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끝에서, <얼루어>가 한 해를 다시 읽었다. 누가 누가 잘했나. 누가 누가 못했나. 그리고 어떤 것은 사라지고, 또 어떤 것은 전성기를 맞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그래서 내년이 더 궁금해지는 이것이 인생!

Part 1. Culture&ETC

올해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스티브 잡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작년 말 출간되어 올 2월부터 줄곧 베스트셀 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88만원 세대’가 된 것도 억울한데 ‘20대 X새끼론’까지 들어야 하는 것에 분노한 20대들이 비로소 쉴 곳을 찾은 것일까. 왜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가? 왜 사람들은 이 책을 소비하는가. 이것이 이 책을 주목해야 할 이유다. 한편, 스티브 잡스가 참여한 유일한 전기 <스티브 잡스>는 고인에 대한 추모 열기가 더해져 올 하반기 출판계의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독자들은 이례적으로 원서와 번역본을 비교해가며 충실하게 스티브 잡스 읽기에 도전하고 있다.

아이돌 대약진 인피니트, 카라
아이돌은 여전히 핫 키워드다. 김희철을 군대 보낸 슈퍼주니어, 올해 유독 사건이 많았지만 여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빅뱅 등 아이돌은 1주일 걸러 한 번씩 다른 나라행 비행기를 탔고, 아시아와 아메리카는 물론 유럽에서도 K-POP 콘서트를 열었다. 이제 형님이 된 아이돌의 틈을 비집고 ‘포스트 아이돌’을 꿈꾸는 어린 아이돌의 약진은 눈부셨다. ‘향수 뿌리지 마’로 누나들에게 비로소 존재를 각인시킨 틴탑도 있지만 올해 가장 높이 치고 올라온 아이돌은 인피니트다. ‘내 꺼 하자’는 특히 ‘모두 잠든 후에’와 흡사한 노래 구조로 20대 후반 누나들의 복고풍을 자극했고, 팔이 빠지진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절도 있는 안무는 섹시하기까지 했다. 일본에 진출해 이른바 ‘대박’이 난 카라는 올해 해체 위기를 매끄럽게 봉합해서, 일본 오빠, 삼촌팬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올해의 사건 서태지&이지아 비밀결혼
오사마 빈라덴과 카다피가 죽었다. 죽음은 기뻐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이 둘의 죽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에게 신세계를 열어준 스티브 잡스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모두가 슬퍼했다. 올해 일본 열도는 거대한 쓰나미로 흔들렸다. 강남 일대는 워터 월드로 변하며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다. 영화 <도가니>와 ‘고대 성추행 사건’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사람들을 화나게 했고, 네티즌이 판사의 ‘신상’을 터는 시대가 도래 했다. ‘나꼼수’ 열풍, 그리스의 경제 문제가 뒤흔든 세계 경제, 전례가 없던 무상 급식 투표 등 우리나라의 정치 문제, 온갖 무겁고 대단한 주제를 뒤로한 채 올해 최고의 사건을 ‘서태지 이지아의 비밀 결혼’이라고 선정한 것은, 앞으로 이렇게 충격적인 연예 뉴스는 다시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필 그게 서태지이고 이지아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 어떤 누가 비밀결혼을 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작정이다. 이 보도를 한 스포츠서울 기자는 연예부문 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오늘의 기자상을 탔다.

뜨거운 안녕 <무릎팍 도사>
2011년에 안녕을 고한 아까운 것들이 많다. 깊은 밤을 달래준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과 괴팍해서 더 매력적이었던 라디오 프로그램 <심야식당>이 폐지되었고, 신사동에서 무려 7년을 보내며 가로수길의 팽창을 지켜본 카페 블룸앤구떼가 문을 닫았다. 혜성처럼 등장해서 번개처럼 사라진 신라면블랙도 먼 훗날 전설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가장 아까운 것은 <무릎팍 도사>다. 강호동의 ‘잠정 은퇴’에 휘말려 폐지된 이 토크쇼는, 면죄부 방송이다 홍보용 방송이다 욕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잊지 못할 인물과 순간을 많이 선사해주었다. 모두들 뜨겁게 뜨겁게 안녕.

