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사흘, 길어야 일주일밖에 허락되지 않는 게 보통 사람들의 여행이라면, 여기 남들과 다른 ‘오랜 여행’을 한 사람들이 있다.

머물며 쓴 여행 책.

머물며 쓴 여행 책.

 

‘클래식’을 주제로 런던 구석구석을 누비는 <런던, 클래식하게 여행하기>의 미덕은, 단지 훑어보고 소개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그 속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있다. <트레비>, <럭셔리> 등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작가의 노하우가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셈이다. 우리가 파리에 기대하는 것이 낭만이라면 영국에 기대하는 건 역사다.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키고 있는 영국을 만나는 건, 그 자체로 특별한 일이 된다. 해로즈나 리버티처럼 여행자들에게 익숙한 곳도 있지만 영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처럼 한번쯤 찾아가보고 싶은 곳도 있다.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는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렇기에 포트넘 앤 메이슨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홍차를 원샷하는 사람들과 달리 티를 관리하는 헤드 티리스타와 천천히 담소를 나눌 수도 있고, RHS 위슬리 가든의 매니저와 정원을 산책할 수도 있다. 헤드 티리스타는 그녀에게 ‘샴페인 애프터눈 티’와 ‘하이 티’의 차이를 설명해주고, 가든 매니저에게 영국식 정원의 매력과 꼭 가봐야 할 정원을 추천해준다. 부산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메르씨엘을 운영하는 박현진은 요리사 남편 윤화영과 함께 파리로 미식 여행을 떠난다. 최근 파리 미식 여행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지만, 값비싼 미슐랭 레스토랑에 집중되는 것이 아쉬웠던 그녀는 30~50유료로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 결과가 바로 <파리에는 요리사들이 있다>다. 이 책에는 모두 49곳의 레스토랑이 실려 있는데, 역시 발품을 판 보람이 있어서, 아직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맛있는, 소박한 레스토랑을 많이 발굴해냈다. 그녀를 만난 요리사들은 자신들의 친구 요리사의 가게를 추천해주곤 했다. 이 책은 파리 사람들이 사랑하는 레스토랑으로 사람들을 안내할 것이다. 반면 <집밥 인 뉴욕>은 뉴욕 사람들이 집에서 해 먹는 음식에 집중한다. 바쁜 뉴욕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먹는 가정식이 주제다. 임대료가 비싼 뉴욕의 아파트는 부엌이 작은 편인데, 이 작은 부엌에서 사람들은 거창한 음식 대신 소박한 한 끼를 만든다. 그 레시피만큼 현재 뉴욕의 트렌드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GMO 작물을 거부하고, 나무 도마와 아시아 향신료에 열광하는 것이 그렇다. 달걀 요리, 그래놀라, 케일칩 등 뉴요커들이 사랑하는 집밥의 매력에 푹 빠져보길. 뮤지션인 황보는 홍콩으로 향했다. 홍콩을 너무 사랑한다는 흔한 이유보다, 그냥 가까워서 선택했다는 말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방송일’을 위해서는 서울을 오가야 했고, 그래서 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홍콩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늘 우리는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꿈꾼다. 그녀도 다르지 않다. 어디가 중요했다기보다, 어디든지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황보의 홍콩 생활은, 세계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홍콩에서 집을 구하고, 현지에서 친구들을 사귀는 것으로 이어졌다. 신인처럼 모델 활동을 하기도 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는 황보로 불리는 황보혜정이라는 한 사람이 홍콩에서 1년 동안 산 일상의 기록이다. 이야기는 홍콩을 지나 대만으로 향한다. 대만과 홍콩은 같은 광동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고, 대만에서 유행하는 것은 홍콩에서도 인기가 많다. 그러나 두 나라를 모두 가본 사람들은 홍콩과 대만이 전혀 다른 곳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문득, 타이베이>는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를 5개 지하철 노선으로 여행한다. 5개 노선의 17개 정거장에서 내려 이 낯선 도시를 천천히 걷는다. 작가는 이 과정을 ‘산보’라고 이름 붙였다. 그렇게 함께 산보하듯 돌아다니다 보면, 서울처럼 분주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대만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