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고 멋스러워서 ‘예향’으로 불리는 전주로 떠났다. 뜨거운 햇볕에 땅은 이글이글 타올랐지만 한옥의 대청마루는 신기하게도 시원했다. 전주로 떠난 당신이 해야 할 다섯 가지 일.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정벌하고 돌아가는 길에 큰 연회를 연 오목대는 산 중턱에 있다. 이곳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한옥의 정갈하고 예쁜 곡선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걸어서 한옥마을 한 바퀴
전주에 처음 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전주가 작다는 것에 놀란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지를 찾을 때 전주는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서울에서 버스로도 3시간 정도 소요되고, 터미널에서 택시나 버스를 타고 한옥마을까지 와서 숙소를 잡았다면 이제 택시 한 번 타지 않고도 도보 여행이 가능해진다 . 전동성당, 경기전 등 전주에서 꼭 봐야 할 문화재나 근대건축물이 한옥마을을 가운데 두고 늘어서 있고, 시장통의 맛있는 음식도 한옥마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된다. 정정하자면 전주가 작은 것이 아니라, 여행자들의 반경이 작다는 것이다 .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신발을 신었다면 전주 여행의 준비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한옥마을의 남쪽 관문인 전동성당과 경기전은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나란하다. 1791년 신해박해의 장소였던 전라감영 자리에 세워진 까닭에‘한 국 최초 순교터’라는 표지판이 작게 서 있다. 호남지역의 최초 서양식 근대건물이기도 한 전동성당은 같은 시기에 세워진 근대건축물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외관은 물론, 순교자를 기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가득한 내부도 아름다워서, 영화의 촬영지로도 많이 쓰였다. 중앙의 종탑과 양쪽 계단, 내부의 석조 기둥에서는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도 볼 수 있다. 전주의 상징물 중 하나인 이곳의 문은 많은 시간 열려 있어서, 전주를 찾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그 맞은편 경기전은 나라의 보물인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전주사고가 있는 곳이다 . 전주사고는 한양, 충주, 성주사고와 함께 1439년 설치된 <조선왕조실록>의 보관 장소였는데, 임진왜란으로 다른 사고의 실록이 모두 소실되었지만 문신 손홍록이 안의와 함께 실록과 어영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기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묘향산 보현사로 옮겨서 지켜낸 역사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관한 경기전이기에 이곳은 지금도 신성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이곳 문화재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 다빈치 코드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경기전 코드’를 볼 수 있다. 조선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유교, 도교, 불교가 총출동한 이곳은 보면 볼수록 흥미롭다.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울창한 이곳은 쨍쨍한 더위에도 시원한 그늘로 사람들을 맞는다.

한옥마을 북쪽에는 전주향교와 오목대가 있다. 산 중턱에 있는 오목대는 전주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정벌한 뒤 개경으로 돌아가기 전 연회를 베푼 곳이다. 크고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는 전주향교는 현존하는 향교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어딘가 익숙하다 싶은 데, 이곳이 바로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지. 지금은 부분부분 보수 중이다. 전주 한옥마을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노란색 한옥마을지도를 들고 전동성당으로, 오목대로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전주 한옥마을길을 구석구석 걷게 된다.

전동성당과 경기전 쪽의 소란함과 달리 전주 향교를 찾아가는 전주천 옆길은 외갓집처럼 한적하고 다정하기만 하다. 한옥마을이라서 볼 수 있는 한옥과 양옥의 조화나 낮은 담과 집집마다 다른 문이 마음을 끌고, 열린 문으로 보이는 아담하고 정갈한 정원의 모습이 그냥 막 좋다. 한옥마을에 자리 잡은 커피가게며 바느질로 만든 소품을 파는 가게, 그릇가게 등도 최대한 한옥마을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전주 한옥마을이 점점 상업화되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예전부터 한옥마을을 즐겨 찾은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만 찾아오던 때의 그 고즈넉함이 그리울 만도 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더덕스무디나 오미자차를 마실 수 있고, 밤이 늦어도 곳곳의 카페, 갤러리에 불이 밝혀져 있다는 것. 낯선 도시의 어두운 골목에서 암담함을 느끼는 여행자에게는 반가운 불빛이니까.

