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를 보며 궁금해졌다. 그냥 하루 세 번 밥을 지어 먹는 것뿐인데, 왜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 열광할까?

“망했어요. 이 프로그램. 누가 이런 걸 봐?” <삼시세끼>의 첫 회에서 이서진은 이렇게 말했다. 끝없이 수수를 베어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 앞에 놓인 그의 말과는 달리, 현재 이 예능은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그사이 촬영지는 정선에서 만재도로 바뀌었고, 이서진과 옥택연 대신 차승원과 유해진이 합류했다. 제작진은 계절에 맞게 농촌과 어촌을 오가며 ‘유기농 자급자족 라이프’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시청률 14%를 달성한 <삼시세끼>의 반향은 제법 크다. 귤 마멀레이드부터 어묵, 제육볶음 등 ‘차줌마’로 거듭난 차승원의 신들린 요리는 포털의 높은 검색 순위를 차지하고, 섬마을에서나 맛볼 수 있는 거북손이 택배 박스에 담겨 분주히 도시를 오르내린다. 해물짬뽕이 방송된 다음 날에는 동네 중국집이 짬뽕 특수를 누렸다. 그냥 하루 세 번 밥을 지어 먹는 것뿐인데, 왜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 열광할까?

 

우리는 어릴 적부터 ‘삼시세끼’를 먹어야 한다고 세뇌되었지만, 어느새 ‘삼시세끼’를 챙겨 먹는 건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가장 먼저 아침 식사가 사라졌다. 1시간씩 걸려 출근을 해야 하는 처지에 아침을 차려 먹을 여유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그렇게 하루 세 끼는 하루 두 끼로 줄었다. 하지만 그 두 끼니도 제대로 차려 먹으려면 하루가 모자란다는 걸 해보면 안다. 난 주말에는 시금치로 된장국을 끓이고, 산마를 갈아 낫토와 섞고, 전복에 술을 뿌려 다시마를 얹어 쪄먹었다. 그 다음 날에는 당근, 감자, 양파에 아스파라거스까지 넣어 카레를 만들었고 오이와 토마토로 만든 샐러드를 곁들였다. 이 밥상을 차리는 데 드는 시간은 적어도 2시간쯤 된다. 과정만 보여주는 요리 프로그램과 달리 실제 요리는 재료를 사는 것부터 다 먹고 난 뒤의 설거지와 뒷정리하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한 끼를 요리해 차려 먹고 치우고 조금 쉬다 보면 바로 다음 끼니다. 또 2시간 동안 차려 먹고 치우면 이미 하루는 온데간데없다.

 

빼앗긴 ‘삼시세끼’는 ‘집밥’에 대한 갈증과 맞물려 더욱 강력해진다. 몇 년 전부터 ‛집밥’이 외식 트렌드의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집밥을 차릴 시간도, 에너지도, 돈도 없는 사람들이 집밥을 집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이기에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아가, 우리 간단하게 칼국수나 해 먹자”는 말은 비웃음을 사기 딱 좋다. 전혀 간단한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멸치와 다시마를 사용해 육수를 만든다고 해도, 만약 오후 2시에 칼국수를 먹는다면 1시부터 다시마를 물에 넣어두고 우려야 한다. 흰색과 노란색 달걀 지단까진 아니라도 김치 속을 잘 털어내어 송송 썬 다음 참기름을 똑 떨어트려 버무리고, 애호박을 돌려 깎아 썰어내어 기름을 두르고 볶아내는 수고는 필요하다. 시판용 칼국수면도 많은데, 드라마 속 여자들은 밀대로 반죽을 민다. 그러면 밀가루를 반죽하고 숙성해서 밀고 칼로 자른 뒤 서로 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바르고 탈탈 털어 담아놓는 과정까지 추가다. 도대체 ‘간단한 음식’은 어디에 있을까? 6천원을 내고 칼국수 한 그릇을 사먹는 게 확실히 낫지 않나.

 

지금껏 연예인들이 농촌, 어촌 등으로 떠나 밥을 해 먹는 모습을 담은 예능은 많았다. <정글의 법칙>조차 ‘먹방’에 집착한다. 하지만 <삼시세끼>에서는 먹는 것이 프로그램의 일부가 아닌 전부다. <삼시세끼>의 가장 현실적인 점은, 하루 세 번 음식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홀랑 다 지나가버린다는 걸 보여준다는 것이다. 반면 <삼시세끼>의 가장 낯선 점은 그 <삼시세끼>가 처한 상황이야말로 지극히 판타지적이라는 것에 있다. 엄마 역할을 맡은 차승원과 아빠 역할을 맡은 유해진의 삶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하루 세 끼를 해 먹는 것이다. 이들은 전기세를 걱정하거나, 호준이의 학비를 어떻게 해결할지, 뭍에 있는 학교에 보낼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는다. 물고기로 상징되는 ‛자급자족’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은 방송용 세트와 다르지 않다. 텃밭도 있지만 이들이 씨를 뿌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현실을 걷어낸 채 ‘잘 먹고 잘 살기’에만 집중하는 <삼시세끼>는 보는 사람들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풍요로운 땅과 바다는 인간에게 계속 먹을거리를 길어주고, 사람은 그 재료들로 하루 세 번 잘 차려 먹고, 동네를 산책하거나, 가끔 손님을 맞거나, 산체와 벌이 같은 반려 동물과 시간을 보내면 그뿐이다. 그들은 실제와 다르지만, 우리는 바로 그 실제와 다른 모습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마치 저 섬에 가면 나를 위한 삼시세끼 집밥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은 <삼시세끼>를 영화적 감수성으로 보여준다.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숲과 계곡이 둘러싼 작은 마을 코모리로 돌아온 이치코는 산속에서 채집하고, 벼를 키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엄마의 레시피를 복기하며 고구마를 말리고, 열매로 잼을 만드는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면서, 우리가 잊고 지낸 ‘행복의 조건’을 떠올린다. 삼시세끼를 편안하게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그저 남들이 삼시세끼를 차려 먹는 모습으로 자신의 ‘힐링’을 대신한다.

 

<삼시세끼>에 대한 열광은 잘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기본 명제가 얼마만큼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삼시세끼까지는 아니라도, 하루 한 끼의 행복이라도 온전하게 누려보길 꿈꾸는 사람들이 채널을 고정한다. 삼시세끼를 직접 만들어 먹는 일.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일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