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가 세 번 들리면 합장을 하며 인사한다.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좋은 기를 두 손에 모아서 그 좋은 기운으로 음식을 하기 위함이에요.” 생명을 경외하며 자연과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사찰음식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음식이다. 그 맑은 철학을 세상 곳곳에 전하는 선재 스님의 음식 교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음식점을 내달라고, 그래서 언제든 내 음식을 먹게 해달라는 사람이 많지만 아무래도 내 몫은 가르치는 일인 것 같아요.” 사찰음식의 철학과 맛을 전하는 선재 스님의 말이다.

수, 목, 금. 선재 스님을 만나고 싶다면, 이 세 요일을 잘 기억해두길.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은 물론 세계에서 쇄도하는 강연과 강의로 분주한 선재 스님은 해외 일정이 아니라면 꼭 이날만은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사찰음식을 가르친다. 전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님의 사찰음식 실습을 듣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자만 4천 명이 넘는다. 4천 명! 소박해 보이는 실습실에 모인 사람들은 그 좁은 문을 뚫고 온 수강생들. 얌전하게 앞치마를 차려입고 제각기 수첩과 연필을 손에 들었다. 오늘의 재료는 취나물과 표고, 두부, 콩나물. 물론 육류나 오신채는 찾아볼 수 없다. 합장을 마친 선재 스님은 두부나 나물 대신 마커펜을 집어 들었다. 스님의 음식 교실은 실습보다 강의가 먼저다. “사람들은 어떻게 눈에, 입에 맛있게 해서 먹을 것만 생각하지 그 안에 담긴 정신과 마음을 보려 하지 않아요.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건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욕심을 덜어내는 법이거든요. 그래서 우리 수업은 처음에는 20분 정도 사찰음식에 담긴 철학과 정신에 대해서 강의를 먼저 해요. 왜 그렇게 먹어야 하는지를 이해시킨 그 다음에 음식을 만들어요.” 선재 스님의 말이다.

먹어야 하는 시간
“부처님께서는 아침에는 뇌가 활동하는 시간이니 가볍게 죽을 먹고, 활동량이 많은 낮에는 영양이 풍부하고 딱딱한 음식을, 저녁에는 과일즙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음식을 생체리듬에 맞게 먹으라는 것이지요.” 신선은 새벽에 먹고, 사람은 낮에 먹고, 짐승은 저녁에 먹고 귀신은 밤에 먹는다고 할 정도로 불가에서는 때에 맞는 음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것을 때 아닌 때에 먹지 않는다는 ‘불비시식’이라고 부릅니다.” 오늘의 강의는 바로 ‘음식을 먹어야 할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스님은 아침을 꼭 먹고 잠들기 전에 먹는 음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사찰에서는 점심과 저녁을 거르는 것은 괜찮아도, 아침을 먹지 않으면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합니다. 아침을 먹지 않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하죠. 게으르면 신도를 가르칠 수 없으니 스승의 자격이 없고, 아침을 먹지 않으면 뇌가 활동을 못해서 지혜가 없으니 스님을 할 그릇이 못 된다고 집에 돌려보내요. 그러니 절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무조건 아침은 먹어야지요.” 아침으로 가장 좋은 것은 맑은 음식. 이를테면 흰죽 같은 것이다. 사찰에서는 1주일에 나흘은 흰죽을 먹고 나머지 사흘은 잣죽이나 깨죽을 먹는다. 잣 같은 재료를 넣더라도 아침용 죽을 만들 때는 아주 적게 넣는다. 점심이라면 한 주먹을 넣을 것을 한 숟가락만 넣는 식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에 모두 부담이 없다는 것. 그리고 첫 숟갈은 반드시 간장이나 김치국물 등 맑은 것부터 먹는다. 아침 식사가 복이라면 자기 전에 먹는 음식과 과식은 독이다. “아주 좋은 음식도 과식을 하면 독소로 변해 우리 몸을 해쳐요. 특히 잠들기 전엔 음식을 삼가세요.”

더하기 전에 버리기
“사찰음식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의 대부분은 어떤 사람일 것 같아요? 가족이 병들고 아픈 사람이에요. 요즘 암 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난소암에 걸린 딸을 둔 어머니가 사찰음식을 배우러 오고, 간암에 걸린 남편을 위해 아내가 배우러 와요. 가끔 부잣집에서는 대신 사람을 보낼 테니 음식을 가르쳐달라고 하지만 그럼 나는 음식을 할 사람과 먹을 사람이 같이 와야 한다고 말해요. 먹어보고 입에 달지 않다고 안 먹으면 그만 아니에요?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먼저 버려야 해요.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버려야 하죠. 그 철학을 알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스님은 인터뷰 내내 버릴 것을 이야기했다. 도대체 무엇을 버리라고 하는것일까? 고기? 오신채? 아니다. 스님이 버리라고 하는 것은 자연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인공적인 조미료, 계절에 맞지 않는 음식과 화학적인 방법으로 얻어낸 간장, 고추장, 된장들. 특히 스님은 ‘제대로 된 장’이야말로 우리 식탁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라고 말했다. “음식은 약이고 약은 독이에요. 음식은 약인 동시에 독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중화시켜 먹어야 하는데 그 중화제가 ‘장’인 거예요. 음식과 발효음식이 함께 어우러져야 내 몸에 흡수가 됩니다. 모든 음식은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중화시켜야 해요. 서양도 마찬가지예요. 서양의 빵은 이미 발효가 된 음식이죠. 발사믹 식초나 치즈를 곁들이고, 고기에는 와인을 곁들여요. 하지만 쌀은 발효가 안 되었잖아요? 반드시 발효음식이랑 같이 먹어야 소화가 되는데 우리 발효음식이 각종 첨가제와 화학성분으로 오염되어 있으니 자꾸 탈이 나죠.”

