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수도 서울과 제주도, 6개의 광역시, 그리고 63개 시와 81개 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152개 지역을 다니기에 한 달은 너무 짧아서, 서울과 광역시를 제외한 매력적인 10개 도시를 고르고 다시 그 도시들의 10가지 얼굴을 살폈다. 고르고 고른 대한민국의 100가지 풍경을 전한다.

강릉

사람들은 더 이상 경포대와 정동진 때문에 강릉을 찾지 않는다. 국내 유일의 커피산지인 강릉의 해안가에는 횟집보다 카페가 더 많고, 강릉의 바다는 조선의 여류 예술가인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키웠다.

51 | 허균과 허난설헌을 기억하다 |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꼽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요절한 허난설헌, 뛰어난 실학자로 <홍길동전>을 남겼지만 결국 유배 끝에 능지처참으로 생을 마감한 허균. 남매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처럼 성공적으로 시대를 살아내지는 못했다. 뒤늦게 재평가를 받은 이들의 생가 주변에는 잘 자란 소나무들이 아름다운 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남매는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나무들은 곧게 자랐다.
52 | 강릉의 커피농장 | 강릉의 커피거리 중 하나인 강릉항을 지나면서 커피커퍼의 간판을 단 카페를 적어도 4개는 본 것 같다. 강릉에서 위세가 대단한 커피커퍼가 왕산면에 커피 박물관과 커피전시관을 차렸다. 김준영 관장이 20년간 세계 각국에서 모아온 각종 커피 추출기구 등의 전시품과 함께 한국 최초로 국내산 커피를 생산하는 커피농장에서 자생하는 우리 커피문화를 엿볼 수 있다. www.cupper.kr
53 |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 개인 가옥이라고 믿기 어려운 규모의 선교장은 10대에 걸쳐 증축해온 사대부가의 주택이다.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활래정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서관 열화당도 문을 열었다.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곳으로 숙박을 비롯해 다도와 음식문화, 서예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www.knsgj.net
54 | 본토 못지않은 컬렉션 | 훌륭한 취향을 가진 개인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40년 넘게 오르골과 축음기, TV, 라디오, 음반 등 오디오 물품을 수집해온 손성목 관장의 컬렉션으로 가득한 참소리축음기 에디슨 박물관에 들렀을 때 그랬다. 미국 워싱턴의 에디슨 박물관보다도 더 많은 개수의 에디슨 축음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말 다한 거 아닐까. 60여 개국의 시대를 아우르는 수천 점의 컬렉션은 ‘얼마’에 샀을지보다도 ‘얼마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어떻게’ 찾아 다녔을지가 더 궁금했다. www.edison.kr

