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들어 가장 추운 날, 안동으로 향했다. 처마에서 똑똑 눈 녹은 물이 떨어지는 고택에 머물렀다. 구름도 머물다 간다는 그곳은 한지 냄새도, 바람결에 들려오는 풍경 소리도 쨍했다.

1 수백 년 된 고택을 리조트로 단장한 구름에 리조트. 2 하회마을 언덕길.

1 수백 년 된 고택을 리조트로 단장한 구름에 리조트. 2 하회마을 언덕길.

 

 

겨울이 깊어갈수록 몸과 마음은 간절히 온기를 바란다. 미적지근해선 성이 차지 않고, 이왕이면 뜨겁고 훈훈했으면 싶다. 그래서 향한 곳은 안동 구름에 리조트. 그곳에서 하루 묵어가기를 청했다. 구름에에서 머무는 건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광고나 홍보를 한 적은 없지만 진짜 고택으로 이루어진 리조트가 있다더라는 풍문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과 귀를 넘나들며 퍼져나갔고, 그 덕분에 구름에 리조트는 ‘만실이라 죄송한’ 일이 잦아졌다. 마침내 찾아간 때는 생각이 많아지는 연말도, 새롭게 시작하는 연초도 지나간 1월의 아주 평범한 어느 날. 월령교 앞에 위치한 구름에 리조트는 방향을 알리는 흔한 알림판도 없이 조용히 있었다.

 

이곳이 시작된 이야기는 특별하다. 안동댐으로 수몰 위기에 처한 마을이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자리한 고택도 곧 모두 물에 잠겨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중 의미 있는 고택 7채를 기와 한 장, 디딤돌 한 개까지 옮겨 다시 배치하고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리조트로 개조한 것이 지금의 구름에다. 문화관광부, 안동시, SK행복나눔재단이 함께 머리와 손을 맞댄 결과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고택 리조트가 탄생했다. 이곳을 가꾸고 유지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만약 이익이 생긴다 해도 모두 안동시로 환원되는 착한 리조트다.

 

3 고택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4 구름에 리조트의 정갈한 아침 식사.

3 고택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4 구름에 리조트의 정갈한 아침 식사.

 

 

고택 구경

하룻밤을 머물게 된 ‘감동재사’에 짐을 놓고 고택 구경에 나섰다. 구름에 리조트는 7채의 고택 속 12개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실제 고택이기 때문에 같은 집, 같은 방은 하나도 없다. 구름에의 살림을 맡고 있는 이헌구 사무국장은, 취재진뿐만 아니라 이곳을 찾은 손님들에게도 다른 고택을 구경시켜주는 것을 즐긴다. 그만큼 새록새록 보는 재미가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헌구 사무국장이 한 채, 한 채를 열어 보여줄 때마다 마치 한과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보는 것만 같았다. ‘서운정’에는 방 안에 유일하게 커다란 욕조가 있어 가장 먼저 예약이 완료되곤 한다. 내가 머문 ‘감동재사’는 작은 방 두 개에 사랑방까지 있어 대가족도 편하게 묵을 수 있다. ‘계남고택’은 퇴계 이황의 8세손이 지은 종가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문화재에서 머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팔회당재사’는 마치 독야청청하듯 높게 자리한 마루에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선비들이 글 공부를 한 ‘청옹정, ’ ‘박산정’도 있다. 고택은 저마다 누가 짓고, 어떤 용도로 사용해왔는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고택들은 가만히 닫혀 있다가 은밀하게 숨은 공간을 내보였고, 그 공간들도 창호문을 열고 닫는 것에 따라, 또 들창을 올리고 내리는 것에 따라서 전혀 다른 공간이 되곤 했다. 아마 계절이 바뀌면, 이곳은 또 다른 그림이 될 것이다.

 

볼수록 신기하고, 들여다볼수록 여백 속에서 새로움이 나타나는 고택은 요즘 한옥 붐을 따라서,재빨리 지어놓은 한옥과는 다른 고아한 정취가 살아 있었다. 한옥의 정취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현대적인 건 모두 애써 숨겼다. 옷장은 문 뒤로, 꼭 필요한 콘센트와 냉장고도 가렸고, 옷걸이는 대나무횃대가 대신하고 있었다. 가장 현대적인 설비를 갖춘 욕실도 오래된 문 뒤로 숨어 있다. 그래서 감동재사의 욕실에 들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굽혀야만 했지만, 이곳에 머물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은 겨울이 한창이지만,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에는 초록과 야생화로 가득하다고 한다. 그 말처럼 얼어붙은 마당 한쪽에는 빛바랜 천일홍이 가만히 놓여 있다. 이곳을 조성하면서 바늘꽃을 비롯한 수많은 야생화를 옮겨심었다고 하니, 봄이면 깨어날 꽃이 많다. 이렇듯 구름에 리조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진짜 고택과 호텔의 편안함을 모두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또 한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진짜 멋임을 잘 알고 있었다.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세심함일 때가 많다. 그 세심함의 차이를 이곳은 잘 알고 있었다. 각각의 객실에서 동양화가 되어주는 꽃 한두 가지가 그랬고,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라는 침구가 그랬다. 안동에서 이불을 가장 잘 만드는 생활 명인이 만들었다는 침구는 이집트산 면 대신 질 좋은 무명을 부드럽게 만들어 썼다. 슬리퍼 대신 고무신을 신는 게 이곳에서는 어울리고, 그 고무신에는 동양화가가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놓은 것처럼.

