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바람에 거칠어진 피부, 잔뜩 움츠러든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는 온천만 한 게 없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추위를 향한 원망도 사르르 녹아버릴 테니까

지옥 온천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바다지옥. 98℃에 달하는 온천수를 이용해 달걀을 익힌다

지옥 온천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바다지옥. 98℃에 달하는 온천수를 이용해 달걀을 익힌다

 

온천의 왕국, 벳푸

온천의 제왕을 딱 한 군데만 꼽자면 단연 벳푸다.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그야말로 ‘콸콸’ 쏟아져 나오는 일본 제일의 온천수 용출량, 그리고 다양한 온천수 성분을 자랑하는 인구 13만 명의 이 작은 도시는, 어디를 바라봐도 수많은 온천장과 료칸에서 솟아 오르는 하얀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도시 전체를 감싼 츠루미다케 산, 멀리 펼쳐진 벳푸 만, 낮고 높은 건물들이 안개처럼 연기로 뒤덮인 풍경은 벳푸의 상징으로, 이 특별한 풍광은 일본 사람들이 꼽은 ‘후손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은 일본의 풍경’ 중 하나로 선택되기도 했을 정도다. 벳푸로 향하는 가장 편안한 방법은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거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터미널에서 버스에 오르면, 다시 두 시간의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나무와 들판, 계곡 등 자연이 일궈낸 아름다운 풍경은 ‘이동’이라기보다는 ‘감상’이라는 단어와 더 어울린다. 새로운 온천지역으로 각광받는 유후인이 아기자기한 료칸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벳푸는 대형 호텔과 리조트가 중심에 있는 그야말로 관광도시다. 수족관, 동물원, 유원지, 로프웨이 등이 이 작은 도시에 자리해 있지만 번잡하거나 소란스러운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객실 수 592개, 2636명이 숙박 가능한 스기노이 호텔은 벳푸를 넘어서 규슈 최대 규모의 특급호텔로, 벳푸 관광의 상징과도 같은 곳. 어찌나 큰지 호텔 내부에서 길을 헤맬 정도다. 그래도 ‘조용한 료칸이나 작은 호텔이 낫지 않나?’ 하는 마음은 온천장을 다녀오면 깨끗하게 사라지고 만다. 호텔의 자랑인 ‘타나유’는 1200평 규모의 온천장으로, 노천탕을 계단식 논처럼 다섯 단으로 차근차근 만든 곳. 벳푸만과 도시의 풍경을 조망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두세 명이 들어가면 딱 좋을 것 같은 우물 모양의 탕, 탕 바닥을 선베드처럼 만들어놓은 덕분에 드러누울 수 있는 탕 등 종류가 다양해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뜨기 전, 탕에 반듯이 누워 아침이 도시를 뒤덮는 것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드는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다. “세상에 온천보다 좋은 건 없어!”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워터풀 ‘아쿠아 가든’은 연인들에게 인기다. 동남아시아의 풀빌라를 연상시키지만, 태국이나 발리 어디를 가더라도 온천수 풀장에서 수영을 할 수는 없을 테니 그보다 더 좋다. 한편, 호텔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미도리유’는 호텔 내에서 수질이 가장 훌륭한 곳이다. 벳푸의 여러 온천수 중에서도 유독 맑고 깨끗한 칸카이지 온천수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데, 스기노이 호텔을 한번 찾은 사람들이 타나유에 반한다면, 좋은 온천수의 힘을 경험한 사람들은 미도리유의 탕에 몸을 담그기 위해 이 호텔을 또 찾는다고 한다. 한결 부드러워진 피부를 쓰다듬으며 탕에서 나온 뒤에는, 마치 거대한 미용실처럼 꾸민 탈의실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몸단장을 하면 된다.
물론 벳푸가 ‘온천도시’라고 불리는 진짜 이유는 눈으로 보는 온천관광지가 즐비하기 때문일 거다.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지옥순례(Jigoku Meguri)’ 말이다! 벳푸의 자연이 탄생시킨 여덟 종류의 온천을 순례하는 관광코스다. 무시무시하게 들리는 이름이지만, 알고 보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나 싶다. 온천수가 빨갛게 보이는 피지옥, 송골송골 온천수가 솟아나는 모습이 위에서 바라본 스님의 머리 같다고 해서 불린 대머리지옥, 수십 마리의 악어가 기어 다니는 악어지옥은 정말 지옥 그 자체처럼 보이니까! 심지어 피지옥에서는 지옥 바닥에서 긁어낸 흙 성분으로 만든 피연고도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다. 물론 아름다운 코발트빛을 띠는 바다지옥, 일본식 정원과 흰색 온천수 연못이 어우러진 하얀 지옥처럼 ‘여기가 왜 지옥이지?’ 싶은 곳도 있다. 하지만 이 평화로워 보이는 연못이 하루에 무려 3600킬로리터의 온천수가 용솟음치고, 온도가 98℃, 수심 200미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등골이 서늘해지며 나도 모르게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게 된다. 온천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해 아프리카 코끼리, 플라멩코가 서식하는 환경을 만들고, 다양한 열대어와 열대 식물 등 의외의 볼거리가 가득하다. 온천수의 열기를 이용해 쪄먹는 지옥계란, 만두, 찐빵 등 간식거리도 잔뜩 있다. 여기에 기념품 가게까지 들르고 나면 지옥 순례에 하루 종일이 걸리기도 하니 도무지 여덟 개의 지옥을 모두 다 돌아볼 시간이 없다면 보고 싶은 지옥 몇 개만 골라 다니는 방법도 있다. 물론 어느 곳을 택해도 후회는 없을 거다. 어쨌든 이곳은 온천 지옥, 아니, 천국이니까!