55 | 바다와 호수를 따라 걷는 길 | 강릉의 둘레길을 ‘바우길’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발굴한 17개의 바우길 중 바닷가를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곳이 제 5코스인 강릉바다호수바우길이다. 사천진리 해변공원에서 시작해 경포해변과 경포호수, 허균허난설헌 유적공원을 지나 남항진까지 따라 걷는다. 피서객이 떠난 경포해변은 왼쪽으로는 동해바다가, 오른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www.baugil.org
56 | 바다가 보이는 예술마을 | 정동진이 보이는 하슬라아트월드는 지금도 계속 확장 중인 문화공간이다. 국내 작가뿐 아니라 유럽,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중심으로 호텔, 레스토랑, 야외공원에 이어 피노키오 미술관이 올해 10월, 문을 열었다. 호텔객실을 제외한 시설 대부분은 지하에 자리해 있는데 통로 중간중간 비디오아트가 설치되어 있어 아트 ’월드’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www.haslla.kr
57 | 진짜, 옛날초당순두부 | 강릉초당순두부가 유명한 이유는 동해 바닷물을 간수로 이용해 부드럽고 고소하기 때문이다. 온갖 순두부집으로 붐비는 강릉 초당마을에서 120년 넘게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옛날초당순두부가 올해 9월 순두부전골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맵지도 짜지도 않게 담담한 전골양념은 부드러운 본디 두부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www.oldchodangdubu.co.kr
58 | 테라로사의 후예, 커피포레스트 | <나는 가수다> 커피 편을 진행한다면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는 강력한 1위 후보일 거다. 지구상의 좋은 커피농장이란 커피농장은 다 돌아다닌 끝에 15개의 커피농장과 직거래 계약을 맺은 테라로사의 원두는 90퍼센트가 서울의 카페에 납입될 정도로 질이 좋다. 그 조카가 올해 7월, 순포해변에 차린 것이 커피포레스트다. 테라로사와 똑같은 원두와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하지만 테라로사보다 모던한 이곳은 커피젤리, 아이스큐브 등 계절별 메뉴를 먹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59 | 모자는 대단했다, 오죽헌 |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인 오죽헌에 율곡기념관, 향토민속관, 역사문화관, 대관령박물관이 더해져 오죽헌 시립박물관으로 거듭난 이곳은 영동지방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곳. 현모양처라는 말과 유교의 교리가 점점 먼지 묻은 말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배울 것은 많다. 어머니와 아들이 둘 다 지폐에 등장하는 대단한 모자는 전세계적으로도 드물 테니 말이다. www.ojukheon.gangneung.go.kr
60 | 향토음식, 옹심이 | 감자가 많이 나는 강원도의 향토음식이다. 간 감자를 동그랗게 빚은 것을 옹심이라고 하는데, 수제비와 칼국수처럼 멸치 육수로 맛을 낸 음식에 떡 대신 옹심이를 넣는다. 쌀이 모자라던 시절에 먹던 구황식품이라고는 하지만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씹을수록 감칠맛 난다.

군산

1899년 개항한 군산의 바다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장 많은 쌀 수탈이 이루어진 곳이다. 온갖 중공업회사들이 들어선 군산의 항구는여전히 분주하지만, 100여 년 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는 군산의 시내는 조용하다.

