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모두 똑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불공평하다.

배우가 쓴 책의 공통점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다. 표지에서부터 잘생긴 얼굴로 유혹한다는 것.

인생은 모두 똑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만 빼면 모든 것이 불공평하다. 얼굴이 예쁘면 다리가 못생겼거나, 지적이면 가슴이 작거나, 모든 걸 다 갖췄으면 성격이 나쁘기라도 했으면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가끔 신은 어떤 사람에게 재능을 몰아주는 게 분명하다. 사랑받는 배우이면서 훌륭한 작가이기도 하다면? 바로 하늘의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이 아닐까.

영화 <청춘 스케치>, <비포 선라이즈>의 에단 호크는 90년대 청춘을 상징하는 스타였다. 짧게 자른 갈색 머리의 위노나 라이더와 긴 금발 머리의 줄리 델피와의 작업, 여신으로 불리던 우마 서먼과의 결혼으로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남자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그 무렵 에단 호크가 책을 쓴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것도 에세이나 사진집이 아닌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간된 책 <웬즈데이>는 호평 일색이었다. 물론 자신의 전 아내와의 사생활을 팔아 넘겼다는 가십도 따라다녔지만 독자의 대다수를 차지한 2000년대의 청춘들은 그가 적어 내려간 사랑과 이별에 깊이 공감했다. 에단 호크는 첫 작품이 결코 이벤트성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다시 출간했다. 배우와 작가를 겸업하는 역사는 제법 오래되었다. 시대를 풍미한 극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기하기 위해 무대에 올랐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정체에 대해 많은 설이 있으나 대문호인 셰익스피어 역시 배우 출신이라는 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귀족 출신이 대부분이었던 18세기, 19세기 문인들이 왕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무대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일본의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도쿄대 법대를 졸업한 수재였는데, 그 역시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책 표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섬세하고 기품 있는 외모를 가졌다. 생전의 미시마 유키오는 천재 작가 소리를 들었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뒤를 이어 언젠가 노벨 문학상을 탈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탐미주의자의 말로처럼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재건을 외치며 할복 자살했다. 사무라이의 전통을 따라 철저히 계획된 마지막 작품이었다. 일본 문학의 걸작으로 불리는 <가면의 고백>, <파도소리>, <금각사>에서 그가 남긴 예술을 볼 수 있다.

자신이 글을 쓰고, 배우를 하며 연출까지 하는 저력의 인물도 있다. 샘 셰퍼드는 미국에서 존경받는 극작가이며 배우다. 그는 1979년 희곡 <매장된 아이>로 퓰리처 상을 받았고, 미국 가정 문제를 다룬 3부작으로 불리는 <굶주린 층의 저주>, <트루 웨스트>도 현대 미국 사회의 폐부를 그린다는 평을 받았다. 한편 그는 <파리, 텍사스>처럼 아름답고 뛰어난 영화에 출연했는데 <필사의 도전>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스탠드업 코미디 배우 출신으로 극작가 겸 배우 겸 소설가 겸 재즈뮤지션이기도 한 다재다능 우디 앨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디 앨런은 꽤 다작을 하는 감독인데 그 와중에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는 우디 앨런의 단편집이다. 우디 앨런은 1960년대부터 <뉴요커>지에 단편소설을 기고했는데 대단한 인기였다고 한다. 우디 앨런의 영원한 주제인, ‘인간 군상과 도시 환경’에 대한 풍자와 해학이 여전히 살아 있다. 프랑스의 연기파 배우 실비 테스튀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다. <마이 디어 걸>은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의 존재를 거의 모르고 자란 그녀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여자라면 공감할 여지가 많은 성장 소설이다. 이 중에는 의외의 인물도 있다. 의학 드라마 <하우스>의 주연 휴 로리 역시 소설가라는 것! 알고 보니 휴 로리는 섹시한 천재 의사인 극중 인물과 실제가 굉장히 유사한 남자였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인류학과 고고학을 공부하던 시절부터 엠마 톰슨 등과 함께 ‘4인방’으로 불렸으며 조정 선수로 활동하는 팔방미인이었던 것. 그는 장편소설 <건 셀러>를 써서 출판사에 익명으로 보냈다. 자신의 유명세와 상관없이 작품을 평가받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게 휴 로리라는 걸 알게 된 편집자는 나중에 기절초풍했다고. <건 셀러>는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 소설로, 출간하자마자 영화 판권이 팔렸다. 하지만 그 후 바로 9.11 테러가 터졌고, 소설에 나온 사건들이 9.11 테러와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에 영화 제작은 지금까지 미뤄지고 있다. <건 셀러>의 국내 출판을 앞두고 출판사가 서문을 요청했더니 에이전트로부터 이런 대답이 왔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도 서문을 써준 적이 없습니다.” 휴 로리는 지금 <하우스> 한 회당 4억5천만원을 받으며 새 시즌을 촬영 중이고, 또 다른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세상 부러운 사람인 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