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40대 유부녀와 20녀 청년의 사랑이 이토록 긴밀하고 아름답게 다가올 줄은. 화제의 정점에 선 드라마 <밀회>의 두 남녀를 바라보며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연상연하 커플의 계보를 되짚어봤다.

1 <로망스>
줄거리 벚꽃축제에서 만난 채원(김하늘)에게 첫눈에 반한 관우(김재원)는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데이트를 즐긴다. 연락처도 교환하지 못한 채 헤어진 두 사람은 선생님과 제자라는 신분으로 재회한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3살, 극중에서는 6살. 매력 포인트 관우는 학생이라는 신분을 가리고 보면 완벽한 남자였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선천적으로 밝고, 속이 깊으며, 생활력과 책임감이 강한 데다가 무엇보다 한 여자를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 데뷔작인 <로망스>로 ‘살인미소’라는 칭호를 수여받으며,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김재원의 맑은 얼굴은 그런 관우 역에 가장 잘 어울렸다. 물론 선생과 제자의 사랑에 대한 논란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한 선조차 넘지 않은 두 사람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설정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잡음이었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이 각자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은 둘의 사랑을 응원했다. 채원이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를 울며 외쳤던 것처럼,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괴로워한 건 다름 아닌 두 사람이었으니까.

2 <올드미스 다이어리>
줄거리 30대 중반을 달려가는 성우이자 라디오 DJ 미자(예지원), 그리고 미자보다 어리지만 직장상사인 신입 PD 현우(지현우). 도통 맞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현우는 미자가 점점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11살, 극중에서는 3살. 매력 포인트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독특했다. 가족이나 대학생활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이 아닌, 30대 여자들과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1년 동안 자그마치 230여 편의 이야기를 꾸려나갔으니까. ‘지PD’라 불리며 연하남의 대명사가 됐지만 초반부 현우는 얄미운 캐릭터였다. 특히 일에 지친 미자에게 한 “심심하면 시집이나 가든가”라는 대사는 모든 싱글녀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미자를 향한 마음을 인정하면서 현우는 세상에서 가장 듬직하고 달콤한 남자로 거듭난다. 결혼준비로 힘들어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기차표를 끊어주고, 역 사물함에 가는 동안 먹을 간식과 읽을 책, 카메라까지 넣어놓는 남자. 심지어 도착한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라니! 나에게만 따뜻한 속 깊은 연하남.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현우는 그 판타지의 재현이었다.

3 <내 이름은 김삼순>
줄거리 통통한 몸매, 촌스러운 이름이 콤플렉스지만 최고의 파티시에라는 꿈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김삼순(김선아), 그리고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새로운 대표로 취임한,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 현진헌(현빈). 접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두 사람은 계약 연애를 계기로 차츰 사랑에 빠진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7살. 극중에서는 3살. 매력 포인트 호텔업을 하는 준재벌 집안의 아들, 멀끔한 외모. 현진헌은 드라마 속 신데렐라 스토리에 부합하는 조건을 가진 남자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세상을 떠난 형과 형수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기이하게 삐딱해진 안하무인 태도를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반면 김삼순은 ‘젊고, 예쁜’ 기존의 신데렐라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마음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삼십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별과 상처를 쌓아온 그녀는, 마냥 착해빠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서로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고, 쓰다듬어주는 두 사람은 결국 사랑에 빠진다. 물론 이 사랑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이 남아 있다. 극중 진헌의 첫사랑이었던 희진(정려원)의 대사는 그런 사랑의 속성을 간파한다. “지금은 반짝반짝거리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똑같아. 그 여자가 지금은 아무리 반짝반짝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된다고! 지금의 우리처럼.” 그래도 가겠냐는 희진의 대사에 진헌은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살잖아”라고 답한다. 마지막 회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오르는 대신 각자의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서로를 기다리고, 발걸음을 맞춰 난간을 잡고 입을 맞춘다. 그게 그들의 사랑이다.

