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 주연상은 나탈리 포트만의 수상이 거의 확실하다.

No more a good girl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 주연상은 나탈리 포트만의 수상이 거의 확실하다. <래빗 홀>의 니콜 키드먼이 팽팽한 피부를 포기하면서 이마 주름을 보여줬고, 할리우드의 몇몇은 <키즈 아 올라잇>에서 흥겨운 레즈비언 부모를 연기한 아네트 베닝에게 베팅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예로부터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은 삶의 밑바닥을 치는 캐릭터 연기자들에게 돌아갔다.

<블랙 스완>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발레 연기를 소화해냈을 뿐만 아니라, 정신과 육체를 모두 소진해야 하는 심리전을 펼쳤다. ‘연기 속의 연기’를 시도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영화를 홀로 이끌고 가는 원톱 원기를 선보였으며, 더군다나 그녀가 이 정도까지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를 만난 건 처음이다. SF 영화와 휴먼 드라마에서 갈팡질팡했던 그녀의 이력이 <블랙 스완>으로 제 궤도를 찾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블랙 스완>의 니나와 나탈리 포트만의 인생이 비슷하게 겹쳐진다는 것이다.

엄마와 선생을 만족시키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니나는 드디어 프리마돈나의 자리에 오른다. 그녀에게 발레는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었다. 늘 모범생의 자세로 발레를 해왔던 그에게 선생은 그 이상의 연기를 요구한다. 발레의 세상 밖에서 방황하면서 니나는 스스로를 위해 춤을 추는 법을 배워간다. 나탈리 포트만도 13세에 <레옹>으로 데뷔한 이후‘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모범생은 연기에 있어 늘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재능 있는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포트만은 스스로의 벽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연기를 그만둘까 생각하며 대학원을 마치고 인도, 모로코, 쿠바 등을 홀로 여행했다. 요르단의 라니아 여왕과 협력해 개발도상국의 여성 창업을 돕는 기구도 만들면서 정치적인 활동도 벌였다. 특별한 깨달음을 얻는 중에 출연한 영화가 <브이 포 벤데타>였다. 이 영화를 위해 삭발을 감행하면서 포트만은 영화 캐릭터에 빠지는 법을 배웠다. 자신을 위해 연기하는 재미를 발견한 것도 이때였다. 영화판의 모범생이 되기를 거부한 후, 웨스 앤더슨의 단편 <호텔 슈발리에>에서는 깜짝 누드를 보여주기도 했다. 잠깐의 심심한 행보 끝에 선택한 <블랙 스완>은 포트만의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005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클로저>에서도 그녀는 양면의 여성을 연기했지만 <블랙 스완>에 비하면 전초전에 지나지 않았다.

니나는 포트만의 특징인 ‘답답한’ 연기를 극한까지 몰고 가서 터뜨려버리는 캐릭터였다. 백조신에게 신내림이라도 받은 걸까? 이후 필모그라피에 다채로움이 넘쳐난다. 자유로운 섹스라이프를 추구하는 <친구와 연인 사이> 엠마는 물론이고, 안드로메다 SF역사극이 될 것 같은 <쏘르>, 괴작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코미디 <유어 하이니스(Your Highness)>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친구와 차린‘ 핸섬찰리 필름즈’의 첫 작품이자, 조셉 고든 레빗이 떠돌이 히피 역으로 등장하는 <헤셔(Hesher)>가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여우주연상을 휩쓰는 영광과 약혼에 임신 소식까지, 나탈리 포트만은 인생의 또 다른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여전히 착한 소녀(good girl)인가요?” 포트만은 대답했다. “아니요. 나는 다른 이들처럼 복잡한(complicated) 사람일 뿐이에요.”

Speechless gentleman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도 이미 정해진 듯하다. <킹스 스피치>의 콜린 퍼스가 그 주인공이다. 골든 글러브, 영화배우조합상, 영국독립영화상, LA 비평가상 등 연말연초 수많은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불렸다. 지난해 <싱글맨>에 이어 2년 연속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진입으로 콜린 퍼스에 대한 신뢰도가 천정부지로 상승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이 젠틀한 영국 신사는 누구보다 겸손한 수상 소감을 남기고 있다. 올해 골든 글러브만 해도 “신비로울 정도의 재능을 가진 동료 배우들과 엄청나게 아름답고 책임감 있는 여왕님(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감사드린다”며 다른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싱글맨>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영국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 소감은 전설이 됐을 정도다. “톰 포드 감독이 몰랐던 게 있는데, 역할을 고사하려고 썼던 메일이 내 메일함에 있습니다. 그 메일을 막 보내려고 할 때 냉장고 수리 기사가 방문했어요. 그때 나는 무엇이 최선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수리 기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알게 된 건 냉장고 수리가 끝날 때까지 ‘보내기’ 버튼을 클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콜린 퍼스는 예의와 유머가 섞인 문장을 사용하며 자신의 품격을 보여줬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회원들은 어쩌면 콜린 퍼스의 격조 있는 수상 소감을 기대하며 그에게 투표를 할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킹스 스피치>에서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연설을 할 수 없었던 영국의 왕 조지 6세를 연기했다. 여느 배우보다도 수려하게 말을 잘하는 그가 말을 못하는 캐릭터를 연기한 것이다.

콜린 퍼스는 작품에 들어가기 앞서 역사 자료와 다큐멘터리를 섭렵했다. 그리고 말 더듬는 사람들의 특징을 꼼꼼하게 연기했다. 목과 입의 움직임을 살피고, 알파벳 하나하나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익혔다. 리허설을 할 때는 혀를 묶어보기도 했다. 말 더듬는 테크닉만 완수한 게 아니다. 말 더듬는 사람들이 말을 꺼낼 때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킹스 스피치>에서 콜린 퍼스가 말을 더듬는 순간순간은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다. 더 놀라운 건 말을 미처 꺼내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어떠냐고? <소셜 네트워크>의 제스 아이젠버그와 <127 시간> 제임스 프랭코는, 실제 인물을 ‘잘’ 연기했지만 아직 받을 나이가 아니다. <뷰티풀>의 하비에르 바르뎀 역시 훌륭했지만 영화가 외국어영화상 후보인 게 한계다. <더브레이브>의 제프 브리지스는 당연히 받을 만하지만 이미 작년에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