61 |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는 1913년에 지었다. 경사가 급하고 커다란 지붕, 검게 칠한 기둥, 법당과 화장실, 목욕탕이 복도를 통해 이어지는 내부 양식까지 일본의 신사를 그대로 옮긴 듯한 동국사의 원래 이름은 금강사. 동국사가 일제강점기 이후 철거되지 않고 조계종 산하의 절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김남곡 스님 덕분이다. 동국사에 불상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스님은 1950년대에 금산사 대장전에서 삼존불을 모셔왔는데 2007년, 삼존불 내에서 300점에 달하는 불교유물이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62 | 금강의 철새를 보다 | 충남권을 지나는 금강은 전북의 머리 부분인 군산까지 흘러 내려온다. 겨울을 나기 위해 철새가 모여드는 군산에 조류를 테마로 한 전망대 겸 조류 박물관인 금강철새조망대는 11월부터 금강을 찾는 철새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사진의 커다란 가창오리 모형은 내부의 기낭, 모래주머니 모형을 통해 새의 내장기관을 살필 수 있는 곳이다. ‘키치하다’, ‘아방가르드하다’는 고급 표현을 이럴 때 쓰고 싶다. 11월 16일부터 나흘간, 군산세계철새축제가 열린다. www.gmbo.kr
63 | 철길 옆 마을 | 오래전 열차가 멈춘 군산의 철길 양옆에는 여전히 집과 가게가 들어서 있다. 보기 드물게 철길을 사이에 두고 형성된 마을로, 철로를 따라 걸으며 각양각색의 주택을 곁눈질하자. 군산 이마트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보인다.
64 | 군산의 해는 이곳에서 진다 | 군산 시가지와 금강 하굿둑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월명공원은 군산시민들의 휴식처다. 능선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개항 35주년 기념탑, 삼일 운동기념비, 채만식 문인비 등 군산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기념비가 서 있으며 등나무와 벚나무가 운치 있다. 군산의 일몰을 목격하기에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65 | 새만금 드라이브 | 4대강 사업 훨씬 이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새만금 간척사업은 공사를 마쳤다. 비릉항 수산시장을 지나서 시작되는 새만금 방조제를 달리면 푸른 바다에 뻥하고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길 이전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66 |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극장 | 군산 개복동은 예술인거리로 불린다. 비록 활성화되지 않아 지금은 몇 개의 갤러리와 카페가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1920년대에 지은 전북 최초의 영화관 국도극장 때문이다. 희소관, 남도극장의 명칭을 걸쳤던 유서 깊은 국도극장의 영사기는 2005년 휴업을 선언하며 멈췄지만 전북 영화시대의한 획을 그었던 건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67 | 일본 부호의 가옥 | 2009년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라고 공식 명칭이 바뀌기 전까지 히로쓰 가옥이라고 불렀던 이 2층짜리 목조주택은 동국사와 함께 근대문화유산의 거리에 자리해 있다. 쌀유통업과 포목상으로 큰 돈을 모은 일본인 히로쓰가 지은 건물로 일본 무가의 고급주택의 건축양식을 살필 수 있다.
68 | 가장 오래된 빵집 | 만화 <영심이>에 등장하는 “00빵집에서 만나”라는 말은 군산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인 이성당 빵집은 자그마치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군산 최고의 빵집으로 군림해온 곳으로 군산 시내에 위치한 덕에 언제나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화과자집에서 출발한 이래 지금은 시대에 발맞춰 샌드위치, 커피등 카페 베이커리의 형식으로 세련되게 바뀌었지만 간판에 명조체로 또박또박 적힌 ‘이성당’이라는 세 글자가 주는 무게감과 팥빵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
69 | 60년 연륜의 중국집 | 해물짬뽕으로 이름 높은 군산에서 어디를 가야 할지 고민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3시면 준비한 재료가 동이 난다는 전설의 복성루와 60년 역사의 빈해원이 결승전에 올랐고, 빈해원이 이겼다. 빈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중국집이 아니다. 근대 건축양식을 온전히 보전한 2층짜리 건물은 의자 하나, 벽지 하나까지 연륜이 느껴진다. 탕수육은 아삭하고, 짬뽕의 해물은 풍성하며, 짜장면의 소스는 진했다. 서비스로 ‘야쿠르트’도 준다.
70 | 졸복, 전치, 서대. 낯선 생선요리 맛보기 | 군산 시청이 이전하기 이전, 군산 제일의 번화가였던 영화동에는 여전히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맛집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어디를 들어가도 저렴한 회 안주에 술 한잔하기 좋은 가게들 중에서도 송강식당은 서대 매운탕을 비롯한 각종 민물고기 탕과 졸복튀김, 전치무침을 맛볼 수 있는 곳. 깔끔한 주인의 손이 구석구석 미친 가게는 낡았지만 단정하고 음식은 하나같이 맛있다. 졸복과 준치 모두 잔가시를 제거하지 않은 채로 요리하니 꼭꼭 씹어 먹을 것.

