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기차 여행을 떠났다. 유레일패스에 그날의 목적지가 된 도시 이름을 하나하나 적으며, 파리에서 브뤼셀로, 다시 마르세유와 앙티브를 지나 이탈리아 친퀘테레까지. 기차는 여행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1 지중해의 눈부신 태양이 비추는 앙티브. 2 빛바랜 건물이 늘어선 올드 앙티브.

1 지중해의 눈부신 태양이 비추는 앙티브. 2 빛바랜 건물이 늘어선 올드 앙티브.

 

 

테제베를 타고 앙티브로

앙티브(Antibes)는 프랑스를 여행할 때 가장 처음 떠오르는 이름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미 니스를 여행했고, 절벽 위 에즈 마을이라거 나 세잔의 그림 같은 생폴드방스, 칸을 돌아봤다면 그 근처의 다른 이름 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거다. 앙티브, 망통, 예르…. 마르세유부터 이탈리아 국경까지 지중해와 맞닿은 프랑스 남동부 해안 일대를 코트다쥐르(Cote d’Azur)라고 부른다. 영어식으로는 프렌치 리비에라. 미술을 사랑하고, 프랑스 해안가의 뜨거운 태양과 휴양지의 느긋한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일찍이 이곳을 알아본 로마인들과 피카소처럼 이 마을 한구석에 마음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피카소는 앙티브의 그리말디 성에 아틀리에를 만들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는데 약 1 년 동안 머물면서 360여 작품을 남겼다. 거의 하루 한 작품씩 완성한 셈이다. 그의 아틀리가 있던 그리말디 성이 지금의 피카소 미술관(Musee Picasso d’Antibes)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바다, 태양 그리고 바다에서 건져 올린 성게와 친구가 된 올빼미. 그가 남긴 작품과 스케치, 사진 자료는 고스란히 남아서 앙티브의 평화로운 일상을 증언하고 있다. 미술관의 야외 공간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하다.

 

야자나무 사이로 빛바랜 연한 레몬색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올드 앙티브는 여행자의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3층에 위치한 하늘색 창틀을 가진 저 집에서 하루쯤, 아니 일주일쯤 머물고 싶어진다. 이곳에서는 편한 신발을 신고 오래된 앙티브 골목을 걸어보아야 한다. 문짝 하나, 화분 하나도 범상치 않게 아름다운 건 유럽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일이지만, 이 앙티브가 유독 고운 빛깔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주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곳은 가까이 보면 미슐랭의 별을 가진 레스토랑이기도 하고, 오래된 나무 침대와 레몬 나무 정원을 가진 B&B이기도 하다. 그 골목이 그리스 로마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된 건물로, 앙티브 로컬 마켓으로 이어진다. 앙티브의 전통 음식이라는 녹두전, 프로방스의 허브로 만든 포푸리와 에센셜 오일, 종류가 열 가지도 넘는 올리브, 온갖 허브, 신선한 과일과 꽃이 늘어선 로컬 마켓이다. 그런 작은 것들을 발견하면서 오래된 앙티브를 탐험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 이렇듯 앙티브는 작은 마을이지만, 이 작은 마을은 마을 입구의 선인장 공원처럼 결코 심심하지 않고 니스와 칸이 채워주지 않은 ‘프랑스식 휴가’를 만들어준다.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로열 앙티브 호텔 앙티브 역에서 택시로 5분이면 도착하는 이 호텔은 세심한 것 하나까지 모던하고 시크한 부티크 호텔 로열 앙티브 호텔(Hotel Royal Antibes)이다. 버티컬 가든, 오렌지 향 어메니티, 보드라운 침구. 걸어서 앙티브를 돌아보기에 최적의 위치인 데다 호텔 바로 앞이 바다다. 휴가철에는 프라이빗 비치에서 야외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골든 비프 레스토랑 지역별, 부위별 프랑스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는 스테이크 전문점. 아르헨티나와 미국산 쇠고기도 준비되어 있지만 목초를 먹여 방목한 프랑스산 쇠고기를 먹어보길. 하지만 골든 비프 레스토랑(Golden Beef Restaurant)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앙티브에서 가장 근사한 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그리말디 성은 현재 피카소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그리말디 성은 현재 피카소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제노바, 이탈리아의 오래된 도시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길 원한다면 탈리스나 테제베, 이탈로 같은 초고속 열차만 한 것이 없지만, 느긋하게 해안을 따라 달리며 여러 마을을 돌아보기엔 속도가 조금 느린 기차가 낭만적이다. 앙티브에서 이탈리아로 갈 때 탄 기차는 프랑스 지방 열차(French Region Train), 일명 ‘테르(Ter)’라고 불리며 코트다쥐르의 이국적인 이름을 하나하나 지난다. 이 지역의 정식 명칭인 프로방스 알프스 코트다쥐르(Provence-Alpes-Cote d’Azur)의 이름이 새겨진 차창 밖으로 햇살에 반짝이는 지중해와 프랑스 해안,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기차 여행의 묘미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는 것. 코트다쥐르에서 또 가보고 싶은 곳으로 레몬 축제가 열리는 ‘망통’을 이야기했던 나는, 결국 나무마다 레몬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망통 역에 내리게 되었다. 기차의 노선이 갑자기 바뀌면서 망통에서 기차를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유로 타려고 했던 기차가 취소되거나 최종 목적지가 변경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서 저는 귀국하는 날에는 기차로 장거리를 이동하지 말라고 늘 말해요. 만약 파리에서 출국한다면 전날 파리에 도착해서 1박 하는 것이죠. 출국 당일 이동한다면 적어도 10시간 정도 여유를 두세요.” 레일유럽 김남림 팀장의 조언이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바로 다음 열차를 탈까, 아니면 망통을 여행할까? 몇 시간 후 나는 이탈리아 국경 마을 벤티밀리아(Ventimiglia)에서 이탈리아 지방 열차(Italia Region Train, Inter City)로 갈아탔다.이탈리아에 온 것이다.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제노바 역 무역으로 번영한 부유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 제노바는 친퀘테레와 가장 가까운 대도시다. 제노바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친퀘테레를 여행할 수 있다. 제노바로 이름 붙은 역이 여러 개이므로 어떤 제노바 역인지 꼭 확인하길.
호텔 사보이아 제노바 제노바 P.P 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호텔로, ‘사보이아(Savoia)’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곳곳에 호텔을 가지고 있다. 방에 따라 발코니가 딸려 있기도 하다. 조식당은 점심과 저녁에는 레스토랑으로 운영하는 데 아주 아름답다.

