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앞에 공평한 건 우리가 사랑한 스타들도 똑같다.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시대를 풍미한 그들도 시간의 심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꽃답다. 주름이 파이고, 얼굴이 홀쭉해져도 여전히 그들을 추앙하는 이유.

브래드 피트처럼 살아줘

<델마와 루이스>의 ‘제이디’ 역은 조지 클루니에게 갈 뻔했다. 두 여자를 단숨에 유혹한 뒤 위험에 빠트리는 히치하이커 카우보이는 단역이었지만, 누구든 한눈에 반할 만큼 유혹적이어야 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역할을 대단히 원했다고 하는데, 최종 후보였던 두 사람 중 결국 브래드 피트가 캐스팅되었다. 이 영화로 그는 대중에게 이름은 아니어도 얼굴은 알리게 되었다. 그 후 브래드 피트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매력 넘치는 둘째 아들을 연기하게 된다. 대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연출한 이 영화는 마치 로버트 레드포드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루듯 시종일관 관조적인 분위기였는데, 사람들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젊은 시절을 꼭 닮은 배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뱀파이어로 등장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그는 비로소 1백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가 되었다. 그후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소싯적에도 그의 외모는 리버 피닉스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보기만 해도 꽃망울이 막 터지는 것 같은 그런 ‘꽃미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더 보고 싶은 건강하고 수수한 매력이 있었다. 우리가 미국인 청년에게 기대하고픈 그런 종류의 것.

끊임없이 작품을 이어간 브래드 피트.<세븐>과 <파이트 클럽>처럼 ‘할리우드의 예쁘장한 배우’가 하지 않는 용감한 선택도 많이 했고, 이 영화들은 고스란히 그의 자산이 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썩 괜찮았지만,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엮여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그의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줄리엣 루이스, 기네스 팰트로와의 연애, 제니퍼 애니스톤과의 연애와 결혼. 워낙 작품을 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빠지는 그는 <미스터&미스터 스미스>로 안젤리나 졸리를 만나 ‘브란젤리나’라는 괴상한 별명까지 얻었다.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 겸 수많은 아이의 아빠로 더 유명할 땐 그런 사생활이 그의 커리어를 집어삼킬까 걱정스러웠다. 그 사이 그는 조금씩 늙어갔다. 그가 의욕적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판권 전쟁을 벌이고, 그 후 제작과정에서 아주 죽을 고생을 하며 완성했다는 <월드워Z>는 브래드 피트의 지금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이제 그는 단숨에 여자를 농락하는 유혹자도 아니고, 보기만 해도 청춘은 더더욱 아니다. 금발은 더 지저분해지고, 턱살도 좀 내려왔다. 눈가에 깊게 파인 주름과 다크서클, 산발한 머리로 가족과 인류를 지구에 창궐한 좀비 바이러스로부터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 영웅’. 또 다른 영화에서도 그는 아버지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트리 오브 라이프>는 브래드 피트가 제작과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영웅만은 될 수 없는 아버지’다. 이제 그는 아버지가 더 잘 어울리는 배우가 된 것이다. 그는 섹시함을 잃었지만, 그 대신 아주 작은 역할이든, 혼자 지구를 구하는 주연이든 자기가 내키면 하고 아니면 마는 여유를 갖췄다. 모든 스타가 이렇게만 늙어가준다면, 팬들이 마음 고생할 일은 없을텐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예습도 했으니 더 늙은 모습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다. –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

누구도 가둘 수 없는, 모니카 벨루치

모니카 벨루치의 아름다움에 말을 보태는 데 새로운 의미가있을까? 가만히 사진을 보다가, 더러는 어떤 영화에서 그녀가 움직이는 걸 보기도 하면서, 누군가는 갑자기 소년이 된 것 같았다. “모니카 벨루치라면 영어보다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게 더 좋아, 왠지 더 멀리 있는 사람 같아서.” 영어로 말한다고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아닌데, 이 아름다운 여자가 조금이라도 가깝다고 느낄 때 부끄럽게 위축되는 남자의 심정은 또 뭘까? 감당할 수 없어서? 그럴 필요도 없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떨려서? 그건 모두의 자유라 해도…. 여자 몸을 두고 ‘스타일리시’네 ‘시크’네 하는 건 자잘하고 고약한 농담 같다. 억지로 말린 것 같은, 저래서 뛸 수는 있을까 싶은 팔다리를 선망하게 만든 건 대체 누구지? 그들이야말로 거대한 비즈니스의 일부 아닌가? 그 팔다리에 섬세하게 근육이 잡혀 있다 해도, 그게 현대적인 부지런함의 단단한 상징이라 해도 마음은 내내 쫓길 것 같다. 새벽같이 뛰고, 강박적으로 탄수화물을 피하고, 단 하루도 분방할 수 없을 것같이 대상화된 몸에 여유란 없는 것 같아서. 

