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심야식당> 말고도 재미있는 요리 만화가 이렇게나 많다. 식탐이 무르익어 가는 계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요리만화 16권을 소개한다. 가을의 과제인 미식과 독서가 한꺼번에 해결됐다.

1. 천하일미 돈부리
일본 라면과 카레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돈부리는 밥과 부재료의 밸런스가 관건. 주인공인 슈운은 돈부리 천재다. 슈운의 재능을 알아본 이는 채권자 토모히코로 악당인 줄 알았던 그는 알고 보니 ‘맛의 장인’을 선출하는 기관의 멤버로 빚을 받으러 슈운네 가게를 찾았다가 슈운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메뉴를 개발하라, 어느 대회에 나가라 등 빚을 빌미로 협박을 하지만 사실 다 슈운 잘되라고 하는 일이니 츤데레도 이런 츤데레가 없다. 크로켓동, 토종달걀더블동 등 이번엔 어떤 재료가 하얀 쌀과 조화를 이룰지 매번 선물포장을 푸는 기분이다. 학산문화사.

2. 라면요리왕
후지모토는 ‘회사를 다니는 것은 창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라고 말하며 자신의 라면 가게를 열 날을 꿈꾸는 라면 오타쿠다. 설렁설렁 다니던 회사가 라면테마파크 사업을 전개하면서 그의 활약이 시작된다. 라면테마파크는 일본의 쇼핑몰과 공항 등에서 볼 수 있는 라면 가게가 밀집된 지역. 라이벌 테마파크의 점주들과 겨루며 라면요리사로 성장해간다. <미스터 초밥왕> 같은 요리만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라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츠게멘 열풍, 돈코츠 라면의 매력, 뉴웨이브 라면 등 일본의 라면 트렌드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6권 완결. 대원씨아이.

3. 꼬르륵 소리
‘아마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나 봐요, 밥을 먹고 뒤돌아서면 다음에 또 뭘 먹지를 고민하니까요’라는 작가는 방대한 지식의 양을 자랑하는 까다로운 미식가가 아니다. 미야자키 현과 사이타마 현의 차이를 언급하며 꼬치의 지방색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마크로비오틱 푸드 같은 신조어를 소개하기도 하지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 <꼬르륵 소리>는 결국 소소한 푸드 에세이다. 한국 음식 편에서 반찬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을 ‘작은 접시의 것은 다 먹으면 더 달라고 하는 게 보통’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귀엽고 친근한 지점이 가득하다. 대원씨아이.

4. 에키벤
일본 여행이 늘 기대되는 이유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어느 소도시를 가더라도 재미있고 품질 좋은 특산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는 일본 철도에 오를 때에도 똑같이 발동한다. 역과 철도회사에 따라 무궁무진한 기차도시락, 에키벤을 맛볼 수 있으니까. <에키벤>은 바로 그 철도 도시락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다. 일본 열도의 철도 도시락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펼쳐지는훌륭한 요리책이자 여행 가이드북이다. AK 코믹스.

5.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
가족의 존재를 새삼 인식하는 것은 언제일까? 크리스마스, 소풍, 생일 같은 특별한 날, 의식적으로라도 서로 한 상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가 아닐까? 음식과 가족의 정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다카스기 가의 도시락>은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어떤 사정으로 함께 살게 된 사촌 남매가 도시락을 매개로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낯을 가리는 쿠루리가 사촌오빠에게 말로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도시락으로 표현하는 것. 주먹밥과 죽순밥, 샌드위치 등 메뉴와 함께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AK코믹스.

6. 오무라이스 잼잼
아내와 아들과 딸과 함께 베이징에 살고 있는 조경규 작가는 미식가다. 다만, 남다른 점이 있다면 ‘친환경’과 ‘유기농’이 음식의 품질을 정하는 시대에 화학조미료와 불량식품만의 미학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스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전작 팬더댄스 시리즈 보다는 좀 더 일상의 에피소드가 촘촘히 엮인 <오무라이스 잼잼>은 작가 가족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생활툰이다. 스타 셰프 토마스 켈러에 대한 이야기, 활명수 용기의 변천사, 한국 과자의 중국 포장지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음 웹툰 연재 중. 씨네 21. 북스.