 

구름에에서의 밤이 깊었다. 자정을 넘자 처마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한층 선명해졌다. 밤이라서 그럴까. 혹시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당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소리, 디딤돌 위로, 기와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한옥이라는 고즈넉한 공간 속에서, 그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내 녹음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밤이 깊어갔다.

 

1 객실마다 한옥과 그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장식한다. 한옥 한쪽에 자리 압은 목화꽃. 2 구름에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쑥와플. 투숙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3 욕실은 리조트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 현대적인 설비를 갖췄지만 한옥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1 객실마다 한옥과 그 계절에 어울리는 꽃을 장식한다. 한옥 한쪽에 자리 압은 목화꽃. 2 구름에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쑥와플. 투숙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다. 3 욕실은 리조트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 현대적인 설비를 갖췄지만 한옥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한옥의 아침

눈은 떴지만 좀처럼 일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뜨거운 구들장 위 바삭거리는 요와 이불 사이에 몸은 딱 알맞게 익었다. 지금까지 머물렀던 한옥은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서 바닥은 뜨겁고 공기는 차가운 곳이 태반이었지만 구름에 리조트는 공기도 포근하게 덥혀져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까지 꼼꼼하게 외풍을 막아둔 덕분이다. 조금 더 꾸물대도 좋겠지만, 서둘러 일어난 이유는 아침상을 맞기 위해서다. 방문만 열면 외부로 노출되는 한옥 덕분에, 문을 조금 여는 것으로 정신이 말짱해졌다. 구름에 리조트에 머물면 누구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다. 단, 오전 8시 30분에서 9시 30분에 일어난 자들만 가능하다.

 

별채로 마련된 ‘구름에 식당’에서는 아침 일찍 안동 주민 겸 구름에 리조트의 직원인 아주머니들이 생활 한복을 입고 정성껏 아침을 차린다. 모든 투숙객들을 기억해 테이블에 고택의 이름표를 세워둔다. ‘서운정’의 손님들은 서운정의 식탁에서, ‘감동재사’의 손님들은 감동재사의 식탁에서 아침상을 받는다. 매일 바뀌는 국, 전과 함께 나물, 시원하게 익은 김치와 장조림, 구름을 닮은 떡이 한 상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밥맛이 좋다. 아마 매일 아침 이런 상을 받는 건 모든 남자, 아니 모든 인간의 꿈이 아닐까. 만약 이불 속에서 차마 빠져나오지 못해 아침 식사를 놓쳤다고 해도 방법은 있다. 구름에 식당 옆 구름에 카페에 커피와 함께 간단한 디저트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동에서는 기대하지 않은 좋은 원두로 아메리카노는 물론 라테 등을 즐길 수 있고, 와플 등도 먹을 수 있다. 특히 쑥와플은 진한 쑥향이 코끝을 스친다.

 

한국인의 아침이든, 서양인의 아침이든 아침을 든든히 먹었다면 구름에 리조트를 빙 돌아 산책을 하거나, 월령교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아보길. 보면 볼수록 잘 조성된 길에서 또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안동에만 있는 맛

여행자들이 기대하는 안동의 맛은, 안동 사람들의 입맛과는 좀 차이가 있다. 우리는 안동의 별미를 기대하지만, 안동 사람들이 즐겨 찾는 건 전통적인 별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안동 사람들이 즐겨 찾는 집은 문어를 야들야들하게 삶아내는 주점이나 안동 한우를 사용해 육회를 만드는 뭉티기집, 전국에서 제일 맛있다고 자랑하는 생갈빗집이거나 양념을 얹은 잉어찜일 때가 많다. 웬 문어냐고 놀라지 말길. 안동은 문어 소비로 유명한 지역이다. 제사상에도 문어가 빠지지 않거니와 손님이 찾아와도 문어를 대접한다. 시장에 가면 찜닭집만큼이나 문어집이 많은데, 살아 있는 문어를 그 자리에서 삶아 준다. 안동 주민에게 단골 문어집은 삶의 조건이다. 그러나 안동에 가서 헛제사밥이나 간고등어 구이

