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10년 동안 조직형 인간이라고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던 내가 프리랜서로 독립했을 때, ‘알고 보니 나도 프리랜서형 인간이었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2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내가 조직형 인간이구나’라는 사실이었다.

2년 남짓한 프리랜서 생활을 마치고 잡지사로 돌아온 나에게 후배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선배, 그 자유로운 프리랜서 생활을 왜 그만두셨어요?” “수입도 더 많지 않아요?“” 프리랜서 하는 동안 여행은 자주 다니셨어요?” “프리랜서가 되면 하기 싫은 일은 안 해도 되니 좋지 않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작 프리랜서 친구들은 내 취업을 두고 동료들과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축하해. 안정적인 게 더 좋지.“ ”동료들과 함께 일하니까 외롭지 않겠다.” “냉정한 클라이언트보단 지독한 상사가 낫지” 라고 말했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회사원은 프리랜서 생활을, 프리랜서는 조직에서의 생활을 꿈꾸고 있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한 프리랜서 친구는 “너, 이제 회식할 수 있겠다. 부러워”라고 말했을 정도. 조직에 속한 회사원들은 ‘직장 상사와의 지겨운 회식이 뭐가 부러워?’라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프리랜서는 직장 동료와의 잠깐 수다, 매일 함께하는 점심식사, 회식 등이 그립다. 나도 그랬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식의 소중함을 몰랐지만,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밥도 늘 혼자 먹어야 하고 송년회도 없는 혼자만의 사회생활이 외로웠고, 회식하러 가는 친구를 부러워하곤 했다. ‘부럽다’고 입 밖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지만 말이다.

알고 보니 나 프리랜서형 인간이었나봐!
물론 내가 회식 때문에 회사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들쭉날쭉한 수입 때문에 생활고를 겪은 적도 없다. 새벽 5시까지 드라마를 보면서도‘ 내일 아침에 출근하려면 지금 안 졸려도 좀 자둬야지’ 라는 강박관념이 없는 프리랜서 생활은 자유로워 좋았다. 직원 연수, 서류 작업, 진행비 정산 등의 잡무가 줄어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사적인 시간이 많아졌고, 일한 만큼 보수가 보장되니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수입도 늘었다. 그리고 프리랜서가 되니 섹스 칼럼니스트, 단행본 기획자, 웹 매거진 편집장 등으로서 평소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도 꽤 만족스러웠다.

‘현재’를 즐기면서 사는 내 모습이 부러워 보였는지, 후배들은 회사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내게 전화했다. 당장이라도 사표를 날릴 것 같은 목소리로“ 저, 프리랜서 할까요? 제가 프리랜서에 어울릴까요?”라고 물었다. 회사에서 나오고 싶어 하는 후배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선배, 일은 많아요? 제가 프리랜서가 되면 저를 찾는 곳이 있을까요? 아무도 일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요?”라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언뜻 보면 프리랜서가 편해 보이지만, 상사가 아무리 별로라고 해도 클라이언트보다는 인간적일걸? 상사는 대부분이 손윗사람이지만, 클라이언트는 나이가 아주 어린 경우도 많아. 어린 클라이언트가 꼬박꼬박‘ OO 씨’라고 부르면서 명령조로 이야기하거나,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면서 A급 결과물을 B급으로 수정하라고 할 수도 있어. 밖에 나와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란다”라고 다독이곤 했다.

프리랜서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프리랜서가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든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은 대부분 회사원의 일, 프리랜서는 ‘주어진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회사에 남으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런데도 후배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막무가내였다. “선배, 저 나가면 굶어 죽지는 않겠죠?” 생각해보니, 나 역시 프리랜서가 되기 전에 선배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었다. 그때 선배들은 “일단 프리랜서가 되면 내가 일을 찾지 않아도 일이 굴러들어오는 경우가 많더라. 내가 회사 그만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속속 일거리가 찾아 들어와. 일 걱정은 안 해도 될걸?” 이라고 말했다. ‘설마’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내가 프리랜서로 독립하고 보니 정말 그랬다. 사실 프리랜서가 필요한 업무는 어느 분야에나 있게 마련이다. 실력이 좋은 프리랜서에게는 부가가치 높은 일이 들어오고, 실력이 좀 떨어지는 프리랜서에게는 부가가치가 낮은 일이 들어올 뿐, 어느 분야건 프리랜서 일이 없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세상은 넓고 클라이언트는 많다.

프리랜서에게는 자기 관리가 더 중요해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모든 것이 나 하기 나름’이었다. 그런데 자유로운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 달콤했던 자유가 결국 문제가 되었다. 지각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장점이었던 나, 아침형 인간이었던 나조차도 프리랜서 생활 1년 만에 올빼미형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매일 아침 11시쯤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으니, 저녁 6시에 일을 끝마칠 수가 없었다. 매일 야근을 할 수밖에. 그러니 아침엔 다시 늦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여행? 밀려드는 일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니면 정해진 휴가가 있고 그 기간에는 공식적으로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휴가를 떠나기가 더 힘들어진다.