부여

지금 부여는 백제테마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백제의 왕궁을 재현한 사비성과 전통을 이어갈 인재들이 자라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이어 놀이공원, 아울렛을 갖춘 대규모 리조트 단지가 들어설 부여는, 다시 백제를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71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산책 | 천재 도예가인 <꽃보다 남자>의 소이정(김범)이 대학생이었다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다녔을 거다. 2000년에 개교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전통건축학과, 전통미술공예학과, 문화유적학과, 보존과학과 등 우리 문화를 만들고, 지켜나가는 데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다니는 곳이다. 백제문화역사단지 내에 포함되어 있으니 천천히 캠퍼스를 거닐며 그 어느 학교와도 다른 공기를 맛보자. www.nuch.ac.kr
72 | 정제된 부여의 미, 정림사지오층석탑 |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중 가장 먼저 쇠락한탓일까. 현재 남아 있는 백제의 탑은 익산의 미륵사지오층석탑과 정림사지오층석탑 2개뿐이다. 사대문처럼 서울 안에 있는 것도 아닌데 국보 9호로 서둘러 지정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버선코 모양처럼 살짝 올라간 지붕돌과 날씬한 자태가 화려한 신라와 패기 넘치는 고구려와는 완연히 다른, 정제된 백제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73 | 연꽃이 가득한 부여 궁남지 | <삼국사기>는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고 궁남지의 탄생을 기록한다. 백련, 황금련, 홍련, 가시연, 자생련 등 수많은 연꽃과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궁남지가 없었다면, 연꽃이 부여의 상징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서동요>, <대왕세종>, <이산>, <탐나는도다>에 이어 최근의 <계백>까지 수많은 드라마 촬영이 이루어진 이곳은 최근에 지어진 서동요테마파크와 이어져 있다. 제법 넓으니 주차장 옆에 설치된 안내소에서 자전거를 한 대 빌려 길을 따라 한 바퀴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74 | 부소산성 따라 낙화암을 오르다 | 부소산을 30분가량 걸어오르면 의자왕 삼천궁녀가 몸을 던졌다는 낙화암을 만난다. 이름 모를 새들과 청설모, 다람쥐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산길은 더할 나위 없이 걷기 좋지만 낙화암을 마주하는 마음은 마냥 가볍지 않다. 1929년, 궁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백화정이 기다리고 있다.

75 | 부여를 흐르는 금강, 백마강 | 부여를 지나는 금강의 물줄기를 ‘백마강’이라고 부른다. 물론 조선시대 때부터 백마강이라고 불렀으니 이미 오래된 이름이다. 백마강은 4대강 사업의 일부다. 사뿐히 물안개가 내린 강변에 파헤쳐진 땅과 굴착기의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지만 예전 모습이 어땠는지, 정말로 흙탕물에 장마 때마다 강이 범람하였는지 외지인은 알도리가 없었다. 다만 앞으로도 이 강이 지금처럼 깊고 고요하게 흐를 수 있기를 바랐다.
76 | 연잎밥의 명가, 백제의 집 | 여름이면 연꽃이 지천으로 피고, 쌀과 곡물이 풍부한 부여에서 연잎밥이 유명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여 시내에 위치한 백제의 집은 백제향과 함께 부여 2대 연잎밥집으로 꼽는 곳 중 하나로 벽에 걸린 부여의 옛 모습을 기록한 필름과 사진에서 부여와 함께 자란 연잎밥의 명성을 엿볼 수 있다. 연잎이 감싸고 있던 밥은 향기롭고 쫀득하다. 절로 우아해지는 맛이다. www.baekje-house.co.kr
77 | 3년 더 어려지는 약수 | 고란사를 찾아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낙화암을 지나고도 가파른 계단을 좀 더 걸어가야 하니까. 암자는 작고, 유명한 탱화나 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란사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약수와 약초 때문이다. 약수를 연거푸 마신 할아버지가 갓난아기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다. 구드래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는 걸, 절을 찾고 난 후에 알았다.
78 | 부여에서의 하룻밤, 롯데부여리조트 | 얼마 전 오픈 1주년을 맞이한 롯데부여리조트는 롯데그룹과 부여군이 야심차게 선보이는 백제테마파크 프로젝트의 일부다. 백제문화단지를 길 하나 두고 자리한 리조트는 아쿠아가든을 시작으로 놀이공원, 아울렛 등의 부대시설을 2013년까지 완공 예정이다. 부여의 기와를 형상화한 외관부터 객실의 침대머리, 장식장까지 백제 관련 모티프로 가득하다. www.lottebuyeoresort.com
79 | 백제 역사가 쏙쏙, 백제문화역사관 | 1400년 전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만든 백제문화단지는 일종의 테마파크다.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재현한 사비궁, 한국전통문화학교와 롯데부여리조트와 함께 문화단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2006년 문을 연 백제문화역사관. ‘역사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유물 전시보다 일목요연하게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정리해둔 곳이다. 국립부여박물관이 부연 설명이 많은 전과라면, 백제문화역사관은 족집게 참고서라고 보면 되겠다. www.bhm.or.kr
80 | 부여 생선의 맛 | ‘굿뜨래’는 부여군의 농수산물 브랜드다. 구드래공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음식점 밀집구역을 ‘굿뜨래 음식문화거리’라 부르는데 35년 전통의 나루터식당도 그중 한 곳이다. 매운탕과 장어구이가 유명한 곳으로 겨울과 초봄에는 부여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우어회도 판매한다. 방이 나뉘어 있어 조용히 식사를 하기에 좋다.