를 먹지 않는 건 꽤나 섭섭한 일. 헛제사밥은 안동의 유생들이 거짓으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 뒤, 제사 음식을 즐긴 것에서 유래했다. 나물과 전, 고래고기와 고등어 등을 간장을 넣어 비빈 뒤 탕국을 곁들여 먹는다. 제사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제사 음식을 단정하게 유기 그릇에 담아 낸다. 이 헛제사밥은 안동 간고등어와 함께 안동 곳곳에서 쉽게 맛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찜닭은, 안동구시장 찜닭 골목에서 성업 중이다. 안동구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찜닭집 수십 개가 모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연신 새로운 손님을 부르며 길 쪽으로 난 주방에서 찜닭도 볶고, 통닭도 튀기는 풍경은 영락없는 시장 풍경이다.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은 현대찜닭과 유진찜닭이라고.

 

안동 시내에는 맘모스 제과점이 굳건하다. 1974년부터 영업해온 지방 빵집의 강자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대전 성심당, 군산 이성당과 함께 맘모스 제과점을 ‘3대 빵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맘모스 제과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림빵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만들어내는데도 금세 동난다. 다른 빵집과 달리 택배 판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맘모스 제과점의 빵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크림빵 외에도 안동 사과를 이용한 사과 타르트, 와룡 고구마를 이용한 와룡 고구마빵 등 지역 재료를 듬뿍 사용한 빵들이 노릇노릇한 표정으로 늘어서 있다. 빵을 양 볼이 미어지게 먹었다고 해도 안동의 명물 버버리찰떡을 잊으면 안 된다. 제주에 오메기떡이 있다면, 안동은 버버리찰떡이다. 인절미를 닮은 찹쌀떡에 팥고물을 따로 두텁게 묻혔다. 그 크기와 맛에, 입에 넣으면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다고 해서 버버리찰떡이다. 안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소한 맛이다.

 

1 구름에 리조트에서 준비한 고무신. 한 켤레, 한 켤레마다 그림을 그려 놓았다. 2 안동호의 고즈넉한 풍경. 3 맘모스 제과점의 명물 크림치즈빵. 4 안동 전통 음식인 버버리찰떡. 5 서원이 많은 안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헛제사밥.

1 구름에 리조트에서 준비한 고무신. 한 켤레, 한 켤레마다 그림을 그려 놓았다. 2 안동호의 고즈넉한 풍경. 3 맘모스 제과점의 명물 크림치즈빵. 4 안동 전통 음식인 버버리찰떡. 5 서원이 많은 안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헛제사밥.

 

 

겨울 안동 풍경

그냥 돌아오기는 섭섭해 하회마을로 향했다. 하회마을과 부용대는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부용대는 ‘부용을 바라보는 언덕’이라는 뜻. 그럼 부용은 어디 있나.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은 하회마을을 의미한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이 연꽃처럼 보였나 보다. 아닌 게 아니라 낙동강이 한 바퀴 휘몰아가는 하회마을의 모습은 물 위에 소복하게 담긴 것 같다. 다른 지역과 달리 하회마을 집들은, 동서남북 방향 대신 모두 강을 바라보고 지어졌다. 하회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봄부터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겨울 하회마을은 고즈넉하기만 하다. 부용대와 옥연정사로 연신 사람들을 나르던 나룻배도 한가하게 묶여 있다. 대청마루에 앉은 할아버지도, 짚을 다루거나 마실을 가거나 농사일을 하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아마 조상들의 겨울 풍경도 그랬을 거다. 어젯밤 구름에 고택 속에 포근하게 들어앉은 것처럼, 하회마을 어르신들도 농번기 분주함과 여행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한 짐 내려두고 한옥 속 뜨끈한 아랫목에서 겨울을 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포근해졌다. 문화해설사를 맡고 있는 어르신은 여전히 마을 길목에서, 추위 속에서도 하회마을을 찾은 사람들에게 마을을 소개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돌아오는 길, 마지막으로 종부가 직접 밀가루와 콩가루를 반죽해 보들보들한 면을 만들고, 멸치 대신 말린 은어로 은근하게 국물을 내어 넉넉하게 말아 준다는 안동건진국수를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지만, 할머니께서 급한 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고 해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안동에 다시 가야 할 이유 목록에 바늘꽃, 만휴정과 함께 건진국수를 더했다. 안동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입을 모아 말했듯, 안동을 1박 2일로 돌아보려는 건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겨울, 가장 따뜻한 밤을 안동에서 보냈다. 눈 녹는 소리와 청명한 풍경 소리. 초록이 사라진 자리는, 소리로 넉넉히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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