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을 시작하고, 첫경험을 하는 순간 여자의 자궁은 각종 세균과 질병에 노출된다. 자궁에 침투한 세균은 곳곳에 염증을 일으키고, 제때에 치료하지 않으면 불임이 될 수도 있지만, 산부인과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병을 키우는 여성이 너무도 많다.

몇 달 전 EBS <명의>에서 ‘여성 통증, 자궁의 경고’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자궁근종, 자궁내막증 등 자궁 관련 질환에 대해 다뤘는데, 놀랍게도 환자들 상당수가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이었다. 게다가 아직 미혼이고 출산 경험이 없는 이들도 많았다. 1년 전 취재 차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을 때 별다른 이상이 없긴 했지만, 막상 비슷한 나이대의 환자들을 보자 한동안 잠잠했던 ‘건강염려증’이 다시 발동했다. 스물일곱 환자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주먹만한 근종 여러 개가 자궁에 퍼져 있었다. 근종 제거수술은 배에 작은 구멍을 내어 특수카메라가 부착된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는데, 제거한 종양을 잘게 절제해서 꺼내야 할 만큼 근종이 어마어마한 크기로 커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한 환자는 2년 전 근종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수술을 미루다 최근에야 종양이 커진 것을 발견했는데, 수술의 통증보다는 불임의 가능성은 없는지부터 물었다. 미혼인 여성에게 불임은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기에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았다. 미혼인 여성은 산부인과 검진을 받기를 꺼려 초기에 근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궁근종이 있음을 알고도 혹시나 불임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수술을 미뤄 크기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주변에도 스물 아홉이 되도록 산부인과 문턱을 못 넘은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자궁질환은 피부 트러블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6개월 혹은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이 필요하다. 또한 통증이나 출혈처럼 평소와 다른 증상이 나타났을 땐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자궁근종 “생리통이 갑자기 심해졌어요”
증상 평소 생리통이 없었는데 갑자기 생리통이 생겼거나 평소보다 생리통이 심해졌다면 자궁근종을 의심해볼 만하다. 생리량이 많아져 어지럽고 속이 매슥거리는 증상도 나타난다. 근종의 크기가 커지면 하복부에 불쾌감이나 통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근종이 방광이나 직장을 눌러 소변을 지나치게 많이 보거나 변비가 나타나기도 한다.
원인 자궁근종은 자궁의 근육세포가 과다하게 증식해 생긴 양성종양으로, 가임기 여성 5명 중 1명이 가지고 있을 만큼 흔한 질환이다. 자궁근종의 원인은 아직까지 알려진 게 없지만, 여성호르몬 중 하나인 에스트로겐이 근종의 크기를 키운다는 점은 입증됐다. 양성종양으로 크기가 서서히 자라기 때문에 크기가 작고, 종양이 자라는 위치가 불임을 유발하는 곳이 아니라면 크게 문제되진 않는다.
검사 및 치료법 근종의 크기는 1cm부터 30cm까지 다양한데, 근종의 크기가 크지 않고 별다른 증상이 없다면 6개월마다 초음파검진을 하면서 근종의 수와 크기를 관찰한다. 근종의 크기가 크고 이를 방치할 경우 불임의 위험이 있다면 호르몬요법을 쓰거나 수술로 제거한다. 최근에는 복강경 수술처럼 복부 주변에 3~4개의 작은 구멍을 내 로봇 팔을 조정해 근종을 제거하는 로봇수술법이 인기다. 호르몬요법은 효과가 일시적이고, 근종을 제거해도 재발률이 50%를 넘기 때문에 치료 후에도 정기 검진을 통해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또한 종양은 에스트로겐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여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녹용과 인삼, 여성호르몬을 함유한 석류 같은 음식은 피해야 한다.