4 <소문난 칠공주>
줄거리 딸부잣집에서 태어나 아들처럼 자란 나설칠(이태란).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 없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직업군인이 된 그녀에게 어느날, 부하였던 연하남(박해진)이 다가와 사랑을 고한다. 처음에는 귀엽다며 고백을 웃어넘기지만 차츰 그의 진심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8살, 극중에서는 4살. 매력 포인트 이름부터 ‘연하남’이다. 박해진은 이상적인 연하남이 갖춰야 할 조건들을 고르게 갖췄다. 제대와 함께 설칠의 집 앞에 찾아와 “오늘 이 시간부터 나는 남자고 당신은 여자입니다. 선전포고합니다. 당신이 내 여자가 될 때까지 공격하겠습니다!”라고 말한 그의 사랑은 거침이 없지만 배려 없는 일방적인 구애는 아니다. 사랑 앞에 ‘당신의 쫄’을 자처하면서 자신을 숙일 줄 알며, 설칠에게 10년 동안 지켜봤던 짝사랑 상대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사랑을 조용히 응원하며 그녀의 행복을 바란다. 심지어 부하가 아닌 남자로 보이기 위해 말을 놓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가 존댓말과 반말을 뒤섞어 하며 당황하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연하남에게서 시종일관 느껴지는 감정은 다름 아닌 진심이다. 설칠이 ‘이제 그만하라’고 했을 때, 연하남이 무릎을 꿇고 펑펑 울었던 건 자신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후회 없이,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여자들이 설칠에 자신을 대입하며 연하남을 응원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지점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직선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사랑은 보기 드무니까.

5 <너의 목소리가 들려>
줄거리 10년 전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수하(이종석)는 교통사고 이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된다. 10년이 지나 출소한 살인자가 수하의 아버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법정에서 증언해준 혜성(이보영)을 노린다는 사실을 안 고등학생 수하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그녀 앞에 나타난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11살, 극중에서는 9살. 매력 포인트 시작은 수하의 짝사랑이었다. 어린 수하에게 혜성은 고마움, 동경, 애정이 뒤범벅된 대상으로 각인되고, 혜성이 수하를 잊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수하는 그녀를 잊지 않는다. 재회한 둘은 법정에서 좋은 콤비를 이루며 친해지지만 수하는 혜성에게 자신의 마음을 알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피곤한 혜성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버스 안에서 자리를 마련해주는 식으로 혼자 사랑을 꾸려나간다. 그래서 혜성을 지키려면 민준국(정웅인)을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수하가 모습을 감추기 전, 처음으로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수족관 장면은 애절하고 아름답다. 차관우(윤상현) 변호사보다 수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혜성의 고백에 우리 모두 수하가 되어 기뻤던 것도 그 때문이다. 수하가, 10년 동안 듣고 싶어 하던 ‘좋아한다’는 말을 비로소 들었으니까. 물론 두 사람의 사랑이 이토록 튼튼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랜 기간 견고하게 쌓인 수하의 마음 때문만은 아니다. 10살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함께 성장한다. 처음에 혜성을 지키려고 나타난 건 수하지만, 중반부 이후 누명을 쓴 수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보호막이 되어 수하를 지키는 것은 어른인 혜성이다. 그리고 올곧은 수하를 보며 사명감 없는 국선변호사였던 혜성 역시 진짜 변호사로 거듭나게 된다. 함께 성장하는 연인만큼 단단한 것은 없다.

