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할 만큼 잘생긴 조각 미남도, 수십만의 팬을 거느린 아이돌 스타도 아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요즘은 이 남자들이 대세다. 그 합당한 근거를 이야기한다.

착한 남자의 유머

할 수만 있다면 난 ‘썸머’의 머리칼을 쥐어뜯었을 것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주이 디샤넬)가 조셉 고든 레빗에게 자신이 어떻게 (그와 헤어지고)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 뻔뻔하게 얘기하는 장면을 보고는 당장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이 못된 것아” 하면서 그녀의 목을 조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어떻게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 천진한 눈,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마 주름, 귀여운 보조개를 갖고 있는 남자를 찰 수가 있지? 비틀스 멤버 중 링고 스타를 제일 좋아하는 그녀를 이해 못한 게 이유였나? 하지만 조셉 고든 레빗은 썸머에게 시시껄렁한 이유로 차인 덕분에 수많은 여자의 위로와 사랑을 받게 됐다. 이후 <인셉션>에서 머리를 포마드로 빗어 넘긴 그는 살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보다 섹시했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정의로운 경찰관으로 등장한 그는 가슴만 크고 한심한 크리스천 베일의 시대가 끝났음을 증명했다. 조셉 고든 레빗은 새로운 유형의 할리우드 남자 배우다. 놀랍게도 그는 찌질하지도 나쁘지도 멍청하지도 않은 ‘착한 남자’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걸 알렸다. 이 문장에 의문을 갖고 남자 배우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이름을 대봐라.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을 거다. 잭 에프론은 맞춤법을 모를 것 같고, 제임스 프랑코는 다 쓴 칫솔 같은 걸 모으는 괴짜일 것 같고, 라이언 고슬링은 가끔 겁을 줄 것 같으며, 샤이아 라보프는 휴, 못생겼으니 말도 꺼내지 말자. 브래드 피트나 조지 클루니가 있지 않냐고? 그들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남자다.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귀여운 토미로 나올 때만 해도 조셉 고든 레빗을 보며 우리의 가슴이 두근거릴 줄은 몰랐다. 어렸을 때 알던 꼬마 아이가 청년이 되자 갑자기 나쁜 마음을 먹는 엉큼한 누나 같긴 하지만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천재소년 두기’가 게이로 커밍아웃하고, ‘슈퍼소년 앤드류’가 펑퍼짐한 엉덩이를 자랑하는 동안 ‘토미’ 조셉 고든 레빗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역사, 문학, 프랑스 시를 수학했다.‘셀 러브리티라는 개념 따위 엿 먹으라지’라는 태도를 갖게 됐으며, 예술 공동 프로젝트이자 웹사이트인 히트레코드(hitrecord.org)를 만들었으며, 그렉 아라키, 크리스토퍼 놀런과 같은 괜찮은 감독과 작업하게 됐다. 그는 말했다. “성공이나 권력, 돈 같은 건 나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대본이 좋으면, 난 한다. 단순하다.” 이 멘트에서 끝났으면 그는 사생활 보호에 미친 듯이 신경 쓰고 자기 방어에 혈안이 된 꽉 막힌 맷 데이먼이나 크리스천 베일이 됐을 거다. 하지만 그가 제2차 성징을 맞으면서 또 하나 갖게 된 장점이 있으니 그게 바로, (21세기 남자에게 페니스보다 더 필요하다는 그) 유머다. 유머가 있는 한 그가 너드가 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는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골반을 거세게 돌리며 머리 빈 남자를 완벽하게 재현했고, 게이 설에 대해“톰 하디를 사랑한다”고 응수했으며,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영리한 아이, 웃긴 아이, 착하고 다정한 아이, 심지어 화난 아이를 연기하기도 했지만 섹시한 아이를 연기한 적은 없다”고 조롱했다. 착한데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조셉 고든 레빗 같은 남자, 앞으로 한 세기 동안 등장할 일 없을 거다. 그의 머리카락에 비듬이 덕지덕지 있거나 그에게서 토할 것 같은 발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 나지언(<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피처 디렉터)