우리의 채식은 틀렸다
스님과 육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고기를 먹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스님의 말은 의외의 것이었다. “중요한 건, 채식이 아니에요.” 귀가 쫑긋 섰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요즘 ‘채식이 뜬다’는 보도를 자주 봐요. 하지만 채식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죠. 채소는 유기농이어야 해요. 요리하는 방식이나 양념도 마찬가지로 바르고 좋아야죠. 콩고기 같은 거 튀겨 먹고 조미료 소스를 뿌려 먹는데, 그건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약이 되는 음식이 아닙니다. 채식과 사찰음식은 달라요. 그 안에는 철학이나 정신이 없어요. 좋은 음식이 아니에요. 단지 채식일 뿐이죠. 고기보다는 좀 나을까? 가공식품이라는 건 똑같지 않아요?” 선재 스님은 말했다. 불가에서는 계절을 거슬러서 재료를 먹지 않는다. 철마다 나는 나물은 말리거나 장아찌를 담그는 식으로 저장을 할 뿐, 여전히 냉동과 같은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냉해를 입고, 음식의 좋은 기운이 독소로 바뀐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즘은 냉장고에 한 달 먹을 것이 쌓여 있어요. 제철 음식을 되도록 적게 사서 상온에 보관하고, 바로 먹어야 해요. 상추를 처음에 꺾으면 흰 진액이 나오죠. 하지만 하얀 진 나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금방 따서 먹을 때 가장 에너지가 좋아요. 묵은 나물은 자연이 말려줘서 에너지가 그대로 있지만, 냉동이든 인공재배든 그건 좋지 않아요. 생체리듬대로 세 끼를 먹고, 계절의 흐름대로 1년을 먹어요.”

정육과 식육의 차이
스님이 들려준 육식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단순하게 ‘육식을 금한다’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불가에서 육식은 ‘정육’이에요. 정육점이 불가에서 나간 이름이죠. 정육, 깨끗한 고기를 판다는 것이죠. 하지만 요즘은 소에게 풀을 안 먹이고 곡식을 먹이죠. 풀을 먹어야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고 면역력이 생겨요. 곡식을 먹으니까 병이 들고 그래서 항생제를 주고, 빨리 키워서 먹기 위해 성장 촉진제를 주죠. 그건 정육이 아니라 ‘식육’이에요. 바르지 않고 그저 먹기 위해 기르는 나쁜 고기죠. 우리 인간은 곡식을 먹으니까 풀을 먹은 소를 분해할 수 있지만, 이제 소도 곡식을 먹으니 분해가 안 되고 육식으로 인한 부담이 커졌어요. 바른 육식은 자연으로 키우는 고기여야 해요.”

불교에서는 수행 중인 스님이 병이 들면 육식을 허용한다. 이때도 ‘삼정육’의 조건에 해당되어야 한다. 삼정육은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고기로 첫째 자신을 위해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것, 둘째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이라는 말을 듣지 않은 것, 셋째 자신을 위해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청정한 고기’이므로, 병든 사람이 먹어도 좋다고 한 것이다. “속세의 사람들에게도 육식을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달력이 있어요. 그런데 생명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죽이거나 먹지 말라는 날이 있어요. 그걸 지키다 보면 고기를 허용하는 날이 한 달에 열흘 정도예요.”

