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에서는 추석 이후 11월 중순까지의 극장가를 비수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주로 저예산의 한계를 신선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소재로 극복한 소위 ‘작은 영화’들이 올망졸망하게 극장가를 점령한다.

영화계에서는 추석 이후 11월 중순까지의 극장가를 비수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주로 저예산의 한계를 신선한 아이디어와 다양한 소재로 극복한 소위 ‘작은 영화’들이 올망졸망하게 극장가를 점령한다. 일례로, 5백만원의 제작비로 완성된 <불청객>은 자취생이 외계로 납치당했다는 의도적인 싸구려 설정과 유치찬란한 특수효과로 극장가를 강타, 한 정도는 아니지만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다만 이 영화는 완성 후 개봉까지 무려 5년이 걸렸을 만큼 극장을 잡는 데 난항을 겪었다.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애들 껌 값 수준의 제작환경에서 관객의 이목을 끌 만한 전국적인 홍보는 애초에 언감생심이었던 까닭이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운 이벤트성 작품이 극장가를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영화가 발붙일 스크린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땡큐, 미스터킴>, <땅의 여자>, <계몽 영화> 등 최근에 호평을 받았던 작은 영화들의 경우, 예술영화관 위주로 상영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으며 운 좋게 멀티플렉스에서 개봉 기회를 잡더라도 최소한의 상영일수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한때 건전한 영화 생태계를 위해서는 작은 영화가 활성화되는 것이 필수라며 업계의 자정 노력이 불긴 했지만 눈앞의 이득 앞에서 구호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 조금만 더 가까이

작은 영화가 관객에게 희망을 거는 것은 그래서다. 멀티플렉스는 돈을 좇아 영화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관객들은 좋은 영화라면 사심 없는 반응을 보인다. 김기덕 감독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던 장철수 감독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은 좋은 예다. 개봉 첫날 고작 전국7개 관으로 출발했지만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 100여 개 관으로 늘어나며 결국엔 좋은 영화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홍상수 감독처럼 스타를 기용하되 촬영 일수를 최소화하고 출연료를 줄이는 방식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이 출연한 <옥희의 영화>는 3천5백만원의 제작비, 단 13회의 촬영으로 완성되어 전국 15개 관에서 지금까지 (10월 8일 현재) 2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꾸준한 관객몰이 중에 있다. 11월 극장가에도 ‘제2의 <김복남>‘, ’제3의 <옥희의 영화>’를 꿈꾸며 출격 대기 중인 작은 영화가 꽤 된다. 그 중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10월 28일 개봉)와 임순례 감독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11월 4일 개봉)이다. 단편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으로 ‘한국의 이와이 &#49804;지’라는 평가를 얻은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살려 다섯 커플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로 젊은 관객을 공략한다. 또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대박의 순간을 맛보았던 임순례 감독은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소와 함께 여행에 나선 극중 주인공을 앞세워 여유로운 구도의 삶을 설파한다.

물론 이들 작은 영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하다. 개봉 첫 주의 성적이 영화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빠른 관람은 무엇보다 필수적이라 할 만하다. 기회가 닿지 않아 극장 상영을 놓쳤다면, 독립영화(KMDB)와 네이버 독립영화상영관 사이트 등을 통해 1년 365일 관람할 수 있다. <김복남>의 경우에서 보듯 순수한 관객의 힘은 개봉 초기의 불리한 극장 수를 이겨내고 장기 상영으로 갈 수 있는 바탕이 된다. 한편으로 톱 배우들의 작은 영화 출연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의 윤계상, 정유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공효진이 대표적인데 그럼으로써 작은 영화는 폭넓게 어필할 기회를 잡으며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됐다.

작은 영화와 블록버스터가 멀티플렉스에서 공존하는 풍경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하지만 많은 관객을 모으는 작은 영화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느린 속도지만 한국의 극장가는 이상적인 형태로의 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그것이 더욱 의미를 갖는 것은 관객을 중심으로 아래에서부터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관객만이 작은 영화를 춤추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