7. 차이니즈 봉봉클럽
짜장면과 짬뽕이 유독 저렴한 이유는 박정희 정권 시절, 화교의 팽창을 막기 위해 음식 값을 인상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지만, 중화요리가 일부를 제외하면 한국에서 ‘고급 요리’로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한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을 것. 온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짜장면’에서 벗어난 중화요리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차이니즈 봉봉클럽>은 맛집 마니아들 사이에서 ‘바이블’로 칭송받는 훌륭한 중화요리 가이드북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용돈을 탕진하는 이상한 고등학생들, 차이니즈 봉봉클럽의 멤버들과 함께 본격 순례를 떠나고 싶은 마음, 누를 수 없을 거다. 씨네21 북스.

8. 맛의 달인
<아빠는 요리사>와 함께 장수 요리만화의 맥을 이어가는 <맛의 달인>은 이미 충분히 유명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토록 먹을거리와 사회, 환경 문제를 연결하는 종합 인문서 성격의 만화가 드물기 때문이다. 최고의 메뉴를 찾기 위해 일본 열도를 돌아다니는 주인공들은 농약 때문에 사라지는 곤충, 수입 목재 때문에 감소하는 송이버섯 같은 환경 문제부터 일본 정부가 유독 포경에 관대한 이유 등 정치적인 문제까지 현장에서 맞닥뜨리며 ‘음식’이 사회의 구조와 얼마나 조밀하게 엮여 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대원씨아이.

9. 어제 뭐 먹었었어?
<오오쿠>, <서양골동과자점 앤티크>의 작가 요시가와 후미의 요리 만화. 자신과 연인을 위해 매일 상을 차리는 주인공 카케이 시로의 요리는 ‘게이는 나중에 자식한테 의지할 수도 없으니 돈을 아껴야 해’라는 그의 말만큼이나 현실적이다. 남은 반찬과 어울릴지, 아스파라거스 한 단이 상하기 전에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 등 집에서 요리를 할 때 하는 고민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일품요리가 아닌 반찬 레시피가 많다는 것, 레시피의 기준이 2인이라는 것도 특징. 칼로리에 신경 쓰는 남자이기 때문에 토마토 참치국수, 죽순곤약조림, 배추유차무침 등 여자들이 더 좋아할 만한 메뉴가 속속 등장한다. 삼양출판사.

10. 키친
국어교사이자 가정주부, 엄마, 만화가인 그녀가 바라보는 식탁의 풍경은 따스하다. 결혼 전, 한국인 약혼녀의 집에 인사를 드리기 위해 설날에 시골집을 찾은 외국인 신랑은 하얀 국물에 만두, 노란 지단이 올라간 떡국이 눈 덮인 한국의 설 풍경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나 도망간 엄마를 향한 동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 졸이던 소녀는 점심 시간, 친구들과 양푼 비빔밥을 비비며 재빨리 모든 걸 섞어버리고, 모른 척하는 비빔밥처럼 친구들이 자신을 감싸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올 컬러 페이지로, 작가의 시각만큼이나 다채롭고 따뜻한 색깔로 그려진 음식들이 부드럽게 마음에 스민다. 마녀의 책장.

11. 여자의 식탁
결국 ‘먹고 싶다’는 마음이 일게 하는 것은 그 요리를 생각나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때 아닐까? 비가 내리는 저녁이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물 요리를 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마카롱을 떠올리며 이 디저트를 처음 알려준 도시에서 전학 온 새침한 여자친구를 떠올리는 <여자의 식탁>은 음식을 주제로 그에 맞는 ‘정서’를 가진 에피소드들을 진열한다. 친절한 레시피도, 기발한 메뉴도 없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의지가 밀물처럼 목구멍과 혀를 덮친다. 대원씨아이.

