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그곳이 어디든 많은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다.

한 도시로 한 권을 가득 채운 책들.

하나의 도시에 관해 쓴 책을 읽다 보면, 유럽이나 아시아를 뭉뚱그려 쓴 책은 수박껍질처럼 느껴진다. 도시는 그곳이 어디든 많은 이야기를 숨겨두고 있다. 

 

포틀랜드가 뉴욕보다 ‘핫’해질 줄 알았나. 진심 반, 비꼼 반으로 요즘 포틀랜드는 ‘힙스터의 성지’다. 아마 내년이 되면 식상해진 뉴욕, 런던, 파리 대신 포틀랜드로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을 다짜고짜 추앙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쯤 되면 궁금하다. 도대체 포틀랜드가 뭐길래? 우리에게 포틀랜드에 대한 정보라면 나이키 본사가 있고, 미국인이 은퇴생활을 보내고 싶어 하는 도시 정도가 아니었나. 그 답을 <트루 포틀랜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포틀랜드는 소비세가 없고, 인건비는 높아서 젊은 청춘들이 자리 잡기 유리하다. 또 대도시의 치열한 삶 대신 저녁도 있고, 취미도 있고, 연인도 있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 느릿한 도시를 사랑한다. 누구나 하루 만에 책을 만들 수 있고, 직접 자전거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 이미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트루 포틀랜드>를 보고 알았다. 이 책은 도시에 대한 세밀한 가이드북이면서, 기존 가이드북과는 다르다. 포틀랜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여러 장소를 10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설명하고, 인터뷰와 칼럼을 통해 포틀랜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도 들려준다. 지금 포틀랜드는 이상적인 21세기 도시다. 

 

베를린과 뉴욕은 여전히 인기 도시라서, 그에 대한 책도 쏟아져 나온다. 그러니 이들 도시를 말하려면 이야기만큼이나 방식도 중요하다. <어느 날  문득, 베를린>과 <헬로 뉴욕>의 전략은 ‘디자인’이다. <어느 날 문득, 베를린>은 지금까지 베를린에 대해 쓴 책 중 가장 예쁘다. 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가 자신의 재능과 노하우를 꼼꼼하게 살렸다. 그래서 이 책에는 쓸데없는 디자인은 없고, 존재하는 디자인은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디자이너의 마음을 사로잡은 60개의 공간을 보고 처음으로 베를린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헬로 뉴욕>은 이 멋진 도시를 소개하는 ‘그림 편지’를 썼다. 페이지마다 일러스트를 통해 그림 편지를 띄우는 식이다. 다섯 개의 뉴욕 자치구를 마치 지도책을 펴듯 소개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하와이로 떠났다. 글은 다짜고짜 사랑에 빠져 하와이에 살고 있는 친구의 근황으로 시작한다. 다음 장은 첫 하와이 여행에 대한 회고다. 또 그 다음 장은 ‘와이키키는 딱 질색’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이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하와이다. 여행도 하고, 친구 얘기도 하며, 하고 싶은 것도 이야기하는 하와이다. 그러므로 아주 자유롭다. 이 자유로운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하와이라는 곳은 아무래도 좋은 곳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렇게 예쁜 바다와 날씨가 있는 하와이라면, 아무래도 좋을 테니까.  

 

신이현은 ‘한 도시’에 대한 글에는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후 시댁과 시부모의 일상을 다룬 <알자스>, <루시와 레몽의 집>을 썼고, <에펠탑 없는 파리>도 냈던 그녀가 향한 곳은 캄보디아다. 그리고 일부러 그런 듯이, 캄보디아라는 정식 지명 대신 ‘열대’로 칭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적는다. 6년 동안의 캄보디아를 담은 <열대탐닉>은 그렇게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은 평범한 도시 에세이를 거부한다. 신이현이 포착한 사람들은 역시 이름 대신 망고아저씨, 잭프루트 청년, 파파야 씨 등으로 불린다. 열대의 아파트먼트와 사람들이 모여들던 수영장과 한발짝 더 깊숙이 걸은 열대의 거리들. 그녀의 문장을 따라갈 때면 나는 열대에 온 듯 조금 덥고, 간혹 아득해졌고, 종종 눈이 부셨다. 가장 매혹적인 열대의 날들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