진주

진주성과 남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펼쳐진 ‘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방문화가 흥했던 곳이다. 과거의 풍류가 여전히 그 자취를 드리우고 있는 진주는 요란스럽지 않지만 멋이 넘쳐흐르는 도시다. 그래, ‘청아하다’는 표현을 쓰겠다.

81 | 건축가가 지은 박물관 | 국립진주박물관을 본 순간 ‘이렇게 예쁜 국립박물관은 처음 본다’며 탄성을 질렀다. 경관을 파괴하지 않도록 건물을 낮게 하고 거대해 보이지 않도록 지붕을 분절한 박물관은 故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 2008년 재개관한 박물관은 고민 끝에 지은 훌륭한 외관에 걸맞게 전시도 알차다. 재일교포인 故 김두암 선생이 기증한 문화재를 상설 전시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특별전시가 열린다. jinju.museum.go.kr
82 | 진주시민들의 쉼터, 진주성 | 진주성은 임진왜란과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는 곳이다. 논개가 몸을 던진 촉석루가 있는 곳이자 3800명으로 3만 명의 왜군의 발목을 7일간 상대하며 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대첩을 펼친 장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왜군의 2차 침략 때 병사와 군민 6만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지금의 진주성공원은 평온하다. 공원 바로 옆으로는 남강이 유유히 흐른다.
83 | 진주의 한강, 남강 | 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진주에는 남강이 있다. 낙동강의 지류 중 한 갈래로 진주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남강은 매해 10월이면 분주해진다. 갖가지 형상의 유등을 띄우고 불꽃축제와 공연을 여는 진주남강유등축제 때문이다. 조용한 남강에 떠있는 유등들이 마치 케이크 위의 예쁜 장식 같다. 축제가 끝난 후 유등이 걷힌 남강은 알록달록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반짝인다.
84 | 3시면 빵이 떨어지는 빵집 | 테이블 5개와 ㄷ자 모양의 카운터 하나뿐인 수복빵집은 단출하다. 진주 중앙시장의 명물인 수복빵집은 40년 전통의 꿀빵과 찐빵 전문점. 눈, 코, 입만 직직 그어놓은 얼굴처럼 멋을 부리지 않은 찐빵은 달다. 점점 좋은 팥을 구하기 힘들어지면서 농약을 빼내기 위해 여섯 번, 일곱 번을 씻고 삶은 물을 버려내는 수복빵집은 그날 만든 빵이 다 떨어지면 문을 닫는데 보통 오후 3~5시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겠다.