세균성 질염 “질 분비물 색깔이 누렇게 변했어요”
증상 우윳빛에 가까워야 할 질 분비물이 누런 색이나 회색으로 변하고 생선 비린내가 난다면 세균성 질염이 의심된다.
원인 자궁질환 중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세균성 질염이다. 질내 환경을 산성으로 유지하는 ‘락토바실리’ 유산균이 사라지면서 세균수가 급속히 늘어나는 것이 원인인데, 잦은 성관계와 질 깊숙한 곳까지 물로 씻어내는 습관 등이 유산균을 사라지게 하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검사 및 치료법 유산균이 한번 사라지면 회복이 어려워 자주 재발하게 되므로, 치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 병원에서는 질 분비물을 채취해 검사하고, 세균성 질염이 확인되면 항생제를 처방한다.

자궁내막염 “외출이 어려울 만큼 생리량이 많아졌어요”
증상 월경기간이 아닌데도 피가 비치거나, 생활이 불편할 만큼 생리량이 늘어나면 자궁내막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반대로 몇 달째 생리가 없는 경우에도 자궁내막염일 가능성이 있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기도 하고, 아랫배에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며, 질 분비물의 색깔이 누렇게 변하기도 한다. 자궁내막염에 걸리면 성관계를 가질 때 통증이 심하고, 생리통도 심해진다.
원인 자궁내막은 자궁의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점막이다. 질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 각종 세균에 감염돼 염증이 생기는데, 이를 자궁내막염이라고 한다. 가임기 여성 10명 중 1명꼴로 발생한다.
검사 및 치료법 혈액검사를 통해 백혈구 수치와 염증수치를 확인하고 질 분비물을 현미경으로 검사한다. 증상이 확인되면 항균제와 항생제로 치료한다. 자궁내막염을 방치하면 불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기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 후에도 재발하는 경우가 많아 꾸준한 검사와 관리가 필요하다. 성관계를 갖는 도중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자궁내막증 “월경 기간 내내 심한 통증을 느껴요”
증상 초경을 시작한 이후로 월경통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월경 전부터 월경 기간 내내 갑작스러운 통증이 지속된다면 자궁내막증일 확률이 높다. 불임으로 병원에 찾았다가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원인 자궁내막은 난자가 착상을 준비하는 동안 두꺼워지고, 착상이 안 되면 자궁내막이 허물어지면서 몸 밖으로 배출되는데 이것이 바로 월경 혈이다. 가끔 월경 혈이 밑으로 쏟아지지 않고 역류해 난관을 타고 이동하기도 하는데, 자궁내막 조직이 난관의 끝부분인 나팔관이나 난소, 자궁표면, 자궁 주변 장기인 방광이나 장 등 엉뚱한 곳에 자리 잡는 것을 자궁내막증이라 한다. 가임기 여성의 10명 중 한 명이 걸릴 만큼 흔한 질환이다.
검사 및 치료법 증상이 나타나면 먼저 초음파를 통해 이상소견이 있는지 확인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확진한다. 호르몬제를 복용하거나 한 달에 한 번 호르몬주사를 맞으며 경과를 지켜보고 호전되지 않거나, 불임이 될 가능성이 보이면 복강경을 통해 제거한다. 자궁내막증으로 인해 불임이 된 경우 수술 후 35~60%만이 임신에 성공하고, 치료 후에도 재발률이 높으므로 지속적인 검진과 관리가 필요하다.