만인의 유행어 사실상
올해만큼 시민들의 풍자와 해학이 빛난 해도 없었다. 이명박 정권이 말기로 치닫고 한나라당에 대한 불신임, 서울 시장에 대한 불신임 등 풍자할 대상은 차고 넘쳤다. 올여름 강남 홍수를 빗댄 ‘무상 급수’와 포세이돈 포스터를 패러디한 ‘오세이돈’은 참 슬프면서도 웃겼다. 역지사지 정신의 무조건 수용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그랬구나… 이제야 알겠다’,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우월감을 앞세운 ‘보고 있나!’, 군대 간 현빈이 남기고 간 ‘장인의 한 땀 한 땀’, 모든 피로를 간 책임으로 치환한 ‘간 때문이야’를 제치고 올해 최고의 유행어를 ‘사실상’으로 선정했다. 무상 급식 투표 후 ‘투표율이 25%이므로 사실상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말은, 시장 선거 후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라는 두 번째 유행어를 제조했다. 요즘 개그맨들은 홍준표 대표를 가장 부러워할 것이다. 말하기만 하면 전국구 유행어가 되고 있으니.

배우의 재발견 한석규
감히 한석규를 재발견한다. 한때 충무로는 한석규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리를 송강호 같은 인물이 차지하며, 근래 한석규를 통 못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 이도로 돌아온 한석규는 역시 한석규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태조 이방원의 살기에 눌린 영민하지만 심약한 어린 세종을 연기하고, <티끌 모아 로맨스>와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 코너에서 장면 도둑 역할을 도맡은 송중기도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키스, 키스 허재훈 + 김옥빈
록 그룹 스키조의 리더이자 보컬인 허재훈과 김옥빈이 연인 사이라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머리를 닥터페퍼 딸기맛 핑크색으로 물들인 김옥빈이 펜타포트 무대 한가운데에서, 그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남자 친구의 입술에 공식적인 키스를 하는 그 순간은 놀라웠다.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러 가서, 순수하게 키스신도 즐겼다. 올해 가장 멋진 키스를 한 이 놀라운 여배우와 뮤지션에게 박수를. 그런데 조금 더 진하게 하지 그랬나! 당신은 로커가 아닌가!

광고가 즐거워 파이로드
올해도 광고의 홍수가 쏟아졌다. 전파 낭비가 분명해 보이는 광고도 많았지만 웬만한 TV 프로그램 보는 맛보다 더 훌륭한 광고들도 눈에 띄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차두리를 우리나라판 ‘간장 선생’으로 만든 ‘간 때문이야’는 피로에 지친 백성들을 미혹하기에 충분했다. ‘아이폰이 없다는 건, 이런 아이폰이 없다는 것’이라는 똑같은 간결한 카피를 지구촌 곳곳에 전파한 애플은 더없이 애플다웠다. 성질 급한 한국 사람이라서 웃기고 미안한 올레 광고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보편타당한 정서를 이용해 사람 마음을 참 뭉근하게 만드는 초코파이가 이번에도 한몫했다. 초코파이의 수출길을 ‘실크로드’나 ‘차마고도’에 비유한 ‘파이로드’가 그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슬픈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나는 얼어붙기도 합니다. 나는 녹아 내리기도 합니다. 나는 찌그러지기도 합니다. 세상의 온갖 근심도 제 자식 미소에 까맣게 잊는 사람’이라는 광고 카피가 비 내리는 수레 위와 부서진 초코파이로 깔리는 그 순간, 아버지가 초코파이를 사준 기억이 전혀 없는 나도 주책없이 울어버렸다. 초코파이는 지구를 25바퀴째 돌며 지구촌과 정을 맺고 있단다. 아울러 최악의 광고상은 ‘마치 나만 카레다… 라는 느낌?’이라는 카피로 사람들을 실소하게 한 카레 여왕과 ‘이 개또는 맛있는 개또다’라는 느끼한 발음의 ‘갸또 갸또’로 15초를 꽉 채운 갸또에게 바친다.

