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 마음을 두고 온다고 하지만, 감히 식욕을 두고 온 사람도 있다. 제철 재료로 건강하게 만들어 한입만 먹어도 불로장생의 몸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캘리포니아의 음식과 혀끝부터 목구멍까지 위무하는 나파 와인이 끝없이 이어지는 캘리포니아의 시간들은 참 맛있었다. 부티크 레스토랑 ‘델마’의 김미영 셰프와 함께 떠난 ‘Eat, Play, Drink’ 여행.

1 앤티크 기차 안에서 음식과 와인을 함께 즐기며 나파 밸리 와이너리를 돌아볼 수 있는 와인 트레인. 창밖으로 와이너리의 계절이 느껴진다. 2, 4 나파 와인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다양한 투어를 마련했다. 5 몬다비 와이너리 지하 저장고에 보관중인 빈티지 와인. 3, 6 스파클링 와인으로 유명한 슈램스버그 와이너리.

1 앤티크 기차 안에서 음식과 와인을 함께 즐기며 나파 밸리 와이너리를 돌아볼 수 있는 와인 트레인. 창밖으로 와이너리의 계절이 느껴진다. 2, 4 나파 와인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다양한 투어를 마련했다. 5 몬다비 와이너리 지하 저장고에 보관중인 빈티지 와인. 3, 6 스파클링 와인으로 유명한 슈램스버그 와이너리.

 

볼이 빨개지는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꽃샘추위가 밀어닥친 서울에서 벗어나 나파 밸리의 지하 저장고에서 신나게 와인잔을 흔들며 비행의 피로를 잊고 있었다. 이곳은 나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중 하나로, 프랑스 전통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슈램스버그(Schramsberg Vineyards)의 지하 와인 저장고. 광산처럼 깊게 파들어간 동굴 속은 사방이 와인으로 가득했다. 흙 냄새와 먼지 냄새, 피부에 닿는 서늘한 공기 속에서 마시는 스파클링 와인의 맛은 각별했다. “진짜 카브에서 하는 와인 테이스팅이라니, 여행의 시작으로 제격인데요.” 홍대 앞에 위치한 감각적인 부티크 레스토랑 ‘델마’의 김미영 오너셰프는 스파클링 와인에서 퐁퐁 솟아오르는 거품만큼이나 기세 좋게 잔을 비웠다.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르 코르동 블루에서 요리 공부를 했지만 나파 밸리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어요. 레스토랑에서 내놓을 수 있는 훌륭한 와인을 많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와이너리 투어는 와이너리의 역사는 물론 와인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듣고 질문도 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지만 가장 기대되는 건 역시 테이스팅 타임. 훌륭한 와인을 얼마나 시음할 수 있느냐에 와이너리 여행의 만족도와 와이너리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고가의 빈티지 와인까지 모두 6잔을 따라준 슈램스버그는 우선 합격이었다. 테이스팅 투어의 가격은 1인당 40달러. 나파에서 더 이상 무료 와인 시음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10달러 한 장으로도 좋은 와인 몇 종류를 넘치게 따라준다.

굴 속을 빠져 나와 눈에 닿는 풍경 모두가 파릇파릇한 와이너리 길을 달렸다. “나파 밸리에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를 안 갈 순 없죠.” ‘나파 밸리 대부’부터 ‘나파의 수호신’ 등 늘 멋진 수식어를 동반하는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 와이너리에는 우리가 와인 투어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와이너리 가이드와 함께하는 무료 와이너리 산책부터 와인 셀러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테이스팅까지 다양한 투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방문자들을 위해 한 줄, 한 줄씩 다른 품종을 심어놓은 와이너리에서 잠시 발을 멈췄다. “지금은 모두 비슷해 보이죠. 하지만 수확철이 되면 생김새가 각각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사람들이 아주 좋아해요.” 로버트 몬다비 홍보 담당자의 설명이다. 포도 잎사귀 대신 노란 겨자꽃이 노란 양탄자처럼 펼쳐 있고, 이따금 새들이 날아다니는 와이너리를 걸었다. 와인과 보기 좋게 대구를 이루는 올리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커다란 건물 한 채가 레드 와인 숙성실로 쓰이고 있었는데, 지하에는 수백 개의 프렌치 오크통이 가지런히 도열해 있다. 먼지가 쌓인 100여 년 된 빈티지 와인이 잠을 자고, 습도 유지를 위해 몇 분에 한 번씩 공중에 수분을 날린다. 서재처럼 꾸며진, 벽난로가 타오르는 아늑한 테이스팅 룸에서 몬다비가 자랑하는 와인을 마셨다“. 영화 <사이드웨이> 덕분에 나파 밸리 전체의 피노누아 매출이 급증했어요” 나파 와인 홍보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피노누아에 유독 집착하는데, 무난한 맛의 카베르네 쇼비뇽에 비해 까다롭고 섬세한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품종으로 와인 좀 마셨다는 사람들과 미식가들이 좋아한다. 몬다비 관계자의 추천도, 셰프의 선택도 역시 피노누아. “나파의 피노누아가 어떤 맛을 내는지 궁금했는데, 부르고뉴와는 또 다른 맛을 내네요. 음식에 곁들여도 아주 좋겠어요.” 두 시간 동안 모두 열 잔을 마신 셰프는 얼굴색 하나 달라지지 않았지만, 정작 조금씩 맛만 본 내 얼굴은 이미 피노누아였다.

