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공포영화 시즌이다. ‘2011년 첫 번째 공포 영화’라는 카피를 자랑스럽게 내건 영화들이 슬슬 극장에 걸릴 때가 왔다.

바야흐로 공포영화 시즌이다. ‘2011년 첫 번째 공포영화’라는 카피를 자랑스럽게 내건 영화들이 슬슬 극장에 걸릴 때가 왔다. 중요한 건 ‘첫 번째’가 아니라 ‘진짜 무서운’이다.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가 인터넷 안 되는 스마트폰과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매년 여름이면 공포영화 애호가들은 ‘알고도 속은 너 자신이 바보 아니냐’며 극장 문을 나서곤 했다. 무섭기는 커녕 우습지도 않은 공포영화들에 호러 마니아들의 순정이 짓밟히곤 했다. 그래서 호러 순정을 지키기 위한2011년 공포영화 백서를 소개하려고 한다.

‘놈은 반드시 한 명만 수집한다’는 <콜렉터>가 공식적인 올해 첫 공포영화다. 사채업자에게 큰 빚을 진 아내와 딸을 지키기 위해 보석판매업자의 집 금고를 털려던 주인공이 ‘콜렉터’가 깔아놓은 덫에 걸려 잔인하게 몸이 훼손된다는 것이 주 내용. 남의 살이 잘려나가고 피가 터져 나오는 게 공포라면 공포지만 기구로 인한 신체 훼손은 워낙 취향을 많이 타는 소재라서 일반적으로 권하기는 무리다. <쏘우> 시리즈 4, 6, 7편의 각본을 쓴 작가가 처음 연출한 영화라지만 기대치를 좀 많이 낮출 필요가 있다. 6월 2일에는 <레지던트 이블>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레지던트>가 개봉한다. 내용도 어디선가 본 듯한 이 영화는 뉴욕에 새로 집을 구한 여자 주인공이 집주인과 가까워진 사이, 전 남자친구와 이웃집 할아버지 때문에 두려움에 떨게 된다. 포스터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일지 쉽게 짐작이 간다. 세 남자 중 한 명이 결국 여자를 죽이려 할 것이고 주인공은 살아남을 것이다. ‘영화가 얼마나 뻔한지 모르는 감독이 더 무섭다’는 짧은 리뷰가 화제가 된 바 있다. 한 주 뒤엔 <스크림 4G>가 개봉 박두다. 11년 만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특하다. ‘헬로우, 시드니?’를 다시 극장에서 듣게 될 줄이야. 속편 중 가장 1편에 가깝다는 누군가의 평에 혹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1편이 최고’라는 말은 속편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처럼 들린다. 작가가 돼 돌아온 시드니와 친구들을 위협하는 고스트 페이스,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룰에 따라 잘 움직여야 하는데 이번엔 얼마나 재미있는 장난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사실 <스크림> 시리즈는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무서운 영화>처럼 웃긴 공포영화, 무섭지 않아도 제대로 웃기면 봐줄 만도 하다.

현지에서 이미 개봉해 패가 노출된 미제 공포영화에 비해 한국산 공포영화는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6월 9일 개봉을 확정한 <화이트 : 저주의 멜로디>와 7월 개봉 예정인 <미확인 동영상>, 8월 중 개봉 예정인 <고양이> 세 편이 우선 관심 대상이다. 특히 <화이트 : 저주의 멜로디>는 독립영화계의 스타 감독인 김곡, 김선이 걸그룹 티아라의 멤버 함은정을 주연으로 캐스팅해 만든 공포영화다. <자본당 선언 : 만국의 노동자여, 축적하라!> <정당정치의 원리>를 만든 독립영화 감독이 아이돌과 함께 찍은 장르영화라니 상상이 쉽게 되지 않는다. 영화는 걸그룹 내의 메인 보컬 자리를 놓고 펼쳐지는 경쟁과 시기, 질투를 그린다. 참신해 보이는 건 없지만 두 감독이 장르영화의 관습을 어떻게 깰지가 관심사다. 공포영화로서 매력이 반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 작가주의나 실험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무섭느냐가 아닐까. 공포영화는 호러 장르를 좋아하는 감독이 찍어야 제 맛인데 <화이트 : 저주의 멜로디>는 분명 공포 애호가의 영화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완성도에 신뢰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공포의 쾌감에 있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여동생’ 박보영 주연의 <미확인동영상>은 동영상이 공포의 시작이다. 한번 보면 끝까지 보지 않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동영상을 보고 나서 저주를 받게 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박보영은 사투를 벌인다.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CCTV등으로 찍히는 수많은 동영상에 담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관음증과 결합해 공포로 다가온다는 설정은 이미 <파라노말 액티비티>, <목두기 비디오>, <폐가> 등을 통해 접한 바 있다. 1000만 스마트폰 시대에 동영상의 공포를 영화의 소재로 쓴 건 꽤 시의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감독은 <령>을 만들었던 김태경이다. 전작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공포라면 기대를 가져도 될 듯. <고양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의문의 고양이와 살던 여자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양이의 죽음 때문에 공포에 시달린다는 내용.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인 동시에 요사스러운 동물로 인식되는 고양이의 양면성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은 점이 참신하다. 멜로 영화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변승욱 감독이 이색적으로 공포 영화에 도전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조감독이었던 변 감독의 작품 성향을 봤을 때 자극적인 효과보다는 드라마가 강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콜렉터>부터 <고양이>까지 쉼 없이 이어질 공포영화, 올해도 잘 두드려보고 골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