올해의 예능인 정형돈, 이승기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서 공동 수상이다. 한번 기세가 오른 정형돈은 명실상부 <무한도전>의 2인자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밀린 셈인 박명수는 그 스트레스를 역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노련함을 보여주고 있다. 체력적 문제로 ‘조정 편’에서는 미약하였으나 ‘무한도전 가요제’ 등에서 보여준 정형돈의 활약은 비할 데 없이 창대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떠오르는 예능인 정재형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이승기는 강호동의 하차로 중책을 떠맡게 되었다. 강호동이 그랬듯, “우리가 드디어 도착을 했습니다!”라며 형님들의 손을 잡고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를 도맡아 하는 <1박 2일>, 둘이 서던 자리에 혼자 서게 된 <강심장>은 신기하게도 이승기가 혼자 해도 썩 괜찮았다. 오히려 좀 더 편안해진 느낌도 있다. ‘애정남’ 최효종, <런닝맨>의 개리, <정글의 법칙>을 새롭게 정립한 김병만과 <개그콘서트>의 빛나는 주역 등 덕분에 웃고 살았다.

스포츠는 살아 있다 박주영
동시대에 이렇게 많은 한국 선수들이 프리미어 리그를 뛰는 모습을 보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아스날이 진짜로 박주영을 영입했다. 그리고 그는 골을 기록했다.<라디오스타>와의 전화연결 후 골을 넣고 김구라의 턱잡기 퍼포먼스를 실천한 기성용도 멋졌고 올 상반기를 지배한 이청용도 부상이 아까웠다. 그리고 어떤 감독도 해내지 못할 놀라운 기록을 세운 김성근 전 SK 와이번스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당신은 위대한 감독이었다. 삼성 라이온즈는 코리안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아쉬움을 풀었고, 기아 타이거즈는 모두의 염원대로 선동렬을 감독으로 모시며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올해의 트위터리안 김여진
김여진은 ‘소셜테이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가장 효율적으로 정착시켰다. 김진숙 위원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와 처음 포옹한 사람도 그녀였다. 여전히 트위터에는 조국도 있고 진중권도 있다. 하지만 트위터는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에게 ‘도대체 트위터가 뭐길래’라는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죄(?)는 김여진에게 있다.

올해의 TV SHOW <무한도전>
<런닝맨>의 상승세,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듯한 <개그콘서트>, <짝>이라는 기기묘묘한 프로그램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대세론을 뒤집을 순 없었다. 올해로 8년째인 장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여전히 멤버들과 함께 성장 중이다.
<무한도전>은 마치 우리 인생 같다. 시간이 가면서 뒤늦게 재능이 꽃피기도 하고, 서열은 곧잘 뒤집히며, 잘하는 게 있다면 못하는 것도있다. 그래도 웃는 게 남는 것이라는 사소한 지혜도 일러준다.

올해의 맛 꼬꼬면
이제 누군가에게 라면을 끓여줄 땐, 신라면 먹을래 너구리 먹을래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하얀 라면 줄까, 빨간 라면 줄까?’ 이경규가 <남자의 자격>에서 재미 삼아 개발했던 ‘꼬꼬면’이 대박을 쳤다. 덕분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너구리고, 덩달아 삼양의 나가사끼 짬뽕의 매출도 늘어났다. 하얀 라면이 트렌드가 되자 오뚜기는 바빠르게 ‘기스면’을 내놨다. 기스면이 뭔가? 닭육수에 가는 면을 넣은 중국식 국수다. 또 하나의 꼬꼬면이 등장한 것이다.

다시 들어야 할 음반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죽었다. 다시 앨범을 꺼내 들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나 정규 앨범을 많이 남기지도 않았다. 생전 마지막 남긴 레코딩은 토니 베넷과의 듀엣인 ‘Body and Soul’이다. 이 곡은 토니 베넷의 에 실려 있다.

