했다. 물론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 변화해가고 성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영화제를 응원하는 방법은 매년, 10월 초 잊지 않고 부산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축제를 맘껏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