모니카 벨루치는 지금 트렌디한 여러 가지 기준으로부터 좀 멀리 떨어져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1992년 영화 <드라큘라>에 출연했을 때, 남자와 여자 모두의 시선으로부터 철저히 대상화된 불행한 여자였던 2000년의 <말레나>를 거쳐 2002년 <돌이킬 수 없는>의 그 잔인한 지하보도 강간 장면에 잠시 머물 때까지. 이후에도, 그녀는 그저 강같이 자연스럽게 흘렀다. 몸의 어떤 부분은 보란 듯이 이완돼 있었다. 바닷물에 반쯤 잠긴 채 전라였을 때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 앞에서 역시 전라로 섰을 때도, 혼자 누운 침대 위에서 홑이불만 덮고 카메라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둥글고 풍만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양감의 몸을 두고 지금 여자 몸을 수식할 때 쓰는 그 흔한 말을 그대로 하는 건 얼토당토않다. 그래도 2014년의 한국 매체들은 모니카 벨루치에 대한 기사 제목을 이런 식으로 뽑는다. ‘나이 잊게 만든 완벽 몸매 49세 맞아?’ ‘50세 나이 잊게 만든 날렵한 허리라인.’ ‘모니카 벨루치, 김혜수 능가하는 볼륨몸매.’ 과연 천박하고 폭력적이지 않나?

모니카 벨루치는 어떤 시대, 다른 유행이나 흐름에 단 한 번도 갇힌 적 없었다. 그 얼굴과 몸을 향한 전 세계의 시선, 일거수일투족이 다 노출되는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도…. 그 모든 시간과 중력을 그대로 받아들인 모니카 벨루치의 얼굴과 몸을 보는 일은 지금도 황홀하다. 그 흔한 섹스 어필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결국은 생명에 가까운 진짜 관능의 대상으로서. 자애롭고 비옥하며, 나이와 관계없이 관능적이다. – 정우성( 피처 에디터)

변할 수 없는 청춘의 이선희

한 친구는 길을 걷다가도 그녀의 노래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 변진섭의 ‘로라’가 울려 퍼졌고, 1989년 여전히 도청 앞 거리에서는 최루탄 시위가 이어지고 있던 때였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들보다 훨씬 잔인했던 그런 시대, 그녀는 그런 계절을 위로하듯 ‘한바탕 웃음으로’나 ‘5월의 햇살’ 을 불렀었다. 가수 ‘이선희’를 생각하면 거리에서 울던 친구가 생각났고, 야간 자습을 빼먹고 당시 유명했던 그녀의 팬클럽 ‘홍당무’ 모임에 쫓아가던 친구의 붉은 얼굴이 생각난다. 그리고 1980년대의 거리에서 전경들과 맞서 있는 그 시절 언니 오빠들의 땀에 젖은 눈빛이 떠오른다. 잊힐 때마다 거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5월의 햇살’ 노랫말처럼, 아침이 올 때까지 노래하자던 친구들을 다시 찾고 싶을 때 그녀의 27주년 소식이 들렸고,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녀는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막 끝마치고 돌아왔었다. 카네기홀에 동행했던 사진가 이전호 실장은 리허설을 잠깐 봤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했고, 후크 엔터테인먼트의 권진영 대표 역시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그녀를 사랑하는 팬의 얼굴로 돌아가곤 했다. 스타일리스트 정윤기나 배우 고현정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냈다고 콘서트가 열릴 때마다 고백했고, 촬영을 할 때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꼭 나타나 “선희 언니, 선희 누나의 팬이에요!”라는 말을 수줍게 꺼낸다.

한 스타를 사랑하는 팬심의 유효 기간은 얼마쯤 될까. 이선희를 ‘나이 들어서 더 아름다운 스타’로 올려놓는 이유는 그녀의 <달려라 하니>처럼 변하지 않는 목소리나, 보톡스를 맞지 않고도 데뷔 앨범 재킷 사진과 안경크기만 바뀐 것 같다거나, 음악가로서의 삶이 여전하다는 그런 이유만이 아니다. 30년이 지나서도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수많은 팬 때문이다. 1980년대 ‘언니 부대’를 거의 최초로 만들었던 아이돌 스타. 그녀가 콘서트를 할 때마다 단발머리 여학생들이 ‘언니, 사랑해요’를 외쳤는데, 사실 그런 모습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이선희’라는 가수에 대해서 놀라는 점이다. 27주년 콘서트, 30주년 콘서트까지 객석 어딘가에서 1980년대 등장했던 소녀 팬들이 플래카드를 펄럭이고, 콘서트장을 빠져나가는 밴을 기다리고 있다. 1984년 그녀의 데뷔와 함께 그녀의 책받침을 사던 그 소녀 팬들이. 그녀의 팬들은 이선희라는 한 가수를 묻어버린다면 자신의 청춘을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어 떤 팬이 그러더군요. ‘내가 좋아한 사람이 항상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의 순정과 열정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니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그래서 그렇게 가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되려고도 하고. 나의 팬들을 모두 껴안고 일일이 눈을 마주칠 순 없지만 어느 때 나를 보더라도 ‘아, 저가수가 내가 힘든 시기를 함께했던 사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 이선희는 요즘 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두 배쯤 더 느린 속도로 일상을 사는 것 같다.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에 무슨 색의 립스틱을 칠하는지도 모른 채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음악 외의 일상에서 적극적으로 사는 게 힘들어 보인다. 압도적이고 폭발적이면서도 어딘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음색은 그녀 나이 50세가 넘었지만, 여전히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다. “요즘 그녀를 보면 ‘고전’이란 단어가 떠올라. 30년이라는 시간 때문일 수도 있지만, 김완선을 보면서 고전을 떠올리진 않으니 단순히 시간 때문은 아니겠지.” 한 지인의 말처럼, 나이 들어서 더 멋진 해외의 수많은 여자 뮤지션처럼, 우리에게도 그런 가수가 한 명 있냐고 묻는다면 화이트 셔츠와 니트 넥타이, 블랙 팬츠가 여전히 잘 어울리는 ‘이선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김수진(<스타일 H> 피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