너의 미간 대신 등을 보았어

신동엽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목구비가 가운데로 모인 얼굴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이 배우를 내 마음속 ‘백인 신동엽’ 폴더에 대충 저장해둔 채로 잊고 지냈다. 그에게 배우로서의 인정과 레이철 맥아담스라는 연인을 한꺼번에 안겨준 2004년 영화 <노트북>을 보면서도 이 백인 신동엽의 존재는 내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할리우드에는 내가 신경 써야 할, 미간의 거리가 적절한 미남도 이미 너무 많았으니까. 2007년 작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는 실로 사랑스러운 코미디였지만, 여기서 콧수염을 본격적으로 기르고 나오는 고슬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신동엽보다는 김원효?’ 정도.

이 남자를 다시 본 건, 얼굴이 아닌 등을 마주하고서였다. 별 기대 없이 보러 갔다가 2011년의 영화이자 라이언 고슬링의 재발견이 된 <드라이브>. 카메라는 하얀 블루종 재킷을 입은 고슬링의 뒷모습을 유독 자주 비췄다. 점퍼에 수놓인 전갈이, 단단한 껍질 속에 독을 품은 캐릭터를 상징하기 때문이겠지만 의미고 뭐고 떠나서 그 뒷모습은 일단 보기에 좋았다. 허리에서 어깨로 이어지는 경쾌한 역삼각형의 형태, 완만하게 둥근 어깨의 꽉 찬 양감, 단단하고 팽팽한 팔근육이 자아내는 긴장감. 남자의 몸도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걸 고슬링의 뒤태는 가르쳐준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세탁이 걱정되게 생겨먹은 이 흰색 새틴 점퍼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때가 탄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범죄에 가담하면서 기름때와 땀과 피로 더러워지는, 아름다운 오염이랄까. 한 번의 강렬한 키스신을 제외하고는 내내 애정 표현에 인색한 <드라이브>에서, 고슬링은 마음에 둔 여자를 위해 궂은일은 도맡아 하면서도 내내 과묵하다. 그저 지그시 바라보다가, 보니까 좋아서 웃고, 더 웃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듯 시선을 거둘 뿐이다. 이 3박자의 타이밍이 계산한 듯 절묘한데, 설사 의도했다 해도 그 계산마저 감미롭다(은근하고 신비롭다는 점에서 여자들의 내숭이 남자에겐 이런 위상일지도 모르겠다). 얼굴보다 몸, 말보다 행동. 고슬링은 초식남들이 넘쳐나는 21세기에 우리가 잊고 있던 사내다움이란 전통적 가치에 어쩔 수 없이 항복하게 만든다. <드라이브>의 순정마초와 정반대로 수완 좋은 바람둥이의 매력은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에서 폭발한다. 기막힌 핏의 슈트를 매 장면 갈아입고 나오는 이 남자를, 브리오니나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는 차세대 모델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보석 같은 장면은 고슬링이 그 잘 어울리는 슈트를 벗는 순간이다. 근육질 상반신이 드러나는 순간 그 다음 대사는 상대 배우의 입에서 나오는지 내 입에서 나오는지 혼란스럽다. “너 몸에 포토샵이라도 한 거니?”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영화판의 주인공 역으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고슬링의 캐스팅은, 전 세계 여성들의 즐거움 증대를 위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미키마우스 클럽 동기로 어린 시절부터 끼를 증명한 고슬링은 지금도 ‘데드 맨스 본즈’라는 자신의 밴드에서 음악을 하고 있다. 그가 <블루 발렌타인>에서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장면은‘어떻게 사랑이 안 변하니?’를 씁쓸하게 읊조리는 이 냉정한 영화에서 봄날같이 다정한 순간이다. 미셸 윌리엄스, 캐리 멀리건, 엠마 스톤 등 라이언 고슬링은 주로 이렇게 동글동글 심심한 얼굴의 귀여운 여배우들과 한 프레임에 담길 때 훌륭한 케미스트리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라이언, 그 여자랑은 제발 어서 헤어져. 능구렁이 요물 에바 멘데스는 너랑 안 어울린다고!
-황선우([W Korea] 피처 디렉터)

