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기자, 여행작가와 소설가, 그리고 드라마 작가. 고백하건대, 우리 모두는 이들의 팬이다. 다섯 작가가 여행을 떠났고 또 돌아와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무작정 기다리기엔 너무 목이 말라서, 한 장만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귀하게 얻어낸 작가들의 여행 미리 보기.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밀월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그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대의 눈을 처음 보고, 그대의 입술을 처음 만져보고, 그대의 몸을 처음 떠나보았던 상(像)들을 나는 여전히 고백 중입니다. 그대에게 고백을 하나 하기 위해서도 내게는 무수한 내면과의 밀월이 필요했음을.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그 동안 내 수첩들의 이름 또한 무수한 밀월이었음을 고백할게요. 내 수첩 속에 등장했던 해독되지 않던 언어들을, 자연들을, 그들과 나는 여전히 밀월 중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음을,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었던 시간들 또한 내게는 밀월입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그대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이 세상의 단어가 하나 있다면 그건 아마도 밀월이라는 단어가 아닐까요? 밀월은 은밀하고 호젓한 여행의 이름이 아니라 고백으로 떠나는 여행의 이름에 다름 아님을, 당신에게 떠나는 무수한 밀월을 나는 고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고백은 무엇인가요? 세상엔 고백으로만 이루어진 자연이 있다고, 나는 그대에게 자주 말해왔어요. 그건 아마도 시일 거라고. 이 세상의 모든 시가 고백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고백은 시가 되려 한다고, 나는 내가 가장 아끼던 밀월의 이름을 그대에게 해두었던 고백 중 하나로 여기고 사는 사내입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그대에게 처음 밀월에 대해 슬며시 제안했을 때 나는 밀월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밀월은 꿈같이 달콤한 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은밀한 달의 뒷면으로 가보는 것이 밀월이라고 생각해요”라고. 그건 거울 속에 있는 내 눈이 그대의 입술을 떠올리며 떠나던 내 방의 무수한 밀월이 되었어요.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여행은 사람들에게 길을 주지만 그 길에서 우리는 병들지 못합니다. 그 길에서 돌아와서야 우리는 앓이를 시작합니다. 그건 여행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우리의 이름이 무수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가는 거예요. 우리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처음 우리의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세어본 후, 우리의 입술 위에 올려 놓아준 우리의 이름은 여전히 세상의 낯선 장소마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여행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대의 이름을 내 입술 위에 처음 올려보았을 때, 내가 시작한 여행을 나는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나요? 그대의 이름은 어느 여행지의 낯선 장소에 가더라도 내가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배낭입니다. 나는 배낭을 끌어안고 자는 것을 좋아하는 사내입니다. 나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내 배낭으로 자주 엽서를 띄우는 사내입니다. 같이 있어도 늘 배낭을 떠나 보내고 있는 기분으로 나는 여행을 합니다. 내가 가본 사막의 흙냄새와 시베리아 바람의 흔적과 파리 아침 햇볕의 차가움과 튀니지의 아침식사 때 흘렸던 우유가 흘러 묻은 배낭의 팔을 베고 나는 많이 잠들었습니다. 그것을 어느 시에서 <배낭의 모성>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나는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저녁이 다가오는 무렵의 공원에서 낡은 동상 하나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동상은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청록빛의 몸과 날개를 가진 동상이었어요. 그 천사의 펼쳐진 두 손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내려앉았습니다. 잠시 후 다른 비둘기가 그 천사 옆에 앉았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꺼내 이 어여쁜 풍경을 담고 싶었습니다. 내 화각 안으로 들어온 천사의 손바닥과 비둘기 한 쌍은 그 뒤로 멀리 하늘에서 녹아내리는 햇물을 담은 채 붉은 물기를 막 머금고 있었습니다. 조리개를 모으면서 나는 한 비둘기의 눈 한쪽이 파여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비어 있는 비둘기의 눈 속이 내 화각을 캄캄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비둘기가 고개를 돌려 없는 비둘기의 눈을 가려주는 풍경을 나는 작은 화각으로 목격했습니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보이스레코더를 꺼내 없는 눈으로 사랑을 하려는 그들의 숨소리를 녹음했습니다. 나는 맹목에 대해 오래 생각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이 맹목이 아니라 볼 수 없음에 대한 기록이 시가 되려 한다는 것을, 그 쓸쓸하지만 한없이 어른거리는 장소들이 나의 언어였으면 한다고, 그때부터 나는 여행지마다 소리를 채집하는 것을 습관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잠들어 있는 당신의 곤한 숨소리를 몰래 처음 녹음하던 그 순간을 맹목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그건 맹목입니다. 만질 수 없는 것이 많아서 많이 듣는 사람의 사랑이 하나의 여행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그대여 오늘은 거리에서 한 편의 시가 되려는 기슭을 메모했습니다. 그 모국어의 속살을 속삭이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나는 그대가 내 언어의 기슭에 와서 쉴 수 있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직은 부족하고 많이 캄캄합니다. 내가 메모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유령이 종이 위에 새를 그리면 그건 유령의 몸이 된다.’유령은 자신의 이름을 호명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자신의 이름 속에 있는 유령이 자신의 생을 조금씩 떠나고 있음을 느끼고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유령의 눈은 차갑습니다. 자신의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소리를 채집하는 나의 여행기는 늘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지도에 표기할 수 없는 세계의 소리를 찾아 떠난다. 수많은 도시와 파도와 종소리와 낯선 외국어의 체온을 녹음하고 그 소리의 체온 속에 내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녹음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는 내 귓속에서 들려오던 하나의 이명을 함께 그곳에 녹음했다. 그것은 언제나 불쾌감보다는 내 귀가 외로울 때마다 따뜻한 소란을 마련해주었다.’