벳푸에서 온천 말고 즐길 것들

1 우미타마고 오키나와의 ‘츄라우미’ 다음으로 일본 최고의 수족관으로 꼽히는 곳. 수족관 건물 뒤로 바로 벳푸 만의 수평선이 이어져 있어, 마치 바다 생물들이 수족관에 잠시 놀러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돌고래, 물개, 바다코끼리는 수족관 최고의 인기 스타! 캐릭터 상품을 좋아한다면 기념품 가게를 놓치지 말길. 바다코끼리와 물범 등 보기 드문 캐릭터 상품이 진열장에 가득하다.
2 하모니랜드 추억의 ‘헬로키티’ 친구들을 만나러 가자. 캐릭터 제조회사인 산리오의 캐릭터가 총출동한 테마파크로 대관람차, 롤러코스터 등의 놀이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온통 캐릭터투성이인 테마파크가 처음엔 부담스럽다가도 결국에는 인형과 사진을 찍고, 끊임없이 “귀여워!”를 외치며 기념품 쇼핑까지 마치고 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심지어 놀이기구도 꽤 스릴 있다.
3 타카사키야마 자연 동물원 타카사키산에 살고 있는 원숭이들을 잔뜩 만날 수 있는 곳. 동물원 사람들이 특정 시간에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제외하면, 야생성을 그대로 간직한 원숭이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무리생활을 하는 원숭이들의 대장은 바로 벤츠. 한눈에 봐도 위엄이 느껴지는 원숭이다. 동물원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아름답다.
4 지옥부뚜막 온천의 증기를 이용한 온갖 찜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 해산물, 고기, 야채 등 다양한 음식을 구매한 후 가마솥에 넣으면 몇 분 뒤 ‘짠’, 찜요리가 완성되어 나온다. 식재료마다 익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가게에서 나눠주는 타이머를 들고 오가며 요리를 지켜봐야 한다. 설거지까지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맛은 최고다!
5 오이타 향수박물관 향수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조세핀, 마리 앙투아네트나 양귀비 같은 세기의 여인들이 사랑한 향기, 그리고 수천 병에 달하는 향수병까지. 그야말로 ‘향수’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곳이다. 3천 엔을 지불하면 전문 조향사와 함께 내게 어울리는 향수를 직접 만들 수 있다.

Tips
1 벳푸로 가는 법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1층 안내소 버스터미널에서 벳푸행 버스에 몸을 실을 것. 요금은 왕복 5천5백 엔이다. 스기노이 호텔을 비롯해 대부분의 호텔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하니 호텔까지의 이동은 숙박 장소에 문의하자.
2 최고의 노천탕 스기노이 호텔의 핵심, 타나유는 숙박객이 아니어도 입장 가능하다. 평일 입장료는 1천5벡 엔, 주말에는 2천 엔으로 입장 시간은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3 지옥순례를 위한 팁 벳푸 지옥 조합에 가입한 여덟 개의 지옥을 모두 순례하는 입장권의 가격은 2천 엔이지만 홈페이지(www.beppu-jigoku.com)에서 쿠폰을 출력해 가면 10퍼센트 할인받을 수 있다. 온천 하나당 입장료는 4백 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