올해의 과대평가 <슈퍼스타K3>
상금은 5억원으로 올랐고 엄청난 지원자가 몰렸다. 투개월, 버스커버스커가 준 깨알 같은 즐거움과 도전자라기보다 특별공연이라는 말이 어울릴 울랄라세션이라는 걸출한 밴드는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떠나서 감동과 즐거움을 줬다. 하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완성도에 관해서는 뭐라 말해도 입만 아플 지경이다. 이번 <슈퍼스타K3>는 임단장이 살린 셈.
SNS 중동혁명의 불이 붙은 데에 SNS의 역할을 강조한 것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모든 사회 이슈에 SNS의 영향력이 과대평가되고 있다. SNS는 ‘그들만의 리그’로 어떤 특수성을 띨 수밖에 없으며, 어떤 SNS 툴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즉, 일부가 주장하듯 다 SNS 때문은 아닌 것이다.

오! 나의 캐릭터 뽀로로
어린이들만 인정하던 뽀통령을 올해 드디어 전 국민이 인정했다. 뽀통령 부흥회, 뽀로로의 나라 등 2011년은 뽀로로의 위엄이 전 세계에 뻗친 해였다.

올해의 영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해리 포터와 그의 친구들의 대장정이 드디어 끝이 났다. 해리 포터 역을 맡은 대니얼 클리프트는 한 인터뷰에서, “극 중에서 우리 셋이 모두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한다”라고 밝혔다. 이제 해리 포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올해 한국 영화계는 <최종병기 활>, <써니>만 괄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올해의 스트레스 물가
올해도 물가는 끝을 모르고 솟았다. 특히 유류비와 전세값의 인상은 대중교통요금과 월세에도 영향을 주며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을 골치아프게 하고 있다. 내년엔 어떻게 안 되겠나.

올해의 드라마 <최고의 사랑>
순수하게 시청률만 따진다면 <싸인>과 <신기생뎐>에게 밀린다. 하지만 <씨크릿 가든>이 만든 드라마 팬덤을 이어간 것은 단연
<최고의 사랑>. 차승원이 독고진 캐릭터로 몇 개의 CF를 촬영했는지 셀 수도 없다. 게다가 사랑스러운 ‘띵똥!’까지.

올해의 과소평가 권상우, 신하균
권상우는 영화 <통증>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여전히 배우로서의 능력이 과소평가되고 있다. <고지전>의 신하균은 그 반대라서 문제다. 신하균은 충무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중 하나다. 사람들은 이제 신하균이 당연히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하균은 이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연기를 보여줬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그도 고수도 아닌 이제훈이었다. UV도 올해에 보여준 활동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웃고 지나치기엔 퍼포먼스와 음악성이 아깝다.

패러디의 여왕 iSad
잡스를 추모하며 그녀는 말했다. iSad. 사람들은 상대 진영이 흑색 선전을 하는 것으로 한동안 오해했다.

올해의 동네 가로수길
요즘은 모든 자본이 가로수길로 몰리고 있다. 쇠락한 압구정과 서브컬처의 본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리틀 도쿄화되고 있는 홍대 사이를 치고 올라온 가로수길. 점점 획일화되고 대기업 자본이 파고드는 가로수길은 예전처럼 여유롭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지만 이 기세는 앞으로도 몇 년간 유지될 것 같다.

여자를 위한 차 큐브
‘이효리 차’라는 깜찍한 별명처럼 닛산의 박스카 큐브는 깜찍하다. 지금껏 병행 수입한 우핸들을 잡고 고생했던 여자들은 닛산 큐브의 정식 출시를 환영했다. 게다가 2천만원대라는 가격도 매력적이다. 닛산의 큐브에 대항하는 기아자동차의 박스 카는 프로젝트 명 ‘Tam’을 버리고 ‘Ray’라는 진짜 이름으로 출시된다.

올해의 가슴, 다리, 배 신세경, 지나, 제시카
가슴 상은 신세경에게, 다리 상은 지나에게, 배 상은 제시카에게 바친다. – 에디터 | 허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