고혈압 개그의 본좌

지금은 막을 내렸지만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중 ‘비상대책위원회’의 최대 수혜자는 김원효다. 그러나 난 공수부대 베레모를 비딱하게 눌러쓴, 아니 ‘머리에 모자를 끼워 넣은’이란 표현이 좀 더 정확한 김준현에게 열광했다. 목젖까지 차오른 살 때문에 미처 구강에 도달하지 않은 목소리가 성대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며 내는 소리,‘ 궈~뤠~에~?’의 자음 ㄱ을 발음하기도 전에 까무러치며 웃었다. 욱해서 쏟아놓은 말들을 주워담을땐 속살같이 부드러운 반전이 있었다. ‘그~지~? 사람 불러야겠지~?’ 그는 그런 사나이였다.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커피가 식기도 전에 원샷을 때릴 것 같은 사나이. 그러나 낮에는 따사로운 사나이. 그의 섹시한 본질을 알아차린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김준현을 눈여겨본 건 <개콘>의 한 코너였던 ‘9시쯤뉴스’에서 노란 유치원 모자를 커다란 머리에 끼우고 1분 논평을 쏟아부을 때부터다. 그가 셀룰라이트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마트폰의 기능성’, ‘인터넷 신조어의 폐해’ 등을 소재로 다루며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했다. ‘그랬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라고 연설에 피치를 올릴 땐 숨도 쉬지 않고 불도저처럼 말을 몰아붙였다. 순간혈압의 상승폭이 예각을 이루며 치솟을 때에는 보는 사람마저 덩달아 롤러코스터를 탄다. 카타르시스를 아는 남자는 섹시하다. 카타르시스를 함께 나눌 줄 아는 남자는 더 섹시하다. 김준현은 단연 후자다. 얼마 전 ‘네가지’의 인기 없는 남자 김기열은 자신의 트위터에 ‘재미로 보는 개콘 주식’이라는 글 하나를 올렸다. 개콘 개그맨들의 인기를 현 주식 시장에 비유한 건데 김준현은 GY엔터로 표기되어 있다. 내부 평가 역시 가장 핫하다는 방증이다. ‘코스닥 삼킬 기세, 외인들 꾸준한 관심’이라는 짤막한 평가 밑에는 ‘김준현 테마주’로 김준현이 갈 때 돼지주로 묻어가는 3인 유민상, 김수영, 오랑캐의 이름이 적혀 있다. 뚱뚱한 김준현이 여타 비만 개그맨과 차별화되는 것은 운이 좋아서, 명문대를 나와서, 좀 더 잘생긴 돼지라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독보적인 명민함이 있다. “물론 많이 먹기도 해. 딱 보기에도 남들보다 큰 체격을 유지하려면 먹기야 먹지. 근데 누굴 진짜 돼지로 아나?” 라고 발끈할 만한 논리를 가졌다는 거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네가지’를 소재로 들고 나와 “그래, 나 뚱뚱하다”라고 외칠 때 우리는 이미 그의 비만을 용서했다. 여자가 싫어하는 것은 뚱뚱한 것보다 뚱뚱한 자신을 싫어할까봐 마음 졸이는 소심함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간파한 거다. “나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 놈이다. 어쩔건데, 배 째!” 하고 들이미는 그 당돌한 배에 어떤 여자가 해를 가하겠나. 멍멍이 티셔츠로 3D쇼까지 보여주는 그 귀여운 배를 말이다. 문제는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뚱뚱해도 추워. 나도 완전 추워. 돼지고기도 냉동실에 넣어두면 얼잖아!”,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논리로 뚱보의 매력을 관철시키는 바람에 나름 틈새시장이라 여긴 내 이상형에게 어리고 예쁘고 나쁜 것들이 저그 떼처럼 몰려들고 있다. 김준현, 나 시집 못 가면 책임질 거니? 나도 마음의 나이만큼은 호올쭉하다!
-나정원(칼럼니스트)