1.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동성당은 전주를 대표하는 근대건축물이다. 2. 학인당의 다락에는 시간의 더께를 입은 오래된물건이 가득하다. 아래 보이는 것은 지금 종부의 시어머니가 받은 함. 귀중한 물건이 많은 다락은 평소엔 닫혀 있다.3, 4, 6. 학인당의 전경과 정갈한 방, 아침상. 5. 100년 된 축음기에서 아직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7. 전주천의 한가로운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주의 민박집 교동살래. 8. 한옥마을의 팥빙수. 9. 전주의 명물 왱이집의 콩나물국밥.

한옥마을에서 하룻밤
전주 한옥마을의 터줏대감인 학인당은 그 뒤에 숨은 옛날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까진 아니어도 흥선대원군이 이하응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방랑하고 있을 때 전주 부자 백낙중을 만났다. 이하응, 이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알아본 백낙중은 그를 극진히 대접했고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기에 이른다. 백낙중은 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을 추진할 때 막대한 금액을 내놓기도 했다. 그때 그 대가로 부탁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큰 집을 짓게 허락해달라는 것. 당시에는 돈이 많다고 해서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대의 거부였기에 집을 지을 목재는 백두산에서 가장 좋은 홍송과 오대산의 목재를 베어 압록강을 이용해 운반했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장인이 모였다. 흥선대원군이 궁궐의 목수까지 내려 보내준 덕분에 궁궐처럼 복도가 있는 한옥을 지을 수 있었다.

마침내 전통 한옥과 달리 널찍한 다락까지 숨어 있는 근대식 2층 구조의 한옥이 완성되었다. 그 시대가 만들어낸 예술품인 학인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이 집을 둘러싼 구수하고 달큼한 이야기는 조용헌 교수가 쓴 <조용헌의 백가기행>에서 더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 학인당이 판소리 공연을 위해 만든, 일종의 공연장을 겸한 가옥이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꼼꼼한 설계가 필요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실려 있다. 그 명맥은 지금도 이어져서, 매주 토요일이면 국악 공연이 열린다. 근대사회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역사를 관통한 학인당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새하얀 모시옷을 입은 이댁 종부와의 차 한잔은 담소가 곁들여져 즐겁다. 큰 집이야말로 많은 사람이 오가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믿는 종부는 문화재의 귀한 문을 사람들에게 넉넉히 열었고, 덕분에 진짜 한옥에서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37.2도. 대구보다 더 더운 전주의 날씨 속에서도 이곳에 대청마루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고 있으면 금세 시원해졌다. 대청마루에 앉아 차 한 모금에 책 한 장을 넘겼다. 이게 바로 양반의 피서법이 아닌가.

전주에는 학인당 외에도 작은 한옥이 여럿 있다. 만약 한옥 예약에 실패했다고 해도, 전주 곳곳에는 재미있는 숙소가 많다. 갤러리 건물의 꼭대기에 작게 만든 방, 시집간 딸의 방을 예쁘게 정리하고 손님을 맞는 민박집부터 주인의 보통 아닌 안목이 느껴지는 모던 한옥 ‘교동살래’ 같은 독특한 민박집도 있다. 전주에 왔으면 잠은 한옥마을에서.

전주의 한 그릇
전주에서 잘 먹고 잘 놀았다는 건 별로 자랑도 아닐 것이다. 학인당의 종부는, “전주는 왜 이렇게 멋진가요?”라는 우문에 이렇게 답했다. “예로부터 전주는, 한량 같고 늘 놀기만 하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다 한 가닥 하는 자존심 있는 사람들이 산다고 했어요. 그 기질이 지금도 있어요. 다들 당당하고, 멋스럽고 그렇죠.”