아무리 능력 좋은 프리랜서라도“ 휴가 기간인 보름 동안은 일을 받지 않겠어요!”라고 선언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이뿐인가. 모처럼 휴가를 떠나도 클라이언트는“ 실장님, 어떻게 해요. 급한 수정사항이 생겼어요!”라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온다. 그러니 정해진 휴가는 없어지고 일만 많아진 나는 건강까지 해치고 말았다. 기자 생활 12년 동안 멀쩡했던 내 위가 손상되고 말았던 것. 의사는 “위염 증세가 있어요. 규칙적인 생활과 규칙적인 식사가 급선무예요”라고 진단했다. 나는 십수 년 동안 프리랜서로 왕성하게,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방송인 김태훈에게 S.O.S를 쳤다“.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 2년 만에 생활 패턴이 무너져버렸어. 대체 어떻게 관리해?”라고 물었다. 그는 내게 훈계부터 늘어놓았다“. 프리랜서에게 자기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아? 내가 아침마다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프리랜서는 체력이 무기야. 몸 망가지면 일도 하기 싫어지니까 운동부터 시작해. 몸이 건강해지면 일에도 활력이 생겨. 그리고 일은 보수에 관계없이 재미있는 일이면 일단 하는 게 좋아. 클라이언트에게 일을 많이 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거든. 그게 잘 나간다는 의미니까. 내가 아는 선배는 10만원짜리 일도 받고, 100만원짜리 일도 받고, 30만원짜리 일도 받았대. 그걸 3년 정도 했더니 10만원짜리 일은 없어지고 100만원짜리 일만 남더란다. 처음부터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지. 또 하나, 프리랜서에게 가장 위기는 슬럼프에 빠졌을 때야. 대부분 프리랜서는 슬럼프에 빠지면 일을 줄이고 일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하는데, 난 그거에 반대야. 슬럼프일수록 일을 꾸준히 하면서 감각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회사 생활의 장점이 바로 그건데, 회사에서는 일개 직원이 슬럼프에 빠졌다고 일을 줄여주지 않잖아. 슬럼프에 빠졌을 당시에는 좀 힘들지만, 이 악물고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 새 슬럼프에서 빠져 나온 경험이 있지 않아?”라고, 프리랜서 생활로 겪게 되는 몇 가지 고비에 대해 조언했다. 감정 기복이 크고, 감정적으로 허약한 사람일수록 프리랜서보다는 동료의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업무 사이클이 규칙적인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정서적으로 더 이로울 것이다.

회사가 내게 해주는 것은 의외로 크다
회사로의 복귀를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팀워크’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 잘 맞지 않았다. 사무실에서건, 집에서건 혼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 동안에도 외로웠다. 동료에게 ‘아, 정말 피곤하지 않니?’라고 말이라도 걸면 조금 나을 것 같았다. 상사, 동료, 선배, 후배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면서 웃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또한 일에 과부하가 걸릴 때마다 회사가 그리웠다. 프리랜서로 생활하다보면 D-day가 목숨보다 중요해서 가끔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을 제출할 때가 있곤 했다. 그때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상사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완성도를 높일 때까지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 프리랜서가 되니 일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일에 더 속박되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나, 취직할래”라는 내 결심을 들은 프리랜서 선배는 “야, 이제 자리 잡았는데 회사 들어가는 거야? 넌 참 어쩔 수 없는 조직형 인간이구나!”라며 나를 비웃었다. 그녀는 “조직에서 뼈빠지게 일해봤자 회사의 돈을 벌어주는 거잖아. 네 사업을 하면 하는 만큼 버는 거고. 왜 회사 좋은 일을 해주냐? 난 싫다. 게다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이제는 상상할 수 없고!”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물론 낮 2시까지 늦잠도 자고 싶고, 북적거리는 주말 대신 평일 낮에 대중목욕탕을 즐기고 싶고, 하기 싫은 일이 주어질 때는 “제가 스케줄이 안 돼서요!”라고 거절하고도 싶다. 하지만 상사, 후배들과 기획회의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나눌 때, 여러 화제의 인물을 만날 때, 잡지를 매개로 해외 아티스트와 협업을 할 때, 회사에서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정보를 줄 때, 한 번의 실패를 겪고 상사에게 ‘ 다음엔 잘하자’는 위로를 받으며 다음 기회를 얻을 때, 그리고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면서 문득문득 나는 회사로 돌아오길 정말 잘했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 내 옆에 동료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도 내 마음에 위안이 된다. 먼 길을 돌아 회사원으로 돌아온 나는 요즘, 행복하다. 프리랜서일 때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