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끝에서, <얼루어>가 한 해를 다시 읽었다. 누가 누가 잘했나. 누가 누가 못했나. 그리고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전성기를 맞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그래서 내년이 더 궁금해지는 이것이 인생!

Part 2. Part 1

올해의 이동 겐조에 온 움베르토 레온&캐롤림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이 사망했다. 디올의 존 갈리아노가 해고당했다. 발맹을 톱 브랜드 대열에 올려놓은 크리스토프 데카르넹이 건강상의 이유로 발맹을 떠났다. 대사건이 한꺼번에 터졌다. 패션 하우스 디자이너의 대대적인 이동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디올의 수장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고, 알렉산더 맥퀸은 후배 디자이너 사라 버튼에게 안전하게 바통을 넘겼음에도 디자이너 이동은 급물살을 탔다. 속도만큼이나 채점도 빠르게 매겨졌다. 25살의 어린 남자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새롭게 선보인 발맹은 ‘발맹 스타일’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여성성을 입혀 치고 나왔다. 그의 곱상한 외모도 덩달아 화제를 모았다. 40주년을 맞은 겐조는 변화를 택했다. 오랜 친구 안토니오 마라스와 이별하고 오프닝 세리머니의 젊은 듀오를 영입했다. 옴베르토 레온과 캐롤림은 젊고 건강하고 재기 발랄한 오리엔탈 무드로 겐조의를 꽃무늬 역사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반면 오판도 있어 보인다. 클로에는 한나 맥기본을 내보내고 클레어 웨이트 켈러를 영입했지만 반응은 뜨뜻미지근. 제대로 된 주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웅가로는 자일스 디컨 대신 잔느 라빕-라무어로, 지안 프랑코페레도 토마소 아퀼라노와 로베르토 리몬디 대신 그램 블랙으로 빠르게 노선을 갈아탔다. 승패 여부는 다음 시즌에. 어쨌건 지금까진 겐조의 움베르토 레온과 캐롤림의 성적표가 가장 좋다.

올해의 말실수 유태인이 싫어요
그래 싫을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끝까지 유태인 비하 발언을 부인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거짓말이 싫어요. 존 갈리아노는 그렇게 한순간의 오판과 말실수로 ‘해고’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파파라치의 아이콘 엘르 패닝
올해는 87년생 언니들과 97년생 동생들이 접전을 펼쳤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올리비아 팔레르모가 언니들, 다코타 패닝의 동생 엘르 패닝과 아역 배우 출신의 클로이 모레츠가 동생들. 파파라치 삼촌들은 예상대로 어린 동생들을 더 좋아했다. 특히 엘르 패닝이 타깃이 되었다. 언니 덕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영화 <슈퍼 에이트>를 봤다면 동생이 훨씬 예쁘다는 걸 인정할 거다. 패션계는 지금 이 예쁘고 어린 숙녀를 모시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올해의 스타덤 장윤주
패션계에서 제일 잘나가던 장윤주가 올해 예능계도 접수했다. <무한도전> 달력편과 <도전!슈퍼모델코리아>의 MC로 재치, 입담, 몸매, 스타일을 한껏 뽐낸 장윤주는 광고계까지 섭렵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톱 스타만 갖는다는 장윤주닷컴도 생겼다.

올해의 웨딩드레스 안야 루빅의 미니드레스
올해는 유난히 예쁜 신부가 많았다. 사라 버튼의 레이스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미들턴과 존 갈리아노의 시퀸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 모스도 아름다웠지만 최고의 신부는 안야 루빅이었다. 길게 떨어지는 베일과 대비되는 미니 실루엣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워킹하듯 신부 입장을 했다. 그녀에게 올해의 웨딩드레스를 선물한 건 에밀리오 푸치의 디자이너 피터 던다스였다.

신종 패션용어 국보급 하의실종 종결자
국보소녀 공효진이 입으면 족족 완판된다고 해서 생겨난 ‘국보급 완판녀’,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내는 옷차림의 ‘하의실종’, 어떤 의상에 대한 최고의 멋쟁이에게 붙이는 ‘ㅇㅇ종결자’ 등등. 신조어를 이어 붙이면 또 다른 신조어가 된다.