방황의 아이콘의 반전

<슈퍼스타K1>의 희생자는 조문근으로 보였다. 음악으로 더 지지를 얻었지만 스타성에서 밀려 결국 서인국이 우승을 가져갔다고 믿었다. 그런데 4년이나 지나서 그 시절 영상을 찾아보니 도토리 키재기로 느껴진다. 생각만큼 서인국은 멋지지 않다. 눈웃음 정도가 특징일 뿐 거리에서 스쳐가는 평범한 남자의 전형에 가깝다. 그렇다고 노래에서 제대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아니다. R&B에 애착을 보였지만 막상 가수 이력을 시작한 후 소개한 노래는 ‘부른다’처럼 평이한 발라드이거나 ‘애기야’처럼 다수가 적당한 부담을 느끼는 불안한 댄스였다. 1등의 명예를 업고 데뷔했으나 결국 자리를 잡지 못하는 애매한 캐릭터라 판단했다가, 올여름 대대적으로 그를 재평가할 기회를 얻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첫 회를 시작한 날, 여러 여초 사이트에서는 뒤숭숭한 혼란의 바람이 불었다. 서인국이 아니라 윤윤제한테 빠진 거라며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한 번도 서인국에게 눈길을 준 적 없는 이들의 마음이 강렬하게 흔들렸다는 얘기다. 조금 일찍 <사랑비>에 등장해 세상이 몰랐던 재능을 터뜨렸지만, 그때만 해도 ‘경남 스타일’로 천연덕스럽게 ‘깝치는’ 감초 연기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열일곱 윤윤제로 분한 서인국은 억센 경상도 억양을 유지한 채 뜬금없이 절박한 멜로 연기를 선보이고 있었다. 제3자로부터 난감한 고백을 받은 날, 그는 짝사랑하는 친구를 찾아가 호소했다. “만나지 마까, 만나지 마라캐라.” 그 짝사랑이 좌절된 날 그는 미친놈처럼 울부짖었다. “내 니 좋아하잖아. 어떡하냐고 가시나야!” 미디어에서 접하는 사투리는 보통 재미 요소로 쓰인다. 그런데 서인국의 언어는 낭만과 고민과 폭발을 고루 담고 있었다. 그의 애원 앞에서 가슴이 뛰었고, 그의 절규 앞에서 눈물이 났다. 최근엔 주말연속극을 통해 철없는 유부남을 표준어로 연기하고 있는데, 아내 혹은 부모의 심정으로 한 대 쥐어박고 싶어진다. 그만큼 매끄럽다. 오디션 당시까지만 해도 인지도와 영향력의 문제로 제작진을 갈등에 빠뜨렸다는데, 이제는 심지어 미니 시리즈나 영화에 진출해도 무모한 도전이라 말할 수 없을만한 연기자가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노래로 경험을 쌓고 연기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그는 사실 많이 변했다. 체계적인 트레이닝에 돌입한 후 <슈퍼스타K> 시절에 비해 체중이 많이 줄었고 덕분에 윤곽도 날렵해졌다. 모두가 인정하는 ‘미남’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러 명배우가 그랬던 것 처럼 그도 불완전한 조각이다. 그런 서인국에게 기대하는 내용은 이미 검증된 연기이고 아직은 알 수 없는 풍요로운 배역이다. 우리는 거듭 서인국과 호흡을 나누고 싶다. 그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내가 사랑받는 기분을 느끼고, 누군가 그를 괴롭힐 때 내가 나서서 싸워주고, 그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욕을 쏟아붓고 싶다. 당분간은 그렇게 아낌없이 나를 투영할만큼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로 그를 만나고 싶다.
-이민희(칼럼니스트)