 

1 유러피언들의 휴양지 포르토피노. 2 친퀘테레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포르토피노 기차역. 3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는 리구리안 해안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4 네르비 마을의 카약 숍. 5 친퀘테레 다섯 마을에 속한 베르나짜.

1 유러피언들의 휴양지 포르토피노. 친퀘테레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포르토피노 기차역.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는 리구리안 해안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4 네르비 마을의 카약 숍. 친퀘테레 다섯 마을에 속한 베르나짜.

 

 

이탈리아 친퀘테레 기차 여행,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만약 피렌체, 로마, 밀라노,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도시에 이미 다녀왔다면, 그리고 아시시나 볼로냐, 베로나 같은 작은 도시도 여행한 적이 있다면 이제 당신이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들은 다음과 같았다. 슈퍼 토스카나 와인이 자라는 토스카나, 이탈리아인이 휴가를 즐기는 아말피 해안, 가본 사람들은 모두가 최고라고 말하던 샤르데니아 섬 그리고 친퀘테레.

 

친퀘테레는 ‘숨은 보석’으로 자주 이야기된 곳이다. 하지만 지난해 대한항공의 유럽 여행 광고에 등장하면서 꽤 유명해졌다. 친퀘테레에 끌린 이유는 이곳이 바닷가에 위치한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면서 프랑스와 가깝기 때문이었다. 만약 소박한 이탈리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리구리안 해변으로 향할 이유는 충분하다.

 

친퀘테레(Cinque Terre)는 이탈리아 북서부의 리구리아(Liguria) 주에 위치하는 라 스페치아(La Spezia) 지방의 5개 해안 마을인 몬테로소, 베르나차,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치오레를 뜻한다. 기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마을들은 하이킹 코스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래서 유럽 청춘들은 직접 트레킹을 하거나 자전거로 이 마을을 돌아보곤 한다. 그러나 시간도 체력도 한정적이라면 무조건 기차!

 