드디어 서울에 왔다 알렉사 청
올해 많은 유명 패션 인사가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돌체앤가바나, 미란다 커, 스콧 슈만, 스텔라 테넌트, 위르겐 텔러, 그리고 알렉사 청. 모두 만나서 반가웠다. 그래도 가장 반가운 건 알렉사 청이었다. 멀버리 모델 자격으로 서울을 찾은 알렉사 청은 근사한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사진 속이 아닌 눈앞에서 웃고 있었다. 심지어 디제잉도 하고 돌아갔다.

드라마 속 패션 <최고의 사랑>
공효진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공효진은 멋졌다.걸 그룹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생계형 연예인인 구애정을 연기하기 위해 공효진이 선택한 방법은 디자이너 박승건의 의상을 입거나 자신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해 제작한 슈즈를 신는 것. 몇 회를 제외하곤 명품 브랜드의 협찬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매회 엄청난 화제를 낳았고, 국보소녀 구애정은 국보급 감각을 인정받았다.

아름다운 단어 에코 패션
올해의 에코 패션은 더 현실적이고 더 예술적으로 성장했다. H&M의 에코 컬렉션은 유기농 면과 리넨처럼 지속 가능한 소재에 매 시즌 다른 주제를 입고 새롭게 태어난다. 입생로랑은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천을 재활용한 빈티지 컬렉션을 론칭했고, 구찌는 매장에서 사용되는 포장지와 쇼핑백을 재활용 종이로 만들기 시작했다. 마르니에서 선보인 재활용 레코드 판으로 만든 액세서리 컬렉션은 창의력이 돋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코 패션에 관심을 갖고 소비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많아졌다.

올해의 백 네모난 클러치백
파티에서도 안 들던 클러치백을 옆구리에 낀 여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영상이 아름다워 샤넬
패션 브랜드가 만드는 영상은 광고를 넘어 단편 영화로 이어지는 쾌거를 이뤘다. 올해 쏟아져 나온 수많은 영상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칼 라거펠트 제작, 안나 무글라스 주연의 샤넬 2011 크루즈 컬렉션의 단편 영화!

올해의 걸그룹 패션 소녀시대
지금은 소녀시대. 알록달록 레인보우 팬츠를 입고 ‘지지지’를 부르던 소녀시대가 올해 성숙한 여인으로 돌아왔다. 날렵한 블랙 룩의 소녀시대는 이제 여인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올해의 협업 10꼬르소 꼬모 서울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은 올해 패션계를 관통했다. 해외 브랜드와 디자이너만 모셔가기 바쁜 협업 컬렉션 트렌드에 세련된 반전을 보여준 건 10꼬르소 꼬모 서울이었다. 국내 디자이너 스티브 J&요니 P와 박승건과의 협업 컬렉션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디자이너 의상을 소개했고, 국내 아이돌 그룹 빅뱅과 2NE1이 참여한 스마트폰과 랩톱케이스, 팝폰 등의 컬렉션은 협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참신한 시도를 엿보였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디자이너 조셉 알투자라
진보한 패션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패션은 외면당한다던 이소라의 말을 증명해주는 이가 바로 여기 있다. 올해 가장 주목받은 디자이너는 조셉 알투자라였다. 이견이 없다. 마크 제이콥스에서 시작된 그의 디자이너 인생은 프로엔자슐러와 지방시를 거쳐 2009년 자신의 레이블을 론칭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실용적이면서 세련된, 동시에 관능적인 옷을 만드는 그에게는 포스트 톰 포드, 헬무트 랭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작년 데뷔 2년 만에 CFDA 패션 어워즈 신인 디자이너 후보에 오르면서 기대주로 급부상한 그는 올해는 물론이었고 앞으로가 가장 기대되는 디자이너다.

