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민낯이 보고 싶어 서촌으로 갔다. 서울은 모든 게 빠른 도시지만, 경복궁의 서쪽부터 인왕산 자락까지 이르는 이 오래된 동네에서만큼은 서울의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1 부암동 서울미술관 뒤에 자리한 석파정에 올라 바라본 풍경. 맞은 편에는 북악산 서울성곽이 보인다. 2 서촌의 상징과도 같은 대오서점. 장장 60년이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헌책방이지만, 아쉽게도 지난여름헌책방 영업은 종료했다. 3 수성동 계곡에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종로의 풍경이다. 서촌의 집들부터 광화문, 종각의 고층 빌딩들까지. 서울의 얼굴이 바로 이곳에 있다.

1 부암동 서울미술관 뒤에 자리한 석파정에 올라 바라본 풍경. 맞은 편에는 북악산 서울성곽이 보인다. 2 서촌의 상징과도 같은 대오서점. 장장 60년이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헌책방이지만, 아쉽게도 지난여름
헌책방 영업은 종료했다. 3 수성동 계곡에 오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종로의 풍경이다. 서촌의 집들부터 광화문, 종각의 고층 빌딩들까지. 서울의 얼굴이 바로 이곳에 있다.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에 자리한 서촌의 동네들은 마치 비슷한 크기의 천 조각을 곱게 이은 조각보 같다. 서쪽 끝의 사직동부터 서촌의 경계를 이루는 청운동, 효자동까지 쭉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면 충분 하지만 그 사이에는 통의동, 통인동, 옥인동, 신교동, 누하동, 누상동 , 체부동 등 수많은 행정구역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한 골목 건너 다른 동인 셈이다. 말이 30분이지 워낙 가느다란 골목이 곳곳으로 퍼져나가 있는 탓에 골목골목 다 들르기로 치면 하루를 꼬박 걸어도 부족하다. 그래서 서촌을 걷는 일은 100년에 걸친 서울의 시간을 고르게 들이마시는 일이다. 그 공기를 꼼꼼히 들이마시고 싶어, 서촌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서촌의 왼쪽 얼굴, 오른쪽 얼굴
서촌을 걷기로 정했다면 그 출발선은 경복궁역이 되어야 한다. 우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오면 서촌의 오른편에 속하는 통의동과 창성동, 효자동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오른편’이라는 표현은 부암동으로 가는 자하문로를 바라보고 섰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대림미술관과 갤러리 팩토리 같은 크고 작은 갤러리, 60년대 빈티지 가구 매장같은 카페 mk2,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 가가린이 서촌의 오른편이 품은 명소들이다. 서촌의 오른쪽은 비교적 파악하기가 쉽다. 골목은 물론 많지만 정부청사별관과 경복궁과 맞닿아 있는 길은 제법 멀끔하게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 하지만 2번 출구로 나오면 마주하게 되는 서촌의 왼쪽 얼굴은 오른쪽과 전혀 다르다. 통의동과 효자동, 창성동을 제외한 서촌의 수많은 지명이 포함된 서촌의 왼편은 하루 종일 걸어야 겨우 익숙해질 정도인데, 원활한 탐방을 위해서는 통인시장의 위치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얼마 전 아케이드 형식으로 말끔히 단장한 통인시장은 서촌의 중심이다. 활기찬 시장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에서 서촌이라는 동네의 특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 6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헌책방 대오서점, <서촌 방향>의 저자이자 서촌공작소의 운영자인 서촌 토박이 설재우의 옥인상점,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사직동 그 가게도 서촌 왼편에 자리해 있다.

복잡한 골목에 대해 잔뜩 겁을 줬지만 사실 서촌에서는 길을 잃어도 괜찮다. 서촌 사람들은 말 그대로 손바닥 들여다보는 것처럼 동네를 꿰고 있으니까. 어느 가게를 끼고 어느 쪽으로 돌면 되는지, 몇 개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지, 정말 ‘동네 사람’이라서 알 수 있는 사실들이 길을 물을 때마다 쏟아진다. 자그마한 중국음식점을 찾지 못해 빙빙 돌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사진을 내밀자 바로 “청운초등학교 정문 옆에 있는 가게네요”라는 답을 얻기도 했다. 이 오래된 동네에서 이정표는 통인시장이고 새마을금고다. 이것만 알면 된다.

1 세종마을을 거쳐 필운동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오래된 개량 한옥. 2 지난여름 개방한 수성동계곡에는 2011년 철거된 옥인 시민아파트의 흔적이 남아 있다. 3 경복궁의 담장과 마주하고 있는 통의동. 4 세월의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 문과 타일 기둥. 서촌의 풍경은 가장 서울답지만, 가장 낯설기도 하다.5 필운동에 새로 생긴 프렌치 비스트로 칼질의 재발견. 파티를 열기에도 좋은 규모다.

1 세종마을을 거쳐 필운동으로 가는 길목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오래된 개량 한옥. 2 지난여름 개방한 수성동
계곡에는 2011년 철거된 옥인 시민아파트의 흔적이 남아 있다. 3 경복궁의 담장과 마주하고 있는 통의동. 4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오래된 나무 문과 타일 기둥. 서촌의 풍경은 가장 서울답지만, 가장 낯설기도 하다.
5 필운동에 새로 생긴 프렌치 비스트로 칼질의 재발견. 파티를 열기에도 좋은 규모다.