제노바 역에서 곧장 친퀘테레로 향하고 싶다면 라 스페치아 노선을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친퀘테레에 도착하기 전에 분명히 내리게 될 것이다. 제노바에서 친퀘테레 사이에 수많은 마을이 있고,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마을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린 첫 마을은 네르비(Nervi)였다. 네르비는 바다를 껴안고 산 쪽으로 움푹 들어앉아 있는 마을이다. 짙푸른 리구리아 해안의 바다. 파스텔 박스에서 가장 예쁜 색으로만 칠한 듯한 집들과 마을 어귀에 있는 카약숍이 이곳을 알린다. 한 두 달 후 바캉스 시즌이 시작되면 태닝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을 점령할 것이다. 다시 기차를 타고 향한 곳은 제법 큰 마을인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Santa Margherita Ligure)로,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포르토피노라는 긴 이름을 가진 역에서 내린다. 네르비가 소박한 어부의 마을이라면, 산타 마르게리타는 화려한 귀부인 같다. 겨우 몇 정거장 사이에 전
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는 것. 리구리아 해안에서 고급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곳에는 유럽인은 물론 전 세계 부호의 여름 별장이 있다. 부호의 여가를 위한 아름다운 요트와 보트가 즐비하고, 크루즈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이곳에서 기항지 여행을 즐긴다. 포르토피노에는 루이 비통, 까르띠에, 샤넬, 다미아니의 부티크숍이 관광지의 기념품숍처럼 아무렇게나 있고 리조트웨어와 수영복 편집숍이 많다. 중세 시대로부터 이어온 성과 성당, 그리고 21세기 귀족인 부호의 저택, 레스토랑, 바, 상점이 바다와 숲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휴양지의 낭만을 소환한다. 이탈리아산 와인과 젤라토를 즐기는 사이 어부들이 돌아온다. 바다에서 길어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바다 내음을 잔뜩 머금고 있다.

 

두 번째 마을까지 여행한 후에는 이탈리아 기차 여행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 역에서 내릴지 말지, 다음 기차를 언제 탈지만 결정하면 되었다. 거의 매 시간, 매 분 기차가 다니는데 기차마다 노선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때그때 확인하고 타면 되므로 어렵지 않다. 마을이 쪼로록 붙어 있어 기차로 5분이면 다른 마을로 갈 수 있다. 기차는 자주 오고, 역에서 내리면 바로 그 마을이 시작되었고, 이곳을 다녀간 다른 여행자처럼 나만의 마을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마침내 친퀘테레다. 친퀘테레의 다섯 마을은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어촌 마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몬테로소는 친퀘테레 마을 중 가장 넓은 해변을 가지고 있다. 여름이면 노란색 파라솔과 사람들이 제각기 챙겨온 비치타월이 이 해변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아직은 바닷물도 차고 계절이 일러서 동네 강아지의 놀이터가 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산 햇살의 따스한 온도가 느껴졌다. 바다와 절벽 같은 지형에 살포시 내려앉은듯한 사랑스러운 마을 베르나차(Vernazza), 마나롤라(Manarola)는 당신이 친퀘테레에 온 바로 그 이유를 보여준다. 베르나차에는 유독 레스토랑이 많았는데, 음식 냄새가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베르나차의 바닷가에 잠시 앉았다. 바다에는 보트가, 베르나차 마을의 집 창문에서는 집집마
다 내건 빨래가 똑같이 알레그로로 흔들렸다. 그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니는 풍경이 좋아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친퀘테레만큼 즉흥적인 여행이 어울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긴 기차 여행의 마지막 날.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지만 제노바로 돌아갈 마지막 기차가 떠날 때까지 시간은 충분했다.

 

에디터의 트래블 노트

킥스 해산물을 이용한 이탈리아 음식을 선보이는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의 레스토랑 킥스(Kick’s). 요트선착장 앞에 위치해 여유로운 분위기다. 정말 맛있어서 눈이 스르륵 감기는 따뜻한 문어 샐러드와 포모도로 파스타, 엄청난 크기의 밀라노식 커틀릿을 만날 수 있었다. 글라스로 주문할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마음 좋은 서버가 넉넉히 따라준다. 이곳에서 잡은 신선한 해산물을 사용한다는 자부심이 넘치는 레스토랑이다.
일 바레토 생선 그림이 그려진 간판을 보고 들어간 베르나차의 오스테리아 일바레토(Il Baretto)에서는 마을 청년들과 할아버지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베르나차에서 잡은 해산물을 주로 사용한다. 앤초비 튀김을 비롯한 해산물 튀김이나 오징어 먹물 파스타 등을 추천한다. 소박한 분위기가 베르나차와 잘 어울리는 곳이다.
유레일 패스 사용법 항공편을 제외하면 모든 일정을 기차로 움직였다. 1등석 패스를 소지하면 좀 더 쾌적하고 좋은 서비스가 준비된 1등석을 이용할 수 있다. 철도패스 구매를 비롯해 열차 시간표 확인이나 좌석예약, 구간티켓 구매 등은 레일유럽
홈페이지(www.raileurope.co.kr)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패스 사용 규정상 기차에 탑승하기 전에 탑승 구간과 사용 날짜를 패스에 기입해두어야 한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는 초고속 열차를 이용할 때 한국에서 미리 할인 요금으로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데, 좌석이 한정적이므로 서두르길. 여행 국가 수에 따라 패스 요금이 모두 다르므로 자신에게 가장 맞는 패스를 꼼꼼히 따져 구입하면 가장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