아이돌 공항 패션 제시카, 믹키유천
케이팝 열풍으로 해외 공연이 많아진 아이돌 그룹이 자주 비행기를 탔다. 그 덕분에 스타들의 공항 패션에 대한 관심이 여배우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옮겨갔다. 각 그룹마다 특히 화제를 모으는 멋쟁이들이 있는데 소녀시대는 제시카, 원더걸스는 소희, 카라는 구하라, 동방신기는 유노윤호, 2PM은 닉쿤, JYJ는 믹키유천. 올해의 공항 패션 퀸은 제시카, 킹은 믹키유천!

올해의 레드 카펫 룩 레드 드레스
레드 카펫 위의 레드 드레스가 금기시되었던 때도 있었으나 올해 레드 카펫을 가장 화려하게 물들인 건 바로 붉은색 드레스였다. 국내에서는 김남주가 에르메스의 드레시한 레드 슈트를 입어 신선하다는 찬사를 받았고, 문채원은 얼마 전 열린 제 48회 대종상에서 레드 드레스를 입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해외에서는 앤 헤서웨이가 레드 카펫 위 레드 드레스, 레드 립 메이크업만 고집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올해의 런웨이 퀸 린지 윅슨
벌어진 앞니와 글래머러스한 몸매, 앳된 얼굴 등 린지 윅슨의 매력은 작년까지 각광받았던 모델의 기준과 요즘 서서히 뜨고 있는 모델의 기준 사이에 있다. 올해 메인 쇼 오프닝과 피날레를 도맡았던 린지는 런웨이에서 제일 잘나갔다. 마지막까지 린지 윅슨과 경합을 벌인 애리조나 뮤즈도 올해 기억할 만한 모델이다.

아쉽지만 안녕 유니클로 J 컬렉션
올해로 안녕이다. 유니클로와 질 샌더가 선보였던 ‘ J’ 컬렉션이 이번 가을/겨울 시즌을 끝으로 사라진다. 2009년 론칭해 2년 동안 총 5회의 컬렉션을 선보이며 뜨거운 매진 행진을 이어갔던 J, 꼭 다시 만날 수있기를. – 에디터 | 박선영

Part 3. Beauty

올해의 아이디어 입큰 아쿠아 쿨링 마스크 시트
마스크는 사는 족족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얼굴에 붙였을 때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은 성분과 상관없이 얼굴을 차게 식혀 모공까지 조여줄 것만 같아서. 반갑게도 입큰이 사용 전에 시트 마스크팩의 중앙을 두드리면 냉각제가 퍼져 순간적으로 마스크의 온도를 5℃ 낮추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올해의 기술 라프레리 셀룰라 파워 인퓨전
일주일 사용치가 들어 있는 앰플을 사용하기 전에 용기를 돌리면 보랏빛을 띤 파란색 세럼이 ‘찍’ 하고 올라온다. 이제 막 섞였을 때 생성되는 시너지 효과가 가장 좋기 때문이겠지만, 선정 이유에 시각적인 효과가 한몫한 것은 틀림없다. 그게 없었다면 로레알 프로페셔널 파리의 클렌징 밤에게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샴푸만 해도 머릿결이 몰라보게 좋아지는 바로 그 제품에게로 말이다.

올해의 향 동인비 동인비초 오일
엄마 화장품이라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홍삼의 향을 적절하게 조율해 냄새만 맡아도 건강해질 것 같은 이미지는 그대로,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오일을 조금 진득한 세럼처럼 느낄 정도로 잔향이 부드럽고 가벼웠다.

올해의 텍스처 더샘 젬 미라클 블랙펄
흑진주 느낌을 살린 검은색 젤을 바르면 하얀 거품이 생겨 피부 속으로 산소를 공급한다. 그렇게 생긴 거품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생크림처럼 탄력이 있어 마사지를 하기도 좋다.

올해의 작명가 베네피트 비라이트
‘비.라이트’. 단순히 얼굴을 환하게 한다는 ‘Bright’와 옳다는 뜻의 ‘Be Right’, 베네피트는 언제나 옳다는 뜻의 ‘Benefit is Right’ 등 익히 알고 있는 형용사 하나로 새로운 제품 라인의 성격을 한번에 전할 수 있는 이름을 만들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와서 화장품이 되었다.

