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이 하나도 없어도 카드 한 장만 있으면 하루는 물론 바다 건너 여행까지 갈 수 있는 시대. 카드 세상 속을 유영하는 우리가 조금 더 영리하게 카드 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이 있다면? 지갑 속의 카드를 들여다보고 고민에 빠졌다. 무엇을 빼고 더할 것인가?

구보 양은 이달도 어김없이 메일함에 도착한 카드고지서를 열어놓고선 회상에 잠겼다. 과장을 손바닥만큼만 보태면, 10년 전에는 신용카드가 있다는 것이 부의 상징이자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구보 양이 기나긴 수험생 생활을 마치고 캠퍼스에 들어간 순간 세상이 개벽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에 대한 반동으로 소비 심리가 엄청나게 상승하던 시기였고, 대학가 근처에 카드오빠, 카드 언니, 카드 아주머니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구보 양도 그런 카드 언니 오빠에게 붙잡혀서 생애 첫 카드를 만들었었다. 영화 할인에 유혹당했는지, 백화점 3개월 무이자에 끌렸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카드의 후폭풍은 적지 않았다. 카드값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 사채까지 끌어 쓴 사람들이 연일 신문 지상과 브라운관을 오갔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구보 양은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었지만 사실 카드 값 때문에 적금을 깨본 적이 있는 그녀였다. 단 사흘 연체되었을 뿐인데 카드사의 빗발치는 전화를 받은 구보 양은, 다시 연체를 하면 내가 구보가 아니라 구봉이다 라는 뼈 아픈 교훈을 얻었고, 그건 어엿한 사회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구보 양은 오늘도 카드로 가득한 지갑을 손에 쥐고, 발소리도 경쾌하게 집을 나선다.

구보 양은 주말에는 직접 자신의 차를 운전하고, 주중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가 그녀의 주요 이동 수단인데, 특히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택시비 요금이 월등히 치솟는다. 예전에는 현금을 인출해도 택시비로 금방 소진되기 마련이었지만. 택시가 머리 위에 카드 가능 표시를 달고 다닌 후로는 한결 편해졌달까. 집에서 회사 앞 정문까지나온 요금은 4천6백 원. 예전에는 이 정도 요금을 카드로 계산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택시 아저씨가 먼저 잔돈 주기 귀찮으니 카드로 계산하라고 말할 정도니 세상 참 좋아졌다. 구보 양은 택시 요금을 할인해주는 신용카드로 계산을 한다. 택시, 지하철, 버스 요금의 10%를 5만 원 한도로 할인해준다. 전달사용 실적이 20만 원에서 30만 원은 있어야 하지만, 카드 결제를 생활화하는 구보 양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술자리가 많은 연말연시에는 카드사들의 대리 운전 서비스까지 알뜰하게 이용했다. 카드사 ARS를 통해 대리 운전을 신청하고 카드로 결제하면 요금의 10%를 할인받을 수있고, 대리 운전비도 카드로 결제할 수 있다. 카드사에 어디서 타고 내렸다는 기록이 남으니, 연약한 여자인 구보 양은 조금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주유비와 교통비로 매월 3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구보 양은 버스와 택시비까지 아낄 수 있다니 과연 좋지 아니한가라고 생각한다. 내친김에 파리바게트와 세븐일레븐에 들러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고, 아침 시간에 제과점과 편의점 구매 금액을 할인해주는 카드로 계산을 했다.

식사 중에 설 전에 보너스가 나온다는 소식을 접한 구보 양은 뛸뜻이 기쁜 표정으로 달력을 본다. 설 연휴는 수요일부터 금요일. 야호! 주말을 붙여 무려 닷새의 휴가가 생긴 것이다. 이때 집에 있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든 구보 양은 가까운 홍콩이나 방콕이라도 다녀오겠다는 마음으로 할인 항공권을 알아본다. 하지만 남은 티켓이 있을 턱이 없다. 이때 구보 양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열어본 웹사이트는 항공사의 마일리지 클럽. 그간 카드 생활을 하며 마일리지 카드에 집중 투자한 덕분에 그녀는 안 먹어도 배부를 만큼의 마일리지를 가지고 있었다. 마일리지를 쓸 수 있는 이코노미클래스의 보너스 항공권은 이미 자리가 없을 것을 잘 아는 구보 양은 처음부터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공략한다. 경험상 비즈니스 클래스는 여석이 있기 마련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드문드문 좌석이 남아 있다. 빠르게 좌석을 예약한 구보 양은 떡 본 김에 제사까지 지낸 것 같아 아주 흐뭇하다. 면세점 할인도 받고, 공항 라운지도 무료로 이용하고, 카드사 제휴프로그램이 더욱 적극적인 해외에서도 레스토랑과 스파, 호텔 등에서 할인 받을 생각을 하니 더 기쁘다. 내친김에 카드사 웹사이트에 접속해 해외 제휴 스폿 리스트를 뽑아서 일정을 짜야겠단 생각까지 한다.