서촌이 움직인다
가지처럼 뻗어난 서촌의 골목에는 그 가짓수만큼이나 많은 오래된 주택이 자리해 있다. 청와대와 가까워 개발이 제한된 동네답게 층이 높은 아파트나, 새로 지은 주택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낯선 문양의 타일벽과 유리창이 신기해 ‘여기에도 사람이 사는 건가?’ 하고 기웃거리다가 묵직한 대문을 밀고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아이와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젊은 가족이 주를 이루는 아파트촌이나, 20~30대들이 주로 사는 홍대나 논현동과 달리 서촌에는 아이도, 어르신도 많다. 서촌이 동네 같아 보이는 또 다른 이유다.

지금 서촌은 새로운 주민들을 맞이하느라 바쁘다. 처음에는 공방과 카페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던 통인동과 옥인동에는 작은 가게들이 예쁘장하게 늘어서고 있다. 왜 서촌일까? 지난 11월 문을 연 스페인 가정식 레스토랑 와이 숍의 권중모 대표는 서촌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서촌은 사람 냄새가 나거든요. 진짜 동네예요. ” 프렌치 비스트로 칼질의 재발견의 조성미 오너셰프가 서촌에 정착하게 된 이유도 비슷하다. “북촌에는대궐 같은 집들이 대부분이라면 서촌은 조선 시대에도, 지금도 서민 거주지잖아요. 파리에서 공부를 할 때 사람들이 200~300년이 된 건물을 고쳐가며 사는 것을 자주 봤어요. 서촌도 그런 게 가능한 동네 같아요.” 누상동에 자리한 게스트 하우스 겸 갤러리 서촌재의 김남진 디자이너에게도 서촌은 보물 같은 곳이다. 10평짜리 오래된 한옥을 1년 반 만에 말끔하게 재정비해 지난 10월 문을 열었다. 수성동 계곡으로 향하는 경사로에 위치한 서촌재는 뒤편의 바위 절벽의 형세를 그대로 살렸다. 바위가 있는 쪽에 유리창을 내 바위를 배경으로 내리는 눈과 비를 바라볼 수 있게 했고, 조선시대 석빙고였다는 1평 남짓한 별채는 아예 한쪽 벽이 바위로 되어 있다. 이런 특이한 구조 때문에 건축과 학생들의 견학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평소에는 게스트하우스와 세미나 공간으로 손님에게만 공개하고, 전시가 있을 때만 모든 사람들에게 활짝 문을 열 예정. 새로이 태어난 이 작은 한옥을 지켜보면서 껑충 뛰어버린 땅값과 어려운 관리 때문에 서촌에 빈 한옥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오성 이항복 대감의 한옥을 비롯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와 이제훈이 비밀을 공유했던 누하동 103번지 등 빈 집이 수십 채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서촌재가 탄생할 수는 없을까? 온 김에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바로 옆집인 티베트 박물관으로 갔다. “여기도 촬영하지 그래요? 내가 말해줄게요. 우리 친하거든요.” 서촌의 새로운 이웃이 동네에 적응하는 속도는 이토록 빠르다.

오래된 한옥에서
낯선 골목과 익숙해질 즈음, 어둠이 내렸다. 서촌의 밤은 고요하다. 불이 꺼지지 않는 광화문과 종로의 뒤편이 이렇게 조용하고 어둡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퇴근 후 잔을 기울이는 회사원들로 북적대는 세종마을 음식 문화거리와 골목에 듬성듬성 자리한 술집을 제외하면 역 주변도 밤 10시면 한밤중 같다. 고요는 골목을 파고들수록 한층 두툼해진다. 서촌의 한옥은 지붕과 처마가 으리으리하고 담벼락이 가지런한 북촌의 한옥과 그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1910년대, 서촌의 대부분의 한옥과 초가집을 허물고 600여 채에 달하는 개량한옥을 짓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집터가 여러 건물로 잘게 찢어진 것도 바로 이때다. 하지만 다행히 서촌에도 100년을 넘긴 한옥들이 존재하니, 고운당이 바로 그중 하나다.

통의동 우체국 골목에 자리 잡은 고운당은 서촌의 밤을 지배하는 정적을 외투처럼 두른 곳이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강남에서 살던 세 식구는 한정식 집이었던 100년 된 가옥을 찾았고, 곧 서촌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지난 6월에 첫 손님을 받은 고운당의 객실은 고작 다섯 개. 고백하자면 고운당에서의 첫날 밤은 순조롭지 않았다. 바닥은 도통 뜨거워질 줄을 몰랐고, 이불 밖으로 몸을 내놓는 순간 천장의 싸늘한 공기가 바로 피부에 닿았다. 늦게 귀가한 옆방 손님들의 말소리, 드르륵 문을 밀고 닫는 소리에는 누군가 내 방문을 당장이라도 열어젖힐 것처럼 긴장했다. 그렇게 밖에서 나는 소리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데, 천장의 서까래가 눈에 들어왔다. 참 굵고 단단하구나, 좋은 나무를 썼네 하고 생각하면서 뒤척이다 보니 이내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조심스레 방문을 밀고 거실 마룻바닥에 발을 디뎠다. 차가운 공기가 덮쳤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노란 조명을 받고 서 있는 오래된 한옥은 얼핏 스산하게 느껴졌던 낮보다 훨씬 고왔다.

