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각자의 이유로 서울을 떠났다. 떠난 그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는 8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통영에서 찾은 꿈
박소희 | 출판사 남해의봄날 기획편집자, 통영 거주 1년 차
통영에 내려가게 된 계기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직을 결심했다. 딱히 어느 지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어떤 일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했다. 가고 싶은 회사가 통영에 있었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막상 내려와보니 통영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하고 있는 일 책을 기획하고 편집한다.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아이디어를 내고, 회의를 통해 구체화한 뒤 저자, 디자이너, 작가와 함께 작업하여 다양한 콘텐츠를 책에 담아낸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즐겁게 일하고 싶다’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할 때 가장 즐겁다.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바다, 계절마다 맛보는 맛난 제철 음식도 큰 즐거움 중 하나다. 통영에만 있는 것 통영의 공기는 유독 청량하다. 그 맑은 공기에 계절마다 다른 꽃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가을이면 금목서, 은목서 향기가 어디를 가나 졸졸 따라다니고 지천으로 꽃과 나무가 피고 진다. 통영살이의 힘든 점 운전하는 게 싫어서 장롱면허로 7년을 살았는데 여기는 교통편이 어려워 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서울이 그리울 때 문화 생활이 하고 싶을 때. 다른 도시에 비해 문화와 예술이 발달한 곳이지만 그렇다 해도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보고 싶은 연극이나 영화, 전시가 서울에서만 할 때, 문득 서울이 그립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서울에 있고 지역에 없는 것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그 지역에만 있고, 그곳에서만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부산으로 간 셰프
김남준 | 레스토랑 ‘서울키친’ 오너셰프, 부산 거주 2년 차
부산에 내려가게 된 계기 평생을 서울에서 살다 보니 서울이 지루해졌다. 자연이 있는 곳에서 편안하고 여유 있게 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하다가 여행으로 찾은 부산에 눌러앉게 되었다. 부산이어야 하는 이유 편안함도 좋지만 편리함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부산은 자연과 도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다. 하고 있는 일 식사와 음료,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서울키친’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유기농 설탕과 천일염을 사용하고, 가까운 시장에서 가장 좋은 재료만 엄선해서 사용한다. 가끔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음악밴드의 공연이나 신진 작가의 전시를 선보이기도 한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서울에서는 친구들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오히려 이곳에 내려오니 자주 만나게 된다. 일부러 내려오는 친구도 많고, 부산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왔다가 들르는 친구들이 많아 사이가 더 돈독해졌다. 부산에만 있는 것 자연. 여유. 희망. 부산살이의 힘든 점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없다. 멀리서 레스토랑을 하다 보니 서울 지인들의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할 때 가장 아쉽다. 서울이 그리울 때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서울의 옛모습이 나왔을 때. 사실 아직까지는 그렇게 그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외에 달라진 것 경제적으로 서울보다 훨씬 여유롭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졌다.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즐기고 행복하기 위해 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지금 그것을 하나씩 실천해가고 또 준비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느낌이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생각보다 할 일이 없을 수도, 많을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버릴 줄 알아야 얻을 수 있다는 거다.

양양의 바다 위에서
김성호 | 서핑숍 ‘서프스업’ 대표, 양양 거주 2년 차
양양에 내려가게 된 계기 어느 날 우연히 피에르 상소의 <느림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늘 바쁘게 살았고, 나름 만족하며 살아왔는데 이 책은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하며 ‘느리게 사는 삶’을 권하고 있었다. 이후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느리게 사는 삶이 가능한 곳을 찾게 되었다. 양양이어야 하는 이유 서핑을 시작하면서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 확신했고, 앞으로의 시간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도가 좋아서 원 없이 서핑을 할 수 있는 양양이 적격이었다. 하고 있는 일 서핑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함께할 만한 작은 공간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서핑숍을 열게 되었다. 서핑용품 판매 및 대여, 서핑 강습, 숙박을 겸하는 서핑숍, ‘서프스업(Surf’s up)’을 운영하고 있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혼자 한가롭게 바닷가를 거닐며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매일 아침 동해의 일출을 바라볼 때. 양양에만 있는 것 서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파도 그리고 선명한 무지개. 양양살이의 힘든 점 집과 건물이 오래되어서 겨울이 되면 웃풍이 심하고, 아직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기름값이 만만치 않다. 서울이 그리울 때 아직 시골 생활에 100% 적응한 상태가 아니라서 문득 도시의 자극적인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느림이란 게으름이 아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인생을 바로 보자는 의미이다. 삶의 목표가 확고히 섰을 때, 혹은 자신을 잃고 살고 있다 느낄 때 도전하는 것이 좋다.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낭비하지 말길.

