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날고 기는 젊음이라 해도 이들의 섹시함에 견줄 수는 없는 일이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삶의 경험과 깊고 단단한 눈을 지닌 중년들. 그들만의 미학에 대하여.

완벽한 중년의 이름, 브래드 피트 
브래드 피트는 떠올리기도 싫겠지만 그의 주연 데뷔작 <폭력 교실(Cutting Class)>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나이는 둘도 없는 축복이구나 싶다. 이 싸구려 10대 스릴러 영화에서 브래드 피트는 여자친구와 한번 자려고 애쓰는, 그야말로 머저리로 나온다. 웃는 건 바보 같고 연기는 형편없다. <폭력 교실> 촬영 당시 브래드 피트와 사귀다가 갑자기 뻥 차버린 질 쇼엘렌은 그가 25년 후에 이렇게 멋있어질 줄 전혀 몰랐을 거다. 물론 젊은 시절의 브래드 피트는 숨막힐 정도로 섹시했다. 하지만 자주 생각나는 쪽은 <델마와 루이스> <파이트 클럽> 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머니 볼>의 브래드 피트다. 나이를 먹으며 성공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 시간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는 나이 든 브래드 피트 말이다. 젊은 브래드 피트가 저돌적이고 박력 있었다면 지금의 브래드 피트는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말해 뭐하랴, 이건 하나마나 한 얘기다. 브래드 피트가 완벽한 중년 배우라는 걸 누가 모르나. 일상생활에서는 부스스한 긴 머리를 찰랑거리며 ‘나 할리우드 배우 아닙니다’ 하며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지내지만, 영화 촬영에 돌입하거나 레드 카펫에 설 일이 생기면 정색하고 머리 빗고 턱시도 입고 나와 섹시한 남자가 되어 있다. 영화는 또 어찌나 기가 막히게 고르는지 테렌스 맬릭이나 쿠엔틴 타란티노, 데이비드 핀처, 코엔 형제와 같은 작가주의 감독과도 호흡을 맞추지만 할리우드 상업 영화에도 출연한다. 그 상업 영화는 시시하지도 않다. 이에 대해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스타로서의 삶이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는 걸 알게 돼 흥미로운 삶을 다룬 영화를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아내 잘 만나서 세계의 분쟁 지역 문제, 빈곤 퇴치 문제, 환경 문제에도 열심이다. 정신을 못 차리게 할 만큼 잘생긴 사람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비밀스러운 존재며 서로에게는 어려운 존재다. 우리 모두 가짜와 불안, 분쟁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니 그의 할아버지 같은 턱수염도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다. 브래드 피트는 “명성은 거지 같은 거다”라고 못 박았지만 칠순이 될 때까지도 그는 그 ‘거지 같은 명성’과 함께 ‘섹스 심벌’로 남아 있을 것 같다. 
– 나지언(칼럼니스트)  

사기에 가까운 40대, 패럴 윌리엄스
1973년생이니까 한국 나이로 마흔셋이다. 1990년대 후반 데뷔했고, 그가 활동한 프로젝트 N.E.R.D.의 ‘Wonderful Place’가 나온 게 10년 전이니 이상할 게 없는 나이다. 그런데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2013년 그가 참여한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와 로빈 시크의 ‘Blurred Lines’에 취해 있는 동안 그가 40대에 접어들었을 거라고 전혀 의식을 못했다. 여전히 내 마음속의 패럴 윌리엄스는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젊은 남자였다. 그러다 24시간 24개 버전으로 찍은 ‘Happy’의 뮤직 비디오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실감했다. 모든 비디오의 도입부가 같다. 그가 가장 먼저 등장해 춤을 춘다. 춤추며 그는 늘 웃고 있는데, 그건 젊은 남자가 가질 수 없는 표정이다. 얼굴로 감정을 표현할 때나 몸을 흔들 때나 그에게 흥분이나 과잉 같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온 세상과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행복한 노래를 만든 뒤 여유롭게 웃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우리를 언제든 안아줄 수 있는 인자한 어른으로 보인다는 것이다.그는 스폰지밥 타이츠를 신어본 적이 있고, 3년 전부터 스키니 진을 거부하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의상이란 모든 스타가 이따금씩 마쳐야 하는 과제일 뿐 그는 셔츠, 후디, 반바지 등 평범한 옷을 더 선호한다. 키는 크지 않아도 기럭지가 좋고 군살 없이 마른 몸이라 매끈하게 소화하는 것도 있지만 무난해 보여도 실은 제대로 간택된 아이템일 것이다. 모델이자 디자이너인 헬렌 라시찬과 오래 연애하고 결혼한 데다 자신은 물론 우리까지 즐길 만한 힙합 브랜드를 패션 디자이너 니고와 만든 그가 옷 못 입는 남자 대열에 합류할 리가 없다. 그런 스타일을 갖추고 그토록 세련된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 그의 나이를 잊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젊은 감각으로 세상과 소통하지만, 경험과 세월이 만든 인상과 표정마저 젊음을 갈망하지는 않는 ‘Happy’의 뮤직 비디오를 다시 보면서 문득 생각한다. 그런 이상적인, 아니 사기에 가까운 그런 40대는 되기도 어렵고 만나기도 어렵다. 
– 이민희(대중문화평론가)