골반염 “골반과 아랫배에 원인 모를 통증이 느껴져요”
진단 골반과 아랫배에 원인 모를 통증이 느껴지고 몸에 열이 난다면 골반염일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평소보다 질 분비량과 생리량이 늘고, 소변을 볼 때도 불쾌감이 느껴지는 것도 골반염의 흔한 증상이다.
원인 골반염은 자궁 안에 있던 세균이 자궁내막과 나팔관, 복막 주변에 퍼지면서 염증을 일으켜 발생한다. 질염이나 자궁 입구에 해당하는 경부에 생긴 염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세균이 자궁을 타고 위로 올라가면서 골반염이 생기기도 한다. 염증을 일으키는 세균은 성병의 원인으로 알려진 임질균, 클라미디아균이 가장 대표적이다.
검사 및 치료법 골반염이 의심되면 의사가 질 안에 손가락을 넣어 자궁, 난소, 난관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지를 확인하고 질 내 분비물 검사를 통해 세균이 있는지 살펴본다. 염증이 확인되면 항생제를 투여해 치료하는데, 난소나 나팔관에 생긴 염증으로 인한 고름주머니가 생긴 경우는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 골반염은 성관계를 통한 세균감염이 주된 원인 중 하나므로 성관계 시 콘돔을 사용하고, 평소 질 안을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치료기간에는 성관계를 자제하고 상대방도 함께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자궁경부염 “질 주변이 가렵고 질 분비물에 피가 섞여 나와요”
진단 성관계를 갖는 도중에 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질 주변이 간질간질하고, 질 분비물에 피가 섞여 나온다면 자궁경부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개는 증상이 없다 보니 나팔관, 난소, 복막으로 염증이 번져 골반염으로 발전하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인 자궁경부는 질의 맨 윗부분이자 자궁이 시작되는 입구다. 자궁경부에 세균으로 인한 염증이 생기면 노란색이나 연두색을 띠는 화농성 분비물이 나오는데, 골반염과 마찬가지로 임질균, 클라미디아균에 의한 감염이 주된 원인이지만, 50%는 알 수 없는 세균에 의해 발생한다.
검사 및 치료법 검사는 면봉으로 자궁경부 안쪽 관에서 분비물을 채취해 고름과 비슷한 분비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채취한 질 분비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염증을 일으킨 세균이 무엇인지 알아낸다. 원인균을 찾으면 항균제나 항생제로 치료한다.

자궁경부암 “생리기간이 아닌데 피가 나오고 악취가 나요”
진단 자궁경부암이 의심된다. 초기에는 성관계 후 피가 약간 묻어 나오는 정도지만 암이 진행되면 생리기간이 아닌데도 피가 나오고, 질 분비물이 많아진다. 자궁에 생긴 궤양이 심해지면 악취가 난다. 초기 증상이 미미하므로 정기 검진만이 확실한 예방책이다.
원인 최근 들어 20~30대 여성의 자궁경부암 발병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국가암관리사업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매년 20대 여성 90여명, 30대 여성 8백10명 정도가 자궁경부암에 걸려 투병 중이라고 한다.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의 지속적인 감염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인유두종바이러스는 성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감염이 되도 보통은 별 증상 없이 2년 내에 자연치유되지만, 면역 기능이 저하된 여성이나 나이 든 여성에게서 드물게 감염이 지속돼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 성관계를 시작했거나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많은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경우, 흡연력이 있는 여성에게서 상대적으로 자궁경부암 발생률이 높았다.
검사 및 치료법 자궁경부 세포진 검사를 통해 인유두종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확인한 다음, 이상이 발견되면 질 확대경으로 내부를 관찰하고, 자궁경부를 원추 모양으로 절제해 조직검사를 한다. 치료법은 병의 진행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한다. 자궁경부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고 임신도 가능하지만 2기를 넘어서면 방사선이나 호르몬 치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불임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1년에 한 번은 검진을 받는 게 좋다. 자궁경부암 백신도 나와 있어 예방도 가능하다. 인유두종바이러스의 여러 유형 중 자궁경부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특정 유형의 가짜 항원을 주입해 항체를 만드는 원리인데, 백신을 맞은 여성의 경우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인유두종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면역력이 8~10배이상 높게 유지되며, 생식기 사마귀 등 성병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첫 월경이 시작되고, 첫 성관계를 시작하는 순간 여자의 자궁은 외부의 위험에 노출된다. 하지만 자궁 관련 질환은 병이 상당히 진행되기 전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고, 통증이 느껴져도 월경통이겠거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조기 발견이 쉽지 않다. 결혼을 앞두었거나 임신을 계획하고서야 산부인과를 처음 찾는 이들이 많다 보니 치료 시기를 놓쳐 불임이 되는 안타까운 일도 자주 발생한다. 불임뿐 아니라 월경통과 성교통, 빈혈, 피로, 피부 트러블, 변비, 다뇨 등도 알고 보면 자궁 질환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첫 경험 이후로는 1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www.wisewoman.co.kr)를 통해 산부인과 전문의로부터 직접 상담을 받는 방법도 있다.