한 마리의 대‘새’

세상의 편협함에 일조하는 미미한 존재 중 하나로서 처음 이 남자가 멋대로 내 시야에 침투했을 때 엄청난 시각적, 문화적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그건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거의 모든 선입견에 대한 ‘서든 어택’과도 같았다. 단춧구멍 같은 눈, 눈사람(에게 사지가 있다면)에서 돋아난 듯한 팔다리, 깜찍하다고도 기괴하다고도 하기 힘든 기묘한 패션.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 가수의 실력과 매력도 얼굴 순은 아니라지만, 일찌감치 ‘시스루’를 표방한 비닐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던 박진영도 그보다는 섹시했다. 하지만 그가 끔뻑 입을 열며 ‘당신 너무나 예쁜 당신’이라 폭포수처럼 침과 랩을 쏟아내는 동시에 둔탁한 어깨를 유연하게 꺾어 젖힐 때, ‘그 당신’이 차라리 나였으면 하는 날 발견했다. 물론 이성의 외모에 대한 나의 취향은 완전 다르지만(섣부른 오해는 폭력이다), 어떤 매력은 외모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새’가 데뷔곡이라더니 10년 차 중견 가수처럼 구는 자신감, 세트가 꺼져도 수리비 내가 안 낸다는 듯 활보하는 에너지, 그 뻔뻔함과 카리스마. 그러니 다시 한번 읊는 게 지겨울 정도로 세계 음원 차트를 휩쓸며 아담 리바인, 케이티 페리, 저스틴 비버까지 매료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 신드롬은 어느 정도 준비된 것이었고, 운과 때도 잘 따랐고,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정도로만 일단 요약하기로 한다.

이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신이지만 새 이후 한순간도 그를 떠나 보낸 적은 없었다. ‘강남 스타일’ 전과 후, 한결같이 느끼는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낙천성과 솔직함이다. 그의 가사나 태도는 분명 고분고분하지 않다. 하지만 그의 비판과 반항은 양팔에 여자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느라 정확한 발음이 힘겨운 힙하퍼나 대안 없이 ‘까대기만’ 하다 정신줄 놓아버리는 로커들의 허세와는 다르다. 누가 태클 걸어도 꼬리 내리지 않을 줏대, 비꼬면서도 ‘그래도 이게 인생이지’라는 전제, 결과적으로 다 내려놓고 ‘한번 놀자’는 태도. 공연에서 “일어나!”라는 말보다 알아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객석에 투척하는 그의 노래만 듣고 있어도 매달 돌아오는 마감마다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해진 ‘마감자’조차 ‘그래, 인생 뭐 있어, 얼른 끝내고 놀자! ’ 식의 초긍정 마인드로 돌아가게 하는 힘의 소유자다. 그는 촉매에 불 붙인 듯 엄청난 화력으로 타오르는 인기가 그저 오래갈 거란 허황된 기대도, 자신이 대한민국의 얼굴이 되려는 야심이나 자신이 그럴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없다. 해외에서의 인기는 적어도 아직은 재미와 신선함, 약간의 호기심에 의한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의 군중 심리와 냄비근성은 유명하다지만, 싸이가 아무리 명실공히 대세남이라지만, 대세남도 사람이다. 공연 연출을 배웠든 베꼈든, 미국 투어 기간을 늘리든 약속을 지키러 들어오든, 맞고 틀린 것, 잘하고 잘못한 것, 내 마음에 들고 안 드는 것을 떠나 이제는 잠시라도 그를 놓아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어쩌면 ‘국위선양’하고 고국 땅을 다시 밟는 그 순간부터 싸이의 마음의 소리는 이미 수천 번 외쳤을지 모른다.‘나 완전히 (동네) 북 됐어!
-강경민(<보그 걸>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