이번 전주 여행에서는 상다리가 휘어져라 나오는 ‘전주 한정식’ 대신 딱 한 그릇의 음식들을 순회하기로 마음먹었다. 전주의 맛은 한정식 맛이 아니라, 한 그릇의 음식도 깔끔하고 정갈하게 낸다고 하니까. 특히 한옥마을의 한옥은 아침 식사를 차려주는 것으로 유명한데,정갈하게 한 상 차려 나온 학인당의 아침이 바로 한정식인 셈이었다.

전날 얼큰하게 취했다면 전주 콩나물국밥만큼 적절한 해장국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콩나물국밥을 먹기 전에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남부 시장식’으로 먹을 것인지 ‘끓이는’ 방식으로 먹을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전주에서 만난 사람들과 전주 맛집에 관한 한 최고인 전주 택시 기사님도 그것부터 물어본다. 끓일 것이냐, 남부시장식을 취할 것이냐. 끓이는 방식은 우리가 늘 보는 것처럼 배기를 불 위에 올린 뒤 팔팔 끓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뜨겁고 밥알도 조금 퍼져 있다. 남부시장식은 밥을 담은 뒤 뜨거운 국물을 몇 번 부어내어 토렴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후후 불지 않고도 바로 맛있는 한술을 뜰 수 있다. 이 중 남부시장식으로 유명한 왱이집으로 갔다. 정갈하게 나온 콩나물국밥을 한술 떠먹는 순간이 집은 복제해서 서울로 들어서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벌들이 왱왱 날아다니는 것처럼 잘되라는 의미로 ‘왱이집’이라고 지었다는 사장님은 “어휴, 여기도 제대로 못하는 걸 뭐”라고 거절.

남부 시장식 콩나물국밥은 수란이 따라 나오는데, 수란에 국밥 국물을 몇 수저 떠 넣고 김을 잘게 부숴 잘 섞어서 마시면 된다. 전주 콩나물 국밥의 담담하고 시원한 맛은 딱 전주 맛이다 싶었다. 전주 남부시장은 또 피순대로 유명하다. 피순대는 순대에 피를 넉넉히 넣고 만든 순대다. 신선한 선지가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까닭에 도시에서는 통 보기 힘들다. 척 보기에도 여느 순대와 달라 보이는 피순대는 거의 씹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을 자랑하고, 내장과 고기를 듬뿍 넣은 순댓국도 맛있다. 부추무침을 넉넉하게 넣어 먹는 것이 전주식이다. 전주에 왔으니 비빔밥을 안 먹을 수 없다면 비빔밥도 한 그릇 먹어야 한다. 전주 사람들이 가볍게 즐기는 육회비빔밥도 맛있다. 온갖 반찬이 따라 나오는 비빔밥 한정식은 1만원이 넘지만, 전주에서 식사로 가볍게 비벼 먹을 수 있는 육회비빔밥은 7천원 정도. 여기에 정갈한 반찬과 누룽지숭늉, 육회도 나온다.

전주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국숫집이 두 곳 있다. 한옥마을의 베테랑 칼국수와 시내의 이연국수다. 베테랑 칼국수는 어마어마한 주차장의 규모만 봐도 이곳이 보통 분식집이 아니라는 게 보인다. 달걀과 고춧가루, 들깨가루를 푼 걸쭉한 국물이 이곳의 매력이다. 이연국
수는 비빔국수와 물국수로 불리는 잔치국수, 여름마다 내는 찬국수 이렇게 메뉴가 셋뿐이다. 한 그릇을 시켜도 부족하면 더 먹으라고 사리 두 개를 대나무채반에 따로 담아주는 넉넉한 인심의 국숫집이다. 특히 이 집은 주인이 자필로 쓴 곳곳의 메모가 정감 있다. 멸치의진한 맛을 깔끔하게 우려낸 물국수의 맛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