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해리 포터>였다. ‘사진이 움직이는 신문이라니, 말도 안 되지만 상상력 하나는 기발하군’하고 다소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사진이 움직이는 신문을 보게 생겼다.

시작은 <해리 포터>였다. ‘사진이 움직이는 신문이라니, 말도 안 되지만 상상력 하나는 기발하군’하고 다소 냉소적으로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정말 사진이 움직이는 신문을 보게 생겼다. 혹시 조앤 롤링은 책을 쓰기 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살짝 엿보았던 게 아닐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형 서점들이 너도나도 종이책을 버리고 전자책으로 옮겨가는 세상이다. 아직까지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7:3 정도로 병행하고 있지만 조만간 이 비율도 무너질 것이다. 신문에서부터 느릿느릿 시작된 종이 매체의 사멸은 급기야 역사적인 종이 신문들이 하나둘 폐간되는 것으로 가시화됐고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잡지나 책 등 좀 더 견고했던 매체들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종이 매체의 쇠락에 부채질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전자책 전용 리더들도 속속 출시됐다. 아마존의 킨들과 반스 앤 노블의 누크는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였던 이름들이다. 가장 먼저 물꼬를 튼 것은 아마존의 킨들이었는데 이로 인해 1년 만에 미국 내 전자책 도매 매출이 300% 이상 성장하는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심지어 전자책이 아마존 전체 도서 매출의 35%까지 성장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교보문고와 예스 24 등 대형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전자책 서비스가 시작됐고 웅진그룹에서 만든 모비북, 와이즈북의 북토피아 등 전자책 전문 사이트도 생겨났다.

전자책 시장이 활기를 띠면서 ‘자가 출판’이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했다. 마켓에 등록만 하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도 원고 파일만으로 자신이 만든 전자책을 출간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에 자가 출판을 도와주는 셀프 퍼블리싱 서비스와 사이트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셀프 퍼블리싱 프로그램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손쉽게 일반 텍스트를 전자책용 파일인 이펍(e Pub)으로 변환할 수 있다. 아마존에서는 ‘아마존디지털 텍스트플랫폼’ 서비스를 실시해 자가 출판을 활성화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인터파크의 전자책 제작툴인 ‘비스킷 메이커’ 프로그램과 QOOK 북 카페의 셀프 퍼블리싱 지원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북씨(www.bucci.com), 스매시워드(www.smashwords.com) 등의 전자책 출간 대행 사이트도 등장했다. 그런가하면 애플은 아이북스 스토어를 오픈해 전자책을 출판하는 작가들이 직접 스토어에 작품을 올릴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었다. 도서의 ISBN과 미국 세금 납부 ID만 등록하면 누구나 e Pub 형태의 책을 업로드할 수 있다. 판매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약 1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지만 수백만원을 들여야 했던 기존 종이 매체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 없는 수준이다. 발 빠른 작가들은 이미 전자 출판을 통해 몇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수익 구조도 나쁘지 않은 것으로 평하고 있다. 책을 출간한 뒤 수익이 발생하면 돈이 자동으로 통장에 입금되며 작가 대 업체 수익분배율은 직접 책을 만들 경우는 5:5, 유통업체가 대행할 경우는 4:6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자가 출판 신드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불특정다수가 잠재적 작가가 됨으로써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고 쓸데없이 양만 많아질 것을 염려해서다. 그런 고로 가장 먼저 1인 전자 출판 시장에 뛰어든 편집자들은 유명 작가들을 고용해 계약을 맺는 것부터 시작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들은 스타 작가가 지닌 브랜드 파워가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형성하고 전자책 시장의 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숙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불법파일 유출이라는 무시 못할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화로 인한 시장의 변화를 먼저 겪은 음악의 사례를 비추어볼 때 수익구조의 명확한 체계나 가이드라인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히 전자화된 문화 콘텐츠는 자칫 기존 시장을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산업 전체를 몰락하게 만들 위험도 크다. 최근 톱스타 장윤정의 음반 판매량이 5천 장도 되지 않는다는 기사는 미숙한 전자화로 인해 우리 음반 산업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이러한 전자화는 다음 세대로 나아가기 위해 언제고 넘어야 할 산이다. 음반 시장의 실패를 거울 삼아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윈윈할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고, 백신과 방화벽을 제대로 구축한다면 한결 저렴한 가격으로 무궁무진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파라다이스가 펼쳐지지 않을까? 무엇보다 필름처럼 얇은 전자책 한 권에 수만 권의 책을 집어넣어 필요할 때마다 신문처럼 펼쳐보고, 착착 접어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정말로 근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