올해의 PPL 드라마 <최고 의 사랑>
배우 차승원이 코를 킁킁대며 대사를 친다. “응? 어디서 구애정 냄새가 나는데?” 비오템 아쿠아수르스를 집 어 든다. “이거야, 이거.” 그게 광고라는 걸 누가 모를까. 그래도 보기 싫지가 않았다. ‘딜랑’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얼굴을 비쳤던 겔랑이나 대놓고 이름을 내걸었던 리:엔케이보다 더 오래 기억나는 것도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고, 캐릭터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올해의 캐릭터
원더우먼 별이 그려진 파란 핫팬츠와 빨간 튜브톱, 황금 머리띠와 팔찌를 두른 원더우먼. 어릴 적 그녀를 보며 자란 세대에게는 추억에 잠기는 컬렉션이었고, 놀랍게도 그녀의 이름만 들어본 세대에게는 맥을 위해 만든 캐릭터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녀가 맥의 메이크업 제품으로 세상 모든 여자의 개성을 찾게 해준다는 이야기 전개도 좋았다.

올해의 디자인 아벤느 D.E.F.I 용기
아벤느는 아예 밖의 공기를 100% 차단하는 멸균 용기에 크림을 담았다. 오염이 될 일이 없어서 방부제나 대체 방부제를 넣지 않아도 무균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개봉을 해도 권장 사용기한이 없는 게 특징이다.

올해의 목소리 SK-II 모델 유지태
SK-II 옴므 광고. 피테라를 처음 발견한 나이 든 주조사의 손을 나이 든 ‘남자’ 주조사의 손으로 강조하며 말하더라. 처음 듣는 이야기도 아닌데 나지막하게 깔리는 저음이지만 또렷한 발음과 울림 없이 선명하게 전해지는 배우 유지태의 목소리를 거치니까 묘하게 설득력이 더해졌다. 주변의 다른 남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고, 여자들까지 그의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에 동의했다.

올해의 세일즈 미샤 공병 이벤트
미샤에서 SK-II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를 다 쓰고 남은 공병을 매장에 가져오면 겉모양과 제품 콘셉트까지 비슷한 미샤의 타임 레볼루션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 정품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내년에는 비슷한 이벤트가 넘쳐날 것 같다. 자신감 넘치는 마케팅 효과 덕분에 미샤의 에센스는 출시 한 달 만에 3만 개 넘게 팔았으니까.

올해의 SNS 이니스프리
김연아의 일상 소식을 듣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트위터가 이제는 정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서비스가 됐다. 그 힘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는 브랜드는 이니스프리다. 실시간으로 이벤트를 공지하고, 브랜드 소식을 전하며 그날 그날에 어울리는 뷰티 팁을 주고 고객들이 올리는 질문과 불편 사항을 발 빠르게 처리한다. 덕분에 하나의 멘션을 올리면 그 글을 읽는 팔로워가 3만명 가까이 된다.

올해의 프로그램 온스타일 <겟잇뷰티>
해당 주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 일반인이 나와 생얼까지 공개하며 변신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줘 공감대를 형성하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저렴한 제품이 고가의 제품보다 많은 지지를 받는 모습을 통해 왠지 모를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간접광고 때문에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눈앞에서 펼쳐지는 변신 과정 때문에 방송 한 번 타면 매출이 두세 배 뛰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올해의 댄스 샤넬 셰이드 퍼레이드
완벽하게 꾸민 뮤지컬 무대 위에 손가락 댄서들이 등장한다. 화장대 앞에서 섹시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거울 앞에서 단체 댄스를 추며 그네를 타고 우아함을 뽐낸다. 오로지 르 베르니 드 샤넬(샤넬의 네일 에나멜 컬렉션)만 입고서 말이다. 영상의 말미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통해 손가락 댄서들이 입고 있는 네일 컬러의 이름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손가락 댄서의 춤을 감상하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Shade Parade’를 검색! – 에디터 | 황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