고운당을 찾는 손님의 90% 이상은 외국인이다. 일주일째 투숙 중인 중국에서 온 여학생, 대만과 싱가포르에서 온 손님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한옥을 찾는 이유는 뭘까? 그것을 모르는 나야말로 이방인이 아닐까? 서울의 한복판에서 낯선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해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비치해 놓은 각종 인쇄물을 뒤적이며 광장시장과 서울 성벽에 대한 소개글을 읽고 있자니 정말이지 내가 아는 서울에서 멀리멀리 떠나온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6 통인시장에서 옥인동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생겨나는 작은 가게들. 7 청와대와 가까운 서촌의 건물들은 높지 않다.가로수의 높이도 제한되어 있다. 8 드라마 에 나왔을 법한 유리창을 단 집을, 서촌에서는 쉽게 만날 수있다. 9 서촌에서 보기 드문 게스트하우스, 고운당의 밤. 처마에 매달린 초롱이 운치를 더한다. 10 인왕산의 바위기슭에 자리한 석파정은 부암동의 감춰진 보물이다. 소나무 밭을 거닐며 부암동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6 통인시장에서 옥인동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생겨나는 작은 가게들. 7 청와대와 가까운 서촌의 건물들은 높지 않다.
가로수의 높이도 제한되어 있다. 8 드라마 <서울의 달>에 나왔을 법한 유리창을 단 집을, 서촌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다. 9 서촌에서 보기 드문 게스트하우스, 고운당의 밤. 처마에 매달린 초롱이 운치를 더한다. 10 인왕산의 바위
기슭에 자리한 석파정은 부암동의 감춰진 보물이다. 소나무 밭을 거닐며 부암동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수성동 계곡을 따라 부암동까지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밤새 뜨거워진 방바닥과 두꺼운 요 사이에서 몸을 빼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막상 바깥으로 나오니 거실의 찬 공기가 개운하고 좋았다. 간밤에는 마당에 있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오는 길도 그렇게 멀더니, 오늘 아침에는 샤워실에서 머리를 감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고운당의 아침 식사는 매일 아침 8시 반에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차린다. 식사 시간은 다른 숙박객들을 처음으로 마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중국어에 능숙한 주인 아저씨가 직접 해주는 국과 반찬에 대한 설명을 못 알아듣는 것은 나뿐이었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정말 나일지도 몰라, 여행자의 심정으로 짐을 챙겼다. 고운당의 문을 나서기전, 수령 200년을 훌쩍 넘긴 마당의 향나무 두 그루를 바라보며 머물면 머물수록 한옥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서촌에 살았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왕산 때문이 아닐까? 이상이 자라고, 윤동주가 하숙을 했던 곳도 인왕산 자락이라고 생각하면 괜히 예술가와 지형의 상관관계를 상상하게 된다. 지난해 7월, 복원사업이 마무리되며 40년 만에 수성동 계곡을 개방한 일은 서촌의 ‘사건’이었다. 2005년에 철거된 청운 아파트에 이어 2010년에는 옥인동 시민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있던 인왕산 부지가 본격적인 녹지 복원사업에 들어갔고, 이와 함께 수성동 계곡도 물줄기를 찾게 된 것이다. 청계천의 발원지 중 하나로 알려진 수성동 계곡의 물줄기를 청계천까지 잇겠다는 무리한 복원 사업을 향한 우려도 있지만, 어쨌든 서촌 주민들에게 계곡의 등장은 선물과도 같다.

어제 하루 동안 제법 익숙해진 통인시장과 구불구불한 옥인동의 골목을 지나 종점에서 내리면 인왕산의 기개에 맞는 울창한 나무와 큼지막한 바위들을 따라 계곡이 있었다. 서울이 산이 많은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을버스를 탄 지 10분 만에 이런 풍경이 등장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수성동 계곡이 집 앞이라서 지난여름에는 덥다 싶으면 밤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러 갔어요. 늦은 밤에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에 계곡이 다 내 것 같죠.” 효자동의 펍, 퍼블릭을 운영하는 영화제작자 구정아의 말이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계곡은 살풍경하지만 얼음이 녹고 수목이 우거지는 여름이 되면 이만한 피서 장소가 없을 것이다. 녹지를 정비하면서 인왕산에는 새로운 산책로도 생겨났다. 산책로를 따라 인왕산을 가로지르면 자하문 터널을 지나지 않고도 부암동에 당도하게 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의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푸드득, 날아가는 꿩이 보였다. 인왕산과 북한산, 북악산에도 둘러싸인 서울의 산동네인 부암동. 새로운 서울의 얼굴을 마중하기 위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