그렇더라도 이곳에서 운영하는 부티크숍 ‘르 마르셰’는 꼭 들러야 한다. 넓은 규모에 와인 액세서리와 요리 도구, 작은 기념품부터 큰 아트 작품까지 온갖 예쁘고 유용한 것을 모아놓았다. 특히 요리책을 구입할 생각이라면 망설임 없이 이곳에서 고르길.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서점에도 이보다 더 충실한 요리책 코너는 없었으니까. 몬다비 와이너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앞집에는 오퍼스원 와이너리가, 몬다비의 옆집에는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 소유의 루비콘 와이너리가 있다. 그렇게 길을 따라 와이너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마음에 드는 와이너리의 문을 열고, 걷고, 일단 마시는 것이 바로 와이너리 투어의 단순한 법칙이다.

Tip 몬다비와이너리와인숍르마르셰에서VISA 쿠폰을 제시하고 비자카드로 결제하면 모든 상품이 10% 할인된다. 75분 동안 전문가와 함께 와이너리를 돌아보고 시음하는 시그너처 투어(1인 25달러)와 런치도 10% 할인받을 수 있다. 웹사이트에서 사전 예약할 것.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프렌치 런드리

“미국에서 요리를 시작하고, 일을 한 사람들에게 토머스 켈러 셰프는 신적인 존재죠. 언젠가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셰프의 말처럼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레스토랑 ‘프렌치 런드리’는 로망이며 전설이다. 프렌치 런드리는 부유한 미국인들이 은퇴해 취미 삼아 와인을 만드는 시골 이미지가 강했던 나파 밸리 욘트빌을 음식 문화 중심지로 바꿔놓았다. 오래된 세탁소를 개조한 건물에 들어선 프랑스 식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이곳은 스페인의 ‘엘불리’, 영국의 ‘팻덕’과 함께 늘 세계 톱 레스토랑을 다투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하지만 예약이 힘들기로 악명 높다. 운 좋게 예약에 성공한 셰프와 나는 서로 타고난 먹을 복을 치하하며 프렌치 런드리에서의 만찬을 시작했다. 토머스 켈러가 일약 미국 파인 다이닝을 구원한 영웅으로 떠오른 이유를 셰프는 이렇게 설명했다 “본래 미국에선 미국인 슈퍼 파인 다이닝(Super Fine Dining) 셰프가 없었고, 모두 프랑스나 이탈리아 출신 셰프가 자국의 재료를 수입해서 요리를 했죠. 토머스 켈러는 미국인으로, 미국의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정통 프렌치 요리를 선보였기 때문에 스타가 되었어요. 지금은 지역에서 재배한 오가닉 식재료를 이용하는 파인 다이닝이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몇 십 년 전엔 파격이었어요. 그는 캘리포니아식 파인 다이닝을 만든 주인공입니다.” 지금은 많은 도시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재벌이 된 그는 이곳에 없었지만, 듣던 대로 신선한 재료와 고도의 노력으로 완성된 정찬은 파인다이닝의 정수를 볼 수 있었다. 레스토랑 옆에는 프렌치 런드리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농장이 정원처럼 펼쳐 있고, 테이블 위를 장식한 꽃도 농장에서 거둔 온갖 허브다. 프렌치 런드리 예약에 실패했다면 욘트빌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을 시도해볼 것. 부숑, 부숑 베이커리, 캐주얼 다이닝인 애드혹 모두 토머스 켈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220분 동안의 풀코스 식사를 마치고, 나파 밸리에서 가장 럭셔리한 친환경 부티크 호텔인 발데로소의 헤븐리 베드에서 밀린 잠을 청한 다음 날, 부숑에서 산 커피와 샌드위치로 캘리포니아의 첫 아침을 맞았다. 상쾌했다.