12. 미츠보시의 스페셜리티
미식학을 제창한 미식가 브리아 사바랭은 요리사의 위대함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것보다 인간의 행복에 공헌한다’. 요리에는 문외한이지만 기억력과 일솜씨만은 뛰어난 주인공 미츠보시가 프렌치 셰프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미츠보시의 스페셜리티>는 훌륭한 프랑스 요리 입문서다. 표현의 과장은 있지만 콘소메, 비앙드, 콩피 등 생소한 메뉴판 위의 프랑스어와 익숙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요리의 화려한 정신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대부터 인연이 얽힌 미츠보시와 젊은 프랑스 요리사 가뱅, 두 청년의 우정을 지켜보는 일이 흐뭇하다. 대원씨아이.

13. 치즈의 시간
<치즈의 시간>은 작화가 매력적이지도, 내러티브가 유려하지도 않다. 프랑스에서 치즈를 공부한 아가씨가 고국인 일본에 생소한 치즈가게(Les Fromages)를 열고, 사람들에게 치즈의 매력을 알린다는 것이 줄거리. 치즈를 ‘아기들’이라고 부르는 아가씨 레미의 치즈를 향한 마음은 신상 구두를 사랑하는 서인영의 사랑에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와인과 돈가스, 샌드위치, 파스타, 샐러드 등 어느 요리에나잘 어울리는 치즈에 대해 이렇게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만화는 드물다. 각 치즈의 유래와 특징을 정리해놓은 ‘치즈의 방’ 코너는 참고서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을 것. 조은세상.

14. 코알랄라!
다음의 인기웹툰 <코알랄라!>의 작가 야미를 독자들은 ‘악마’, ‘다이어트의 적’이라 부른다. 라면, 계란프라이, 치킨, 삼겹살 등 안 그래도 식탐을 억누르기 힘든 음식들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인증샷까지 곁들이니 그럴 수밖에. 바나나와 딸기잼, 돈가스 같은,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친숙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음식들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털어놓는다. 주요 감탄사는 ‘처묵처묵’과 ‘코알랄라!’. ‘코알랄라!’는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야미 표 감탄사다. 칼로리에 목 매느니 ‘코알랄라!’를 외치는 삶이, 진짜 잘 사는 삶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만화. 애니북스.

15. 대결! 궁극의 맛
<여자의 식탁>이 순정만화다운 서정적인 톤으로 ‘정서’를 환기한다면 <대결! 궁극의 맛>은 보다 노골적이다. <먹짱>, <먹짱갬블러> 등 박력 넘치는 요리만화를 선보인 츠지야마 시게루의 <대결! 궁극의 맛>의 배경은 바로 교도소. 교도소 음식에 질린 수감자들이 모여 앉아 ‘지금까지 먹은 것 중 가장 맛있는 음식’을 주제로 이야기 배틀을 시작한다. 주인공의 성장이나, 라이벌의 등장 같은 줄거리 진행에 관한 부담 없이 순수하게 ‘맛 자랑’에 집중하는 만큼 ‘묘사력’만 따지자면 다른 요리 만화보다 두 배는 더 군침이 돈다. 중앙북스.

16. 리틀 포레스트
<리틀 포레스트>는 시골마을에 사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만화의 배경인 코모리는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중심가까지 나가려면 자전거로 30분은 훌쩍 넘는 시간이 걸리는 시골 중의 시골. 직접 감주를 담그고 오븐 대신 스토브에 빵을 굽는 주인공의 식단은 하나같이 손이 많이 간다. 요리들의 레시피가 제법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배추와 수유나무, 머위 등 계절마다 산과 들에서채취한 재료를 가지고 차려내는 <리틀 포레스트>의 건강한 상을 따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먹는 행위를 단순히 자동차에 연료를 넣듯 여기는 요즘, 흙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나는 자연이 준 재료로 반나절, 때로는 며칠 동안 땀과 시간을 들여 먹을거리를만드는 모습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이 만화가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세미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