아슬아슬한 경계, 애드리언 브로디
애드리언 브로디라는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된 것은 로만 폴란스키의 2002년 작 <피아니스트>를 본 뒤였다. 비쩍 마른 스필만, 그러니까 애드리안 브로디가 독일군 장교가 몰래 가져다준 과일잼을 정신없이 퍼먹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고, 역시 비쩍 마른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장면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렇다 해도 <피아니스트>에서의 그는 아직 소년 티가 남아 있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물리적인 나이나 시간의 경험과는 관계없이 나이를 초월한 분위기를 갖기도 하는데,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은 대개 짧은 순간들뿐이다. 영화 속에서 스필만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고, 살아남는다. 애드리언 브로디는 이 역할을 (연기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는) 훌륭하게 수행했고, 어떤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 역시도 그의 얼굴이 앞으로 어떻게 나이 들게 될지를 조금 예상하게 했다. 배우의 얼굴이 흥미로운 까닭은 그가 허구를 통해 대리적으로 사는 삶의 흔적과 그의 실제 삶의 충돌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가끔 파파라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배우의 ‘진짜’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기에 하나의 층위를 더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살아온 대리적인 삶의 흔적들, 이에 지금의 실제 삶, 그리고 현재 출연하고 있는 영화 속 인물의 삶. 따라서 배우의 얼굴은 하나이지만 늘 다르며, 늘 ‘업데이트’된다. 얼마 전 뒤늦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면서 나는 새삼 애드리언 브로디에 주목했다. 예쁘고 우의적인 이 영화에서 그는 어머니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못된 아들로 등장한다. 분홍색, 보라색, 빨간색 등 현란한 배경을 오가는 그의 가늘고 선병질적 실루엣은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보였다. <피아니스트> 이후 12년이 지난 그의 얼굴은 여전한 소년 티와 청년다움과 더불어 중년의 ‘아름다움’을 갖기 시작했다. 1973년생인 그는 이제 갓 마흔을 넘겼고, 그러므로 이는 언제 사그라질지 모르는 위태한 아름다움이다. 중년의 미학이란 어쩌면 앳되고 미숙한 것과 성숙하고 중후한 것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이루며 어우러질 때 가장 잘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잘 늙어가는 것이 하나의 공통 목표가 된 지금, 애드리언 브로디가 12년 후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 한유주(소설가)

미남 배우의 재발견, 
매튜 매커너히가 저런 배우였나? <트루 디텍티브>를 볼 때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할리우드 미남 스타, 로맨틱 코미디 전문 배우였던 그가 ‘인간의 의식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착오’라는 염세적인 대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진짜’ 중견 배우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연기 잘하는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연기를 못했던 배우가 어느 날 갑자기 명배우가 되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새삼 발견한 매튜 매커너히라는 미남 배우의 재발견은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연기만큼이나 그의 외모도 변했다. 근육은 사라졌고, 피부는 생기를 잃고 축 늘어졌으며 혹독한 체중 감량으로 인해 좌우 비대칭이던 얼굴 윤곽은 더욱 도드라졌다. 자기 관리가 곧 몸값인 할리우드 생태계에 역행하는 변화지만 그의 깊은 눈빛과 기묘한 무표정이 빚어낸 연기는 농밀하고 섹시해졌다. 거기에 꿋꿋하게 세월을 견뎌온 중년 남자 특유의 단단함과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져, 매튜 매커너히는 자타공인 마성의 매력을 지닌 중년 배우로 성장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과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 이어 <인터스텔라>까지. 그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진정한 남자란 무엇인지 알아가는 자기 고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육으로 연기한다는 평을 들은 20~30대 시절,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섹시 미남 배우 역할에 안주했다면 지금의 매커네상스(McConaissance, 매커너히와 르네상스의 합성어)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이었던 강건한 육체를 포기하고 콤플렉스일 수도 있었던 좌우 비대칭 얼굴마저 연기로 소화시키는 선택을 함으로써, 남은 연기 인생의 승부수를 띄웠다.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믿는, 지금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리라 생각하는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그 과감한 승부. 제아무리 날고 기는 젊음도, 지천명을 앞둔 매튜 매커너히의 매력 앞에서는 수그러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 류한마담(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