와이너리를 여행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

‘나파 와인 트레인(Napa Wine Train)’은 100년 된 앤티크 기차를 타고 나파 와이너리를 따라 여행하며 식사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명성이 높다. 환경 부담을 줄인 압축 천연가스로 달린다는 점만 빼면 이 기관차는 발권부터 탑승까지 옛날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 창업주의 손자인 트렌튼 맥마누스(Trenton McManus)는 귀여운 보타이를 매고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사람들은 자기 일이 아닌 것 같을 때 저를 불러요.” 착한 캘리포니아 청년의 미소 그대로다. 이 기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는 나파 밸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관광객을 온천으로 실어 나르던 열차 노선이 중단되고, 노선도 열차도 폐기될 예정이었죠. 멋진 기차가 사라지는 걸 아쉬워한 할아버지가 이걸 사들였어요. 기차 레스토랑으로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떠올랐죠.”

점심과 저녁, 매일 두 번 출발하는 와인 트레인은 1등칸, 2등칸처럼 다양한 객실이 있다. 가장 고급스러운 비스타돔은 둥근 유리돔 지붕 아래에서 정찬과 전망을 즐길 수 있고, 그 아래 코스 요리와 디저트 라운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구르메 열차, 자유롭게 단품 요리를 주문할 수 있는 실버라도 열차는 여름 시즌에 하는 바비큐가 유명하다. 오늘의 메뉴가 적혀 있는 카드를 뒤집으면 와이너리 지도가 펼쳐 있다. “와이너리에 가득 핀 겨자꽃은 천연 비료가 되죠. 나파의 여름은 정말 빅 시즌인데, 이 조용한 와이너리들이 사람으로 가득 차요. 그래서 수확기를 제외하면, 봄이 나파 밸리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포도는 열리지 않지만 와이너리의 모든 사람이 한가하기에,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거든요.”

와인 트레인의 켈리 맥도널드 셰프가 만든 연어 요리와 블루베리를 얹은 크림 브륄레까지 다 먹고, 열차의 꼬리에 위치한 발코니에서 지나가는 차에게 손을 흔들고(그들이 먼저 흔들기 때문에!), 10달러를 지불하고 열차에 실린 40여종의 와인 중에 마음에 드는 와인 5종류를 골라 마시다 보면 다시 종착역이다. 열차에서 하차한 후에 해야 할 일은 와인 쇼핑! “이곳엔 300종 이상의 와인이 있어요. 1년에 몇 백 케이스밖에 생산하지 않는 아주 작은 와이너리의 와인도 있죠. 나파 지역을 벗어나면 보기 힘든 와인이죠.” 트렌튼의 말.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적이고 마시기 쉬운 미국 와인을 상징하는 한편 아주 적게 생산하면서 질이 좋은 일명 ‘컬트 와인’을 만들어낸 곳이 나파 밸리다. 이곳에서 당신만의 컬트 와인을 찾아보길. 아니면 나파 밸리의 고급 와인 오퍼스원은 어떨까? “이곳은 와인 쇼핑을 하기에 정말 좋은 곳인데요!” 오퍼스원 1병을 포함해 6병의 와인을 산 셰프는 웃으며 말했다“. 세관에 자진 신고할 생각이에요.”

Tip VISA 쿠폰과 함께 비자카드로 결제하면 와인 트레인 숍에서 모든 와인이 10% 할인되며 기차 안 와인 테이스팅 바는 무료다. 런치나 디너를 예약할 때 웹사이트나 이메일로‘ VISAJK’를 적어서 예약하고 비자카드로 결제하면 요금의 5%를 할인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