놀면서 일하는 연출가
이가영 | 공연창작스튜디오 ‘페이스’ 대표, 제주도 거주 4년 차
제주도에 내려가게 된 계기 업무차 제주에 출장을 왔다가 제주에 반했다. 출장 다음 주,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다시 제주를 찾았고 시세나 알아보겠다고 들른 부동산에서 덜컥 집을 계약했다. 즉흥적이었지만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주도여야 하는 이유 모두가 알고 있듯 아름다운 섬이고, 서울과는 다른 템포로 살 수 있을 것 같은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바다가 코앞이라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하고 있는 일 음악극 연출을 전공했고, 서울에서 연출부 및 기획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제주에서도 여전히 공연 연출을 하고 있고,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꿈꾸는 고물상’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적 작업을 ‘놀면서’ 하고 있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거의 항상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끔 서울에 가면 공항에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의 표정 없는 사람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제주도에만 있는 것 바다, 남의 눈치 안 보는 실용적 생활태도, 느림의 미학. 제주살이의 힘든 점 가끔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이 그립다. 그리고 서울과 비교해 직접 구입할 수 있는 품목이 한정적이라 인터넷 구매를 하다 보니 비싼 배송료와 오랜 기다림을 감수해야 한다. 서울이 그리울 때 거의 없다. 오히려 이곳에 있으면서 친구들을 더 자주, 진하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달라진 것 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타고난 야행성의 본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또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기쁘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유자적하는 베짱이 생활에 환상을 갖고 무작정 떠날 일은 아니다. 노는 만큼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즐기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힘들다. 지역마다 그곳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지인과지역의 문화에 먼저 다가서야 행복한 지방생활이 가능하다.

울진에서의 두 번째 삶
김해나 | 한울원자력발전소 시운전실, 울진 거주 1년 차
울진에 내려가게 된 계기 전공을 살려 발전 회사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중 하나인 한울원자력발전소에 발령을 받아 울진에 오게 되었다. 원자력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 때 바닷물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바닷가 근처에 발전소가 있다. 하고 있는 일 발전소를 다 지으면 전기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설비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지 그 성능을 시험하는 일을 한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고, 여가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울진은 강원도와 경상도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어 산과 바다에서 즐기는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교통체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것도 만족스럽다. 울진에만 있는 것 휴식시간에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서 바다를 보며 동료들과 티타임을 즐긴다. 새파란 바다와 푸른 하늘이 경계 없이 하나가 된 풍경을 볼 때 업무로 인해 쌓인 피로가 싹 풀린다. 대부분 타지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라 취미활동도 함께하는 편이다. 동료가 아닌 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서울이 그리울 때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싶을 때, 노트북 수리를 맡겨야 해서 서비스센터를 검색했는데 가장 가까운 곳이 300km 떨어져 있을 때,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싶을 때. 그 외에 달라진 것 여가 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리도 하고, 책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제철을 따져가면서 대게, 과메기 같은 이곳 특산물을 먹곤 한다. 점심시간에는 꼭 산책을 하고 배드민턴과 골프를 배우고 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현재를 즐기기 위한 선택
우여정 | 다음 콘텐츠 기획자, 제주도 거주 1년 차
