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이나 록 뮤지션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타투가 이제 소녀의 감성을 표현하거나 패션을 대변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 의미도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물론 바뀌고 있다.

폭력 조직원의 등짝, 헤비메탈 뮤지션의 팔뚝에나 그려져 있던 타투가 젊은 여자의 손목과 발목으로, 어깨로 이동하고 있다. 이건 타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다는 걸 증명한다. 오랫동안 타투를 꿈꿔온 패션 에디터 김지후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타투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나를 상징하는 문구나 신념을 새긴다는 건 결국 내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니까요”라고 말한다. 셰프 김하나는 남들이 자신을 어리게 보는 게 싫어 타투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에게 타투는 나 자신을 지키고 방어하려는 의지이기도 해요. 체구가 작고 어려 보여서 무시당하는 일이 많았는데 타투를 하고 나서 강인한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 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게 가장 큰 변화예요.” 일러스트레이터 이효은은 이런 이유를 내놓기도 했다. “친구가 발목에 타투를 했는데 그렇게 섹시해 보일 수가 없어요. 친구 역시 타투를 한 후에 섹시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하더라고요. 타투는 여자의 몸에 새길 때 더 매력적인 거 같아요. 아무리 거창한 의미를 부여해도, 예쁘지 않으면 할 이유가 없잖아요. 조만간 손목에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새겨넣을 계획이에요.”

 

타투의 운명이 이렇게 변화한 데에는 셀러브리티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이효리는 ‘봄에는 사뿐히 걸어라, 어머니 같은 지구가 임신 중이니(Walk Lightly in the Spring, Mother Earth is Pregnant)’라는 문구를 새겼고, 안젤리나 졸리는 왼쪽 팔에 그녀의 아이들이 태어난 장소와 좌표를 암표처럼 새겼다. 린제이 로한, 시에나 밀러, 스칼렛 요한슨 등 할리우드 여배우들은 물론, 공효진, 현아, 윤진서, 신민아, 효린 등 국내 셀러브리티 역시 타투를 마치 하나의 패션처럼 드러내 보였다. “예전에는 특별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 사진가, 화가처럼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죠.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대학생부터 직장 초년생까지 나이도 어려지고 특히 여자 고객이 많이 늘었어요. 처음에는 골반이나 가슴 위, 엉덩이 등 옷을 벗어야 보이는 부분을 선호하고 두 번째부터는 팔목이나 손가락, 팔뚝이나 발목 등 잘 보이는 곳으로 옮기는 편이죠.” 타투이스트 썬렛의 설명이다. 타투 스타일 역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예전에는 굵은 선에 어둡고 원색적인 일본풍 민화를 그리는 이레즈미 타투가 인기였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의미를 담은 작은 그림과 레터링이 주류를 이룬다.

 

김지후 에디터와 함께 홍대 인근의 유명 타투숍 썬렛타투를 찾았다. “먼저 해줘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잠깐 기다려요.” 썬렛은 하얀 장갑을 끼고 권총처럼 생긴 기계를 들었다. 스위치를 켜자 ‘찌이이잉’ 듣기만 해도 온몸이 저릿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에게 한쪽 팔을 맡긴 이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는 전자 기타를 배우고 있는 음대생으로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열혈 팬이었다. 슬래시 앨범에 그려진 로고를 자신의 팔뚝에 새기기 위해 이곳을 찾은 그의 팔에는 이미 기타 한 대와 커다란 장미가 그려져 있었다. 이미 여러번 타투 경험이 있는 그는 이 정도 레터링은 식은죽 먹기 라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기타 끝 부분에 ‘Slash’가 선명하게 박혔다. “예전에 기타 그림을 그릴 때는 정말 많이 아팠는데 레터링은 그냥 따끔한 정도예요. 여자들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만큼의 통증이에요.” 

 

타투는 분명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타투이스트라 불리는 그들은 단순히 고객이 주문하는 대로만 그리지 않는다. 어떤 글자나 그림을 어떤 스타일로, 어느 부위에 새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들만의 작업 스타일을 반영해 창의적인 타투를 그리는 것이다. 타투이스트 유미는 이렇게 말한다. “타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고객과 타투이스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에요. 무작정 연예인의 타투를 들이밀며 ‘똑같이 해주세요’라는 건 자신에게도 타투이스트에게도 소모적인 일이죠. 의견을 나누며 서로의 취향과 성향을 제대로 파악해야 완성도 높은 타투가 나올 수 있어요.” 또 다른 타투이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은 우리의 작품세계를 펼칠 수 있는 대상이기도 해요. 고객의 의뢰를 받으면 타투이스트는 직접 도안을 디자인하고 시술하죠. 그만큼 실력 있는 타투이스트를 찾는 것이 중요해요.“

 

썬렛은 단순한 호기심에 타투숍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단호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한번은 타투를 받기도 전에 지우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더라고요. 그 사람에게는 타투를 안 해줬어요. 하기도 전에 지울 생각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도 하니까 나도 한번 따라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건 위험해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확신이 있을 때 타투숍을 찾으세요. 자신의 몸에 평생 남는 것이니 자신이 책임져야 해요.” 좀 더 덧붙이자면, 타투를 지우는 레이저는 검정 혹은 푸른 계통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빨강, 노랑 등의 색소는 제거되지 않고 얼룩덜룩하게 남는다고 한다. 검정이나 푸른 계통이라도 색소가 스며든 피부 층의 깊이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깨끗이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2~3개월 간격으로 몇 년에 걸쳐 제거시술을 받는다 해도 대부분은 흉터가 남을 수밖에 없다.  

 

썬렛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눈 김지후 에디터는 자신의 팔 안쪽에 ‘Dreamer’라는 글자를 새기기로 결정했다. 문구를 결정한 다음에는 타투이스트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자체를 정했다. 수백 가지의 글씨체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니, 그것을 선정하는 데만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글씨체가 정해지고 그는 하얀 장갑을 꼈다. 타투가 처음인, 잔뜩 겁에 질린 그녀를 위해 간이 침대가 마련되었다. 썬렛은 ‘Dreamer’라고 쓰인 종이를 그녀의 손에 붙여 가상으로 타투의 모양을 확인시켰고,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위치와 크기에 대해 조율했다. 그런 다음 시작된 기계음.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소리가 멈췄다. “몇 년을 고심하고 어디에 어떤 문구를 넣을지 고민한 시간에 비해 시술 시간은 놀랄 만큼 빨랐어요. 통증은 ‘면도 칼로 그으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진동 때문인지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어요. 영구 아이라인을 시술할 때보다 더 빨리 끝난 것 같아요.” 20살부터 자신의 생일 때마다 타투를 새기고 있다는 디자이너 박지수는 “타투는 몸에 간직할 수 있는 저만의 컬렉션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 제게 의미 있는 것들을 몸에 새기면 진짜로 그것을 소유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어깨에 자신의 좌우명을 새긴 사진가  김주현은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죠. 타투는 직업도 갖고 가치관을 어느 정도 확립한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타투 때문에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라고 조언한다. 타투를 하기에 앞서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섣불리 도전하지 않는 것이 맞다.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남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도를 생각해보고 확신이 섰을 때 시도해도 결코 늦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