6 <밀회>
줄거리 예술재단의 온갖 지저분한 일을 도맡지만 겉으로는 윤택한 삶을 이어가는 오혜원(김희애). 그러나 그녀 앞에 재능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21살의 남자 이선재(유아인)가 등장하며 모래성 같던 그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나이 차이 실제로는 19살. 극중에서는 20살. 매력 포인트 상류층처럼 보이지만 사실 오혜원의 지위는 불안정하다. 그녀가 구축한 세계는 예술재단을 둘러싼 진짜 권력자들 사이를 오가며 첩자 노릇을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교수인 남편 역시 그녀가 심리적으로 기대기는 부족한 존재이긴 마찬가지. 스스로의 삶이 허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오혜원에게 선재의 솔직함은 치명적이다. 드라마 곳곳에 등장하는 CCTV, 녹음, 비밀번호 같은 불안한 요소들은 불륜이라는 비밀 이외에도 폭로당할 것으로 가득한 혜원의 삶을 상징한다. 반면 스무 살의 선재는 가난하지만 젊음과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그리고 청년은 예의 바르고 성실하며, 곁을 오래도록 지켜왔던 동갑내기의 여자친구가 있지만 스스로 밝혔듯 동정이다. ‘겁나 섹시해요’, ‘대박이에요’라는 소위 요즘 애들이 쓰는 말을 사용함에도 오히려 20년 전, 혜원의 시대에 있었을 법한 청년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거다. 더욱 근사한 건 선재는 혜원에게 한 번도 수컷으로서 위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첫경험의 여자 앞에서 “저, 잘 못할 수도 있어요”라는 솔직한 고백을 할 수 있는 단단함을 가진 남자가 얼마나 될까? 김희애의 우아함만큼이나, 선재 역시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무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밀회를 자꾸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Coming Soon!
<마녀의 연애> 실제 나이 19살 차이로 <밀회>의 두 사람만큼이나 차이 나는 두 사람. 하지만 이 둘의 연애는 좀 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가 사라진 이후, 골드미스로 남아 있는 39살의 잡지사 기자 반지연(엄정화). 언제나 하이에나처럼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는 그녀를 사람들은 ‘마녀’라고 부르지만, ‘민폐형 신데렐라보다 독립적인 마녀가 낫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하지만 아무리 일을 잘해도 ‘마녀는 절대 시집 못 간다’는 직장 동료들의 뒷담화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 현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 여자친구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스물다섯의 아르바이트생, 윤동하(박서준)가 들어온다. 코믹 연기, 베드신까지 소화한 미리 공개한 하이라이트 신을 보고 내린 결론, 두 사람의 케미는 문제없음!

연상연하의 아이콘
오연수 <달콤한 인생>에서 이동욱과 파멸을 향해가는 위기의 중년을, <나쁜 남자>에서는 성공에 눈이 먼 김남길에게 마음을 빼앗긴 재벌가의 여자로 그려졌다. 이동욱, 김남길과는 모두 10살 차이였지만 상대방을 조용하게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은 완전하게 사랑에 빠진 여자의 것이었다.
고현정 조인성, 천정명 등과 호흡을 맞췄다. “난 네 형의 여자야!”를 외치게 만들었던 <봄날>의 조인성보다는 10살이 많았고 <여우야 뭐 하니>에서 알콩달콩한 연애담을 나눴던 천정명은 그녀보다 9살 어렸다. 이후에는 특별히 연하남과의 로맨스가 없었음에도, ‘연상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 중 하나.
김수현 극중에서 연상연하인 것이 도드라지지는 않았지만 <해를 품은 달>에서 6살 위의 한가인과 호흡을 맞췄다. 영화 <도둑들>에 이어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7살 연상인 전지현을 위해 목숨까지 건다. 하지만 청년의 몸에 갇힌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은 천송이보다 나이가 최소 수백 살 많은 설정이었다는 게 아이러니.
이민기 스크린 데뷔작인 <바람 피기 좋은 날>부터 15살 연상의 김혜수와 함께한 이민기는 유독 연상녀와 인연이 깊다. <달자의 봄>의 채림과는 6살, <해운대>와 <퀵>을 함께 한 강예원과는 5살 차이, <오싹한 연애>의 손예진과 <연애의 온도>의 김민희와는 모두 3살 차이다. 신기한 건 누구 옆에 서도 잘 어울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