물론 구보 양도 자신이 너무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한적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각 백화점 별로 있었던 백화점 신용카드를 주요백화점에서 무이자와 5%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카드 한 장으로 정리했다. 그리고 학생시절 놀이공원 할인과 학원 할인에 혹해 만들었던 각종 여성친화적 카드도 해지했다. 과거에는 두루뭉실하게 이것저것 혜택을 주는 카드가 많았다면, 이제는 카드사들도 영리하게 머리를 써서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히 간파한 카드를 내놓기 때문에 굳이 과거의 카드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게 번거롭긴 하지만, 구보 양은 카드 지갑을 별도로 마련하는 것으로 복잡한 지갑 속을 정리해버렸다. 간혹 주변에서 구보 양의 카드를 보며 기겁을 하거나 걱정 어린 조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용도가 나빠진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구보양은 7~8장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같은 카드사의 카드는 여러 장 가지고 있어도 한도가 통합되어 한 장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같은 카드사에서 용도별로 신용카드 여러 장을 가지고 있는 편이 유리하다는 것도, 신용도는 대부분의 카드사에서 단 한번 조회되고 말뿐이란 것도 모두 카드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한 달에 각기 다른 카드사의 카드를 여러 장 만들지 않는다면, 카드 값을 연체만 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적어도 카드 한 장 쓰지 않는 옆자리 동료보다 신용도가 높았다. 구보 양은 카드 권하는 사회에서 잘사는 방법은 카드를 더 잘 이용하는 것이라고 웃음 지으며 이번엔 더 획기적인 혜택을 약속하는 카드가 없나 뉴스를 검색했다. 브라보, 카드 라이프를 외치면서.

내게 필요한 카드는 무엇인가?

1. 공연과 책을 사랑한다면?
YES24-현대카드M. 현대카드가 의욕적으로 진행하는 슈퍼콘서트와 슈퍼 매치를 20% 할인 가격으로 고를 수 있다. 늘 화제의 인물을 섭외하는 까닭에 늘 빠르게 매진되며, 초대권이 거의 없는 것으로 유명한 공연이 현대카드 콘서트. 그래서 현대카드 미소지자들이 주변 현대카드 소지자에게 대신 ‘구매대행’을 부탁하는 일도 제법 목격되는데, 이 카드는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공연을 20% 할인받을 수 있고, Yes24에서 연중 구매 금액의 5%를 할인해주며 1년에 네 번 2천원 할인쿠폰을 쓸 수 있다.

2. 맛있는 점심과 커피를 즐긴다면?
시티 클리어 카드. 신용카드 정보 사이트인 고릴라카드에서 선정한 직장인을 위한 카드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신용카드다. 점심값 할인은 물론 음료 할인, 대중교통 할인 혜택도 두루두루 잘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 전월 20~30만원 정도의 이용 실적을 요구하는 타 카드에 비해 15만원만 사용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주로 쓰는 카드에 더해서 이용하기 편하다.

3. 한눈 안 팔고 항공 마일리지만 모은다면?
우리 BC S-Oil 스카이 패스 카드는 대한항공 마일리지를, 시티 아시아나 카드는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모으는 데 유리하다. 연회비가 비싸고 가입 조건은 까다롭지만 시티 프리미엄 카드는 마일리지 적립 조건이 가장 좋다. 마일리지는 추후 호텔 예약이나 렌터카, 영화 감상 등 다양하게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항공권을 예약하는 것이 가장 남는 장사. 그중에서도 미국 뉴욕행 직항편을 끊으면 마일리지 잘 모아서 잘 썼다는 소릴 들을 수 있다.

4. 병원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종이 몸이라면?
현대카드H. 병원비가 만만치 않은 당신. 환절기에 두 번씩 걸리는 감기와 겨울마다 치르는 독감, 여기에 치과에다 한의원에서 보약까지 지어 먹는다면 병원비에 허리가 휜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전국의 모든 종합병원과 일반병원, 한방병원, 약국, 종합병원 부설 센터를 제외한 건강검진에서 3~1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전월 이용 금액에 따라 3~10%까지 할인된다. 병원과 약국은 월 최대 1만원, 건강검진센터는 연 1회 10만원 한도.

5. 올해 새 차를 살 생각이 있다면?
하나SK 매일 더블 캐쉬백 체크카드. 신용카드로 새 차를 사는 건 생각보다 쏠쏠하다. 할부금융 취급수수료와 중도상환에 따른 수수료, 근저당 설정료가 들지 않아 총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 게다가 워낙 고가의 상품이다 보니 포인트를 잔뜩 적립할 수 있다. 하나SK 매일 더블 캐쉬백 체크카드는 자동차 구입 시 1천만원 이상 1.5%를 현금으로 캐쉬백 해준다. 차량을 살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할인이 가능하다. 경쟁이 심해져 초저금리로 할부를 선택할 수도 있고, 포인트는 지정된 카센터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으며, 주유 시 주중에는 리터당 40원, 주말과 공휴일에는 60원을 할인해준다.

6. 환경을 생각해 대중교통을 애용한다면?
택시 요금을 비롯한 대중교통 이용 요금을 할인해주는 카드로는 롯데카드의 드라이빙패스 카드, KB굿데이카드, 신한카드의 GS칼텍스 샤인카드와 터치앤바이, SK에너지 오일링카드 등이 있다. 할인율은 5~7%. 현대카드의 현대카드M과 현대카드M레이디는 택시비의 3%를 M포인트로 전환해주고, 삼성카드의 블루아멕스카드도 택시요금의 2%를 돌려준다. 롯데카드 드라이빙 패스 카드는 대리 운전비를 10% 할인해주는 혜택도 있다. 택시는 거의 타지 않고 버스나 지하철만 타는 사람에게는 전월 실적 15만원이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대중교통 할인 카드는 대부분 전월 실적이 기준을 넘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7. 아침은 꼭 먹어야 살거나, 밥보다 빵을 더 좋아한다면?
SC제일은행 TIME카드. 아침을 챙기지 못하는 직장인을 위해 오전 6시~9시 사이에 주요 편의점 및 제과점에서 10%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낮 12시에서 오후 2시까지는 점심식사 할인을 제공하며 월 5회 스타벅스, 커피빈, 카페베네에서 20% 할인이 적용된다. 롯데카드의 스마트 U 카드는 오후 12~2시 사이 음식점에서 2만원 이상 결제 시 2천원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한 달에 한 번만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