오신채와 발우공양의 비밀
‘정육’처럼 ‘오신채’도 환자에게는 허하는 재료다. 마늘과 파·부추·달래·흥거의 다섯 가지로, 대부분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절밥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오신채가 들어가지 않은 김치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선재 스님은 꼭 한번 먹어보라고 당부했다. “우리나라 김치를 세계에 소개하고 싶어 하잖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파, 마늘 냄새가 너무 강해서 김치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절에 와서 오신채를 넣지 않은 김치를 먹으면 정말 좋아합니다. 전라도에서 유명한 각종 김치를 다 먹어봐도 김치는 못 먹겠다는 사람이, 사찰 김치를 먹고선 이런 김치가 다 있냐고 해요.” 오신채가 지닌 성질은 바깥으로 치닫는 힘이고 들뜨게 하는 에너지다. 자꾸 밖으로 치달아 내면의 평화를 이뤄야 할 수행자에게는 해로운 음식이다. “오신채를 적게 먹을수록 몸과 마음의 화가 가라앉는 게 느껴질 거예요. 오신채는 오히려 음식이 가진 고유한 맛을 다 가려버려요. 오신채 없이 음식을 만들어서 먹어보세요. 그것에 익숙해지면, 오신채가 얼마나 독한지 깨닫게 될 거예요. 스님들은 오신채가 들어간 음식이 독해서 먹지를 못해요.” 오신채와 함께 사찰음식의 대표적인 특징인 발우공양에도 숨은 이야기가 있다. 남김 없이 먹고, 그릇을 씻어낸 물까지 마신 뒤 자신의 그릇을 손수 닦아서 보관해야 끝나는 발우공양은 음식을 절제하고, 음식물의 낭비를 막는다. 지구를 살리는 식사법이다. 불가에서 음식은 곧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음식이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쳤을까? 흙과 물, 햇볕, 바람, 농부의 노고까지 채소 한 뿌리가 완성되기까지 우주의 생명이 함께 수고를 하니,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에 쓰다, 달다를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다. “음식은 곧 수행이죠. 음식을 버리는 것은 곧 방종이며 이 세상에 죄를 짓는 일이에요.” 스님의 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요즘 사람들은 사찰음식을 정신 세계보다 맛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깝죠. 사찰음식의 맛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무(無)’입니다.” 하지만 우리 속세인들은 늘 스님이 먹는 신기한 채소며, 나물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봄에는 무엇이 맛있고, 여름에는 또 어떤 재료가 자랄까? 가을에는 어떤 음식을 거두고 온 땅이 얼어붙은 겨울에는 또 무엇을 드실까? 스님은 이런 속세적 호기심에 이렇게 답했다.

“절에서 먹는 건 특별한 게 없어요. 그냥 좋은 물로 간장 고추장 된장 담가 먹는 거예요. 별 거 없어요. 어떻게 잘 먹을 것이냐, 뭘 먹으려고 고민하지 마세요. 대신 독이 되는 걸 버리세요. 좋은 것만 먹다 보면 몸이 자연히 나쁜 것을 구분하게 됩니다.” 스님은 이제 맛으로 먹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 많은가? 얼마나 요리사가 많은가? 얼마나 다양한 재료가 있나?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행복해지고 건강해졌을까? 스님의 말처럼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을 먹으려면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당장의 탐식과 혀끝의 달콤함을 위한 조미료,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얻은 계절을 잊어버린 많은 재료들 말이다. 스님에게 혹시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냐고 물었다.

“사찰음식의 특징은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하는 소식, 선선한 채소로 이루어진 채식, 가공되지 않은 천연재료를 이용하는 자연식이죠.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늘 먹는 건 조미료, 첨가제가 들어간 음식이죠. 직접 만들 수 없다면 제대로 만드는 사람을 찾아내야 해요. 학교 급식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었을 때 나는 무료냐 유료냐 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먹일 거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기농 식품을 사다가 파는 장으로 요리를 하면 그건 유기농이 아닌 거예요.” 선재 스님은 첫 책 <선재 스님의 사찰음식>을 내고 11년 만에 작년 <선재 스님의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 책을 냈다. 책을 내면 잘 팔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번으로 족하다’ 싶었다. 무엇을 먹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건 힘든 일이다.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만들면서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식품회사들을 돌면서 강연을 한 후에야 이제는 할 이야기를 했으니 책을 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수행을 하려면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이 필요해요. 마음이 평화로워야 하죠. 맑고 건강한 영혼은 맑고 건강한 음식이 필요해요. 그 맑고 건강한 재료는 맑고 건강한 재료에서 나와요. 결국은 우리가 행복하려면 모든 환경이 건강해야 해요. 유기농을 사야 해요. 그래야 유기농을 더 재배하죠. 더 비싸더라도 정육을 사야 해요. 그래야 정육을 기르죠. 그걸 누가 하나요? 우리가 해야죠.”

1.비구니회관의 실습실은 작지만 그 안에는 온 우주가 들어 있다. “대추는 불면증이나 신경증을 달래는 데 아주 좋아요. 예전부터 대추를 보고도 안 먹으면 늙는다고 했죠.” 2. 처음에는 요리를 배우러 오고, 그 다음에는 몸에 좋은 음식을 알아간다. .3. 펼친 책은 선재 스님의 첫 책인 으로 여전히 스테디셀러다. 오른쪽은 작년 출간된 . 4. 이날 사찰음식 실습 메뉴는 취나물을 넣은 된장국, 두부완자로 속을 채워 졸인 대추, 콩나물잡채. 대추의 달콤한 향기가 은근하게 풍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