85 | 진양호를 한눈에, 진양호 전망대 | 1970년 남강댐을 만들며 생겨난 진양호. 진양호와 그를 감싸 안는 지리산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진양호 전망대가 최근 리노베이션 끝에 새로이 태어났다. 휴게실과 탄탄한 데크가 마련된 전망대 오르는 길에는 동물원과 놀이동산, 진주문화예술원, 소싸움경기장, 자동차극장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86 | 왕후가 얼굴을 비추던 연못 | 물을 달라는 이성계 장군에게 “급히 물을 마시면 체할까 하여 나뭇잎을 넣었습니다”라고 말했던 여인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이 여인은 후에 왕비가 되었는데, 그 신덕왕후가 얼굴을 비춰볼 정도로 맑고 깨끗한 연못이 바로 학영지다. 청곡사 바로 밑에 자리하고 있으며 물은 여전히 맑고 깊다.
87 | <식객>이 선택한 냉면, 하연옥 | 황진이가 있었던 평양과 함께 조선시대 ‘교방문화’가 가장 성행했던 곳이 진주다. 덩달아 함께 발달한 것이 진주냉면. 노릇하게 구운 소고기 육전과 지단을 올리고, 해물육수로 맛을 내는 진주냉면은 생김새부터 화려하다. 새우, 멸치, 바지락, 다시마 등을 우려낸 해물육수 때문에 호불호는 갈리지만 한번 먹어봄직하다. 하연옥은 66년째 진주냉면을 말아 내는 할머니의 딸이 운영하는 곳으로 지난 7월 ‘진주향토음식관 하연옥’으로 이름을 바꾸며 지금의 크고 커다란 건물로 옮겼다. <식객>에 나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www.jinjufood.co.kr
88 | 국보급 괘불탱화를 볼 수 있는 청곡사 | 신라시대 때 창건된 청곡사는 진주 월아산 자락에 위치한 진주의 고찰이다. 원래부터 귀한 천 년 넘은 사찰 중에서도 청곡사를 찾는 사람들이 요새 들어 늘어난 이유는 불교문화박물관 때문이다. 향로, 퇴계선생 시, 국보로 지정된 괘불탱화 등이 보관되어 있다. 박물관은 주말에만 개방한다. www.chunggoksa.or.kr
89 | 독일 팬케이크를 맛보다 | 올해 3월 문을 연 빅쏭은 홈메이드 와플 카페다. 크림색과 에메랄드색으로 칠한 널찍한 실내는 젊은 두 오너만큼이나 밝고 경쾌하다. 여기에 빅쏭만의 필살기 메뉴가 있으니 바로 독일식 팬케이크인 더치 베이비. 간결한 생김새에 쫄깃한 식감이 매력적으로 꿀을 뿌려 먹는다. ‘북카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책과 신간 잡지가 책장에 가득하니 오래 머물러도 좋겠다.
90 | 진짜 프랑스의 맛을 전하는 파리지엔느 | 파리에서 20년 넘게 살다 온 오너가 2009년 차린 파리지엔느는 파리, 니스, 부르고뉴 등 프랑스의 다양한 맛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이는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프랑스 요리를 꼼꼼히 찾아내고 차려낸 오너의 능력 때문이다. 예약제로만 운영되며 식재료를 사고, 파리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세 달에 한 번은 장기간 문을 닫는 까다로운 곳이지만 오랜 시간 모아온 그릇과 소품, 그리고 음식을 누리기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하다.

목포

목포는 ‘목포는 항구다’라는 문장으로 귀결된다.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해산물이 넘치고,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대의 흔적도 구둣발 자국처럼 남아 있다. 뱃사람들 특유의 호방함이 도시의 공기에 밴, 목포는 항구다.

91 | 곧 사라질 해안마을의 광경 | 재개발을 앞둔 다순구미 마을은 목포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 집, 또 한 집이 생기고 어떤 집은 증축을 하기도 했을 마을의 집과 주택들은 레고처럼 빈틈없이 들어맞는다. “지금이야 바위에 풀도 나고 나무도 자랐지만 공장이 돌아가던 10년 전만 해도 먼지랑 석면 때문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어. 나도 지금은 폐가 안 좋은데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지.” 마을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초록색을 찾은 이 오래된 마을이 조금 더 남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92 | 호남 최대의 개인정원, 이훈동 정원 | 개인 정원의 넓이가 1300평이라니, 감이 오지 않는다. 졸업한 고등학교의 운동장 넓이가 1000평은 되었는지 생각해본다. 호남에서 가장 큰 개인정원의 소유자인 이훈동 정원의 원래 주인은 일본인으로 지금도 일본식 석탑과 일본에서 온 식물 등 일본 정원양식의 흔적이 보인다. 담벼락에 늘어지는 나뭇가지까지 계산 끝에 다듬어진 이 정원은 그 어떤 서울부자도 꿈꾸지 못할 사치다. 심지어 초인종만 누르면 문이 열리고, 얼마든지 정원을 구경할 수 있다. 역시 어떤 서울부자도 하지 않는 일이다.
93 | 목포의 일몰은 갓바위공원에서 | 항구의 일몰이 궁금하다면 갓바위공원에 오르면 된다. 수백 개에 달하는 계단을 오를 각오만 하면 바로 남쪽 바다 너머로 ‘꼴깍’ 넘어가는 해를 볼 수 있다. 노랗더니, 순식간에 홍시처럼 새빨개지는 해는 잘 익어가는 감 같다, 순식간에 어둠이 내리는 하늘과 바다가 한창 공사 중인 목포대교 뒤편으로 그림같이 번진다.
94 | 임금님의 보양식 민어를 회로 먹다 | 해산물이 워낙 풍부한 도시이다 보니 임금님이 보양식으로 먹었다는 민어를 회로 먹는 호사도 누리게 된다. 한 마리 크기가 1미터에 육박하는 민어의 덩치에 맞는 두툼한 회를 직접 담근 장과 다대기와 함께 씹어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아무리 술을 먹어도 취하지 않을 것만 같이 든든하다.