그대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마다 나는 늘 그대에게 밀월 가네요. 내가 항상 들었던 것은 멀리서 들려오던 그대의 체온이었습니다.
글과 사진 |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차의 눈을 달랜다> 시인, 극작가

日誌, ‘오늘의 집’

2010년 6월. 함께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던 일행을 먼저 서울행 비행기에 떠나보냈다. 그리고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시체스행 기차에 올랐다.

당일치기 여행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리스 섬을 옮겨온 것 같은 지중해의 작은 도시는 내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고 결국 그곳에서 계획하지 않던 하룻밤을 보내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숙소를 찾아 이곳 저곳을 서성였다. 물론 그 핑계로 마을의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성수기의 시작이라 몇 군데의 호텔과 민박에서 퇴짜를 맞은 후 바닷가 골목에 보이는 작은 팻말을 따라 ‘마리셀 펜션’이란 곳에 당도했다. 조금은 어두운 리셉션 데스크,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탓인지 나른한 졸음이 몰려왔다. 아가씨 혼자 쓰니 반값으로 받아주겠다는 주인아저씨의 거짓말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뒤로하고 키를 받아 2층으로 올랐다. 역시 어두운 복도. 그러나 202호의 열쇠를 열고 커튼을 걷는 순간, 눈이 아득해질 정도로 쏟아져 내리던 그 지중해의 햇빛이라니. 게다가 맨발로 달려나간 테라스는 바다로 맞닿은 골목 풍경이 발아래 파도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그제야 배가 고파졌다.

돌아갈 집을 구한 자의 의기양양한 표정과 마치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같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동네 식당의 문을 호기롭게 열었다.“부에노스 디아스!”(Buenos Dias!) 이제 막 장사할 준비를 마치고 받는 거의 첫 손님인 동양인 여자를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보던 웨이터는 친절하게 메뉴판을 가져다준다. 더듬더듬이긴 하지만 오랜 쿠바 여행으로 다져진 ‘서바이벌 스패니시’로 읽어 내려가던 메뉴판의 한 면에는 작은 클립으로 고정된 종이가 한 장 끼워져 있었다.‘메뉴 델 디아(Menu del Dia)’.

싱싱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음식이나 오늘 하루 주방장이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특별메뉴가 쓰여 있는 하루살이 쪽지, ‘오늘의 메뉴’라는 말을 보는 순간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카사 델 디아(Casa del Dia)’.

어쩌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인생이란 긴 여행길 속에서 끊임없이 ‘오늘의 집’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제야 끊임없이 솟구치기만 하는 쉼 없는 여행욕구의 근원지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역마살도,남다른 보헤미안의 기질도 아니었다. 그저 매일 조금씩 다른, 가장 신선한 하루를 찾고 싶은 욕망, 그 지친 일과의 피로를 누일 곳으로 향하는 당연한 본능일 뿐이었다. 골목에 서면, 낯선 동네의 골목에 서면, 언제나 두렵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라고 해도 ‘오늘의 집’이라고 명명한 그 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어제까지는 철저히 미지의 공간이었던 이곳에서 느끼는 이상한 편안함. 그것이 바로 오늘의 집에 들어섰다는 증거다.

하룻밤 혹은 일주일, 1년 혹은 5년. 지금껏 나에게 밤을 허락해준, 그리고 아침을 함께 맞이한 수많은 어제의 집들이 떠올랐다.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배경이 되었던 후지산이 보이던 오래된 료칸, 방마다 각기 다른 아티스트의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베를린의 한 디자인호텔, 수줍은 소년 ‘헤수스’와 시크한 강아지 ‘카치룰라’가 함께 살던 쿠바바라코아의 민박집, 베니스 영화제에서 영화와의 장기 릴레이에 지친 나의 눈을 밤새 치료해준 이탈리아 골목의 아파트, 베트남계 엄마와 아르마니아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스웨덴 소녀 ‘아눅’을 만났던 피렌체의 유스호스텔, 뉴욕에서의 408일을 지켜봐준 첼시의 스튜디오, 한국어를 공부하던 사랑스러운 모토바이크 소년 ‘라이’가 일하던 앙코르와트의 게스트하우스, 남자친구와 머물렀던 사랑의 파리 아파트, 도시와 도시를 잇는 밤기차와 가끔의 노숙을 허락해준 수많은 공항과 역,그리고 아쉬움에 떠나온 사랑스러운 가회동 한옥과 지금 몸을 누인 부암동의 침대까지. 그 수많은 ‘오늘의 집’에게 미처 쓰지 못했던 안부의 엽서를 쓰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집들까지 나를 인도해준 많은 사람과 그 인연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싶어졌다.

여행지의 정보를 담은 책은 많다. 여행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넘쳐난다. 아직 출판사도 없고 원고도 쓰지 않은 이 책이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쓰여질 나의 책은 여행이란 이름을 가진 생활의 기록이고 싶다.

매일 기대를 품고 찾아가는 오늘의 집, 그 까슬까슬한 침대 위에서 작성한 설레는 첫 일기였으면 좋겠다.
글과 사진 | 백은하 <10 아시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