제주도에 내려가게 된 계기 어느 날 문득 ‘더 나이 들기 전에 현재를 최대한 즐기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팍팍한 서울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 생각했다. 제주도여야 하는 이유 서울에서도 다음(Daum)에서 일했고 감사하게도 회사의 본사가 제주도에 있어 기회가 주어졌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였기 때문에 생각의 현실화가 가능했다. 하고 있는 일 다음의 첫 화면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다음을 찾는 이들이 첫 화면에서부터 웹서핑을 즐길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승마를 하기 위해 멀리 가지 않아도 될 때. 차 타고 5분만 가면 바다가 보이고 한라산이 보이고 흐드러진 억새꽃을 볼 수 있다. 신선한 바다요리와 맛있는 귤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제주도에만 있는 것 내 마음의 여유, 그리고 진한 고기 국수. 제주살이의 힘든 점 택배를 시키면 도서지방 추가 요금이 붙는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길 기회가 부족하다. 서울이 그리울 때 제주에는 낙엽 지는 나무가 많지 않아 사계절 푸르른 나무가 많다. 때문에 지난가을,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가 그리웠다. 그 외에 달라진 것 서울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짜증스럽고 피곤했는데 제주에서는 그 시간들마저도 여행하는 기분이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바닷가 선생님의 나날
서신아 | 초등학교 교사, 포항 거주 2년 차
포항에 내려가게 된 계기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대도시에 사는 것이 장점이 더 많은 시대이지만 살면서 한두 번쯤 모험이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늘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혼자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고 있는 일 오전 8시 40분까지 출근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3시에 수업이 끝나면 그때부터 다음 날 수업 준비,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공식 퇴근시간인 4시 40분을 넘기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어느 직업보다 개인 시간이 많은 건 확실하다. 초등학생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하루하루가 꽤 다이내믹한 편이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혼자 여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소소하게 감동받는 일도 많다. 포항에만 있는 것 여유로운 운전 문화. 나만의 여유시간, 그리고 사랑스러운 제자들. 포항살이의 힘든 점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맛집이 많다지만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 그 외에 달라진 것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여유가 생겼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안일하다거나 나태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울에 있을 때는 사람과의 관계를 소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비해 이곳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어디서 일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먼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고 어디서 어떤 일을 하든 태도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경험해보건대, 지방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더 만족스럽다.

포항으로 내려간 공대생
김정우 | 포스코 기술연구원, 포항 거주 3년 차
포항으로 내려간 이유 대학원 다닐 때 포스코의 위탁 과제를 수행하게 되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현재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원 부서가 포항에만 있었기 때문에 포항에 발령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회사의 비전을 믿고 준비하던 유학까지 접고 내려왔다. 하고 있는 일 포스코 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한다. ‘제선 공정’이라 불리는, 제철 공정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떻게 하면 공장을 잘 돌릴 수 있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내려오길 잘했다 싶을 때 나름 화려한 서울 생활을 접고 지방 생활을 하려다 보니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서만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점심시간에 근처 해수욕장에서 놀기도 하고 저렴한 가격에 해산물을 배부르게 먹는다. 포항에만 있는 것 아무리 바닷가지만 가장 맛있는 회는 서울에 있다고 하지 않나. 하지만 포항에는 진짜 맛있는 과메기가 있다. 포항살이의 힘든 점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있으니 가장 힘든 건 외로움이었다. 그래서 취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회사 내 밴드팀에서 기타를 치며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다. 또 야구부에도 가입해 주말마다 야구를 한다. 서울이 그리울 때 공연에 쓸 기타 용품을 사기 위해 악기 가게에 갔는데 그저 한숨만 나왔다. 당장이라도 서울 낙원상가로 뛰어가고 싶었다. 포항에 정을 붙이고 살고 있지만 서울은 언제나 그립다. 내 청춘과 낭만이 있는 곳이니까. 지방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있을 건 다 있고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똑같다. 미리 겁먹지 말고 부딪쳐보길.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거다. 단, 약간의 외로움은 각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