95 | 새로운 목포명물, 평화광장분수쇼 | 신도시 열풍이 부는 것은 목포도 마찬가지다. 롯데시네마, CGV 등이 주변에 들어서며 데이트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평화광장 주변을 목포의 청춘들이 찾는 이유는 밤마다 펼쳐지는 분수쇼를 보기 위함이다. 가곡, 트로트, 클래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20분간 연주되는 곡에 맞춰 분수들이 오색빛깔로 춤춘다. 청계천이나 예술의전당의 분수쇼보다 훨씬 호쾌하다.
96 | 코롬방 제과의 생크림빵 | 코롬방 제과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생크림빵과 생크림케이크를 선보인 곳이다. ‘크림빵’에서 ‘코롬방’이라는 상호가 기원한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해보는 코롬방 제과 케이크의 데커레이션은 하나같이 향수를 자극한다. 똑같은 케이크가 1호, 2호, 3호로 크기만 달리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반갑고, 거대한 슈처럼 크림이 터져나올 것 같은 크림빵과 진한 치즈 타르트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고인다.
97 | 목포항의 ‘이삭줍는풍경’ |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호남 최대의 항구도시인 목포에는 수산시장도, 횟집도 많다. 해 질 무렵의 남항은 그날 잡아들인 고기를 걷는 손길들이 한창이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떼어내고, 갓 잡힌 고기를 박스에 담는 그 싱싱한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해가 진다. 노을을 등지고 이삭 대신 고기를 줍는 어부들의 뒷모습이 경건했다.
98 | 잊어서는 안 될 과거 | 우리네 근대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목포근대역사관은 그 ‘시절’을 잊지 않도록 하는 곳이다. 예전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쓰였던 2층짜리 건물의 1층에는 목포의 근대풍경이, 그리고 2층에는 위안부와 양민학살 등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이 사진으로 생생하게 걸려 있다. 눈 돌리고 싶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지만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 거다.
99 | 게장과 홍어삼합을 한번에 | 인동주식당에 다녀온 후 간장게장 맛을 알았다. 목포 음식명인의 집으로 지정되기도 한 이곳은 인동초를 이용해 담근 꽃게장과 막걸리, 평화주를 판매하는 것으로도 이름 높다. 목포 음식을 골고루 즐기고 싶다면 게장과 홍어삼합이 함께 나오는 정식을 주문할 것. 삭을 대로 삭은 홍어와 김치를 즐기는 마니아는 아쉽겠지만 홍어 초보자가 시도하기에는 딱 좋다. www.indongju.kr
100 | 목포명물 세발낙지 먹기 | 세발낙지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가 살아있는 낙지를 손으로 쭉쭉 늘려 젓가락에 휘감은 후 정성스레 장에 찍어 입 앞으로 가져다주었을 때 감사한 마음보다 울고 싶은 마음이 컸다. 살아 있는 낙지는 씹을수록 맛있어서 또 한 번 올 뻔했다. 맑은 국물에 싱싱한 낙지로 맛을 낸 연포탕은 술술 넘어갔다. 식사 때가 아닌데도 손님이 북적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www.nakji197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